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무림맹주 (4)
싸움에 나서기 전.
제갈전은 조카 제갈직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숙부님과 함께 가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괜찮다. 이곳에서 맹주님을 모시는 것이 더 큰일이 아니더냐?”
“숙부님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갈전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게 조언이라도 하려는 모양이구나.”
“조언보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소식이라. 어떤 것이냐?”
“적진에 십장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갈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십장로라면 마교주의 최고 측근이 아닌가?”
“그가 악 가주를 벤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동악가 가주 악철군의 죽음은 이번 원정의 가장 큰 타격이었다.
제갈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상대가 십장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악명이 자자한 십장로가 상대라면 그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숙부님.”
“그를 조심하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맹주께서 그자를 노리고 있으니, 맹주께 양보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말은 양보라고 했지만, 실은 위험을 피하라는 말이었다.
제갈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말대로 맹주님께 양보하겠다.”
다른 세가라면 모를까?
제갈전은 실리와 수읽기에 능한 제갈세가 사람이었다. 그는 무리해서 십장로와 겨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할 말은 없느냐?”
“제가 해 드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갈전이 말 위에 오르며 말했다.
“그럼, 전투가 끝난 뒤에 보겠구나.”
제갈직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숙부님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맹주님께 잘 다녀오겠다고 전해 다오.”
제갈전은 제갈세가 무인들과 함께 전장을 향해 출발했다.
* * *
“저자가 십장로란 말이군.”
제갈전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무인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숙부님! 명령을!”
하북팽가 가주 팽현후는 긍지 높은 무인답게 명운과 일대일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제갈전의 선택은 그와 달랐다.
“모두 말에서 내려 검진을 펼친다!”
명이 떨어지자 제갈세가 무인들이 일제히 경공을 전개해 땅 위에 내려섰다.
탁. 탁. 탁. 타탁.
이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모두 내려서자 제갈전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북두무진이다!”
제갈세가 무인들은 그의 지시를 받은 뒤 목소리를 높였다.
“북두무진!”
그들이 입으로 검진의 이름을 외친 이유는 펼칠 검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제갈세가 무인들은 빠르게 검진을 완성했다.
“좌두! 완료했습니다!”
“우두도 끝났습니다!”
검진의 가운데에는 제갈전이 위치했다.
“이대로 놈을 상대한다!”
명운은 검진을 펼치는 것만 보고도 상대가 어느 문파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제갈세가의 북두진이군.’
그는 진법에 능한 무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모르는 것 또한 아니지.’
북두진이든 백팔나한진이든 대부분 진법은 중앙이 가장 강력했다. 그래서 진법을 파훼하려는 자는 진의 측면을 공격했다.
물론, 진법을 펼치는 쪽도 이것을 알기에 방향을 바꾼다든지 여러 가지 변화를 주면서 측면을 방어하고자 했다.
“온다!”
명운은 정면을 향해 돌진하는 척하다가 방향을 급격히 왼쪽으로 틀었다.
“왼쪽으로 옵니다!”
제갈전은 그의 방향을 살피며 목소리를 높였다.
“훈! 조심하라!”
왼쪽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제갈훈이라는 자였다. 그는 제갈전의 사촌 동생으로 검보다는 오행에 정통한 사내였다.
그는 명운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는 말처럼 빠르구나.’
그러나 상대의 속도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즉시 목소리를 높였다.
“놈이 온다!”
북두무진의 기본 인원은 셋으로, 세 사람은 서로를 보호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진의 왼쪽 측면에는 두 쌍, 즉 여섯 명의 무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 함께 막는다!”
“알겠습니다!”
검진은 개개인의 무력보다는 일체화된 움직임이 중요했다. 빠른 자와 느린 자가 나뉘게 되면, 상대는 그 틈을 파고들 것이 뻔했다.
“지금이다!”
여섯 자루의 검이 동시에 명운을 향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모두 허공을 찌르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명운이 방향을 크게 틀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갈세가 무인들이 당황하는 사이 명운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놈이 온다!”
