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무모함과 용기 (5)
절정의 경지.
그곳에 오르지 못한 무인들은 그 경지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막상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자신들이 오른 산이 아주 작은 언덕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고수 검선 장천진인은 절정의 경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 절정이란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식과 형을 버리고 기의 흐름을 잡는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는 더 이상 상대의 속임수에 현혹되지 않고, 허초에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자신보다 아래나 대등한 자와 겨룰 때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와 싸울 때는 어떻게 되는가?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그전보다 또렷하게 자신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기를 읽고, 자신의 기를 가늠하면, 승부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수가 하수를 무조건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기의 흐름 속에도 기회가 있었고, 상대의 실수에 의도치 않은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하나, 열에 아홉은 싸우기 전에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었다.
무자현도 마찬가지였다.
장도를 뻗은 순간 상대의 기척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기의 흐름을 읽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것인가?’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기의 흐름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그가 상대의 기를 놓쳤다는 것은 움직임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를 생각할 때였다.
무자현은 살기를 잡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흩어지는 기운 속에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이번에는 완전히 사라졌던 살기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사방에서 덮친다고?’
적의 위치를 잡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무자현은 장도를 종횡무진으로 휘둘렀다.
휘이이잉! 휘이이잉!
그의 장도에서 일어난 바람은 마치 맹수가 울부짖는 듯했다.
‘와라!’
무자현은 도막을 펼쳐 전신을 촘촘하게 감쌌지만, 분명 틈은 있었다. 그는 상대가 그 틈을 파고들 것으로 확신했다.
‘살기가 없다고 해도 기의 흐름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각을 끌어 올린 순간 거대한 기운이 정면에서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정면이라고?’
그의 두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기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것은 대체…….’
그에게 무공을 전수한 사부도 이러한 기예는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놈은 단리원의 무인이 아니었나?’
무자현이 알고 있는 한 단리원에 이러한 무공을 쓰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리원의 원주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장도를 휘둘렀다.
‘신교를 얕보지 마라!’
콰아앙!
마치 성벽을 때린 듯한 충격과 함께 귀를 찢을 듯한 폭음이 터졌다.
“크윽.”
짧은 신음.
이윽고 성루의 기와들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후두두두두둑.
무자현은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단 일격을 막았을 뿐인데, 기혈이 끓어올라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절정을 넘어선 힘이다.’
그의 무공은 사왕에 미치지 못했지만, 천마신교의 사신대주와 견줄 만했다. 그러나 상대는 그가 바라볼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척.
어느새 다가왔는지 상대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묻겠다. 그대는 강자존을 믿는가?”
무자현은 장도로 몸을 지탱하며 반문했다.
“네가 어찌 강자존을 알고 있는가?”
“내가 먼저 물었다.”
무자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그래 네놈의 무공은 분명 나를 능가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그는 낮게 말한 뒤, 장도를 꾹 쥐었다. 그러고는 주변의 돌격대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돌격대! 놈을 쳐라!”
무자현은 명운에게 굴복하는 것보다는 동귀어진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던 돌격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대장을 구하라!”
“놈을 죽여라!”
“공격!”
명운은 더할 수 없이 탁한 기운이 서문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는 지맥의 힘을 끌어 쓰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 탁한 기운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좋지 않은 시도일 수도 있었다.
자칫 이 탁한 기운에 마음이 먹혀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 할 수 있어. 이 기운이야말로 마의 극.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어림없다!’
그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뿌리쳤다. 그러고는 탁한 기운을 모은 뒤 양강진기로 그것을 태웠다.
화르륵.
이윽고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것은 명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탁기, 아니 마기가 폭발한다.’
마기의 폭발은 무자현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돌격대원들은 물론, 성루의 대들보와 성벽까지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명운 또한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해야만 했다.
‘이 힘은…….’
서문 성루에서 뻗어 나간 충격파는 사방 오백 보를 덮쳤다. 성벽 근처에 있던 집들은 기둥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으며, 성문 근처에 있던 오월교도들은 마치 나뭇잎처럼 휘날렸다.
“사, 살려 줘!”
“아악!”
아련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던 이들이 폭발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는 천근추의 수법으로 충격파에 저항했다.
“크윽…….”
그녀의 입에서도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몸을 낮추며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서문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이번 폭발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음을 동반했다.
“큭.”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두 번의 폭발이 서문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오월교도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것 정도를 헤아릴 뿐이었다.
“파, 팔이.”
“살려 줘.”
“으으윽.”
성문 앞에 흩어져 있는 오월교도들은 쓰러진 채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설마?”
아련은 생각했다.
‘장 대협이 적과 자폭한 것 같구나.’
그녀는 장하, 아니 명운을 대협 중 대협이라고 평가했다.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기파가 가라앉자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부디, 평안하시길.”
아련은 명운의 희생으로 서문의 적을 막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 * *
서문에서 일어난 폭발의 충격은 단양성의 다른 문에서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청에 머물고 있던 현령은 기둥을 잡을 정도로 몸이 흔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서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서쪽이라면 서문이 아니냐?”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현청에서 서문을 향해 사람이 달려갈 무렵, 북문을 수비하고 있던 조후도 아미파 제자 한 명을 불렀다.
“우전!”
“예, 사형.”
“서문에 다녀와라!”
서문을 다녀와야 하는 이유는 딱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 정도 충격이라면 필시 변고가 일어났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조후는 서문을 향해 달려가는 우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단양성은 끝내 떨어지는 것인가?’
단양성이 함락된다면 최대한 많은 이를 성 밖으로 탈출시켜야 했다. 그는 시선을 성 밖으로 돌렸다. 성벽을 공격하는 적은 아직 많았다.
하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의 수는 아니었다.
