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천존(天尊) (3)
경은은 남만에서 올라온 전서를 들고 교주의 집무실이 아닌 별전으로 향했다. 별전은 태화전 밖에 건설된 전각으로 교주의 부재 시 부교주가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 그녀가 별전으로 향한다는 뜻은 교주의 부재를 인정하고 부교주 유청이 교주를 대신하여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전서입니다.”
경은이 자신이 왔음을 알리자 부교주 유청이 손을 들었다.
“들어오라.”
드르륵.
양쪽에 선 시비가 문을 열자 부교주 유청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디서 올라온 전서인가?”
“남만입니다.”
경은은 짧게 대답한 뒤 전서를 그에게 전했다.
유청은 전서를 받은 뒤 그것을 펼쳐보았다.
“으음.”
전서의 내용은 좋지 못했다.
“또 촌락이 파괴되었단 소식이로군.”
그는 앞서 공복진에게 오월교의 활동에 관한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서관은 돌아가도 좋다.”
“다음 전서가 들어오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경은은 다리를 굽혀 보이고는 뒷걸음으로 별전을 빠져나왔다.
탁.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하나 그녀는 걸음을 내디딜 수 없었다. 그녀의 앞에 사마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 어디서 전서가 왔는가?”
경은은 동생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대호법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동생이라니요.”
사마진은 긴 머리를 틀어 올린 뒤 은으로 만든 장식을 얹고 있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뭐 동생은 아직 어색한 모양이군.”
“…….”
“설마 언니가 아니라 고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경은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대호법님과 제 신분을 생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재빨리 대답한 것은 사마진이 나이에 민감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괜찮다고 했을 텐데 말이야.”
“대호법께서 괜찮아도 제가 괜찮…….”
괜찮지 않다.
사마진은 그녀가 말을 모두 끝내기 전에 어깨를 잡은 뒤 가볍게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교주님께서 돌아온 뒤에도 서로 질투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해. 난 그게 교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명운이 한두 명의 여인으로 만족하지 않으리라 보았다.
‘신교의 교주는 모두 그랬으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여인을 태화전에 들일 것인가?
그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호색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래도 마음 한곳에는 항상 나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경은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말끝을 올렸다.
“호, 호법님, 제가 어찌 대호법님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사마진이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그렇게 겸손하기만 할 필요는 없어. 우리 두 사람은 예전부터 교주님을 알고 지냈잖아. 새로운 여인들이 나타나도 우리만큼 교주님을 잘 알 수는 없을 거야.”
“대호법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전에 말씀하신 그 말이 입에 붙지 않습니다.”
언니라는 한마디.
경은은 그 말이 입에 붙지 않았다.
그러자 사마진이 오른손 식지를 들어 그녀의 코를 눌렀다.
“그럼, 지금 해 봐.”
“네?”
“언니라고.”
경은은 마지못해 입을 뗐다.
“언니?”
“한 번 더.”
“언니.”
“잘할 수 있잖아.”
경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대호법님은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네요.”
사마진이 백합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올렸다.
“사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그럴 리가요?”
“차갑고 냉혈한 그런 여인이라고 말이야.”
“아닙니다.”
사마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을 그렇게 보았다고 해도 잘못 본 것은 아니야. 예전에는 정말로 그랬으니까.”
경은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디까지 본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녀는 사마진이 자신에게 보여 주는 모습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는 그저 높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높으신 분?”
“그리고 아름답고요. 저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말이에요.”
사마진이 피식하고 웃었다.
“이 얼굴이 역용한 것이라면?”
“네?”
사마진은 경은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진 것을 보고는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내 역용술을 배우고 싶은 모양이네.”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
이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여인들의 가장 큰 욕망이었다.
경은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사마진은 두 손을 허리 뒤로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동생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만, 사실은……. 이게 진짜 얼굴이라서 말이지.”
경은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대호법님이 이런 분이셨던가?’
과거에는 그녀의 말처럼 차갑다 못해 냉혹한 여인이었다.
“절 놀리시는군요.”
“동생은 재미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주면 안 될까?”
“한마디라니요?”
“그 말.”
경은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언니?”
사마진은 경은의 말에 매우 만족했다.
“그래, 그거야.”
그녀는 경은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오른손을 들었다.
“부교주님과 회의가 끝나는 대로 찾아갈 테니, 차를 준비해 줘.”
경은이 두 무릎을 살짝 굽히며 말을 받았다.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봐.”
사마진은 손을 흔들고는 별전 안으로 들어섰다.
드르륵.
부교주 유청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들었는지 가볍게 기침했다.
“흠, 흠.”
사마진은 어깨를 위로 세웠다.
“설마 들으셨나요?”
“그렇게 문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어찌 듣지 못하겠나.”
유청과 같은 고수는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각이 예민했다.
“그래서 어떠셨나요?”
“자네답지 않더군.”
“그런가요?”
“경 서관하고 그렇게 친해질 필요가 있던가?”
사마진이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교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까요.”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이란 말인가?”
“굳이 말씀하시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신경 쓰실 일이 많으시잖아요. 곁에 있는 여인들이 질투하며 다툰다면,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청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그는 사마진이 예상 이상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부교주님께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네요.”
유청이 의자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아니야. 진심일세.”
사마진이 의자에 앉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좋은 말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이제 부교주님께서 절 부른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유청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낮게 신음했다.
“으음, 어려운 일이 생겼네.”
“남쪽의 일 말인가요?”
“맞아.”
사마진은 명운을 대리하며 남쪽에서 올라온 전서를 모두 살핀 바 있었다.
