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오대세가 (3)
정남군주 제갈직.
그는 무림맹 안의 대표적인 주전파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총공격을 가해 십만대산을 무너뜨리는 쪽이 수십 년 또는 백 년 이상 싸움을 질질 끄는 것보다 훨씬 손해가 작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십만대산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명운이 예견한 대로 그 어떤 문파도 총공격의 선봉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가 속한 제갈세가조차도 그의 주장을 허풍이라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는 초야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맹주님께서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시나 짓고, 술이나 마시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제갈직을 세상에 나오게 한 사내.
그는 바로 무림맹주 남궁민이었다.
“정남군주의 재능을 어찌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겠나.”
두 사람은 보위산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가능한 많은 적을 끌어들여야 할 것입니다.”
천봉을 함락하지 않고 천마신교에서 계속 구원 부대를 보내게 만들어 그들이 도착하는 족족 섬멸한다. 이것이 제갈직이 세운 이번 정벌의 계책이었다.
그는 이것을 반복하면 총공격 전에 천마신교의 전력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만 하면 절반 이상의 전력을 깎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천마신교는 내전으로 힘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보위산에서 소모전을 지속한다면 보위산은 물론, 대명궁마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들을 섬멸하는 것은 오대세가가 앞장서야 할 걸세.”
“물론입니다.”
앞서 무봉을 함락한 것은 소림을 중심으로 한 구파일방이었다.
남궁민은 오대세가가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싸움만은 오대세가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력 증원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르다?”
“대명궁에서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천마신교가 중원 곳곳에 첩자를 심어 두었듯 무림맹도 십만대산에 비선을 잠입시켜 놓았다. 전서는 그 비선이 보낸 것이었다.
“어떤 내용인가?”
“명운이 구원대를 출발시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네의 예상대로군.”
제갈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예상보다 작습니다.”
“음, 그래서 증원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갈직이 받은 전서에는 용호대의 편성과 출발에 관련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오합지졸 이백이면 지금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오대세가가 중심이 된 병력은 천봉 공략을 맡은 삼백을 제외하고도 이백이 더 있었다. 천봉에 남은 이들이 위에서 호응한다고 해도 무림맹 쪽이 두 배의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구원대의 규모 말씀이십니까?”
남궁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갈직의 설명을 원하고 있었다. 제갈직도 그것을 알기에 목소리를 낮추며 생각을 이야기했다.
“여유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유가 없다?”
“명운은 승기를 잡았지만, 내전을 끝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예 부대를 보위산에 투입한다면 장공자 명천에게 역전승을 헌납할 수 있죠. 그것을 경계해서 다소 부실하게 구원 부대를 편성했을 것입니다.”
남궁민은 미간을 좁혔다.
“그것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아닌가?”
그와 제갈직은 가능한 많은 부대를 보위산으로 끌어들여 섬멸하고자 했다.
“괜찮습니다.”
“구원 부대가 더 도착하지 않는 데도 말인가?”
“명운, 아니 그의 배경이 된 자들은 구원 부대를 더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남궁민은 턱을 쓰다듬었다.
“자네의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쉽겠는가?”
제갈직이 지도를 손가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번에 도착하는 지원 부대를 모두 섬멸하지 않고 반만 섬멸할 것입니다.”
“남은 이들은 도망치게 둔단 말인가?”
“아닙니다. 천봉 쪽으로 길을 열어 그들을 고립된 수비대와 합류하게 할 생각입니다.”
남궁민은 그의 대답을 듣고 난 뒤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구원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적을 오판하게 할 생각이군.”
“맹주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남궁민은 역시 제갈세가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계책이군. 지모를 펼치는 것만 따진다면 제갈세가가 우리 오대세가 중 제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구원군이 수비군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천마신교 입장에서는 보위산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지원군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섬멸전이 성공한다면 그대를 무림맹의 군사로 삼을 것일세.”
“과한 말씀이십니다.”
남궁민이 오른손을 내저었다.
