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오대세가 (5)
전장을 휘몰아치는 돌풍.
누군가는 그들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퍼엉!
북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용호대 무인들이 나뒹굴었다.
“크으윽.”
쓰러진 자 중 대부분은 신음만 흘릴 뿐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등장한 이들은 바로 산동악가의 흑기병이었다.
“굉장하군.”
“부대주님,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네.”
용호대에서는 부대주 곽경음이 나섰다.
“내가 상대하겠다. 나를 따르라!”
십여 명의 대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
“존명!”
수천 명이 싸우는 전장이라면 모를까?
그는 백 명 단위의 싸움에서는 산동악가의 흑기병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림인은 말보다 더 높이 뛰어오르며, 짧은 시간 동안에는 그보다 더 빨리 뛸 수 있다.’
소수 교전에는 기병대보다 경공을 사용하는 무림인들이 훨씬 낫다는 것이 그와 천마신교의 결론이었다.
두두두두.
방향을 바꾼 흑기병이 중앙을 돌파하고자 했다.
곽경음과 그의 수하들은 두 손으로 검을 단단히 잡은 채 그들을 막아섰다.
“적이 돌파하는 순간 뛰어오른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주 진백강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너무 무모해.”
산동악가의 흑기병은 천마신교에까지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명성이 있는 자들을 쉬이 보면 안 된다.’
그는 무림에 널리 퍼진 산동악가의 명성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힘이 있을 것이다.’
산동악가 가주 악철군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곽경음을 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속력으로!”
그의 외침에 흑기병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두두두두두!
흑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용호대 무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곽 부대주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곽경음은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온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을 때였다.
몇몇 대원이 허공을 향해 경공을 전개했다.
파악!
곽경음은 그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너무 이르다!’
너무 빨리 도약하면 흑기병을 공격하는 대신 그들에게 치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다!”
곽경음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많은 대원이 허공으로 떠올라 흑기병을 노렸다.
솨아아아아!
용호대의 검과 흑기병의 창이 교차했다. 그리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북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용호대원들이 나뒹굴었다.
“허헉…….”
땅에 떨어진 이 중에는 말에 밟혀 끔찍한 꼴이 된 이도 있었다.
진백강은 혀를 찼다.
“쉬이 보면 안 되었는데.”
그는 부대주 곽경음에게 시선을 돌렸다.
“곽 부대주는…….”
곽경음은 허공으로 떠오른 뒤 검은 창을 든 산동악가 무인 한 명을 베었다. 하지만 그의 선전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뒤에서 달려드는 흑기병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그들과 충돌하여 바닥을 뒹굴었다.
“큭.”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짧은 신음과 함께 입에서 피를 토했다.
‘내공이 담긴 공격이 아니었는데도 내상을 입었다고?’
흑기병의 돌파력은 가히 천하무적이었다.
악철군은 곽경음을 쓰러뜨린 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흑기병의 힘이다.’
흑기병이 있기에 산동악가는 모용세가를 밀어내고 오대세가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두두두두.
산동악가의 흑기병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결국, 흑기병까지 투입된 모양이군요.”
전장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에는 무림맹의 책사 제갈직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직, 너는 이번 싸움을 어떻게 보느냐?”
제갈직에게 질문을 던진 이는 제갈세가의 중진 제갈전이었다. 그는 제갈직의 사촌 형이었다.
“보시는 대로 아닐까요?”
“너는 이 어둠을 뚫고 전황을 볼 수 있다는 말이냐?”
“귀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들려오는 소리는 비명과 말발굽 소리뿐.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산동악가가 나섰으니, 이쪽이 우세할 수밖에. 비명은 아마도 적의 것이겠지.’
제갈전 역시 제갈세가 무인답게 머리 회전이 빨랐다. 그도 전황이 무림맹에 유리하다고 보았다.
“산동악가가 나섰으니,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구나.”
