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뜻밖의 손님 (1)
살을 에는 바람.
그 바람 앞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푸른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그는 아니었단 말인가?”
그녀가 말한 그.
그는 바로 파천궁주 천혁이었다.
“어찌 이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여인의 발아래에는 파괴된 마을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이들은 파천궁과 천마신교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저 양을 치고 버섯을 따며 산에서 살아오던 이들이었다.
“진마와 손을 잡을 줄이야.”
마을을 파괴한 것은 천혁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는 바로 그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하늘 아래 그녀는 혼자였다.
“그가 아니라면 답은 하나겠지.”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은 몸을 돌렸다. 그녀의 바로 빙왕이었다.
* * *
화려한 예복과 요란한 악기 소리.
명가의 혼례는 대산팔가의 혼례와 그 규모가 달랐다.
신랑 신부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명운은 두 사람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강 총관이 힘을 많이 썼군.”
이번 혼례를 주관한 이는 자심전주 강하원이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신랑도 생각보다 괜찮아.”
이번 혼례의 주인공은 명운의 다섯 번째 누이 명람과 현무대주 노혁준이었다. 노혁준은 대산노가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여러 일에 휘말렸지만, 아직 사신대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노 대주는 충신이니까.”
노혁준은 조카인 사공자 명준을 따라 변절하지 않고 비로궁 토벌에 합류해 충성을 증명한 바 있었다. 이번 혼례로 그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터였다.
“교주님께 한잔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나온 이는 대산노가의 가주 노혁기였다.
명운은 그가 올린 잔을 받으며 활짝 웃었다.
“노 가주, 경사를 축하하네.”
“교주님의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명가와 혼례를 올린다는 것은 대산노가가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대산노가의 가주 노혁기 입장에서는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일이었다.
‘명준 때문에 노가는 큰 곤경에 빠질 뻔했다.’
노혁기는 명준이 명천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를 지지하지 않고 명운을 찾아가 가문을 보전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노가와 노복은 앞으로 명가를 위해 분골쇄신하고자 합니다.”
“명가가 아니라 신교를 위해 일하게.”
노혁기가 명운이 내린 잔을 받으며 두 손을 위로 올렸다.
“신교 만세, 만만세!”
그가 물러나자 복주원가 가주 원승후가 다가왔다.
“노부가 교주님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원승후는 십장로 중 가장 고령이었다.
명운은 몸을 일으켜 그의 잔을 받았다.
“원 장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세력을 크게 일으킨 제왕들은 본심이 어떻든 대부분 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명운도 그들의 뒤를 따르고자 했다.
“교주님께서 신교를 바로 세우시니, 노부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보위산 전투 이후 명운의 입지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의 나이나 무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명운은 잔을 비운 뒤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원승후는 손을 뻗어 명운의 잔을 받았다.
“교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잔을 비운 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음은 교주님의 혼례주를 마시고 싶습니다.”
명운의 혼례 상대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혼례를 입에 올린 것은 손녀 원영재 때문이었다.
‘영재가 교주님의 부인이 될 수 있다면 원가는 더욱 높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원영재가 명운을 사로잡을 수 있는 미모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명운은 슬쩍 그의 말을 흘렸다.
“노부의 말이 과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과하다니요.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한 말입니다.”
원승후가 찌르듯 물었다.
“다른 여인은 생각하고 계시지 않은 것입니까?”
명운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일언 중천금이 아니겠습니까?”
일함 군주와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아내로 맞이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사마진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의 대답을 듣고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교주님의 총애가 이리도 깊다니, 일함이라는 여인을 꼭 만나 보고 싶구나.’
이 혼례식장에서 일함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는 명운을 빼면 강하원이 유일했다.
“교주님의 말씀 가슴에 새기겠나이다.”
원승후가 물러나자 이번에는 귀주석가의 가주 석준명이 잔을 올렸다. 그는 명운이 수련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경을 자처한 사내였다.
