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정사대전 (5)
“대주님! 적입니다.”
진백강이 잠에서 깬 것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그는 상대의 야습에 대비해 낮에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습이라고?”
“숫자가 많습니다!”
다급한 외침.
진백강은 바로 검을 들고 장막 밖으로 나섰다.
“와아아아아!”
적은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아 있단 말인가?”
작은 언덕을 포위한 무림맹 병력은 삼백은 족히 될 것 같았다.
“대주님, 명령을!”
진백강은 검을 빼 들었다.
“언덕 위에서 적을 막는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라!”
십 대 일의 수적 열세.
용호대 대원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제기랄!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벨 것이다!”
“우리가 그냥 죽을 것 같으냐!”
“와라! 오라고!”
무림맹 무인들은 언덕 아래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상대의 기를 죽이고자 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무림맹 만세! 무림맹 만세!”
이번 공격의 지휘를 맡은 것은 무당의 현원도장이었다.
“도장, 어서 공격 명령을!”
하북팽가는 한시라도 빨리 전투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원도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소이다.”
그는 적의 사기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직 겁을 먹은 얼굴이 아니다.’
하북팽가의 지휘를 맡은 팽현두가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도장! 적은 한 줌에 불과합니다. 어서 공격을!”
현원도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팽 형,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무림맹 무인들이 작은 언덕을 둘러싸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사천당가의 당오빈은 천봉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있었다. 그와 사천당가 무인들은 봉우리 정상 근처에 지어진 요새까지 단 십여 장을 남겨 두고 있었다.
“형님, 이제 다 왔습니다.”
당오빈은 검은 바위에 주저앉았다.
“다들 천천히 하지.”
그들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마교가 천봉 주변에 설치한 함정 십여 개를 해체했다. 당오신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형님 정말로 성채를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이번 공격에 부정적이었다.
“명을 받았으니. 공격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당오빈도 천봉에 대한 공격은 썩 내키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
멀리에서 무림맹 무인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대마두도 힘들겠지요?”
“글쎄.”
당오빈은 생각했다.
‘무림맹의 수적 우세는 여전하지만, 고수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마교의 대마두가 나타나기 전까지 무림맹에는 수많은 고수가 있었다. 하나 대마두 한 명에게 무수한 고수가 쓰러지고 말았다.
‘산동악가의 악철군, 하북팽가의 팽현후, 제갈세가의 제갈전, 여기에 맹주 남궁민까지. 대마두 한 명에게 쓰러진 무인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그가 언급한 이들은 모두 일문의 장문인급이었으며, 그들 외에도 수많은 고수가 명운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어제는 개방의 오 장로가 전사함으로써 무림맹의 손해는 더욱 커졌다.
“이번 전투로 보위산 토벌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당오신은 하루라도 빨리 사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 소저 때문이냐?”
정연.
그녀는 당오신의 약혼녀였다.
“그녀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번 토벌전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느낌은 이미 맞아들어 가고 있었다.
‘맹주가 전사했다는 것부터가 큰 암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당오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네 말대로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마 끝날 것입니다.”
“이유가 있느냐?”
당오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맹에 남은 고수가 많지 않습니다.”
무림맹은 아직 수백 명의 무인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고수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용호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선도 마찬가지였다. 주력은 무당파와 종남파였으며, 그 외 문파에는 명성을 떨친 무인이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우리의 공격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말이구나. 하지만 아직 이쪽에는 쓰지 않은 검이 있다.”
당오신은 당오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소림 말씀입니까?”
백팔나한.
그들은 무봉을 점령한 뒤, 그곳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들이 등장하면 다시 한번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당오신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아마 참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들은 창이 아닌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보위산 공략전은 기본적으로 방어가 아닌 공격이었다.
그는 소림이 공세적인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았다.
“소림은 중원을 지키는 방패다. 그 말이구나.”
“형님의 생각은 다르십니까?”
당오빈은 대답을 망설였다. 소림이 방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한당주 혜인대사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그가 대답했다.
“마교가 무봉을 친다면 소림이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
“소림이 선을 긋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오빈이 생각한 소림의 선은 명천의 보위산 정벌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생각했다.
‘소림의 무승들이 속가를 떠났다고 해도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은 속세를 살아가고 있다. 소림은 무역로 보호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명천에게 무봉을 빼앗긴 이후 중원의 각 상단은 무역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소림이 그것을 좌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번 토벌전이 시작된 이유도 반쯤은 무역로 때문일 것이다.’
정의를 전면에 내세운 무림맹이지만, 뒤로는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명운은 계속해서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보위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들과 마주했다.
“너는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는 이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명운은 순간 말끝을 올렸다.
“하후문?”
하후문은 일행의 선두에서 창을 꼬나들고 있었다. 그는 낯선 청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미간을 좁혔다.
“나를 알고 있다면 본교의 무인이더냐?”
명운이 마주친 일행은 그가 황도로 보낸 초예와 그녀를 호위하는 무인들이었다. 그는 얼굴의 인피면구를 벗어 자신을 드러냈다.
하후문은 명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랐다.
“공자님?”
명운이 일행을 훑어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 것인가?”
하후문이 대답했다.
