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죽음을 지배하는 자 (1)
무림맹 부맹주 좌건은 기세등등하게 무림맹 총단으로 돌아왔다. 그를 맞이한 것은 구파일방의 중진이라고 할 수 있는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과 개방의 용두방주였다. 그를 둘러싼 이들은 구파일방을 대표하는 무인들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구파일방에서 한바탕하려는 모양이군.”
“저들이 손을 쓴다면 이기기 힘들 것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
이쪽은 무려 오백에 가까운 숫자.
무당과 개방 고수들이 뭇 무인들을 상대로 손을 쓴다면 대혈겁이 벌어지게 될 터였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좌건을 둘러싼 무인들은 각기 자리를 잡았다.
“자네가 무당을 맡게.”
“제가 말입니까?”
눈썹을 세운 것은 천의문의 문주 마태였다.
‘내가 무슨 수로 무당파 장문인을 상대한단 말인가?’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은 무극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있는 고수 중 고수였다.
“용두방주는 내가 맡겠네.”
용두방주를 상대하겠다고 말한 사내는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오악검파 출신의 좌건을 무림맹주에 올리고자 했다.
천의문 문주 마태는 그의 말을 듣고는 주먹을 꾹 쥐었다.
‘홍 장문의 무공은 나보다 떨어진다. 그런 그가 용두방주를 상대하겠다고 나섰다면…….’
자신은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장문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좌건을 호위하는 무인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차피 한번은 붙어야 하는 싸움이다.’
‘이쪽의 숫자가 열 배는 많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좌건이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모았다.
“현진도장과 용두방주께서는 무슨 일이십니까?”
현진도장이 앞으로 나아가며 대답했다.
“이쪽이야말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좌건이 두 손을 풀며 말했다.
“오늘 맹연이 있었습니다. 제 뒤에 있는 이들이 모두 참석했지요.”
현진도장은 그의 뒤에 선 무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오악검파가 모두 나섰단 말이군.’
무림맹 총단과 가까이 있는 문파 중 이번 맹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하주의 오행문 정도였다.
“맹연이라고 하셨습니까?”
“맹의 형제들은 불초를 믿고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현진도장이 시선을 뒤로 돌리자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이 목소리를 높였다.
“맹주께서 계시지 않으니, 부맹주가 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이어 천의문 문주 마태가 외쳤다.
“지금의 공백은 비정상이오!”
현진도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좌건은 그의 음성에서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미 쏟아진 물이다.’
그가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맹은 형제들의 뜻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외다.”
좌건은 맹이라 칭했지만, 실은 구파일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사이 개방의 용두방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좌건은 그의 말에 눈썹을 위로 세웠다.
“본 맹주만 말입니까?”
현진도장은 좌건이 스스로 맹주를 칭하자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쯧, 스스로 맹주를 인정할 줄이야.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용두방주는 맹주라는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곳에 형제들을 세워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의문 문주 마태는 용두방주에게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이야기하시오!”
그의 외침에 용두방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용두방주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들으시오! 맹의 일은 맹에서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의 외침에는 사자후와 같은 내력이 실려 있었기에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으으윽.”
“머리가 흔들린다.”
좌건이나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 같은 자들은 내력을 끌어 올려 용두방주의 음공에 저항할 수 있었으나 그의 깊은 내력에 위기를 느꼈다.
‘용두방주의 무공이 이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그와 싸우면 얼마 버티지 못하겠구나.’
용두방주가 음공을 펼친 것은 좌건을 둘러싼 이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행렬의 뒤쪽에 선 항산파 장문인 자은사태는 용두방주의 무공에 무릎을 꿇은 자가 삼백이 넘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들 이렇게 허약해서야.’
항산파 제자 중에도 수십 명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항산으로 돌아가면 맹렬히 수련해야 할 것이다.’
항산파는 보위산에서 천마신교에 수십 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무력한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좌건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용두방주께서 위협을 하신다고 해도 형제들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외다!”
용두방주는 내력을 거두고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싸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안으로 들어가서 서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오른손을 올리며 좌건에게 전음을 보냈다.
– 맹주좌를 원한다면 내어 주겠소. 다만 협상할 것이 있소.
좌건은 전음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대신 홍 장문과 마 문주가 함께 갈 것이오.”
그는 최소한 둘은 데려가야겠다고 조건을 내세웠다.
용두방주는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가 좌건의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구파일방과 오악검파의 회담이 무림맹 총단에서 성립되었다.
회담 장소는 무림맹 총단의 연수각.
연수각주 제갈서준은 하필 왜 연수각이냐고 혀를 찼지만,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탁.
모두가 자리를 잡자 좌건이 용두방주에게 물었다.
“구파일방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용두방주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혈교를 상대하고자 합니다.”
“혈교가 나타났단 말이오?”
“듣지 못하셨습니까?”
“듣지 못하였소.”
오악검파와 부맹주 좌건은 온통 맹주좌에 시선이 쏠려 있었기에 남쪽에서 일어난 변고에는 관심이 없었다.
‘흠, 구파일방이 직접 나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용두방주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부맹주께서는 영웅대연이 열릴 때까지 일 년 동안 맹주 자리에 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림맹주 자리를 내어 줄 테니, 그 기한을 일 년으로 하자는 이야기.
좌건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결국, 영웅대연을 열겠다는 말이오?”
용두방주는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맹주는 대대로 영웅대연에서 뽑혔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여 어찌할 수 없으나, 마땅히 영웅대연에서 맹주를 선출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좌건은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는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의 의견을 묻고자 하는 것이었다. 홍익선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구파일방의 제안을 거절하면 분명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앞서 보여 준 용두방주의 무위를 생각할 때, 숫자가 많다고 해도 실제 싸움이 일어난다면 승리하는 것은 구파일방일 가능성이 컸다.