제갈전의 뒤에는 제갈세가의 무인 서른두 명이 말을 탄 채 서 있었다.
“이번에는 산동악가를 밀어주도록 하죠.”
“산동악가도 공을 세울 때가 되었다는 말이냐?”
“산동악가의 승리가 곧 우리 오대세가의 승리입니다.”
제갈직은 오대세가 간에는 승리를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구파일방과 오악검파, 경쟁자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 전황에 집중하고자 했다.
두두두두.
흑기병은 세 차례의 돌파를 성공시켰기에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다음은 왼쪽이다!”
악철군의 지휘하에 흑기병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왼쪽으로 이동한다!”
“왼쪽이다!”
기합이 담긴 고함과 함께 흑기병이 방향을 바꾸었다.
진백강은 그들의 돌진을 바라보며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저들을 막지 못하면 전멸이다.”
초반 기세를 높였던 것도 잠시, 산동악가의 등장에 전황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었다.
“대주님!”
“알고 있다.”
이곳에서 산동악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그밖에는 없었다.
‘내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가르쳐 주마.’
그는 흑기병을 향해 경공을 전개하고자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음?”
앞으로 달려 나간 이는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
‘무명인데도 저 정도 경공이라고?’
그가 모르는 고수가 용호대에 속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았으니, 한두 명쯤은 저런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뒤이어 대도를 든 사내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앞서 달려 나간 젊은이를 따르고자 했다.
“흐흠.”
누군가 대도를 든 자를 알아보고 진백강에게 말했다.
“대주님, 대도를 든 자는 적룡대의 임진풍입니다.”
“임진풍?”
“적룡대주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진백강은 미간을 좁혔다.
“적룡대주의 신임을 받던 자가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냐?”
적룡대주를 따르던 자들은 반란이 실패한 그 시점에서 모두 참수되었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중원에 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래서 참수되지 않고 여기로 보내졌단 말이구나.”
“공을 세워서 대산에 복귀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백강은 혀를 찼다.
“쯧, 그것이 아니라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임진풍도 곽경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앞서 달려 나간 것은 누구냐? 경공이 뛰어난 자이던데 말이야.”
“그 친구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나아간 것은 처음 적을 발견한 문현이었다. 그는 단순히 경공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휘감은 채 나아가고 있었다.
임진풍은 그의 뒤를 따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대단한 경공이다.’
검기에 뛰어난 경공까지.
문현은 한마디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자가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단 말인가?’
무림맹을 배반하고 천원대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까지는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실력자가 제비를 잘못 뽑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임진풍은 문현이 흑기병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설마 혼자 상대하려는 것인가?’
그는 문현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만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부대주님도 막지 못한 돌진이다.’
임진풍은 목소리를 높였다.
“무리하지 말게!”
문현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받았다.
“녀석들을 막아야 합니다.”
흑기병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용호대원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흑기병은 막고자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임진풍은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문현을 말렸다.
“제발! 그만두게!”
그러나 문현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임진풍은 할 수 있다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문현을 앞지를 수가 없었다.
“이런 젠장!”
임진풍이 걸음을 멈췄을 때였다.
산동악가 가주 악철군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겨우 둘인가?”
용감함은 칭찬해 주겠지만, 무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대로 짓밟는다!”
두두두두.
흑기병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속도를 올리면서 파괴력을 증가시켰다.
진백강은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당하겠어.”
돕고자 해도 거리가 너무 멀었다.
“대주님 강표를 던질까요?”
“이 거리에서 닿기나 하겠나?”
“그러면 강노라도…….”
용호대원이 목소리를 줄인 것은 그들에게 강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들을 만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림맹과 근접전만을 생각했을 뿐, 초원에서 기병대와 마주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문현은 기병대와 거리가 오십 보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검을 세웠다.
“받아 주마!”
흑기병들이 속도를 높였기 때문에 오십 보는 순식간이었다.
“거창!”
