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진짜 그림자 (3)
용두방주에게 바둑은 흔히 말하는 신선놀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사부로부터 바둑의 기본을 배웠지만, 그것을 즐기지는 않았다. 걸개에게 어울리지 않는 취미라 생각했던 것이다.
탁.
화점에 내려앉은 검은 돌.
그 돌은 사방을 제압하고자 했다.
“방주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맹주의 물음.
용두방주가 바둑돌을 잡은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마교의 내분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적의 내분은 아군에게 기회가 되겠죠.”
무림맹주 남궁민은 두 번째 돌을 놓으며 말했다.
“그 기회를 살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용두방주가 검은 돌을 놓으며 답했다.
“맹주께서 보위산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탁.
하얀 돌이 검은 돌 바로 옆에 놓였다. 상대의 진격을 끊는 한 수.
“무림맹의 고수들이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용두방주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역시 개방의 눈과 귀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군요.”
“맹주께서는 정녕 보위산을 탈환하려 하십니까?”
무림맹은 명천과 휴전을 맺었지만, 그것은 다음 전투를 위한 준비 기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많은 고수가 보위산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구파일방 장문인들을 모은 것도 사실은 보위산 탈환전을 선언하기 위함이었다.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뿐입니다.”
“욕심을 내면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방주께서는 제가 욕심을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용두방주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맹주께서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주변의 인물들이 욕심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탁.
남궁민이 멀찍이 돌을 놓으며 말했다.
“부맹주는 근신 중입니다.”
무림맹에서 가장 욕심을 부렸던 이는 바로 부맹주 좌건이었다.
“맹주께서는 뜻을 되돌릴 생각이 없으신 것 같군요.”
남궁민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방주께서는 이번 싸움에 불만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몇 분이나 찬성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인의(人義)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교를 상대로 말입니까?”
“군자(君子)라함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의를 지키는 자를 말합니다.”
남궁민은 용두방주가 좌건의 토벌전을 부정하며 무림맹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개방은 빠지실 생각이시군요.”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맹주께서 마음을 돌리셨으면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교에 우호적인 것입니까?”
“마교에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남궁민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본맹은 마교의 공격에 많은 고수를 잃었습니다.”
용두방주가 목에 힘을 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본방도 허 장로를 비롯한 많은 형제를 잃었습니다.”
“정녕 방주께서는 형제들의 복수를 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
“형제들은 중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중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교를 멸해야 합니다.”
용두방주는 미간을 좁혔다.
“맹주께서는 마교를 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마교를 멸한다면 그것에 성공한다고 해도 막대한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그는 마교 토멸이 그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다고 해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맹주!”
남궁민은 마교를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토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방주의 뜻이 우리와 같지 않다니, 아쉽습니다.”
용두방주는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찬성한 것입니까?”
앞서 회의에서는 많은 이가 이번 일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세 분 정도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용두방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소림, 무당, 화산입니까?”
세 문파의 힘은 나머지 일곱 문파의 힘을 압도했다.
“역시 개방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용두방주의 짐작대로였다.
‘소림과 무당에 화산까지 찬성했다면 일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후개 또한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후개가 말입니까?”
후개는 용두방주의 제자이자 후계자였다.
“모르셨군요.”
용두방주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정중하게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주가 거절했으니, 개방의 힘은 빌리지 않겠다.
남궁민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용두방주가 돌을 집으며 말했다.
“구파의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개방도 응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방주께서 뜻을 꺾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것은 제 뜻이 아니라 모두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개방도 이번 토멸전에 참가할 것이다.
남궁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방주께서는 대의를 아시는 분이시군요.”
“과찬이십니다.”
두 사람의 바둑은 여기까지였다.
투툭.
용두방주가 반상 위에 여러 개의 돌을 던지며 항복을 선언했다.
“오늘 바둑은 여기까지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시지요.”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용두방주는 가볍게 인사한 뒤 밀실을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간 직후 뒤쪽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끝까지 반대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무당 장문인 현진도장이었다.
“방주는 대의를 아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호감 때문에 대업을 망치진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전대 방주가 선택한 인물입니다.”
용두 방주는 자신의 후계자인 후개를 선택할 때 개인적인 친분이나 혈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직 능력과 성품만을 보았다.
“다행입니다.”
남궁민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지요. 아무래도 용두방주는 지난 싸움에서 마교주의 무공에 탄복한 모양입니다. 무인 대 무인으로서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요. 다만 공과 사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는 명운에 대한 인정이고, 공은 마교 토멸을 말했다.
“맹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용두방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두 사람은 용두방주가 격렬히 반대할 경우, 후개를 전면에 내세우는 차선책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두방주가 뜻을 꺾음으로써 그들은 차선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맹주께서는 언제 떠나십니까?”
남궁민이 답했다.
“회합이 끝나자마자 떠날 생각입니다.”
“서두르시는군요”
“대산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현진도장이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맹주님, 급보입니다.”
남궁민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안으로 들어와 보고하라.”
안으로 들어온 이는 백색 무복을 입은 자였다.
“비로궁이 함락되고, 명천이 북쪽으로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순간 남궁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엇이라고?”
현진도장 또한 이마를 찌푸렸다.
“이렇게 빨리 명천이 무너질 줄이야.”
그들은 천마신교의 내전이 적어도 반년은 가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명운의 신속한 진격에 그들의 예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길게 시간을 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동감입니다.”
