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진짜 그림자 (6)
그림자가 되겠다고 말을 한 지 닷새.
사마진은 완벽한 모습으로 명운과 석비연 앞에 나타났다.
“믿기지 않는군.”
명운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는 흔하디흔한 칭찬이 아니었다. 석비연도 그녀의 역용술이 기대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사마 단주의 역용술은 본교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명운과 나란히 선 사마진은 마치 쌍둥이 같았다. 물론 경은은 누가 사마진이고, 누가 명운인지 쉬이 구별할 수 있었다.
다만,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별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목소리는 어떨까요?”
석비연의 물음에 사마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본좌의 목소리 말인가?”
여인의 입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명운이 석비연의 말을 잘랐다.
“복화술이군.”
그는 사마진이라면 자신의 그림자를 맡겨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견이 없네.”
석비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명운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경은에게 돌렸다. 경은은 그의 옆에 서 있다가 그의 시선을 받고는 깜짝 놀랐다.
“제 의견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은 내 옆에 가장 오래 붙어 있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경은은 그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십 보 이상 떨어진 곳이라면 사신대주들을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라면 단주나 대주들을 속이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괜찮아 보이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사마진의 역용에 대한 그녀의 평가였다.
명운은 시선을 다시 사마진에게 돌렸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진의 생각은 어때?”
사마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완벽하게 역용했다고 생각했는데 평가가 박하네요.”
경은은 그녀의 말에 목소리를 낮췄다.
“단주님, 죄송합니다.”
사마진은 그녀가 사과하자 오른손을 들었다.
“괜찮아. 그대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중요한 것은 교주님의 평가니까.”
석비연이 경은을 위로하듯 말했다.
“이런 일에는 객관적인 의견이 꼭 필요한 법이죠. 경 서관이 사과할 일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이쪽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림자는 앞으로 진에게 맡기도록 하지.”
석비연은 그의 명에 두 손을 모았다.
“존명.”
사마진은 그의 결정을 듣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간신히 통과네요.”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였기에 그녀로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명운이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했다.
“은은 내 제자잖아. 너무 아쉬워할 것 없어. 오히려 은이 날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게 더 섭섭한 일일 거야.”
사마진은 명운이 경은을 크게 총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제 역용술이 아쉬울 뿐이죠.”
명운은 시선을 석비연에게 돌렸다.
“석 대주, 이 일은 여기 모인 네 사람만 알도록 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석비연이 물러나려 할 때였다. 경은이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들었다.
“교주님.”
“무슨 일이 있나?”
“저희 말고 알아야 할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요?”
명운은 그녀의 말에 몇 사람을 떠올렸다.
“강 총관 말인가?”
“자심전주도 그렇고, 원 시녀장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 소저 말이군.”
원영재는 그를 곁에서 모시는 측근 중 한 명이었다.
석비연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원 시녀장이라면 교주님과 가장 가까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 서관 말대로 그냥 넘기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의견을 정리했다.
“알겠네. 그림자가 필요할 경우 두 사람에게 이야기해 두지.”
지금 당장은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석비연은 그의 말을 듣고는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속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비연은 그대로 서재를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이는 사마진과 경은, 두 사람뿐이었다.
“다음 이야기를 해 볼까?”
“다음 이야기가 있나요?”
명운이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세웠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어.”
“어떤 두 가지일까요?”
“진에게 어울리는 일.”
“아직도 그것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명운은 두 사람의 관계나 감정을 배제한 채 그녀의 공을 공정하게 평가하고자 했다.
‘그녀는 내 배경이자 조언자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르는 데 더 큰 노력과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광명좌에 올린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교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들어 볼 수밖에 없겠네요.”
명운이 중지를 꺾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대호법이야.”
사마진은 대호법이라는 말에 아미를 세웠다.
“대호법이라고요?”
대호법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직위였다.
“사대호법 위에 서서 본교의 교법을 집행하는 자리지.”
“그 역할은 지금 공 우사가 맡고 있지 않나요?”
“맞아.”
“그러면 우사의 권한 중 일부를 떼어 내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이 부교주에 오를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생각이야.”
“절 위한 자리라는 말씀이신가요?”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해.”
사마진은 그의 달콤한 목소리에 얼굴이 붉어졌다.
“교주님께서는 변하셨군요.”
“뭐가?”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잘하시는 분이 아니셨어요.”
명운은 피식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듣는 사람도 있잖아요.”
“은 말인가?”
경은은 슬며시 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명운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자, 움직이는 것이 늦었습니다.”
명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밀담을 나누고자 하는 게 아니니까.”
경은은 그의 한마디에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명운은 그녀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사마진에게 돌렸다.
“진은 대호법이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많은 이가 편애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어.”
사마진은 얼굴이 더욱 붉어져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공공연한 사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소문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법이지.”
명운은 굳이 두 사람 사이를 부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마진이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두 번째는…….”
그는 잠시 말을 끌었다. 이는 말하기 힘든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명운이 두 번째 직책을 내놓았다.
“대명궁주.”
대명궁주는 대명궁의 주인.
즉, 천마신교의 교주를 뜻하는 말이었다.
사마진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교주님!”
명운은 오른손을 편 뒤 그녀의 말을 막았다.
“대명좌를 진에게 내어 주겠다는 말이 아니야.”
“하면 무슨 말씀이시죠?”
“대명궁의 관리와 감독, 그리고 방비를 책임지는 자리를 만들 생각이야.”
“이 또한 절 위한 자리인가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진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야.”
“그러면요?”
“아버지의 일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해.”