“구파일방에서는 맹주의 임기를 일 년으로 정하는 것 외에는 요구사항이 없소이까?”
홍익선이 묻자 용두방주가 대답했다.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까?”
“맹은 혈교 토벌에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홍익선은 낮게 신음했다.
“으음…….”
자신들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맹주를 반쪽짜리로 만들 생각인가? 하나 혈교와 싸움에 관여한다면 이쪽의 손해도 막심할 것이다.’
그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며 말했다.
“알겠소.”
좌건은 홍익선이 상의도 없이 조건을 수락하자 눈을 크게 떴다.
‘홍 장문!’
그는 시선을 왼쪽의 마 문주에게 돌렸다. 그러나 마태는 홍익선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좌건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큭, 반쪽짜리 맹주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구파일방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으나 오대세가는 본맹주의 말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용두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오대세가의 일에 구파일방이 나서지 않겠다는 말.
좌건은 이것만으로는 만족하기 힘들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소.”
용두방주가 말끝을 올렸다.
“어떤 것입니까?”
“다음 영웅대연에서는 손을 드는 사람의 숫자로 맹주를 뽑고자 하오.”
문파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숫자로 결정하자.
현진도장은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쯧, 또 머릿수로 밀어붙이려 하는구나.’
용두방주는 문제가 없다는 듯 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좌건은 용두방주의 수락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다음에도 이기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다.’
오악검파는 구파일방에 비해 문파의 숫자가 적었으나 혈연과 인맥으로 연결된 문파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특히 장강 이북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흠, 화산파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다음 맹주도 좌 맹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익선은 좌건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화산파가 다음 영웅대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파합시다.”
좌건이 용두방주를 향해 말했다.
“한마디 더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또 무엇입니까?”
“무림맹에서 맹주가 참여한 회의가 파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맹주대접을 해 달라는 말.
용두방주는 눈썹을 세우지 않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포권을 취했다.
“맹주, 이것으로 회의를 파하겠습니다.”
좌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러들 가시구려.”
용두방주와 현진도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려 전각을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현진도장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것으로 된 것입니까?”
용두방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많은 것을 내어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음 영웅대연에서는 맹주좌를 가져올 테니까요.”
현진도장은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방주께서는 다음 영웅대연에서 맹주좌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신 것입니까?”
머릿수로 맹주좌를 결정한다면 오악검파 쪽이 더 유리했다.
“본방의 제자는 십만이 넘습니다.”
십만 개방제자.
그들이 무림맹 총단으로 움직인다면…….
그 어떤 문파도 머릿수에서 앞설 수 없었다.
물론, 개방제자들이 영웅대연에 대거 참석한 일은 유례가 없었다. 하지만 용두방주는 그 유례가 없는 일을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 * *
드르륵.
이번에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신교우사 공복진이었다.
명운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오른손을 세웠다.
“이번에는 공 우사인가?”
공복진은 사마진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 손을 모았다.
“속하, 교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앉게.”
공복진은 사마진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명운은 그가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그대도 내가 오늘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온 것인가?”
공복진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속하는 교주님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온 것은 아닙니다.”
“하면?”
“교주님께서 상대하셔야 하는 진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마?”
공복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진마라는 자는 아마 기연을 통해 혈마의 주술을 얻은 자일 것입니다.”
“그렇겠지.”
“본교에는 혈마와 혈교에 관한 기록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공복진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그 기록을 찾는다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쪽에도 혈교의 주술에 관심이 많은 가문이 있습니다.”
명운이 짧게 혀를 찼다.
“쯧, 금시초문이군.”
지난 생의 기억까지 합한다고 해도 혈교의 주술을 이용하는 가문은 기억에 없었다.
‘혈교의 주술을 연구하는 가문이라.’
공복진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교주님께서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가문인가? 결론만 말하게.”
“전 귀혼단주 양위청이 양가입니다.”
명운은 양가라는 대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를 좌천시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군.”
“양위청을 불러 물으신다면 진마를 상대할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불러 묻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 내가 직접 가도록 하지.”
명운은 사마진이 지도를 준비하는 사이 양위청에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경은.”
그의 부름에 경은이 무릎을 굽혔다.
“교주님, 하명하시지요.”
“외출 준비를 하라.”
“존명.”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명운이 공복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의외인데?”
명운은 그가 자신이 홀로 떠나는 것을 반대하고자 이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복진은 그의 독행을 반대하지 않았다.
“교주님의 독행에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점인가?”
공복진이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독행하시면 파천궁이 예상한 것보다 사천이나 귀주에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마진이 말한 것과 같았다.
“다음은?”
“교주님께서 독행하신다면 행로에 대한 예측이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남쪽으로 말을 달린다면 사천으로 먼저 갈지 귀주로 먼저 갈지 예상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반대로 대군을 이끌고 남하할 경우에는 행군로를 통해 목적지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명운이 독행한다면, 언제 어느 곳으로 도착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는 말이었다.
“교주님께서는 이 장점을 다 생각하시고 결정하신 것 아닙니까?”
명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대들에게 내 생각을 다 들킨 것 같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두 사람은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공복진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한데 교주님, 바로 떠나시는 것입니까?”
“대호법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군.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닙니다. 대호법의 말대로 상대의 허를 찌르고자 하신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시선을 사마진에게 돌렸다.
“대호법, 부탁하네.”
사마진이 공손하게 예를 취하며 말을 받았다.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공복진이 밖으로 나간 뒤, 그녀도 뒤따라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명운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사마진은 짧은 탄성과 함께 그의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명운이 그녀를 가볍게 안은 채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교주가 아닌 연인으로서 한마디.
사마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