두 사람은 보위산 침공을 더욱 서두르고자 했다.
* * *
석비연에게 태화전은 집보다 더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는 기둥의 흔적 하나까지 기억할 정도로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를 영접한 것은 시녀장인 원영재였다.
“시녀장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시다니, 영광입니다.”
“대주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럽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태화전의 복도를 걸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석비연은 선배로서 호의를 베풀고자 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스스로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원영재는 경험이 부족했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가문이 바라는 일을 해내고자 했다.
“굳은 마음이시군요.”
잠시 뒤.
그들은 교주의 서재 앞에 이르렀다.
“안으로 드시죠.”
석비연은 원영재와 작별한 뒤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왔는가?”
명운의 물음에 석비연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신, 교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사옵니다.”
명운의 옆에는 경은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석비연이 안으로 들어서자 붓을 내려놓았다.
석비연은 경은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교주님의 가장 큰 총애를 받고 있다.’
교주의 연인으로 알려진 사마진이나 약혼자 일함 군주보다도 그녀와 명운의 관계가 더 깊다고 생각했다.
“앉게.”
사마진은 명운의 오른편에 앉았다.
“추혼대에서 전서가 왔습니다.”
“추혼대에서?”
“흉수가 서장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장까지 도착했다면 그 이상 추적하는 것이 무의미하겠군.”
서장은 파천궁의 땅이었다. 다시 말해 좌호법과 수왕이 무사히 자신들의 영역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불러들일까요?”
“그렇게 하게.”
“존명.”
석비연이 두 손을 모으자 명운이 오른손을 내저었다.
“오늘 그대를 부른 것은 추혼대 때문이 아닐세.”
“그럼, 어떤 이유이신지요?”
“그림자를 세우고 싶네.”
명운의 한마디에 석비연이 멈칫했다.
“그림자 말씀이십니까?”
전대 교주 명증은 그림자를 쓴 일이 없었다.
“이상한가?”
“아닙니다. 전대 교주님께서는 그림자를 쓰시지 않으셨지만, 그 전 교주님께서는 그림자를 두었습니다.”
명운의 조부 명진은 그림자를 보내 부하들을 시험하는 일이 많았다. 석비연은 그와 같은 용도로 명운이 그림자를 사용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네.”
“짧게 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번 한 번이면 족할 걸세.”
“한 번이라면?”
명운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당분간 자리를 비울 생각이네.”
“예?”
“자세한 이유는 나중에 말하지. 일단은 그림자가 될 수 있는 후보를 골라 보게.”
석비연이 그에게 물었다.
“충성심과 외모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충성심은 교주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것.
외모는 말 그대로 명운을 얼마나 닮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둘 다 가져가라고 하면 어렵겠지?”
“교주님께서 명한다고 하면 그리하겠습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둘 다는 무리일세. 전자를 더 신경 쓰게. 어차피 한 번이니까.”
그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니, 외모가 완벽하게 같을 필요는 없겠지.’
석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경은이 물었다.
“교주님, 태화전을 비우시는 것입니까?”
“들었느냐?”
두 사람과 그녀 사이에는 어떠한 벽도 없었다.
“어찌 듣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분간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
경은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기에 광명좌를 비워 둔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한두 달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명운은 이누한이 북쪽으로 물러난 지금이 움직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경은이 그에게 물었다.
“혹시 중원으로 가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한두 달이라면 서역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 아니겠습니까?”
서역.
명운은 그녀가 일함 군주 일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무정한 사내라고 책망하는 모양이구나.”
경은은 그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제자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군주께서 오신다면 제가 사부님을 독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일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려 하는 것이냐?”
“제가 어찌 사모를 견제할 수 있겠습니까?”
일함은 명운의 약혼녀이니, 그녀에게는 사모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일함을 잘 대해 주었으면 하는구나.”
경은은 조광이나 강하원과 달리 일함 군주를 만난 적이 없었다.
“저는 언제나 예의를 다할 뿐입니다.”
그녀는 사마진을 대하는 것처럼 일함 군주를 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미안하구나.”
“교주님께서 무엇이 미안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언제나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쪽이니까.”
언제나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쪽.
경은은 제자라는 신분 때문에 명운의 여인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자이기에 다른 이들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은은 오히려 제자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자가 아니었다면 사부님의 옆에 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서숙의 시녀 중에는 태화전으로 따라오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경은은 자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말만이라도 고맙구나.”
“진심입니다.”
“진심이면 더욱 고맙지.”
경은은 뛰어난 무공을 지닌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원으로 가시는 것입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중원은 아니다.”
“그러면…….”
“서장으로 갈 것이다.”
경은은 명운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곤란합니다.”
“은아.”
“사부님, 아니 교주님!”
명운은 그녀가 목소리를 높이자 오른손을 세우며 말했다.
“밖에서 듣는다.”
경은은 그의 한마디에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단신으로 파천궁 정벌이라니, 너무 위험합니다.”
“단신이라니, 양 좌사가 있다.”
“하나.”
“밖에서 듣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내게 계책이 있으니, 넌 걱정할 필요 없다.”
명운은 공복진의 보고를 들은 직후부터 파천궁에 대한 공격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누한이 물러가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다.
‘적이 예상하지 못할 때가 가장 좋을 때라 할 수 있다.’
그는 서장에 머물고 있는 양대충의 부하들과 함께 파천궁을 기습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