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오대세가 (2)
용호대.
천마신교의 최전선 보위산을 지키기 위한 구원 부대.
용호대의 푸른 깃발 안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용과 호랑이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훌륭한 것은 깃발뿐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모인 부대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공복진이 준비한 무기와 장구류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 대주는 진백강인가?”
“허! 이 친구, 대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쓰나?”
“안 될 건 또 무엇인가? 어차피 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닌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이들은 귀혼단 출신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귀혼단이 해산된 뒤 이곳저곳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용호대가 조직되며 대거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주력은 결국 우리란 말이군.”
명운이 귀혼단 출신들은 명천 휘하에 있던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흑살대도 있지 않은가?”
흑살대에서도 스무 명 이상이 선발되었다.
“흑살대? 그 친구들은 삼공자 때문에 온 것이겠지.”
삼공자 명원이 명운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도 형제는 죽이지 않더군.”
“대신 그 부하들을 죽이려는 모양이지.”
흑살대는 삼공자 명원이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부대였다. 그 때문에 흑살대 출신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봐, 다들 얼굴이 썩어 있지.”
“저 친구들은 원래 저래.”
귀혼단 출신 무인이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향해 물었다.
“자네는 어디서 온 건가?”
젊은 무인은 낡은 무복에 한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천원대입니다.”
그의 대답에 무인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과거에 반도였다는 말이군.”
반도.
다른 말로 하면 반역자.
천원대는 무림맹 출신 투항자들로 만들어진 부대였다. 그 덕분에 천마신교에서는 취급이 좋지 않았다. 얼굴에 긴 상처가 있는 사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일세.”
사내는 등에 큰 도를 메고 있었다.
귀혼단 출신 무인이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적룡대 출신이지.”
적룡대는 하청규의 반란으로 와해한 상태였다. 최근에는 새로운 대주를 중심으로 부활을 꾀하고 있었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허! 적룡대 출신도 있군.”
“문제라도 되나?”
“아니, 용케 살아남았다 싶어서 말이야.”
사내는 대도를 휘두르는 대신 얼굴을 굳혔다.
“사천에 있었으니까.”
그는 십만대산이 아닌 사천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동료들과 달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와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들은 대부분 태화전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귀혼단 출신 무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 운도 여기까지일세. 보위산에 가면 다 죽게 되겠지.”
그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돌아올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목소리를 높인 것은 천원대 출신 젊은이였다. 귀혼단 무인들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친구 보위산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러게, 말일세.”
“보위산에서 일 년을 버티면 다른 곳에서는 십 년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젊은 친구 잘 듣게. 저 친구 말은 뜬 소문이 아니야. 보위산은 정말로 위험하단 말이지. 게다가 이번에는 무림맹 놈들이 잔뜩 몰려왔어. 한마디로 기적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지.”
보위산은 이번 싸움 이전에도 치열한 격전지로 유명했다. 이는 무림맹 쪽도 다르지 않았다. 무림맹 출신들도 보위산이 어떠한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젊은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사내들의 말을 받았다.
“전 이긴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젊은이의 한마디에 귀혼단 무인들은 혀를 찼다.
“쯧쯧, 반도 출신들은 이래서 곤란하단 말이지.”
“이기지 못했는데 살아 돌아온다? 머릿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천마신교 무인들의 경우 승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때문에 패전할 경우, 살아서 돌아오는 이가 드물었다.
젊은이는 쉬이 물러서지 않고 그들의 말을 받았다.
“저는 그냥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 가능성은 있겠지.”
귀혼단 무인들이 어깨를 세웠을 때였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주님께서 오신다! 정렬하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용호대 부대주 곽경흠이었다. 그는 현무대 출신으로 공자들의 반란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용호대로 발령을 받은 것을 두고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대주님께서 오신다.”
명이 이어지자 용호대 무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렬했다.
“대주께서 오신다는군.”
“그래 일어나야지.”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자 용호대주 진백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과거와 비교한다면 다소 말라 있었다.
“대주 진백강이라고 한다.”
진백강은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기에 멀리 떨어진 이들도 선명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진 뒤, 출발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소문대로 보위산이다. 그곳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아군을 지원하는 것이 우리 용호대의 임무다. 출발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그는 짧게 훈시를 마치고는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귀혼단 무인들이 불평을 터트렸다.
“형제들이라는 말조차 없군.”
천마신교 대주들은 부하들에게 훈시할 때 형제들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진백강은 그러지 않았다.
“형제들이 아니니까.”
“왜?”
“우린 반역도나 마찬가지잖아.”
“맞아, 그리고 진 대주의 형제들은 우리가 아니라 청룡대겠지.”
“쯧, 우리는 그냥 함께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용호대에는 귀혼단 외에도 장공자 명천의 휘하에 있었던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명운이 자신들을 처형하는 대신 버리는 패로 쓴다고 생각했다.
“그냥 죽이는 것은 아까우니, 싸우다 죽으라는 말이지.”
“이럴 줄 알았다면 항복하는 것이 아니었어.”
“우리가 항복했나? 양 단주가 항복했지.”
대도를 멘 사내가 천원대 출신 젊은이에게 다가왔다.
“자네는 길잡이인가?”
천원대는 무림맹 출신이었기에 길잡이로 쓰이는 일이 많았다.
“아닙니다.”
“그래?”
사내가 말끝을 높이자 젊은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단지 운이 없었습니다.”
“음? 운이 없었다고?”
“천원대에서도 한 명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제비에서 꽝을 뽑았다?”
“그렇습니다.”
대도를 멘 사내가 낮게 웃었다.
“후후후후, 그래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웠군.”
“그쪽은 어떻습니까?”
“나는 저 친구들 이야기 대로야.”
