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진짜 그림자 (2)
탁.
찻잔을 내려놓는 곱디고운 하얀 손.
“교주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세요.”
명운은 찻잔을 향해 손을 뻗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을 호구라고 한단다.”
“교주님은 호구가 아니죠.”
“좋기만 한 사람인데?”
경은은 쟁반을 뒤로 숨기며 살짝 혀를 내밀었다.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잘 이용하시잖아요.”
명운은 그녀답지 않은 애교에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훗, 네가 이렇게 말할 때도 있구나.”
“교주님이야말로 조금 더 젊게 사실 수 있지 않나요?”
명운은 자신의 언행이 젊은 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있나? 겉은 약관이지만 속은 아닌 것을.’
그가 차를 한 잔 마신 뒤 말했다.
“젊게 산다. 어떻게 살면 젊게 사는 것이냐?”
“젊게 사는 방법은 모르지만, 교주님처럼 매일 일만 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꾸나.”
경은은 예상 밖의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꾸나.”
오랜만의 산책.
경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이시라고요.’
교주가 된 이후, 아니 대산으로 돌아온 이후 명운은 단 한 번도 여유를 가지고 산책한 경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는 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경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요?”
“싫은 것이냐?”
“아뇨. 그럴 리가요.”
두 사람은 서재를 나와 태화전의 정원인 태화원으로 향했다.
태화원.
이곳에는 천마신교 교주들이 지난 수백 년간 모아 온 기암괴석과 진귀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명운은 교주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이곳을 찾은 적이 없었다.
‘내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곳이군.’
그가 육공자 명탁에 의해 물에 빠졌던 곳이 바로 태화원이었다.
“저것들을 다 팔면 얼마나 될까?”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묻자 경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교주님, 아니, 사부님…….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 하나요?”
“불필요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구나.”
“교주님께는 불필요할지 몰라도……. 아니 교주님께도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것들이 꼭 필요하다고?”
경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매일 일만 하시니, 밖으로 나가 경치를 즐기실 수 없으시지 않습니까?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원이 필수입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흠, 밖으로 나가 경치를 즐길 수 없다. 교주란 딱한 사람들이구나.”
물론 업무를 뒤로하고 주색에 탐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운은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천마신교 대대로 그런 교주는 몇 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명증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책무에 충실한 사내였다.
“그러니 꽃과 정원은 꼭 필요합니다.”
“그래도 너무 비싼 것은 사양하고 싶구나.”
경은이 그의 뒤를 따르며 말끝을 올렸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될까요?”
“어떻게 말이냐?”
“지금 있는 것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돈을 쓰진 않는 것입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은아, 너도 사부를 닮아가는 모양이구나.”
“네?”
“어느 한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구나.”
“그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명운은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도 일도 다 놓치고 싶지 않구나.’
그는 자신이 욕심을 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이 푸르구나.”
경은은 그가 이렇게 산책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북쪽에서 들려온 승전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누한이 물러났기에 사부님께서 여유를 되찾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누한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아니 명천의 공격이 성공했다면 명운은 정원을 산책하는 대신 무복을 입고 비로궁으로 달려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천의 공격은 실패했고, 이누한은 병사들을 퇴각시켜 명사산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명운은 자신이 빠졌던 연못 앞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싸워 보겠다고 외쳤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와 광명좌를 차지했다.
‘이것만으로 끝일까?’
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교의 풍파를 잠재우고, 더 나아가 강호의 풍파를 잠재운다. 어쩌면 그 이상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가 생각하는 풍파를 잠재운다는 것은 중원 정벌이나 정사대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짓을 벌이면 명각과 내가 같은 사람이 되겠지.’
죽음 앞에서 그는 명각과 그의 신념을 부정했다. 그런 그가 명각의 신념을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을 그을 생각이다.”
경은은 그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했다.
“선을 그으시다니요?”
명운이 푸른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천하에 선을 그을 것이다.”
경은은 모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천하에 선을 긋는다? 무엇을 뜻하는 말씀이실까?’
그는 명운이 정사대전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정사대전이라. 이런 좋은 날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경은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명운 앞에 섰다.
“제자 노래 한 곡 불러 드리겠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노래를 부른단 말이냐?”
“제자 제법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
여인의 노래를 감상한다.
명운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나 경은은 그의 생각과 상관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개봉 무림맹 총단.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모두 모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이셨으니,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오늘 모임을 연 것은 무림맹주 남궁민이었다. 그는 앞서 장공자 명천과 휴전을 맺은 바 있었다.
“맹주께서 저희를 모은 것은 강호에 돌고 있는 소문 때문이 아닙니까?”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질문을 던진 것은 공동파 장문인 영진도장이었다. 그는 강호에 나오는 일이 드물었지만, 중원의 소식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남궁민은 그의 질문을 부인하지 않았다.
