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무모함과 용기 (2)
죽음이란 운명 아래 놓인 사람들.
누군가는 포기했고, 누군가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터트렸다.
“사,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아아아아악!”
진마의 둘째 제자 서막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가축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쓸모가 있는 자는 우리에 가둔 채 키우고, 쓸모가 없는 자는 도축하여 강시로 만들거나 마기를 채우는 재료로 쓴다.
그에게 인간은 딱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검은 옷을 입은 주교가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귀주에서 삼백 명을 더 잡아들였습니다.”
“그래?”
주교의 보고에 서막은 턱을 살짝 끄덕였을 뿐이었다.
“다음 물량은 운남에서 올 것 같습니다.”
“운남은 누가 맡고 있었지?”
“준 주교입니다.”
“준악이 맡았다는 말이군.”
오월교의 주교들은 성 앞에 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원칙이었다. 준악도 그 원칙에 따라 자신의 성에 악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악이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서막은 좋지 않은 소식임을 깨달았다.
“탓하지 않을 테니 말하라.”
주교는 조심스럽게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대주교가 사천에서 단양성을 포위한 채 공성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서막은 대번 눈살을 찌푸렸다.
“쯧, 마막이 사고를 쳤구나.”
“죄송합니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사과한 것은 오월교의 주요 인사들이 천마신교나 파천궁 이상으로 난폭했기 때문이었다.
“쯧쯧…….”
서막은 대주교 마막의 사형으로 오월교에서 직함은 부교주였다. 그는 혈공에 빠져 있는 사부와 강시에 빠져 있는 대사형 무막을 대신해 오월교의 운영을 맡고 있었다.
“강시의 재료를 공급하라 했더니, 성을 친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주교는 조심스럽게 마막을 위한 변명을 내뱉었다.
“성을 함락하면 만 단위에 재료들을 공급할 수 있으니…….”
“바보 같은 소리. 현성을 무너뜨리면 황실과 대장군부가 가만히 있겠느냐?”
“하오나 부교주님, 언젠가는 천하를 차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교의 반문에 서막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천하를 차지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
그는 주교의 시선이 사제인 마막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기는.’
주교는 그가 긴 한숨을 내쉬자 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서막이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한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다! 힘을 키우고 또 키워도 모자랄 때 적을 이 땅으로 불러들이고자 하다니!”
“지금 당장 철군하라 전서를 보내겠습니다.”
서막은 오른손을 들었다.
“아직 대장군부와 충돌하지 않았다면 남쪽으로 철군하라 하고, 이미 대장군부의 병사들이 나타났다면 단양성에 반을 남기고 반만 물리도록 하라 해라.”
“왜 반만 남기고 물러나라는 말씀이십니까?”
“반 정도는 재물로 남겨야 녀석들이 추격하지 않을 것이 아니냐?”
서막의 차가운 시선은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서를 보내겠습니다.”
서막은 물러나려는 주교를 불러세웠다.
“하나 더.”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시는 귀중한 전력이 반드시 보존하여 물러나라 전하라.”
“존명!”
서막은 주교가 물러난 뒤 낮게 중얼거렸다.
“교에서 제대로 일하는 것은 나뿐이로구나.”
혈공에 빠져 있는 사부나 강시에 미쳐 있는 대사형은 오월교를 이끌 수가 없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아련은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이 마음에 걸렸다.
‘야습에 밝은 달은 큰 장애물이다.’
이 정도 밝기라면 백 보 밖에서도 움직이는 사람을 쉬이 구별할 수 있었다.
‘밤눈이 밝은 자라면 이백 보, 혹은 삼백 보 밖에서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밤눈이 밝은 자가 아니라 감각이 예민한 무인이라면?
그렇다면 멀리서도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쉬이 볼 수 있을 정도의 날씨였다.
‘게다가 성문을 연 것도 마음에 걸린다.’
물론, 이백 명이 넘는 인원이 움직이려면 성문을 여는 것이 빨랐다. 하지만 성문을 여는 순간 경첩 소리가 나고 만다.
귀가 예민한 자가 아니라도 성문의 경첩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공 사형은 이것을 모두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녀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지.”
짧은 외침.
야습에서는 수신호로 말을 대신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급조된 부대를 수신호로 통솔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공헌은 수신호 대신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뒤에 선 조후가 묻자 공헌이 대답했다.
“어느 쪽이 적의 진짜 본진인지 모르겠구나.”
