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무림맹주 (10)
적당히 타협하여 살아남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았다.
악철군, 팽현후, 두 가주와 백 명이 넘는 전사자.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들의 죽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럴 수는 없다.’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의 죽음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들을 이곳까지 끌고 온 자신에게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인가?’
남궁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바보로군.’
의미를 남기기 위해.
그는 더 많은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맹주님의 명이다!”
“대마두를 쳐라!”
남궁세가 무인들이 명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더 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녕 모두 죽어야 끝난단 말인가?”
명운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남궁민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남궁민도 오른손을 들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겨우 이 정도 장격에…….’
평소라면 호신강기만으로 막아 냈을 장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커헉…….”
기경팔맥이 뒤틀리면서 모든 경맥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으윽.”
남궁민은 피를 쏟아 내고는 두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으윽.”
무공을 배운 이후 이토록 엉망이었을 때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래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숨을 쉬고 있었고, 미약하지만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남궁민은 눈을 크게 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외쳤다.
“놈은 날 쓰러뜨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놈에게 남은 힘은 이제 얼마 없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명운은 천마선을 사용한 대가로 그 힘이 크게 줄어 있었다.
“양패구상하겠다는 말인가?”
남궁민은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에 그의 말에 답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크크크, 그렇게 생각하나?”
그는 억지로 몸을 세운 뒤 오른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는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았다.
파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목에 긴 상처가 났다.
명운이 검풍처럼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켜 그의 목을 벤 것이었다.
남궁민은 고통 속에서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목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솨아아아아아!
명운은 남궁민을 베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절멸을 외친 이상, 살려 둘 수는 없었다.
‘후환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렸다.
“대마두를 처단하라!”
“맹주님을 지켜라!”
남궁세가 무인들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때와 같은 상황이군.’
그는 미간을 좁히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남궁민이 떨어뜨린 애검 서혼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억.
서혼은 검신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경은, 미안하다. 대산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모든 대혈을 열어 대지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크으윽.”
대지의 기운이 일시에 몸으로 밀려들자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다.’
그는 검을 들었다.
쉬익!
파공성과 함께 검격이 날아왔다.
“죽어라!”
선두에 선 이는 남궁제라고 했다. 그는 남궁 가주의 차남이자 남궁민의 조카였다. 그는 이십 년 동안 남궁세가에서 검을 배웠으며, 강호에서는 삼선협(三仙俠)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촤아아악!
검풍과 함께 크게 내려그은 검.
그러나 그가 벤 것은 실체가 아니었다.
“잔상?”
남궁제가 고개를 돌린 순간 푸른 검기가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파아아아아악!
가슴에서 허리까지 걷잡을 수 없는 틈이 벌어졌다.
끔찍한 고통.
이어지는 대량의 출혈.
“커헉.”
남궁제는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누군가는 허무한 인생이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천마신교 교주를 쓰러뜨린다면 그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게 될 터였다.
“제!”
남궁제의 숙부 남궁성민이 대노하여 검격을 날렸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파악!
명운은 검과 함께 그를 베어 버렸다.
“으윽!”
옆구리를 크게 베인 남궁성민의 두 다리가 꺾였다.
“노, 노옴!”
그는 대노하여 외쳤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명운의 두 번째 검격이 그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파악!
그는 계속해서 남궁세가 무인들을 베어 나갔다.
촤아아아악!
붉은 핏줄기가 솟아오르는 순간 또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졌다.
제갈직은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 혈겁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미친 싸움이다.”
맹주는 이미 죽었다.
그는 두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남궁세가 무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맹주에 대한 복수일까?
“아니다. 그들은 맹주의 명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
무림맹주가 남긴 마지막 명.
그것은 대마두를 베라는 것이었다.
푹!
짧은 파열음과 함께 명운의 허벅지에 일검이 꽂혔다.
남궁세가 무인이 처음으로 천마신교 교주의 몸에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주, 죽어라!”
무인은 검을 비틀어서 상처를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명운의 검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파악!
그를 찌른 무인의 목이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용!”
남궁용.
그는 남궁세가의 방계로 그 재능을 인정받아 이번 원정에 참여하게 된 자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명운의 허벅지에 일검을 찔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큭, 빈틈을 보이고 말다니.’
명운은 남궁용을 벤 뒤 왼쪽에서 날아오는 일검을 흘렸다.
‘이 상황에서 상처를 지혈한다는 것은 사치구나.’
상처를 지혈할 틈은커녕 진기 한 번 돌릴 틈조차 없이 공격이 이어졌다.
슉! 슈슉!
남궁세가의 맹공은 매서웠다.
펑! 펑! 펑!
이번에는 잇달아 폭음이 울려 퍼졌다.
폭음과 사방으로 펼쳐진 기파는 검기와 검기가 충돌했다는 증거였다.
명운은 상대의 검기를 막아 낸 뒤 미간을 좁혔다.
‘큭, 절정 고수도 아직 셋이나 남아 있구나.’
남궁석을 비롯한 남궁세가의 절정 고수들은 어떻게든 명운을 쓰러뜨리고자 했다.
‘맹주님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이곳에서 반드시 대마두를 쓰러뜨린다!’
‘바로 이곳이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달려오는 동안 명운이 남궁민의 목을 베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참(斬)!”
남궁석의 검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베고 들어왔다.
명운은 서혼을 세워 그의 검을 막았다.
타앙!
불꽃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죽어랏!”
뒤쪽에서는 같은 절정 고수인 남궁훈이 검을 뻗었다. 명운은 몸을 비틀어 그의 검을 흘리고자 했으나 검에서 흘러나온 검기까지 흘리지는 못했다.
찌이이이익.