당황한 제갈훈이 목소리를 높이자 제갈세가 무인들은 다급히 검을 세웠다. 그러나 명운은 다시 한번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파악!
그는 경공을 전개해 높이 뛰어올랐다.
“우리를 뛰어넘겠다고?”
제갈훈은 명운이 자신들의 뒤, 그러니까 배후를 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뒤다!”
그러나 명운의 검이 노린 것은 배후가 아니었다. 그는 허공에 떠오른 채로 검기를 뿌렸다.
슈슈슈슉!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기.
달빛이 미약했기 때문에 제갈세가 무인들은 이 검기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팍! 팍! 팍!
명운이 펼친 검기는 모두 목표에 적중했다.
“컥!”
“으으윽!”
고통에 찬 비명.
쓰러진 것은 여섯 명 중 넷이었다.
“무, 무엇에 당했느냐?”
제갈훈이 당황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쓰러진 이 중 그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딱 한 명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제갈훈은 등골이 오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와 나란히 선 이들은 모두 제갈세가의 정예였다.
‘제갈세가의 정예가 단 일격에 이 모양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의 눈앞에서 펼쳐진 일이었다.
“훈! 당황하지 마라!”
제갈전은 동요하는 제갈훈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북두무진은 이미 한쪽 축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명운은 크게 회전하면서 검진의 배후를 노렸다.
“놈이 뒤로 옵니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명운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무극에 이른 무인을 상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시 한번 허공에서 검기가 쏟아졌고, 이번에도 네 명의 무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파, 팔이…….”
“죽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죽은 이보다는 부상자가 많았다.
제갈훈은 공격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숙부님, 아우들을 살려야 합니다.”
제갈전은 검을 쥔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상대가 검기를 자유자재로 쓴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그였다.
“진을 마음대로 떠나지 마라! 지금은 놈을 상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갈세가 무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자리를 지켰다.
“자리를 지켜라!”
“흩어지면 당한다!”
명운은 제갈세가의 전의가 꺾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갈세가로군.’
삼류 문파였다면 절반이 쓰러진 순간, 전의가 완전히 꺾여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세가는 아직 싸우고자 했다.
검진의 지휘를 맡은 제갈전은 마른침을 삼켰다.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는데 절반을 잃다니!’
명운에게 쓰러진 제갈세가 무인은 벌써 열 명이 훌쩍 넘었다. 이 속도로 공략당한다면 밥 한 끼 먹을 시간 정도면 전멸이었다.
‘천하의 제갈세가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그는 미간을 좁히며 명운을 노려보았다.
“협격으로 상대하라!”
“알겠습니다!”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명운을 향해 협격을 펼치고자 했지만, 명운의 경공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 잔상이다!”
잔상을 남길 정도의 속도.
제갈세가 무인들은 그의 경공에 경악할 뿐이었다.
“이렇게 빠를 수가!”
명운은 속도를 더욱 높이면서 검진에서 멀어졌다.
“놈이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이기고 있는 쪽이 달아난다?
이것은 싸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놈은 다시 올 것이다!”
제갈전의 예상대로였다.
명운은 거리를 벌렸다가 순식간에 다시 좁혔다. 제갈세가 무인들은 그가 속도를 높여 접근하자 크게 놀랐다.
“놈이 다시 온다! 이번에는 오른쪽이다!”
오른쪽에는 다섯 명의 무인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검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머리 위를 조심하라!”
제갈세가 무인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자신들의 머리를 먼저 방어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면 누군가 그들이 방어하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명운은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대신 정면을 선택했다. 그가 오른쪽 측면을 향해 돌진하자 제갈세가 무인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놈이 뛰어오르지 않습니다!”
제갈전이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막아라!”
그러나 그 말로 명운의 검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파아아악!
강렬한 일격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이번에 쓰러진 것은 조귀라는 외원 무사였다.
“귀!”