선두에 선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게 늘어선 오월교의 군진이었다. 오월교의 군진은 수천 명이 머물고 있었기에 길게 늘어설 수밖에 없었다.
“저 모든 것이 본진이 아닙니까?”
“적장이 머무는 곳이 바로 본진이라 할 것이다.”
“흠, 적의 우두머리가 머무는 곳은 역시 가운데가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후방이라면?”
적장이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자라면, 최후방에 자신의 장막을 설치할 수도 있었다. 조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정도로 겁쟁이는 아닐 것입니다.”
“흠, 조 사제는 무조건 중앙이라는 말인가?”
“무조건이라기보다는 중앙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헌은 적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소수로 다수를 치는 것은 여러 번 할 수 없다. 이번 한 번에 큰 전과를 올리지 못한다면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적장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후가 덧붙이듯 말했다.
“저는 적장의 위치보다는 사방이 열린 들판이 마음에 걸립니다.”
오월교가 진을 친 벌판은 농사를 짓고 있지 않은 휴경지였다. 다시 말해 이쪽은 몸을 숨길 수 있는 숲이나 바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이백 보 정도의 거리를 엄폐물 없이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공헌은 조후와 달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백 보라면 경공으로 돌파하면 된다.”
“경공으로 말입니까? 하지만 병사들은 경공을 펼치지 못하지 않습니까?”
조후는 자신들과 동행한 이백 명의 병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헌의 생각은 달랐다.
“공격하는 것은 우리 아미파만으로도 충분하다.”
조후의 눈썹이 솟아오르듯 올라갔다.
“예?”
그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공 사형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미파 제자들만으로 적을 공격한다.
성공하면 아미파가 모든 공을 독점하겠지만, 적은 수천에 달했다. 게다가 오월교는 무공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서문을 공격했던 무인들이 진중에 있다면, 아미파 제자들의 성공 가능성은 티끌에 불과했다.
‘그 티끌에 사형제들의 목숨을 걸 수는 없다.’
조후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공헌이 물었다.
“왜 놀라는가?”
“그게……. 저희만으로 공격한다면 병사들은 왜 데려온 것입니까?”
아미파와 동행한 병력은 무려 이백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이 이백 명의 병사와 동행했을 리가 없었다.
‘혹시 적의 퇴로를 막기 위해서? 아니면 뒤쪽으로 보내 양동을 할 작정인가?’
공헌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의 전공을 널리 알릴 목격자다.”
목격자.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조후는 급히 손을 뻗어 공헌의 소매를 잡았다.
“사형, 돌아갑시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무 무모합니다.”
조후는 지금이라면 공헌의 무모한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무모하다니?”
“이대로 돌격하면 다 죽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공헌은 완강했다.
“사형.”
“장하가 혼자 해낸 일을 우리 아미파 제자 스무 명이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조후는 깨달았다.
‘사형이 이번 일을 꾸민 것은 장 대협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구나!’
대협이라 불리고 있는 장하에 대한 열등감.
그것이 모두를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
“안 됩니다.”
“조 사제!”
공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순간이었다.
쾅!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북소리가 일었다.
둥. 둥. 둥.
뒤에선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오월교다!”
“놈들이 우리를 찾은 거야!”
공헌은 검을 빼 들고는 미간을 좁혔다.
“당황하지 마라! 우리를 향해 북을 울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동문을 공격하기 위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북소리는 북문이 아닌 그들에게 가까웠다.
아련은 즉시 앞으로 달려 나와 공헌에게 말했다.
“사형, 즉시 퇴각해야 합니다!”
공헌 입장에서는 싸워 보지도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언쟁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북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퇴각은 없다!”
공헌이 목소리를 높이자마자 화살이 날아왔다.
슈슈슈슉!
화살의 정확도는 떨어졌으나 병사들은 화살이 날아온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도, 도망치자!”
“성으로 돌아가자!”
“도망쳐!”
병사들은 공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성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공헌은 미간을 잔뜩 좁혔다.
“바보 같은 녀석들이!”
조후는 진짜 바보는 당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주먹을 꾹 쥔 순간 아련이 뒤에 선 사형제들에게 외쳤다.
“성으로 돌아갈 것이니, 아미 제자들은 후위를 맡으십시오!”
공헌은 아련이 자신의 위치를 대신하고자 하자 대노했다.
“무슨 말이냐! 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아미파 제자들은 두 사람의 언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윽고 조후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며 말했다.
“진형이 깨어졌으니, 지금은 수비할 때입니다.”
“조 사제!”