옷이 찢겨 나가면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기에 베인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젠장!”
명운은 거칠게 서혼을 휘두르며 남궁석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몸을 회전하면서 검기를 뿌렸다.
퍼엉! 퍼엉!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궁석과 남궁훈이 뒤로 밀려났다.
‘제길……. 절정 고수조차 베어 내지 못한단 말인가?’
남궁민이 지적한 것처럼 명운의 힘은 크게 줄어 있었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바로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놈에게 쉴 틈을 주지 마라!”
상대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는 한숨의 진기만으로도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었다.
“죽어라!”
남궁세가의 검이 다시 쏟아졌다.
파악! 타앙!
막고, 베고, 굴렀다.
명운이 바닥을 굴러 상대의 검을 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환영보조차 쓸 수 없단 말인가?’
다리에 일검을 맞은 뒤 그의 속도는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 이제 빠른 움직임으로 잔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리였다.
스윽.
명운은 왼쪽에서 찔러 오는 검을 흘려낸 뒤 상대의 몸에 서혼을 박았다.
파악!
짧은 파열음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서혼을 회수할 틈이 없었다.
‘뒤와 앞에서 동시에?’
그는 서혼을 포기하고는 두 손을 펼쳐 양쪽으로 장격을 날렸다.
펑! 펑!
폭음과 함께 두 무인이 뒤로 밀려났다.
“큭.”
명운은 다시 대지의 기운을 끌어 올렸지만, 전처럼 많은 양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한계란 말인가?’
남궁세가 무인은 아직 십여 명이 넘게 남아 있었다. 특히 검기를 사용하는 세 절정 고수는 골치 아픈 상대였다.
‘여기서 포기할까 보냐!’
그는 다시 오른발로 땅에 떨어진 검을 차올렸다.
이것은 앞서 쓰러진 자가 떨어뜨린 검이었다.
명운은 그 검으로 검기를 펼쳤다.
푸욱!
남궁석의 뒤에 서 있던 무인이 푸른 검기를 막지 못한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윽.”
그는 허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명운은 그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가슴을 노렸는데, 옆구리인가?’
남궁민을 상대할 때는 그의 검기와 검에 천마선의 궤적이 어긋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집중력이 떨어져 검기가 빗나간 것이었다.
“놈!”
남궁세가 무인들이 다시 맹공을 펼쳤다.
명운은 정신없이 그들의 검을 막고 또 막았다.
남궁석은 명운의 검과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맹주님의 말씀대로다. 놈은 지쳤다.’
상대가 지쳤다는 것을 알자 그의 검이 더욱 빨라졌다.
“헉. 헉.”
명운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남궁석은 왼쪽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기회다!’
겨드랑이 쪽에서 심장을 찌를 수 있다면 일격에 대마두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슉!
회심의 미소와 함께 검기를 뻗은 순간, 명운이 몸을 돌리며 그에게 검을 던졌다.
‘사각이 아니었나?’
그는 몰랐지만, 명운은 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처럼 강렬한 기를 지닌 자는 더욱 쉽게 그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푹!
명운이 던진 검이 그대로 남궁석의 가슴을 관통했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툭. 투툭.
명운은 그에게 검을 던졌기 때문에 맨손으로 다른 이들의 공격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장격을 펼쳐 두 번의 공격을 막았지만, 세 번째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
삭!
검이 그의 왼쪽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큭.”
그도 남궁석과 마찬가지로 짧은 비명을 질렀다.
“대마두의 힘이 다했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남궁석을 잃었지만,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다!’
명운은 비단 남궁민과 남궁세가만을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북팽가 가주 팽현후부터 제갈세가의 제갈전까지 수많은 고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진기 한 모금만 돌릴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궁세가 무인들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지독하군. 오대세가의 필두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
그는 피하고 막고, 굴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의 상처는 늘어났고, 움직임은 점점 무뎌졌다.
“헉, 헉…….”
그는 바위를 등지고 서서 자신을 포위한 이들을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이 남궁세가 놈들이라니.’
미인의 품속에서 죽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조금 아니지 않나 싶었다.
“젠장.”
그는 두 손에 남은 기를 모았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명운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자 한다고 생각했다.
“조심해라.”
대마두의 목을 베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
불필요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었다.
“사방에서 동시에 친다.”
“알겠습니다!”
제갈훈의 명에 남궁세가 무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욱!
파공성과 함께 날아온 검이 남궁세가 무인의 등에 꽂혔다.
“커억!”
검에 맞은 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남궁세가 무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용호대원들이 암기를 던지며 그들의 물음에 화답했다.
“문 형제를 구하라!”
“놈들을 쓸어 버리자!”
언덕 위에서 지켜보던 용호대원들이 명운을 구하고자 언덕을 내려온 것이었다.
명운은 그들을 보며 입술 끝을 올렸다.
“딱 좋을 때 왔구나.”
선두에 선 것은 임진풍이었다. 그는 거칠게 대도를 휘두르며 남궁세가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러나라!”
휭!
거친 바람과 함께 대도가 쏟아지자 남궁세가 무인들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녀석들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고 했던가?
남궁세가 무인들에게는 기가 찬 상황이었다.
“겁도 없는 놈들이구나!”
타앙!
불꽃이 튀기며 양쪽의 무기가 교차했다.
맹렬하게 맞붙은 것도 잠시.
용호대 쪽에서 먼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커헉!”
명운은 용호대의 무공으로는 남궁세가를 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들 죽음을 각오하고 날 구하러 왔구나.’
그는 용호대 덕분에 한숨의 진기를 돌릴 수 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자 정신이 맑아졌다.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
명운은 두 주먹을 꾹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