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발묵화풍(潑墨畫風) (2)
종영세와 관흠은 명운이 한 소녀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는 일이 잘되었음을 깨달았다.
“축하드립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내저었다.
“축하받을 정도의 일은 아닐세.”
그가 손짓하자 관흠이 다가와 소녀를 명운의 말에 태웠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 위에 올랐다.
소녀와 명운, 두 사람 모두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함께 말을 타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초하라고 했느냐?”
앞에 탄 소녀는 초예의 동생 초하였다.
“그, 그러합니다.”
그녀는 아직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은 다 잊어라.”
명운은 그녀가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예 사냥부터 살수행의 입문까지…… 지옥도의 연속이었겠지.’
초하가 명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전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초예가 널 구하고자 했다.”
초하는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언니가 살아 있었군요.”
“앞으로 초예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일행이 적룡대를 막 나왔을 때였다.
앞서가던 조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공자님, 결국에는 하 대주가 약속을 지킨 것입니까?”
명운이 되물었다.
“약속을 지키다니? 이 아이 말인가?”
“그림 말입니다. 그 그림, 쉬운 그림이 아니었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쉬운 그림이라. 고약한 함정을 파 놨더군.”
조광은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
“함정이라니, 역시 그랬군요.”
명운이 말했다.
“하지만 이쪽도 함정을 팠으니, 서로 주고받은 것일세.”
조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공자님께서 함정을 파셨단 말씀입니까?”
“팠지.”
“대체 어떠한 함정을 파신 겁니까?”
“그림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네.”
이번에는 종영세가 물었다.
“그 말은 조금 믿을 수가 없군요. 그 하 대주가 공자님의 연기에 속았다는 말입니까?”
명운이 종영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게 이상한 일인가?”
종영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게…… 하 대주는 독심술을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게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자입니다.”
명운은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열세 살 어린아이가 상대이니, 그도 방심할 수밖에 없었겠지.”
종영세는 그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하청규 같은 자가 단지 어린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심을 했다? 그럴 수도 있는 건가?’
그는 상황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상상을 할 뿐이었다.
“공자님께서는 뜻한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운명을 타고 태어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명운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라네.”
그는 생각했다.
‘두 번 모두 상대의 방심을 이용해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철저히 준비한 상대를 만난다면 승부의 방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다음 날.
명운은 연공실에서 조광을 가르쳤다.
“최근 수행은 잘되고 있느냐?”
조광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민?”
조광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급격한 무공의 진전이 있었다.
현재 그의 무위는 강하원 바로 아래라 할 수 있었다.
“이길 방법을 찾았으나, 제가 그것을 해낼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외공의 부족함을 느꼈다는 말이군.”
“해결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그것의 해결 방법은 오직 시간뿐이다.”
내외공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벽이란 쉬이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운의 가르침은 여기까지였다.
조광은 검을 휘두르며 수련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명운은 병풍 뒤로 경은을 불렀다.
“네 수련은 잘되고 있느냐?”
경은이 대답했다.
“사부님의 배려로 하루에 한 시진씩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운은 경은을 제자로 받은 뒤, 그녀의 신분을 살짝 올려 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잡무에서 해방되어 연무장 관리와 수련에 충실할 수 있었다.
“네가 보기에 조광은 어떠하냐?”
경은이 대답했다.
“훌륭한 무인입니다.”
명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답이 아니다.”
경은은 명운의 한마디에 말을 바꾸었다.
“스스로 노력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사내입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명운이 물었다.
“어떠한 것이냐?”
“다른 호위들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운은 피식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승님.”
“조광과 다른 호위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가 좋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경은이 말했다.
“하나 반목이 계속된다면, 균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명운은 제법 어른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걱정한다는 것은 시야가 그만큼 넓다는 뜻. 이 아이는 위에 설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균열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스스로를 믿게 될 것이다.”
경은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전장에서 불신은 죽음을 뜻할 테니까.”
그는 외부의 적이 내부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초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명운은 그녀에게 두 자매의 관리를 맡겼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동생도?”
“예상보다 구김이 없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나 두 아이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네가 그 상처를 보듬어 주길 바란다.”
경은이 두 손을 모았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경은에게 한수의 금나수를 가르쳤다.
조광과 다른 호위들에게 자극을 받은 것일까?
금나수를 배우는 경은의 눈빛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 * *
눈이 가득 쌓인 정원.
삼공자 명원은 이곳에서 바로 아래 동생인 사공자 명준을 만났다.
“오랜만이구나.”
명준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반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형님께서 절 보자고 하시지 않으니,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적군요.”
명원이 차를 권하며 말했다.
“형들을 따라가기 바쁘니, 아우들을 챙길 수가 없구나.”