관점에 따라서 전대 교주 명증의 죽음은 암살로 볼 수도 있었다. 교주가 적의 습격을 받았을 때, 교주를 지켜야 하는 현무대는 너무나 무력했다.
“대명궁의 방비를 강화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현무대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생각해.”
현무대주는 사신대주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명운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무대주 노혁준에 대한 관대한 처분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황궁의 금군 교위 같은 직책일까요?”
“비슷하지만 더 권한이 크다고 할까?”
“그렇다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이름을 바꾼다고?”
“대명궁주는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사마진을 이야기할 때 항상 그녀의 미모를 먼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모 못지않게 뛰어난 부분이 많았다. 뛰어난 무공과 더불어 그녀는 조직을 정비하고, 운영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명운은 그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진의 의견을 듣고 싶군.”
“대명진경(大明診警)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명진경?”
“대명궁을 살피고 지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명운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대명진경, 괜찮은 직함이군. 이것으로 하겠나?”
그는 사마진이 대명진경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마진의 선택은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아뇨.”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명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대명진경은 무엇보다 무공이 뛰어난 이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의 무공이면 될 텐데?”
“농담이시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명진경은 그 책임과 권위를 생각할 때 양 좌사 정도의 무공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마신교에서 무공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가 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흠, 삼단주보다도 조건이 높군.”
“전대 교주님을 습격했던 흉수들의 무공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그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파천궁의 고수라면 그녀의 말이 옳다.’
사신대주의 무공으로는 파천궁의 좌우호법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지?”
“대호법을 맡겠습니다.”
“대호법을?”
사마진은 자신만을 위한 직위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호법이라는 직위를 선택했다.
“안 될까요?”
“안 될 것은 없지. 처음부터 진을 위해 만든 자리인데 말이야.”
명운은 단지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한데 말이야.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다른 생각일까요?”
“처음에는 대호법이라는 자리를 탐탁지 않아 했잖아.”
사마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명진경이라는 자리와 더불어 생각했습니다.”
“흠, 심오하군.”
“심오하진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죠. 누군가 대명진경에 앉게 된다면, 그가 앉았던 자리가 비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명운은 그녀의 생각을 알고는 가볍게 웃었다.
“후후후, 대호법 자리에 있다가 공 우사가 대명진경이 되면 신교우사가 되겠다는 말이군.”
사마진은 대명진경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신교우사 공복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문서를 다루는 일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까요.”
신교좌사가 군무를 우선한다면, 신교우사는 그 외의 일을 맡았다. 그녀는 군무보다는 이쪽에 더 자신이 있었다.
“진이 돌아온 것 같아서 기뻐.”
“네?”
“얼마 전까지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아서 말이야.”
사마진은 유청을 찾아가 검을 놓겠다고 말할 정도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녀의 연인인 명운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부끄럽네요.”
“다행이야.”
“유부교주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명운은 유청이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비무를 벌였거든요.”
“비무?”
“제가 깨끗이 패했습니다.”
비무에서 패한 것이 약이 되었다.
모를 일이었다.
“진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그런 말인가?”
“아뇨. 패한 것보다는 이후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 그런 것이군.”
명운이 경은에게 고개를 돌려 대호법의 위를 내리고자 할 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시녀 한 명이 문 앞에 섰다.
“급보입니다.”
급보가 아닌 평범한 전서들은 경은에게 먼저 도착하곤 했다.
경은은 급한 전서라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시녀에게 전서를 받은 뒤 그것을 펼쳤다.
“교주님, 보위산에서 온 소식입니다.”
보위산은 무림맹 쪽 최전선이었다.
명운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어떤 소식인가?”
“무림맹이 보위산을 침공. 무봉이 함락되었고, 천봉도 포위되어 있음.”
무공과 천봉.
이 두 봉우리의 이름은 명천이 보위산의 책임자가 되면서 다시 지은 것이었다. 무봉은 그가 무림맹에서 빼앗은 봉우리였고, 천봉은 천마신교의 요새가 있던 봉우리였다.
“뭐라고?”
명운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마진도 이번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림맹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군요.”
앞서 무림맹은 명천과 불가침을 맺은 바 있었다.
“명천의 실각을 알고 고수들을 움직였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대응이 너무 빠르죠.”
“그대의 말대로 처음부터 불가침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고 봐야겠군.”
무림맹주 남궁민은 처음부터 협약을 깨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림맹의 움직임은 협약을 지키고자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위산은 포기할 수 없어.”
“유 부교주를 보내시겠습니까?”
부교주 유청은 그가 내밀 수 있는 최선의 패였다.
“아니, 직접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사마진이 그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것은 안 됩니다.”
“진?”
“아직 남쪽에는 파천궁, 북쪽에는 이누한과 명천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타격을 입은 상태라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교주가 움직인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누구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교주가 직접 움직이면 본교의 적이 움직일 것이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후우……. 쉬운 상황은 아니군.”
“그것을 알기에 무림맹이 움직인 것입니다.”
“곤란하군.”
“공 우사의 의견을 들으시겠습니까?”
공복진은 명증의 꾀주머니라 불릴 정도로 계책에 능한 자였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직접 갈 거야.”
사마진은 바로 아미를 세웠다.
“교주님,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명운이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교주님은 아직 젊구나.’
뛰어난 무공과 계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약관의 젊은이.
그러나 명운은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천마신교 교주 명운은 이곳에 남지만, 나는 보위산으로 갈 거야.”
사마진은 그의 말을 듣고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 말씀은……. 그림자를 쓰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