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재회 (1)
극복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몸은 아직 그날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악몽조차 꾸지 않아. 모두 잊고 있었던 것인가?’
명운은 이를 악물었다.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일어나지 못하면 나는 녀석을 넘을 수 없다.’
그는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헉… 헉… 헉…….”
몸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았다.
“형님의 전공을 축하드립니다!”
명각은 명운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이후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운이구나. 오랜만이다.”
아직까지 그는 명운에게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다른 형제들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째 형, 그날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조금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명운은 명각과 명준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큭……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란 말인가?’
과거의 악몽을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생사를 겨뤘다면, 십 초식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다행인 것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후우…….”
공자들 사이에 인사가 끝나자 명가의 먼 친척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성만 명 씨일 뿐, 후계에 대한 권리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교주 명증의 부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운은 그녀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어머니를 괴롭혔던 이들이다.’
대산팔가 출신인 그녀들은 배경이 없는 명운의 어머니 양회를 무시하고 핍박했다.
물론 그 때문에 양회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양회는 빼어난 미모를 타고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녀가 단명한 것은 타고난 명이 길지 못했던 것이 가장 컸다.
“곧 태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목소리를 높인 것은 신교좌사 양대충이었다.
명운이 그를 보는 것은 무려 십오 년만이었다.
‘그리고 보니, 양대충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군.’
정확한 것은 아버지 명증이 죽기 전에 무대에서 퇴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연사? 암살? 그것도 아니라면 이른 은퇴였던가?’
어느 쪽이든 명운과는 연관이 없었다.
“가주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명가의 가주는 당연히 천마신교 교주 명증이었다.
그가 모습을 보이자 단상 아래 모인 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명운은 그 모습이 마치 황제가 나타난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황제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군.’
사람들의 외침은 명증이 손을 흔들고 나서야 멈췄다.
“지금부터 태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양대충의 선언과 함께 명가의 가장 큰 행사인 태화제가 시작되었다.
명가의 장남 명천이 아버지 명증의 평안을 비는 시를 낭독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만세! 만세! 만만세!”
명천의 낭독이 끝나자 명증의 부인들이 그를 위한 선물을 바쳤고, 그다음에는 방계와 먼 명가들이 제단 위에 선물을 쌓았다.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는 동안에는 단상 좌우에 늘어선 악사들이 웅장한 곡을 계속해서 연주했다.
“다음은 가주님의 무병장수를 비는 성화가 있겠습니다.”
명가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한가운데에 놓인 성화로 향했다.
그들은 성화 앞에서 명증의 장수와 평안을 비는 부적을 태웠다.
명운 또한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던 부적을 태웠다.
“강녕하시길…….”
명가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부적을 태우자 가주 명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년에 한 번이나마 이렇게 모두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명증의 목소리는 양대충처럼 크지 않았다.
하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목소리에 실린 내공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구나.’
명운은 아버지 명증의 무위를 높이 평가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명각보다는 위, 어쩌면 무극(武極)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그가 상대도 할 수 없었던 명각, 아버지 명증은 그 명각보다 위가 확실했다.
“오늘은 아들들에게 한마디를 하고 싶소이다.”
명증은 시선을 앞 열에 앉은 아들들에게 돌렸다.
“우선은 그들의 과오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하겠소.”
그는 잠시 말을 쉰 뒤, 명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 너는 아우들을 보살피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했으며, 앞서 나서기보다는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크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명천은 아버지의 꾸짖음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소자, 반성하겠습니다.”
명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둘째 명각에게 두었다.
“각, 청해에서 공을 세웠으나 교만하여 그 공을 잃었다. 너의 잘못은 교만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명각 또한 무릎을 꿇었다.
“소자, 교만을 버리겠나이다.”
명증은 그렇게 한 명 한 명, 잘못과 단점을 지적해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명운을 호명했다.
“운, 막내라는 것은 방패가 될 수 없다. 나약함은 덕이 아니며, 무지는 죄악이라 할 수 있다.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더는 명가의 일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명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소자, 쉼 없이 단련하여 힘을 키우겠나이다.”
명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들들에 대한 꾸짖음을 마쳤다.
이후 명증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그리고는 아들들에게 칭찬과 함께 상을 내렸다.
“천은 교의 일을 처리하는 데 꼼꼼함이 으뜸이다.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어 백록장을 내린다.”
백록장은 십만대산과 곤륜산 사이에 있는 장원이었다.
즉, 땅과 노비 그리고 장원 건물을 상으로 내린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신교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명증은 명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이들은 생각했다.
이번에 내릴 상이 가장 클 것이라고.
‘이렇다 할 공이 없는 명천이 장원을 받았다면, 전공을 세운 명각은 그 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권력 일부를 받게 될 수도.’
‘소문이 진짜라면…… 이 자리에서 소교주에 봉해질 수도 있다.’
이윽고 명증이 입을 열었다.
“각의 용맹함은 명가에서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전공을 세웠으니, 검으로 그 공을 치하하고 싶다.”
그가 명각에게 내린 것은 보검 한 자루였다.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으며, 장남 명천을 비롯한 형제들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개선식을 열지 않은 것이 화가 되었군.’
‘그런 전공을 세우고도 겨우 검 한 자루인가? 둘째 형은 아버지의 눈에 난 것이다.’
‘둘째 형이 미끄러졌다면, 다음은 큰 형이겠지.’
셋째와 넷째, 그리고 다섯째도 상을 받았으나 특별할 것이 없었다.
여섯째 명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검을 막아 주는 연갑(撚鉀)을 선물로 받았다.