“마교의 교주가 죽고, 새로운 교주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명증이 죽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치미 떼고 있었지만, 무당이나 소림처럼 규모가 있는 문파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형산파나 점창파 또는 공동파와 같이 그 힘이 중원 전체에 미치지 못하는 문파들은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맹주께 묻겠습니다. 마교의 새로운 교주는 누구입니까?”
형산파 장문인 악흔의 물음에 남궁민이 답했다.
“명증의 막내아들인 명운이 새로운 교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 막내아들이 말입니까?”
“허허허, 형들을 누르고 막내가?”
“놀라운 일이군요.”
구파일방은 대사제 또는 대제자가 장문인의 위를 잇는 것이 당연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명운의 등장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나 개방의 용두방주는 다른 이들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명운의 등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아이가 교주가 되었군.’
그가 접한 명운의 무위는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그런 무위를 지닌 자가 교주가 되지 못한다면, 그 누가 교주가 될 수 있겠는가?
“막내가 교주가 되었다면 배경이 막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형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모두의 의견이 분분할 무렵.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 입을 열었다.
“누가 마교주가 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마교주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림맹주 남궁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진명도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누가 교주인가가 아니라 그가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용두방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오른손을 들었다.
“본방주는 그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용두방주는 어깨를 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와 제가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맹주 남궁민이 그에게 말했다.
“방주께서는 모두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용두방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젠가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명운이라는 자는 겉으로 볼 때, 또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입니다.”
공동파 장문인 영진도장은 청년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정말로 그가 청년입니까?”
용두방주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마교주의 막내아들이니, 청년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무공은 또래 청년들과 크게 달랐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의 무공은 화경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화경이라니, 너무 높게 본 것이 아닙니까?”
“제 경험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화경에 근접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소림 방장과 무당 장문인 정도였다.
나운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약관에 불과한 자가 화경의 경지에 오르다니 말입니다.”
다른 장문인들도 나운과 같았다.
“화경이라.”
“어려운 일이군요.”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용두방주께서 직접 경험하신 일이니, 저는 믿겠습니다.”
여러 장문인이 일제히 그를 향해 말했다.
“약관의 청년이 어찌 화경에 이를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장문께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명도장이 굳은 음성으로 되물었다.
“안 될 일은 또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문!”
“여러분께서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마교주가 이루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명도장! 말씀이 심하십니다!”
형산파 장문인 약흔도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진명도장께서 과하셨습니다. 사과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진명도장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과할 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장문.”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무림맹주 남궁민이 오른손을 세웠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그의 외침에 장문인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는 분위기를 환기한 뒤 용두방주에게 물었다.
“방주께서는 그와 진심으로 싸우셨습니까?”
용두방주가 대답했다.
“진심으로 싸웠고, 형편없이 패했습니다.”
이번 한마디는 앞선 발언보다 장내에 더 큰 혼란을 일으켰다.
“형편없이 패하셨다니요?”
“방주,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믿을 수가 없군요.”
“역시 마공(魔功)일까요?”
“소마두가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공을 연마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소림사 방장 혜명대사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모두의 귀에 꽂히듯 들어왔다.
“아미타불, 소승은 아주 오래전에 마교주의 무공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청성파의 새로운 장문인 자현도장이 자세를 낮추며 물었다.
“대사, 마교주의 마공을 목격하셨단 말씀이십니까?”
혜명대사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것은 마도(魔道) 그 자체였습니다. 검은 마기(魔氣)가 사방을 압도했으며,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기는 검과 도를 가볍게 부러뜨렸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소승은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림맹주 남궁민이 물었다.
“당시의 마교주는 명증이었습니까?”
혜명대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아버지 명진의 마공이었습니다.”
“하면 천마신공이란 마공이겠군요.”
천마신공(天魔神功).
마존(魔尊) 천마가 창시했으며, 수백 년 동안 중원을 광기와 피로 물들였다는 대마공.
구파일방 장문인들은 천마신공이라는 한마디에 치를 떨었다.
“소마두가 천마신공을 익혔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화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허허허, 이것 참 큰일이군요.”
“무림에 화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무림맹주 남궁민이 용두방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주께서 접하신 마교주의 무공은 어떠하였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신 무공과 일치하였습니까?”
용두방주는 명운과 대결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무공에서 검은 마기(魔氣)나 불쾌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용했던 무공은 구파일방의 무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면 그의 무공이 천마신공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용두방주는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무공이 천마신공이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장 대사께서 목격하신 것과 분명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림맹주 남궁민은 그의 대답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의 무공이 마공이든 아니든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다면 위협적인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형산파 장문인 악흔도장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무림맹주 남궁민이 두 손을 모으며 말을 받았다.
“비선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으니, 곧 자세한 정보가 도착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들 여독이 쌓여 있으실 테니, 이틀 뒤, 같은 시각에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구파일방 장문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무림맹 총단에 머무르며 명운을 상대할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
무림맹주 남궁민은 용두방주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방주께서는 더 하실 말씀이 있는지요?”
용두방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맹주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궁민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바둑을 한판 두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좋습니다.”
용두방주는 남궁민과 함께 밀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