반란을 일으킨 적룡대 출신이었기에 용호대에 포함되었다.
“그뿐입니까?”
“그 이상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사내가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같은 조이니, 잘해 보세.”
용호대는 열 개 조로 편성되어 있었고, 두 사람은 귀혼단 무인들과 함께 사조에 속했다. 귀혼단 무인들은 조의 순번조차도 불길하다고 혀를 찼다.
젊은이가 사내의 말을 받았다.
“엄호할 상황이 되면 엄호하겠습니다.”
“부탁하네.”
용호대는 급조한 부대였기에 서로 간의 연격은 기대할 수 없었다. 진백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임시 장막 안에서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그의 말을 받은 것은 부대주 곽경음이었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교주님의 명 말일세.”
“교주님의 명은 천존의 명과 같습니다.”
어떠한 명이든 무조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진백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문을 위해 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이 많은 이가 나와 함께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네.”
“대주님…….”
곽경음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살아 돌아오기 힘든 임무임에는 분명하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보위산에 구원을 보내지 않는다면 많은 이가 동요할 것입니다.”
곽경음은 용호대가 편성된 이유를 이렇게 생각했다.
‘용호대는 누구라도 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부대다.’
그는 명운이 주력 부대의 전력을 보전하기 위해 용호대를 편성했다고 보았다.
“신교 전체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이들을 희생양으로 쓰겠다는 말인가?”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삼단이나 사신대가 움직인다면 파천궁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자네는 마치 다른 사람 일처럼 말하는군.”
곽경음 역시 용호대의 대원이었다.
“저는 신교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단한 충성심이군.”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태화전에서 죽어 간 부하들이 절 비웃을 것입니다.”
진백청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수하들과 함께 그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반역자들에게 길을 내어 주고 말았다.
곽경음은 그때의 패전 때문에 용호대에 보내졌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바쳐 교주님을 지키지 못했다.’
차라리 죽었다면, 명예라도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는 살아남았고, 태화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멍에를 쓰고 말았다.
“태화전이라면…….”
진백강은 말을 잊지 못했다. 태화전에서 그의 부하들을 죽인 것은 형 진백강이었다.
‘얄궂은 인연이군. 아니면 이 또한 교주의 설계인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명운의 설계라면 잔인할 정도로 치밀했기 때문이었다.
곽경음이 수통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대주님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진백강은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군.”
“아닙니다. 각자 사정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네에게 말이 심했다면 사과하겠네.”
“대주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진백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부대주.”
“사과라면 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백강이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내가 전사하면 부하들을 이끌고 물러나게.”
곽경흠의 두 손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무림맹의 포위를 뚫지 못할 걸세.”
“대주님?”
“내가 죽으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인 것이 아니겠나?”
진백강은 모두 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싸우기 전부터 죽음을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부하들을 생각한 것일세. 저들까지 죽을 필요는 없어. 그러니, 약속해 주게.”
곽경흠은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곤란하군요.”
“자네도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인가?”
“비슷합니다.”
곽경흠은 태화전 전투 이후 숨을 쉬고 있어도, 밥을 먹고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둘 다 죽으면 누가 저들을 책임지겠나?”
곽경흠이 수통에 마개를 닫으며 되물었다.
“둘 중 살아남는 쪽이 부하들을 책임지기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진백강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주가 살아 있는데, 어찌 물러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양보할 수 있는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주님도 고집이 세군요.”
“자네만큼은 아닐세.”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곽경흠은 끝내 진백강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쪽에도 양보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한 시진 뒤.
용호대는 보위산을 향해 출발했다.
* * *
스윽.
붓을 움직이는 손이 빨랐다.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왼쪽에 놓인 서류가 다시 오른쪽으로 향했다.
“오늘 문서는 여기까지입니다.”
맑은 목소리에 붓을 쥔 손이 멈췄다.
“이것이 다란 말인가?”
“교주님께서는 밀린 일이 없으시니까요.”
붓을 쥔 손 옆에 선 것은 경은이었다. 그리고 교주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명운으로 역용한 사마진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명운으로 역용한 것을 넘어 그와 마찬가지로 교주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나는 교주님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교주님께서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사마진의 붓이 다시 움직였다.
“옆에 있는 것이 교주님이 아니라 섭섭한가?”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나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게.”
경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답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나는 오히려 네가 부러워.”
“정말 그렇습니까?”
사마진은 명운의 연인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녀가 있는 곳에서도 흔히 밀담을 나누었다.
“교주님과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은 은이잖아.”
이것은 경은도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교주님은 제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 않아요.”
사마진에게 보냈던 관심과 부드러운 말.
경은은 그것이 부러웠다.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이 바로 사랑이야.”
사마진이 붓을 놓으며 어깨를 폈다.
“오랜만에 일하니까 피곤하네.”
“차를 내올까요?”
“그럴까?”
“교주님께서 항상 마시던 것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두 사람은 서먹하지만 서로 경계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잠시 뒤, 경은이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용정차가 아니네?”
“교주님께서는 화차를 더 좋아하십니다.”
“어려운 시절에 즐겨 마시던 차라서 말인가?”
“글쎄요.”
사마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보위산,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
“교주님께서는 괜찮으실 것입니다.”
“나보다는 걱정이 적은 모양이네.”
경은이 살짝 목에 힘을 주었다.
“걱정은 합니다. 하지만 그 걱정보다 교주님에 대한 믿음이 더 큽니다.”
사마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경은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는 같은 여자라도 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교주님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같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나긋나긋한 목소리.
경은은 그녀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마단주는 천화신녀 못지않은 사람이었지.’
과거 그녀는 강하원을 시험한다는 이유만으로 내상을 입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몰론.”
그녀는 명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인이 아니라 그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여인이 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