“교주님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잔을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는 잔을 비운 뒤 이번에도 술병을 들었다.
“본좌는 석가의 공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석준명이 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받았다.
“석가는 그저 교주님의 뜻에 따른 것뿐입니다. 어찌 공로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교주가 아니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공을 잊지 않겠다.
석준명에게는 흐뭇한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주님께서 그때를 생각해 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과거를 잊은 자는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석준명을 잔을 비운 뒤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하원은 명운이 마치 나라를 세운 개국 군주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연회는 혼례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개국 공신들을 치하하는 자리 같구나.’
그는 오공자의 수하가 되기를 바랐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그때 서숙이 아니라 오공자 밑으로 들어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오공자 명정은 적풍대주 원우형과 함께 곤륜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오공자를 따랐다면 그도 곤륜산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세상일이란 정말 모르는 것이구나.’
세옹지마.
강하원은 이 고사성어를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읊조렸다.
“교주님께서 일어나십니다!”
목소리를 높인 것은 신교우사 공복진이었다. 강하원은 그의 외침을 듣고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벌써 일어나시는 것인가?’
그가 몸을 일으킨 순간 명운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십장로의 필두 여진훈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교주님, 벌써 떠나시는 것입니까?”
명운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본교주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연회를 즐기는 이들이 편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
명운은 오른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높은 이들이 자리를 피해 줘야 아랫사람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즐기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태화전으로 돌아가는 길.
명운을 호위한 것은 석비연과 흑살대였다.
“나 때문에 대원들이 연회를 즐기지 못한 것 같군.”
석비연이 그의 옆에서 말을 달리며 말했다.
“휴식은 근무를 끝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너무 엄격한 것도 좋지 않네.”
“교주님에 대한 호위는 과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석비연은 명증의 죽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명운이 뭐라고 해도 뜻을 꺾지 않았다.
일행이 대로로 나왔을 때였다.
“속도를 좀 늦추지.”
명운의 한마디에 석비연이 멈칫했다.
“앞에 뭔가 있는 것입니까?”
“쫓아오는 이가 있네.”
앞이 아니라 뒤.
석비연은 크게 놀라 말을 멈추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위는 뒤를 살펴라!”
후위를 맡은 일조가 일제히 말머리를 돌리자 뒤쪽에서 다가오던 자가 말을 멈추었다.
“허허허, 이거 곤란하게 되었군요.”
그의 넉살 좋은 한마디에 바짝 조여졌던 긴장이 일시에 풀렸다.
일행의 후위를 맡았던 흑살대 일조 조장은 하후문이었다. 그는 상대를 확인하고는 두 손을 모았다.
“공 우사께서는 어찌 교주님의 뒤를 쫓으신 것입니까?”
명운의 뒤를 쫓아왔던 것은 신교우사 공복진이었다.
“교주님께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쫓아왔다네.”
하후문은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께서는 선두에 계십니다.”
“알겠네.”
공복진은 말을 달려 명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속하, 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은 그를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는 그저 속도를 늦추자고 말했을 뿐인데 일이 커지고 말았군.”
“걸으면서 들으셔도 됩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군을 다시 몰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남쪽의 일이 어느 정도 확인되었습니다.”
명운은 오월교와 관련된 보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으음, 소식이 모인 것인가?”
“귀주성의 조청오가 구체적인 보고를 올렸습니다.”
“어떤 내용이던가?”
공복진이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월교는 사천과 귀주, 그리고 남만에서 크고 작은 마을 서른두 곳을 파괴했으며, 수백이 넘는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시를 사용했으며, 무림맹과 본교 양쪽 모두 그 흔적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강시라면 혈교의 주술인가?”
“보고에 따르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명운이 미간을 좁힌 채로 중얼거렸다.
“파천궁의 짓은 아니란 말이군.”
“오월교는 파천궁과 달리 십수 년 전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자들입니다.”