“보위산이 무림맹에 점령되었기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명운은 눈썹을 세웠다.
“보위산이 벌써 떨어졌단 말인가?”
하후문은 그의 물음에 살짝 당황했다.
“보위산이 함락된 것이 아니었단 말씀이십니까?”
“무봉이 함락되긴 했지만, 아직 천봉은 본교에 남아 있네.”
이번에는 정문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는 하후문과 함께 초예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봉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보위산 함락으로 와전된 것이군요. 저희는 소문을 듣고 움직이기 때문에 정확한 전황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후문과 정문.
명운은 신강이문을 보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도 그대들이 무사하니 다행이군.”
“저희도 있습니다.”
말을 달려 앞으로 나온 이는 일과 초예, 그리고 초하였다.
“셋 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초예는 경은처럼 명운을 향해 뛰어들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노예가 공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명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예는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그는 노예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초예는 호칭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언제까지 공자님을 섬길 것입니다.”
일도 뒤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주인님을 죽을 때까지 모실 것입니다.”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단언하지 마라.”
“주인님!”
일은 전과 달리 활발해 보였다.
‘아라산의 일을 많이 잊은 모양이구나.’
명운이 만족한 듯 옅은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공자님, 그 상처는 무엇입니까?”
초예는 의원답게 명운의 몸에 난 상처를 주목했다.
“싸우다 다친 것이다.”
정문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공자님께 상처를 입힌 이가 있단 말입니까?”
그는 명운과 함께 서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기에 명운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 친구들이었지.”
남궁세가가 언급되자 하후문이 눈썹을 위로 세웠다.
“남궁세가 녀석들이 이곳에 와 있단 말입니까?”
그는 당장에라도 창을 들고 뛰쳐나갈 기세였다.
“지금은 모두 서천에 있을 걸세.”
명운에게 상처를 입힌 대가로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는 말.
“그렇다면 근처에 적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다네.”
“예?”
명운은 그들에게 무림맹의 보위산 침공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정문은 미간을 좁혔다.
“하면 공자님께서는 용호대라는 이들을 이끌고 이곳에 오셨단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고삐를 쥐며 대답했다.
“용호대를 이끈 것은 진백강이고, 나는 몰래 그를 돕고자 했네.”
“아, 그래서 인피면구를 쓰고 계셨었군요.”
명운은 인피면구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한번 벗으면 다시 쓸 수 없는 것이라고 했으니, 이제 이것도 무용지물이 되었군.”
정문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번 벗으면 다시 쓸 수 없는 것이라면, 왜 그것을 벗으신 것입니까?”
그는 신분을 증명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자네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할 틈이 없었기 때문일세.”
정문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
“무림맹의 군세가 적지 않네.”
하후문이 창을 들며 말했다.
“그럼,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들은 초예를 지켜야지.”
초예가 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저희는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명운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무림맹 고수들이 너무 많아. 정문과 하후문, 두 사람이 함께 있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야.”
초예는 그의 말을 반박하고자 했으나 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라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은 초예를 지켜야지.”
초예가 실쭉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항상 짐이군요.”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공자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저는 공자님과 함께 갈 것입니다.”
초예의 눈빛에는 강단이 서려 있었다.
‘곤란하군.’
명운은 그녀가 전장에서 떨어지기를 원했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면 안 될까?”
초예가 말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저는 공자님의 종이기 전에 의원입니다. 보위산에 제가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명운도 그녀를 십만대산으로 보낼 명분이 약해졌다.
‘그녀가 전장 근처에 있다면 죽어 가는 사람 몇은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명운은 그녀가 전장에 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곤란하군.”
초예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공자님, 말에서 내려 주세요.”
“말에서?”
“상처를 봐야겠어요.”
그녀는 명운의 상처를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낫고 있어.”
“그래도 보겠습니다.”
초예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할 수 없군.”
명운은 그녀가 상처를 잘 볼 수 있도록 말에서 내려 바위 위에 앉았다.
초예는 그의 상처에 묶여 있는 붕대를 풀고는 그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아직 선명해요. 게다가 딱지도 아직 단단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은 상처군요.”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쯤 되었던가?”
초예는 바늘과 실을 꺼냈다.
“상처를 다시 꿰매야겠어요.”
“다시 꿰맨다고?”
“솜씨가 어설퍼요.”
언덕에서 싸움이 끝난 뒤, 명운의 상처를 꿰맨 것은 귀혼단 출신의 용호대원이었다. 그는 특별히 의술을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솜씨가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
“처음에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죠.”
그녀는 툭 하고 실을 끊었다.
“윽.”
명운은 통증에 짧은 신음을 냈다.
“공자님, 보기보다 엄살이 심하시네요.”
그녀는 빠르게 실을 풀고 상처를 다시 꿰매기 시작했다.
푹. 푹.
명운은 그녀가 살을 꿰매는 사이 계속해서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으윽, 아프군.”
“참으세요.”
“참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할까?”
남궁세가의 검에 찔렸을 때는 신음을 내뱉는 대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초예가 옆에 있으니, 계속해서 신음이 나왔다.
‘어쩌면 난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초예는 봄과 같이 따뜻한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