‘여차하면 문을 열고 나가 적을 쳐야 한다.’
그는 검을 꾹 쥐었다.
같은 시각.
가장 많은 병력이 맞붙은 동문에서도 폭음과 충격을 감지했다.
현위 서윤은 서문을 돕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문이 걱정되는구나.”
별장 한 명이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그대가 말인가?”
“서문이 함락되었다면 퇴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문의 상황을 보고, 서문이 함락되었다면 북문으로 가서 퇴로를 열라고 전하라.”
“존명!”
별장은 급히 말을 타고 서문을 향해 떠났다.
동문 밖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오월교 대주교 마막도 폭음과 진동을 감지했다.
“서쪽에서 일이 났구나.”
서문 공략은 파천궁의 돌격대가 맡고 있었다.
“뭔가 폭발한 듯합니다.”
“대장군부의 대포도 이러한 위력은 없을 것이다.”
“제가 가서 알아볼까요?”
“네가?”
“서문이 함락되었다면, 주공을 그쪽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흠.”
마막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을 때였다.
서쪽에서 폭죽이 잇달아 올라왔다.
슉! 슉! 펑! 펑!
오월교도들은 폭죽의 색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적색은 실패입니다.”
폭죽은 서문 공격이 실패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마막은 혀를 찼다.
“쯧, 파천궁 놈들이 일을 망친 모양이구나.”
“대주교님, 어떻게 할까요?”
“네가 가서 확인해라!”
“존명!”
서문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 * *
“으으윽.”
신음과 일어난 이는 돌격대 일조 부조장 소본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사방을 살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명운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얼굴에 가득한 먼지를 털어 내며 물었다.
“다들 괜찮나?”
잠시 뒤, 이십 보 떨어진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대답한 이는 일조 대원이었다.
“나머지는?”
“다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습니다.”
소본은 머리를 흔든 뒤, 주변을 살폈다. 그의 곁에도 정신을 잃은 대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의 대원을 찾아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맥을 짚었다.
‘맥이 없다.’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급히 코로 손으로 움직였다.
‘숨도 쉬지 않고 있구나.’
쓰러진 대원은 폭발에 휘말려 전사한 듯 보였다. 그는 전사한 돌격대원을 뒤로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동료들을 구하라!”
“존명.”
살아남은 돌격대원들이 비틀거리면서 동료들을 찾아 생사를 확인했다.
소본은 시선을 붕괴한 서문으로 돌렸다.
“문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대장 무자현을 제압한 명운과 그를 향해 달려드는 동료들이었다.
‘대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자현은 폭발의 한가운데 있었다.
“설마 전사한 것은 아니겠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 먼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오월교도와 병사들의 시신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대비할 틈도 없이 휘말렸겠지.”
소본이 낮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몇몇 오월교도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으윽.”
성문의 잔해에 깔려 다친 이들이 신음과 함께 비명을 내질렀다.
“으윽, 팔이……. 팔이 없어졌어.”
“누가 물을 좀.”
“사, 살려 줘.”
오월교도들은 돌격대에 비해 무공이 부족했기에 더 큰 피해를 보았다. 죽고 다친 이가 열에 아홉이었다.
“그래도 모두 죽은 것은 아니군.”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고 해도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돌아갈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동료들을 챙겨라!”
“예, 알겠습니다.”
소본은 수하들에게 명을 내린 뒤 대장 무자현을 찾았다.
‘대장은 분명 폭발의 중심에 있었다.’
무자현의 무공이라면…….
이 폭발에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은 곧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무자현은 성문에서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소본은 그를 보자마자 생사를 알 수 있었다.
“대장!”
가슴에 뚫린 구멍은 주먹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컸다.
‘폭발에 휘말린 뒤, 파편에 맞은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폭발과 동시에 뭔가에 가슴을 관통당했을 수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무자현은 죽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럴 수가!”
소본이 분노에 차서 목소리를 높일 때쯤.
명운은 서문에서 백여 걸음 떨어진 곳을 걷고 있었다.
‘두 번째 폭발은 예상하지 못했다.’
첫 번째 폭발을 일으킨 것은 바로 그였다. 주변에 흩어진 마기를 태우기 위해 양강진기를 일으킨 순간, 마기가 진동하며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폭발은 달랐다. 첫 번째 폭발에 이어진 두 번째 폭발은, 그가 성문 앞에 묻어 둔 화약이 터지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게 이렇게 터질 줄이야.’
두 번째 폭발로 말미암아 서문이 붕괴하였고, 그 근처에 있던 오월교도들도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놈들도 이 이상은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명운은 고개를 돌려 붕괴한 서문을 살폈다. 살아남은 오월교도와 돌격대원들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칠 할은 쓰러진 것인가?’
함께 싸우던 이들을 구하진 못했지만, 적의 공격만큼은 막아 낸 듯 보였다.
“장 대협이십니까?”
명운은 맑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인이 두 손을 모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아미파의 아련입니다. 지난번에 장 대협께서 제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미파에서 구원을 오셨군요.”
“북문의 상황이 여의찮아 저 혼자 오게 되었습니다.”
명운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제 능력이 부족해. 상황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지만, 옷까지 보호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무복은 곳곳이 찢어져 넝마나 다름이 없었다.
아련이 그와 붕괴한 서문을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장 대협께서 적과 자폭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려고 했는데, 운이 좋아 목숨을 구했습니다.”
명운은 자폭할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에 맞게 대처했다.
“하늘이 장 대협의 협행에 감명받아 대협을 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하늘에 감사 인사를 올려야겠군요.”
명운이 두 손을 모은 순간 아련이 말했다.
“저는 대협과 같은 분을 이제까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든 것을 걸고 협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진심으로 행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련의 눈빛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