“그 일이라면 저 말고 공 우사와 상의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공 우사와는 이미 상의했네.”
“그러면 왜 절 부르신 것이죠?”
“그대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 말일세.”
유청은 쉬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견을 듣고 싶으신 것일까요?”
“공 우사는 남쪽으로 고수들을 보내고 싶어 하더군. 하지만 남쪽에는 파천궁이 있고, 북쪽에는 이누한이 있다네.”
병력을 나눌 수 없다는 말.
사마진도 그와 생각이 같았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교주님께서 영하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영하는 대명궁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었다.
“영하라면 곧 대명궁으로 돌아오시겠군.”
“나흘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나흘이라.”
상황이 크게 힘든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청의 반응은 미덥지 않았다.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일까요?”
유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강시가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하네.”
“혈강시라면…….”
“혈교의 잔재이지.”
사마진은 미간을 좁혔다.
“오월교가 아니라 혈교란 말이군요.”
“오월교가 혈교와 같지 않다고 해도 혈교의 잔당 일부가 그들과 합세한 것은 확실해 보이네.”
혈교는 과거 천마신교와 마도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이들이었다.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사마진이 좁혔던 미간을 펴며 말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교주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청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쪽의 대처가 늦을수록 희생자가 많아질 걸세.”
사마진은 강단 있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서둘러 움직이면 더 많은 희생자를 낼 수도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유청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뜻에 따르는 것이 좋겠군.”
그는 명운이 돌아올 때까지 이번 일에 대한 조치를 미루기로 했다.
* * *
무공을 처음 배우는 이는 사부에게 무엇을 배우게 될까?
검을 잡는 법?
주먹을 쥐는 법?
아니면 맞거나 구르는 법?
모두 아니었다.
사부들은 무공을 처음 배우는 제자들에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무공이란 무엇인가?
왜 무공을 배워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사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몸을 지키기 위한 호신술로, 누군가는 출세하기 위한 도구로, 누군가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방편으로 무공을 가르쳤다.
명운은 어떠한가 하면 그는 무공이란 사람을 죽이는 살인술이라고 배웠다.
그의 사부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여도 무공은 사람은 죽이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무공이 강해진다는 말은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잔혹하면서도 진실을 담은 한마디.
어린 명운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가 경험한 천마신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였고, 사로잡은 적에게는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죽거나 노예가 되거나.
포로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딱 두 가지였다.
열흘 전.
명운은 보위산 전투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는 포로로 잡은 이들을 무림맹과 교환했다.
무림맹과 거래는 이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리석은 판단은 아니었다. 적당히 멈춰야 할 때도 있으니까.’
패자에게 모멸감을 준다면, 패자는 반드시 복수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모멸감을 주지 않아도 복수를 생각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다.’
모멸감을 느낀 쪽이 느끼지 않은 쪽보다 복수를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교주님?”
그를 부르는 목소리.
명운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무슨 일이지?”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식사를 가져다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말을 줄인 이는 초예였다.
“다 함께 먹는 것이 낫다.”
명운은 호위들과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아래로 내려가지.”
“백호대 무인들이 와 있습니다.”
천마신교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섰기에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백호대가 그를 호위하고자 따라붙은 것이었다.
“백호대가?”
“교주님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의무입니다.”
보위산 전투가 끝난 뒤.
명운이 보위산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다.
대명궁에서는 이 소문을 부정하지 않고 이렇게 공식 발표했다.
– 교주님께서는 보위산을 구하기 위해 이틀 밤낮을 달리셨다.
가짜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아군을 구하기 위해 이틀 밤낮을 달렸다는 이야기.
경공이 뛰어난 유행표라는 사내가 하룻밤에 천 리를 달렸다고 하니, 이틀이라면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물론, 무공이 뛰어난 자들은 이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이틀을 달릴 수는 있지만, 이틀을 달린 뒤 무림맹주와 싸우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대명궁의 발표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발표를 부정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해낼 수도 있었으니까.
명천 또한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틀을 달린 뒤 무림맹주를 쓰러뜨렸단 말인가?”
무림맹주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구파일방 장문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무공이 부족한 이를 맹주로 세우진 않을 테니까.’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펄럭.
장막 안으로 들어선 것은 검은 얼굴의 무인이었다.
“무엇을 그리 걱정하십니까?”
안으로 들어선 것은 오룡기라는 자였다. 그는 자명단 출신 무인으로 지난 내전 때 명천에게 붙은 자였다.
그는 비로궁 공격 때 참전하지 않고 서쪽의 마을들을 공략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소문의 진실을 알 수 없어서 말이야.”
“어떤 진실 말씀이십니까?”
“막내가 천 리를 달린 뒤 무림맹주를 격살했다는 소문 말일세.”
오룡기는 그의 말에 두 손을 모았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거짓이라고?”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면 어찌 이누한을 그냥 두겠습니까?”
이누한의 주둔지는 십만대산과 천 리 떨어져 있었다.
“맹주를 죽일 수 있다면 이누한도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명천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긴 무림맹주보다는 이누한이 더 큰 위협일 테니까.”
그라면 무림맹주 남궁민을 격살하는 대신 이누한을 암살했을 것이다.
“그보다 남쪽에서 들려온 소문이 심상치 않습니다.”
“남쪽에서? 어떤 소문인가?”
“오월교라는 자들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명천은 턱을 쓰다듬었다.
“파천궁이 아니라 오월교인가?”
“잘만 하면 틈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룡기는 기회를 보아 비로궁을 다시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틈으로 이누한이 움직일까?”
“교주님,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제게 맡겨 주십시오.”
비로궁의 패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오룡기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