“절대 과하지 않네. 그대와 같은 인재를 어찌 높이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명운과 명각의 공격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도왕과 형제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죽어 간 이들을 위해서……. 아니, 앞으로 살아갈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천마신교를 지도 위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 * *
대도를 멘 사내의 이름은 임진풍이라 했다. 그는 적룡대에서 손꼽히는 고수 중 하나로 부대주 후보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주 하청규의 반란이 일어났고, 그 일로 적룡대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게 된 것이지.”
마른 나뭇가지를 불 속에 밀어 넣고 있는 젊은이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임진풍이 시선을 낮추며 말했다.
“자네의 사연은 나보다 더 깊을 것 같군.”
무림맹을 등지고 천마신교에 투항한다. 평범한 무림맹 제자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임진풍은 그가 그것을 해냈기에 분명 깊은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대단한 사연은 없습니다.”
“음?”
대단한 사연이 없는데도 흔히 말하는 백도를 버리고 흑도에 몸을 담았단 말인가?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젊은이가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오해를 샀습니다.”
“으음, 오해라.”
“얼굴이 반반한 계집이 있었는데, 절 몰아세우더군요.”
“그대가 무례를 범했다는 말인가?”
임진풍은 무림맹의 예법이 천마신교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젊은이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무례가 아니라 자신을 겁탈했다고 주장하더군요. 기가 막힌 일이었죠.”
임진풍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좋아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겁탈당했다고 주장한 것이군.”
젊은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라면 변심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임진풍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랬단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대 말대로 정말 기가 막힌 일이군. 그래서 대산으로 도망쳐 온 것인가?”
“바로 도망치지는 않았고, 그녀의 정혼자라는 녀석과 붙었는데, 그만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임진풍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아니군.”
예상대로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것이 벌써 칠 년 전입니다.”
“칠 년?”
칠 년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쳐 왔다면, 지금은 적어도 이십 대 후반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얼굴인데 말이야. 동안인가?’
그는 젊은이가 뛰어난 동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열일곱 때 일이었습니다.”
열일곱 때 사람을 죽였다. 천마신교면 몰라도 무림맹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허, 그러면 아직 스물넷이란 말이군.”
젊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타닥. 타닥.
마른 나뭇가지가 불꽃과 함께 소리를 냈다.
“문현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군.”
“사부님께서 지어 주셨죠. 지금은 살아 계시지 않습니다만.”
“자네는 살아남았으면 좋겠군.”
임진풍의 한마디는 진심이었다.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후후후,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라. 자네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친구군.”
두 사람은 보위산으로 향하는 동안 제법 친분이 쌓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초번 보초를 준비하고 있는 귀혼단 무인이 그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두 사람, 이번 초로 알고 있는데, 벌써 준비하는 건가?”
문현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잠이 잘 안 와서 말이죠.”
“보위산에 가면 편히 잠을 잘 수 없을 걸세. 잘 수 있을 때 자 두는 것이 좋아.”
두 사람에 잠을 권한 이는 초면에 그들을 비웃었던 귀혼단 출신 무인이었다. 귀혼단 무인들은 냉소적이었지만, 함께 여행하면서 그 태도가 바뀌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귀혼단 출신 무인은 임진풍에게도 한마디 던졌다.
“임 형이 죽으면 적룡대 출신은 다 죽는 거야.”
적룡대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으라는 말.
임진풍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혼단 출신 무인은 그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초번을 다녀오도록 하지.”
문현이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수고하십시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타닥. 타닥.
소리를 내는 것은 오지 화톳불뿐.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문현이었다. 젊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임진풍보다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무림맹주가 보위산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임진풍은 얼굴을 굳혔다.
“무림맹주가 왔다면 무림맹의 정예가 모두 도착했겠군.”
그가 경험한 무림맹의 정예는 상당히 강했다. 특히 구파일방 출신 중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자들이 많았다.
“그들과 우리가 싸우진 않겠죠?”
“그게 무슨 소린가? 그들과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니?”
“맹주는 높은 사람 아닙니까? 그들은 맹주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임진풍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림맹주는 겁쟁이가 아닐세.”