“이번 태화제는 별로군.”
누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때였다.
명증이 막내 명운을 호명했다.
“운, 네게 부족한 것은 배움이다. 책에서 배움을 찾도록 하라.”
사람들은 명운이 책상물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책이라. 아들이 기뻐할 만한 선물을 내려 주셨군.”
“막내를 예뻐하는 것은 좋은데, 책이 무슨 도움이 될까?”
“어차피 막내 아닌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는 뜻이겠지.”
명운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시녀로부터 아버지가 내린 책을 받았다.
한데 책 제목이 그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십비십무록(十飛十武錄)?”
아버지 명증이 그에게 내린 책은 사서나 경전이 아닌 무공비급이었다.
* * *
태화제가 끝나자 명가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명운 또한 홍문을 향했다.
그가 광장을 나가 회랑으로 접어들 무렵,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공자님.”
명운이 고개를 돌리니, 남색 옷을 입은 시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날 불렀느냐?”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장의 서신을 내밀었다.
명운은 서신을 받아 펼쳐 보았다.
– 대명전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대명전은 태화전과 이웃한 전각이었다.
‘흠, 누구일까?’
그는 서신을 가져온 시녀에게 상대의 정체를 묻지 않았다.
‘어차피 물어도 알려 주지 않을 테니까.’
명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널 따라가면 되는 것이냐?”
시녀는 말없이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명운 또한 말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오늘 태화제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태화제와 분명 다르다.’
지난 생에서 태화제는 대부분 아무 일 없이 끝이 났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아버지 명증은 그에게 무공서를 내렸고, 대명전에서는 누군가 그를 만나고자 했다.
‘혹시 석비연일까?’
시녀장 석비연은 명운과 손을 잡은 귀주석가 사람이었다.
‘그녀가 날 만나고자 했다면, 뭔가 도움을 주고자 할 것이다.’
귀주석가는 명운에게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나 아직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명운은 그들이 석비연을 통해 도움을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쪽입니다.”
시녀는 왼쪽의 문을 가리킨 뒤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안내는 여기까지라는 뜻이군.’
명운은 직접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비밀 통로는 아닌 것 같고, 어디로 통하는 통로일까?’
통로 위쪽에는 밖과 연결된 창이 있어 횃불이 없어도 어둡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두 개의 문이 나왔다.
‘한쪽에만 자물쇠가 있다는 것은…….’
자물쇠가 없는 문으로 들어오라는 뜻.
‘석비연도 취향이 특이하군.’
명운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익.
경첩 소리와 함께 열린 문은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풍경을 보여 주었다.
‘나무? 눈? 그리고 얼어붙은 연못?’
통로의 끝은 눈이 아름답게 쌓인 정원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운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석비연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는 중년인을 알고 있었다.
한데 이름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함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중년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으나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기대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군요.”
명운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신교우사께서 절 부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를 부른 것은 천마신교의 우사 공복진이었다.
명예직이라 할 수 있는 십장로를 제외한 공복진의 신교 서열은 네 번째였다.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명운은 뜻하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손을 잡게 된다면 귀주석가 이상의 아군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왜 자신에게 접근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서와 경전이라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그 두 가지 이야기는 아닙니다.”
명운은 공복진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하면 어떠한 이야기입니까?”
공복진이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코끼리의 무게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아십니까?”
명운은 삼국지의 고사를 알고 있었다.
“배에 그은 선을 이용해 코끼리의 무게를 알아냈다는 조충의 지혜입니까?”
공복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시는군요.”
명운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책을 읽었으니, 모를 수가 없지요.”
그의 독서량은 형제 중 으뜸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공자께서 하청규와 대결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복진쯤 되면 곳곳에 소식을 전해주는 비선이 있었다.
그가 적룡대 이야기를 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림의 주인을 맞추고 사람을 하나 받았을 뿐입니다.”
“하청규는 그리 쉽게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명운이 말끝을 살짝 올렸다.
“우사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공복진이 목소리를 바꾸었다.
“공자께서는 하청규와 승부를 이기기 위해 어설프게 그림을 아는 척 연기를 하셨습니다. 하청규는 그 연기에 넘어갔고, 결국 공자께 지고 말았죠.”
그는 명운과 하청규가 대결했던 그 장면을 눈으로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청규에게 들으셨습니까?”
공복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게 직접 들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적룡대에 심어 둔 비선을 통해 상황을 확인했다는 말.
명운이 물었다.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공복진이 오른손을 들며 답했다.
“조충의 재능은 그의 박명을 불러왔습니다. 본인은 공자의 총명함과 지혜가 불길한 결과를 가져올까 걱정입니다.”
그의 대답은 명운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최근 있었던 일들이 제 신변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공복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께서는 세간의 소문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명운은 그가 아버지의 지시로 자신을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괜히 비급을 주신 것이 아니군요.”
공복진이 말했다.
“교주님께서는 공자의 재능을 아끼고 계십니다. 하나 공자의 형제들은 다르겠죠.”
명운은 이 상황에서 어떠한 답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삼 년 동안 대명궁을 떠나 무공 수련에 전념하겠습니다.”
형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울 때까지 모습을 감추겠다는 말이었다.
공복진은 얼굴을 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대명궁에서 지원할 것입니다.”
명운은 두 손을 마주했다.
“배려는 감사하나 대명궁에서 지원이 있다면 그것 또한 형들의 시선을 끌 것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어차피 일 년의 절반은 낙산원에서 무공을 수련하고자 했다. 이참에 무공 수련에 전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