그는 동생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동생들을 챙기는 형 또한 아니었다.
“둘째 형과 차이가 많이 벌어지신 것 같습니다.”
비틀림이 서린 말이었지만, 명원은 화를 내지 않았다.
“둘째 형은 검혼대와 기린대를 거느리고 있으니,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구나.”
“형님에게도 백호대가 있지 않습니까?”
명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백호대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네 현무대와는 사정이 다르지.”
명준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오늘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명원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운에 대해 알고 있느냐?”
명준이 멈칫했다.
“막내 말입니까?”
“그래.”
“저보다는 형님이 더 잘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명운의 호위무사들이 백호대 칠조에게 승리를 거둔 일은 대명궁에 이미 소문이 난 상태였다.
“내가 모르는 일을 네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묻는 것이다.”
명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막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매일 시나 읽고 글이나 쓰던 아이죠. 제가 참석했던 마지막 부면에서도 그 아이는 조용했습니다.”
명원이 턱을 쓰다듬었다.
“조용했다고?”
명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흠, 모를 일이구나.”
명준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호대 일을 걱정하시는 것이라면 막내가 아닌 강 총관을 주목해야 합니다.”
명원도 명운의 배후에는 강하원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역시 그가 배후일까?”
“그 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원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어떤 것입니까?”
“귀주석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명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오래된 소문이군요.”
“오래되었다?”
“운이 오래전 현무대에 다녀간 일이 있었습니다.”
“음, 그런 일이 있었나?”
명준은 정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명원에게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명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하원은 귀주석가와 어떻게든 손을 잡으려는 모양이구나.”
명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쉽진 않을 겁니다. 귀주석가는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이들이니까요.”
명원이 물었다.
“만약 그들이 명운의 뒤에 선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명준이 대답했다.
“껄끄러워지는 일이긴 하나 형님이나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막내이기 때문이냐?”
“아닙니다. 운 스스로가 뭔가를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명원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강 총관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주인인 운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
명준이 두 손을 모았다.
“그보다는 형님, 이번 태화제가 중요합니다.”
태화제.
일 년에 한 번.
명가의 모든 이들이 태화전에 모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주인 명증의 장수와 평안을 빌었다.
“이번 태화제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둘째 형이 아니겠느냐?”
이공자 명각은 무림맹과 곤륜파 연합군을 격파해 그 위명을 십만대산 사방에 떨쳤다.
명준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되면 곤란합니다.”
명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곤란하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느냐?”
명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소문을 만드는 겁니다.”
“소문?”
명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계책을 이야기했다.
명원은 그의 계책을 다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네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냐?”
“제가 아니면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명원은 생각했다.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형제들 중 네가 제일이구나.’
그는 사공자 명준을 형제들 중 가장 아래에 놓았다.
* * *
강하원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명운을 찾아가 어제 있었던 일과 오늘 하루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낙산원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명운은 낙산원에 거는 기대가 컸다.
“어떠한가?”
강하원이 조사 결과를 정리한 문서를 내밀며 대답했다.
“광산의 철은 불순물이 적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으나, 주변 토지는 척박하여 작물을 키우기 어렵다는 보고입니다.”
명운이 문서를 받으며 물었다.
“다른 것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명운이 가장 바란 것은 금광의 발견이었다.
‘금광이 있던 곳이 낙산원이 아니었던가? 아니야. 분명 낙산원이었다.’
그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아쉬운 일이군.”
강하원이 살짝 말끝을 올렸다.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셨습니까?”
명운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지정한 곳 아닌가? 큰 이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네.”
“더 조사를 해 볼까요?”
명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음, 비용은 어떠한가?”
“광산에서 나오는 돈이 있어 조사에 큰돈이 들진 않을 겁니다.”
“돈이 나온다고?”
“백호대에서 철광석에 대한 대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백호대주 조자건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사내였다.
“비무에 이겼기 때문에 앞서 내걸었던 조건은 다 없어진 것인가?”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명운이 말했다.
“여유가 있다면 더 조사하는 것도 좋겠지. 하는 김에 주변 지도도 작성하면 좋을 것 같군.”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편 뒤 물러나려 했다.
그 순간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몸을 돌렸다.
“공자님.”
“무슨 일인가?”
“이번 태화제에서 입을 옷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명운이 갸웃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공자님은 한 해가 다르게 키가 크고 계십니다. 작년에 입었던 옷은 이제 맞지 않으실 것입니다.”
강하원의 말대로였다.
명운은 한 해가 다르게 키가 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의 키를 따라잡은 것이 열여섯이었던가?’
그는 성장이 빨라 열여섯에 스무 살이 넘은 오공자 명정보다 키가 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