공헌이 재차 외쳤으나 아미파 제자들은 수비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검진을 펼쳐 아군의 퇴각을 막는다!”
스무 명의 제자들이 큰 검진을 만들어 수비를 굳히고자 했다. 그들을 상대하는 오월교 지휘자는 자양현의 향주였다.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놈들이 간도 크구나!”
공헌은 소리가 난 쪽으로 경공을 전개했다.
‘놈을 베어서 울분을 씻을 것이다.’
쉬익!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자 북을 치고 있는 적병이 보였다.
‘저곳이구나!’
백여 명이 모여 있는 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는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이제 적진과 거리는 겨우 오십 보.
공헌은 지휘자로 보이는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돌진은 십여 보를 앞에 두고 막혔다.
타앙!
불꽃이 튀어 오르며 검과 도가 격돌했다.
“비켜라!”
공헌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도를 쥔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 대 일.
그를 둘러싼 오월교의 고수는 모두 넷이었다. 그들은 향주 바로 아래 직책을 맡은 자들로 무공이 약하지 않았다.
“감히 혼자 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구나.”
공헌은 검을 세웠다.
“아미의 검을 보여 주마!”
네 고수는 그의 외침에 혀를 찼다.
“쯧,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더니.”
“혼자 우리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공헌의 인성은 바닥이었으나 무공까지 바닥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미파 삼대 제자 중 상위권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사 대 일의 싸움이 벌어졌지만, 그는 쉬이 밀리지 않았다. 그것을 본 자향현 향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하나도 제압하지 못하다니, 대주교께서 아신다면 그대들을 크게 꾸짖을 것이다.”
도를 쥔 넷은 향주의 한마디에 날이 바짝 섰다. 대주교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가 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저 녀석이 대주교님께 우리의 무능을 고해바칠 것이다.’
‘죽어서 강시가 될 수는 없지!’
‘살아남는 길은 이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밖에는 없다.’
그들이 결사적으로 나오자 공헌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이까짓!”
공헌이 억지로 검을 뻗은 순간 그의 왼팔에 도가 박혔다.
팍!
도는 근육까지 깊게 박혔고, 그는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악!”
그는 무리하게 뻗었던 검을 회수해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았다.
탕!
하지만 왼쪽에서 날아오는 도와 뒤쪽에서 날아오는 도는 막을 수가 없었다.
파악! 촤악!
붉은 피와 함께 답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헉!”
아미파 제자들은 멀리에서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사형!”
“공 사형!”
몇몇 제자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서고자 했으나 아련이 그들을 막아섰다.
“자리를 지키세요! 지금 움직이면 다 죽습니다!”
그녀의 말에 제자들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공 사형이…….”
“공 사형은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은 적의 공격을 막을 때입니다!”
아미파 제자들과 그녀는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도망친 병사들의 뒤를 막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친 병사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뒤로 크게 우회한 오월교도들이 퇴로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려고 그러시나!”
“그러게, 말이야. 누구는 싸우고 누구는 도망치는 건가?”
“비겁한 놈들은 벌을 받아야겠지?”
도망치던 병사들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기랄!”
“놈들을 죽이고 길을 열자!”
도를 든 오월교들과 창을 든 병사들이 뒤엉켰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막아!”
“어림도 없지!”
병사들은 전열이 이미 무너졌기에 오월교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숫자도 오월교도 쪽이 배 이상 많았다.
곳곳에서 병사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아아악!”
“사, 살려 줘!”
“으아악!”
승패는 이미 결정 난 듯 보였다.
아미파 제자들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검을 꾹 쥐었다.
“조, 조 사형 뒤가…….”
병사들이 전멸한다면 다음은 아미파였다.
“이런!”
뒤에도 적, 앞에도 적이라면 돌파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후는 그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너무 위험하다!’
그는 현실을 보는 눈은 있었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사내였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외쳤다.
“이쪽으로 퇴각하시오!”
내공이 담긴 목소리.
아미파 제자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장 대협!”
명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아미파만이 아니었다. 병사들도 명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장 대협께서 오셨다!”
“저쪽이다!”
오월교도들은 도망치는 병사들을 추격하고자 했지만, 땅에서 일어난 기운에 심장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대체 뭐지?’
백여 명에 이르는 오월교도가 멈칫하는 사이 병사들이 거리를 벌렸다.
“장 대협을 따르라!”
명운은 오월교도들을 향해서 뿌렸던 천음진을 거두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 발만 더 늦었더라면 전멸했을 것이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오월교도들은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