“자네는 그들이 왜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나?”
공복진은 미리 생각을 정리한 것인지 막힘없이 물음에 답했다.
“힘의 공백을 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힘의 공백이라.”
“이런저런 일로 무림맹과 본교, 양쪽 모두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무림맹은 보위산 공략 실패와 맹주의 전사로 그 세력이 크게 약해지고 말았다. 비단 오월교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세력 약화를 틈타 기지개를 켜는 흑도 문파가 많았다.
천마신교 또한 내전으로 인해 눈에 띄게 세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명운이 보위산에서 무림맹을 격파하여 급한 불을 껐지만, 파천궁과 대치하고 있는 남쪽 전선은 희소식이 없었다. 이에 따라 천마신교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흑도 문파가 적지 않았다.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 것 같나?”
공복진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혈교의 재림이 아니겠습니까?”
명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혈교의 재림인가?”
“혈교는 오래전부터 중원을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예부터 이런 말이 있었다.
적의 적은 친구다.
“그것이…….”
공복진은 말을 줄였다.
명운은 감춰진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혈교는 우리에게도 적이라는 말이군.”
“혈교와 본교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아수라 혈교를 일으켰던 혈마는 천마를 부정하며, 자신이야말로 일만마도의 지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천마신교는 아수라 혈교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본교에 협력하던 마을 여섯 곳이 파괴되었습니다.”
파천궁주 천혁은 천마신교의 세력을 파괴하라고 말했지만, 오월교 교주 진마는 무차별적으로 마을을 파괴하고 있었다.
“서른두 곳 중 여섯 곳이면 비율로는 많지 않군.”
“하지만 여섯 마을에서 죽은 이만 이백이 넘습니다.”
공복진은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교에 입교한 이가 아니라고 해도 이백이 넘는 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누구도 천마신교에 공납하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해결책은 세워 두었나?”
“교주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명운은 좁혔던 미간을 폈다.
“아버지의 꾀주머니였던 자네가 내 계책을 따르겠는가?”
“교주님의 계책은 신묘하지 않습니까?”
“자네도 아첨을 아는군.”
“교주님.”
명운이 앞을 주시하며 말했다.
“내 생각을 묻는 이유는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겠지.”
“교주님께서 제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자네가 맡겠나?”
공복진이 멈칫하며 반문했다.
“제가 말입니까?”
명운은 그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직접 가서 오월교를 토벌하게. 필요하다면 사대호법을 데려가도 괜찮네.”
공복진과 사대호법이라면 상당한 전력이었다.
“교주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당분간은 큰일이 없을 거야.”
무림맹이 패퇴한 지금.
천마신교에 대규모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파천궁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들도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파천궁은 천마신교의 내전에 개입해 명증을 암살하는 데 성공했으나 명운의 토벌로 우호법을 잃고 말았다.
명운의 계산에 따르면 그들이 대규모 공세를 하기까지는 적어도 반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럼, 남기남과 장헌을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명운이 태화전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한 여인이 대로 한가운데 서서 그들을 막아섰다. 달이 밝지 않았기에 그녀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석비연은 여인을 보고는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감히 교주님의 앞을 막아서는 것인가?”
그녀는 여인이 뭔가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인가?’
대명궁에서는 교주의 행차가 적지 않았기에 그녀처럼 교주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
여인은 천천히 명운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명운은 이미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석비연은 명운과 그녀가 구면인 것을 알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교주님과 사연이 있는 여인이구나.’
그녀는 여인의 외모가 나쁘지 않지만, 나이가 있어 명운과 연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할 수는 없는 말인가?”
여인이 대답했다.
“굳이 이곳에서 말씀드리길 바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서재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여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공복진은 여인의 태도가 공손한 것을 보고는 명운에게 물었다.
“대산팔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입니까?”
명운이 그의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빙왕.”
대답을 들은 공복진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