악철군의 명이 떨어지자 흑기병들이 일제히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많은 이가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흑기병들이 문현을 그대로 밟고 지나갈 것이라고.
“후우.”
긴 숨을 내쉰 문현.
흑기병은 그의 코앞에 와 있었다.
‘해 볼까?’
그는 흑기병들과 거리가 이십 보쯤 되었을 때, 검을 크게 휘둘렀다.
“공후검!”
솨아아아아아악!
간신히 몸을 일으킨 곽경음이나 대도를 든 채 선 임진풍은 물론, 대주 진백강도 그의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저게 무슨 짓이지?”
“검으로 허공을 갈랐다고?”
“검으로 대체 무엇을 베었단 말인가?”
다음 순간.
흑기병들이 말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파파파팍! 팍! 파파팍!
곳곳에서 말과 사람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임진풍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단지 검을 한 번 휘두른 것뿐이었다.”
그것뿐이었는데 달려오던 흑기병이 모두 쓰러져 버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산동악가 가주 악철군은 말이 쓰러지려는 찰나 창을 땅에 박았다.
팍!
덕분에 짧은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에 처박히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린 뒤 잔뜩 이마를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바닥에 쓰러진 흑기병을 향해 용호대 무인들이 달려왔다.
“모두 죽여라!”
“놈들이 말에서 떨어진 지금이 기회다!”
“형제들의 원수를 갚자!”
산동악가 가주 악철군은 그들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적이다! 모두 일어나라!”
가주가 목소리를 높였으나 몸을 일으킨 것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가장 먼저 말들이 쓰러진 것을 상기했다.
‘놈은 우리가 아니라. 말을 공격했다.’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말을 공격하는 전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혼자였다. 단 혼자서 수십 기의 말을 공격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단 말인가?’
악철군이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누군가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창을 꼬나 쥐면서 미간을 좁혔다.
“어림없다!”
솨아아아아아!
검은 철창이 맹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철창이 향한 곳은 허공이었다.
‘사라졌다?’
오대세가 가주의 창을 피한 것도 모자라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악철군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썹을 세웠을 때였다. 순간 등 뒤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윽!”
짧은 비명과 함께 창을 돌렸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그의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쉴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틈에!’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놈!”
그를 찌른 상대는 얼굴이 하얀 청년이었다.
“훌륭한 창이군.”
청년은 마치 그의 창을 감상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악철군은 이를 악물었다.
“산동악가 가주를 무시하지 마라!”
적어도 이대로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심을 굳혔다.
수비가 아닌 공격.
그는 남아 있는 힘을 모두 공격에 쏟아 내고자 했다.
“흑철포(黑鐵砲)!”
철창에서 막대한 예기(銳氣)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 예기는 어느 하나도 청년에게 미치지 못했다.
스스스슥!
청년이 마치 귀신처럼 그의 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
짧은 탄식.
다음에 이어진 것은 청년의 검격이었다.
파악!
“악!”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의 오른손이었다.
투툭.
오른손에는 애병 흑창이 들려 있었다.
“가주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악철군을 구하고자 달려왔지만, 청년의 검은 그들의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멈춰라!”
슈슈슈슉!
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갑옷을 뚫고 악가의 무인들을 관통했다.
“헉!”
“크으으윽!”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난무했다.
악철군은 그 광경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큭, 검기까지 자유자재로 쓰는군.”
자신보다 빨리 움직이며, 검기를 자유자재로 뿜어내는 고수.
“분하구나.”
이런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욱 단단히 준비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싸움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주님을 구하라!”
산동악가 무인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게 느껴졌다.
‘곧 죽겠군.’
악철군은 죽음을 직감했다.
‘후후후후후, 이런 변수가 있어 싸움이 재미있는 것 아니던가?’
패배와 죽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력으로 싸워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자와 겨뤄 보고 싶다.
숨이 끊어졌기에 악철군의 생각은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