그는 무림맹주 남궁민이 반드시 전선에 나서리라고 생각했다.
‘장수가 군대를 이끌지 않는다면, 누가 군대를 이끈단 말인가?’
반면 문현은 그가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맹에 있을 때, 단 한 번도 맹주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전선에 나서지 않는 맹주.
임진풍은 눈썹을 세웠다.
“그게 정말인가?”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임진풍은 무림맹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살아날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방심해 준다면 이길 수 있다.’
그는 용호대를 이끄는 대주 진백강과는 생각이 달랐다.
같은 시각.
대주 진백강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는 천막 안에서 잔뜩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이대로 될까?’
그가 이끄는 용호대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부대주 곽경음의 것이었다.
“들어오게.”
펄럭.
짧은 바람 소리와 함께 곽경음이 안으로 들어섰다.
“걱정이 많아 보입니다.”
진백강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훈련, 군마, 무기, 식량, 머릿수까지 모든 것이 다 부족하지.”
“다 갖추고 싸우는 싸움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최근 천마신교가 만전의 준비를 하고 전투에 임한 것은 장공자 명천의 보위산 공략전뿐이었다. 그 외의 싸움은 임기응변과 기세가 승자와 패자를 갈랐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이틀 후면 보위산입니다.”
십만대산을 떠난 지 열흘.
그들은 드디어 보위산과 이틀 거리까지 접근했다.
“싸움에 대비하란 말인가?”
“내일 당장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무림맹이 보위산 주변에 넓게 포위망을 펼쳤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을 대비하자는 말인가?”
적이 나오면 싸울 것이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적어도 선봉은 정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가 선봉을 맡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
“제가 아니면 일조장 밖에는 없습니다.”
일조장 최태는 진백강과 청룡대에서부터 함께한 이였다.
“그럼, 최태에게 맡기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용맹한 무인일세.”
“알겠습니다. 선봉은 최태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진백강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이번에는 순순히 따르는군.”
“제가 언제 대주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니,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군.”
두 사람은 이틀 전까지만 해도 행군로를 두고 언쟁을 벌인 바 있었다.
“행군 대형도 전투 대형으로 다시 짜겠습니다.”
보위산이 코앞이었다. 길게 장사진을 이루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것도 자네에게 맡기지.”
“의욕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가슴이 차가울 뿐일세.”
당장 내일 용호대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선봉은 최태, 중군은 대주님, 그리고 후위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후위라니, 자네답지 않군.”
“적이 공격해 온다면 그 시작은 앞이 아니라 중앙이나 뒤가 될 것입니다.”
중군을 가르거나 퇴로를 끊은 뒤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일리가 있군.”
곽경음은 예상 이상으로 노련했다.
‘현무대 출신답지 않게 야전에 능해.’
현무대 출신들은 대부분 대명궁과 태화전 안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처럼 야전에 밝지 못했다.
“혹시 하나 물어도 되겠나?”
곽경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개인사에 관한 것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현무대 전에는 소속이 어디였나?”
“적풍대였습니다.”
“적풍대라고?”
의외의 대답이었다.
‘백호대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곽경음이 어깨를 가볍게 세우며 되물었다.
“어울리지 않습니까?”
“적풍대는 원가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적풍대의 대주는 대대로 대산팔가 중 하나인 복주원가에서 맡아왔다.
“원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훈련대를 나온 뒤 처음으로 배속받은 곳이 적풍대였을 뿐입니다.”
“그렇군.”
“대주님은 어떠셨습니까?
“난 처음부터 청룡대였지.”
청룡대는 그가 속한 대설진가와 가까웠다.
“정해진 길을 가셨다는 말이군요.”
“대산팔가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네.”
많은 이가 대산팔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거나 축복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했으니까.’
곽경음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밖에서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이다! 적의 습격이다!”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두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공격해 왔단 말인가?”
곽경음이 얼굴을 굳히며 진백강에게 말했다.
“적이 이쪽의 예상을 뛰어넘은 모양입니다.”
허를 찌르는 공격.
이것만 보아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