동료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명운은 그사이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는 조귀를 쓰러뜨린 뒤 검을 돌려 반대편에 있는 중년인을 베었다.
파악!
동맥을 그대로 갈랐기에 핏방울이 아닌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솨아아아아!
제갈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격하라! 협격!”
검진의 기본은 협격이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들이 협격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파악!
외원 무사 한 명이 또 쓰러졌다.
제갈훈은 검진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형님! 흩어져서 놈을 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갈전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지 않았다.
“겁먹지 마라! 놈도 사람! 우리도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지만, 무공은 달랐다.
슈슈슈슉!
이번에는 명운의 검기가 중앙을 노렸다.
“검기?”
제갈전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확인하고는 그것을 쳐 냈다.
탕!
마치 둔탁한 철편을 쳐 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 정도라면…….’
무공이 부족한 이들은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으윽.”
무릎을 굽히며 무너진 것은 그의 동생 제갈용이었다.
“용!”
제갈용은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미간을 좁혔다.
“형님,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었는데 더는 싸울 수 없었다.
“용!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갈용이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형님, 직이 뭔가 조언하지 않았습니까?”
제갈전은 그제야 제갈직의 조언을 떠올렸다.
– 숙부님, 십장로를 만나면 싸우시지 말고 맹주께 양보하십시오.
그는 조카의 조언을 무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만했다. 아니, 오만했다.’
용호대의 서쪽 진영을 철저히 짓밟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훈!”
그의 외침에 제갈훈이 얼굴을 굳혔다.
“흩어지는 것입니까?”
“물러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러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내가 놈을 막는 사이 신호탄을 쏘며 퇴각하라!”
제갈전은 가장 위험한 후위를 맡고자 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오판 때문이다.’
제갈훈은 그가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님!”
“시간이 없다! 신호탄은 파란색과 녹색이다!”
파란색은 퇴각.
녹색은 변고가 났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둘이라고?’
제갈훈이 미간을 좁힌 순간 제갈전이 명운과 맞붙었다.
타아아앙!
불꽃과 함께 격렬한 타격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제갈세가를 무시하지 마라!”
제갈전은 시퍼런 검기를 뿌리며 명운을 압박하고자 했다. 그러나 명운에게 검기는 통하지 않았다.
펑! 펑!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기가 허공에서 소멸했다.
“큭, 검기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명운은 검을 세우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절정에 이르렀지만, 아직 그 묘리는 깨닫지 못한 것 같군.”
제갈전은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젊은 것을 확인했지만, 그의 나이가 겉모습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교의 마인 중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 자도 있다고 했다. 놈은 적어도 쉰은 넘었을 것이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을 쥔 뒤 십이성의 공력을 불어넣었다.
“대마두에게 검에 대한 가르침 받을 줄은 몰랐군.”
“가르침…….”
명운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 신호탄이 솟아올랐다.
펑! 펑!
제갈전이 명한 대로 푸른색과 녹색 신호탄이 터졌다.
명운은 그것을 보고는 속으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원이라도 부르려는 모양이군.’
그는 무림맹이 이대로 물러설 리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군.”
제갈전은 오른발을 살짝 뒤로 뺐다.
“마지막 상대로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그는 검기를 발출하는 대신 내력이 가득 담긴 검을 휘둘렀다.
휘익!
명운은 검신에 흐르는 푸른빛을 보고는 그의 수법을 꿰뚫어 보았다.
‘검이 닿는 순간 기를 앞으로 뻗을 생각이군.’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를 상대한 바 있었다. 이 정도 공격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슉!
앞으로 뻗는 검.
제갈전은 검이 닿는 순간 기를 뻗어 상대의 손목을 노릴 생각이었다.
‘잘만 된다면…….’
대마두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검과 검이 닿으려는 순간 명운의 검이 회전했다.
‘이런!’
명운은 검을 마치 봉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의 검에 자신의 검을 바짝 붙인 뒤,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 버렸다.
‘착의 수법이다.’
이 한 수는 검선의 가르침을 응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