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대협 장하 (3)
빙왕을 찾아온 것은 이번에도 사마진이었다.
“대호법께서 오셨군요.”
“객의 걱정을 덜어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빙왕은 태연해 보였으나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보다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사마진은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진 이유가 그녀의 어정쩡한 위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완벽하게 투항한 것이 아니니까.’
빙왕은 현재 귀빈 대우를 받고 있었으나 그녀가 원한 것은 이러한 대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명운과 함께 오월교에 맞서고자 했다.
“귀빈께서 가장 걱정하신 것은 진마의 오월교가 일으키고 있는 혈겁이었을 것입니다.”
“오월교에 무슨 변화가 있는 것입니까?”
“오월교가 단양에서 크게 패했다는 소식입니다.”
빙왕이 멈칫하며 물었다.
“설마 무림맹에 패한 것입니까?”
그녀는 오월교가 파천궁과 손을 잡았으니, 사천을 휩쓰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천의 무림맹 세력에 패할 진마가 아니다.’
사마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무림맹이 아닌 대장군부가 나섰다고 합니다.”
“대장군부 말입니까?”
대장군부의 등장은 빙왕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장군부가 나섰다면 황실에서 손을 썼단 말인가? 그 말은 오월교의 혈겁이 황실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컸단 이야기가 아닌가?’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천총병 사옥찬이 단양에서 크게 오월교를 깨뜨렸다고 합니다.”
“사천총병이라면?”
“대장군부가 사천에 있는 군대만으로 오월교를 토벌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빙왕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사천에 주둔하고 있는 대장군부의 병력이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진마가 이끄는 오월교가 생각 이상으로 무능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중요한 것은 진마가 패했다는 사실이겠지.’
진마와 오월교가 패했다면 무고한 백성들은 혈겁에서 벗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면 교주님께서는…….”
“교주님께서는 음지에서 그들을 도우셨다고 합니다.”
빙왕은 천마신교와 대장군부가 손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긴, 신교와 황실이 손을 잡았다면 진마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혈겁에 대한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군요.”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진마가 죽지 않았으니까요?”
“오월교의 본거지가 남아 있습니다.”
사마진이 살짝 말머리를 비틀었다.
“귀빈께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빙왕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하겠습니다.”
사마진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질문을 던졌다.
“오월교의 본거지가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빙왕은 그녀의 물음에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알았다면 진즉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귀빈께서도 모르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귀주에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사마진은 귀주라는 대답에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주로 특정할 수 있다면, 곧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월교의 본거지가 귀주에 있다.
이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었다.
‘교주님에 이어서 그녀까지 귀주를 말하고 있으니, 오월교의 본산이 귀주에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사마진은 이제 총력을 다해 오월교의 본거지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 * *
명운은 벌판에 서서 부적을 던지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가 부적을 던진 곳마다 작은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르륵.
잠시 일었던 불길이 꺼졌다.
그것을 본 현위 서윤이 물었다.
“장 대협, 지금 하고 계신 일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이 저세상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서윤은 그의 대답에 크게 놀랐다.
“이 불길이 죽은 이들의 영혼이란 말씀이십니까?”
“죽은 이들의 한을 태우는 것입니다.”
서윤은 명운의 대답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장 대협은 무공만 뛰어난 것이 아니구나.’
그는 명운이 무당이나 화산 도사들 못지않은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장 대협이십니다.”
명운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고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의 슬픈 목소리가 들려와 그들의 한을 태워 주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장 대협과 같은 분은 처음 봅니다.”
명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당이나 화산 도사들도 저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그처럼 마기를 느끼고 그것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은 검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이들뿐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죽은 병사들의 영혼도 삼도천을 건널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넌다는 것은 저세상으로 영혼이 떠난다는 말이었다.
“물론입니다.”
“대협, 서문에서도 부탁드립니다.”
서문은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나온 곳이었다.
“서문은 이미 다녀왔습니다.”
“아!”
서윤이 탄성을 터트렸을 때였다.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단리원의 장 대협이시오?”
선두에 선 도사는 푸른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명운은 부적을 추스르며 몸을 돌렸다.
“제가 장하입니다만?”
명운은 푸른색 도복이 상징하는 뜻을 알고 있었다.
‘청성파로군.’
청성파는 아미파와 함께 사천 무림을 대표했다. 그들이 지금 나타난 것보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청성의 영진이라고 합니다.”
“영진도장이시군요.”
청성파 일대제자들은 현, 이대제자들은 영을 돌림자로 썼다. 다시 말해 그의 앞에 서 있는 영진은 청성파 이대제자였다.
“우선, 무림맹 사천지부를 대표해 장 대협께 감사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명운은 서윤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장 대협께서 나서 주셔서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영진도장은 예의를 갖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 선 이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명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운은 그들을 훑어보고는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자신들의 장문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 테지.’
영진도장과 함께 온 이들은 대부분 청성파 제자들이었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장 대협께서는 겸손하시군요.”
현위 서윤은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영진이라는 도사는 예의 바르지만, 뒤에 서 있는 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군.’
그는 명운이 무림맹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리는 중원 무림과 가깝지만, 중원 무림과 차이를 둔다고 들었다.’
대리 문파들이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명운은 고개를 몇 번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부적을 잡았다.
“인사가 끝났으면 영혼을 돌볼까 합니다.”
영진도장은 명운의 말에 말끝을 올렸다.
“영혼을 돌본다는 말씀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입니다.”
명운은 말을 마친 뒤 몇 걸음을 걸어갔다. 그러고는 마기가 쌓인 땅에 진기를 불어넣은 부적을 던졌다.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부적이 불꽃을 내며 타올랐다.
화르르륵.
“부디 다음 생에는 이런 슬픔을 겪지 말도록.”
청성파 제자들은 명운의 수법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땅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것은 사술인가?’
‘그가 소문과 같은 대협이라면 이것을 도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리원에 이와 같은 도술을 지닌 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청성파 제자들은 단리원을 아래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명운의 수법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영진도장 또한 의심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불길은 무엇입니까?”
명운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한을 태우는 것입니다.”
“영혼의 한을 태운다는 말씀이십니까?”
“불가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명운이 한바탕 불도를 이야기하려 하자 영진도장이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명운의 공이나 무공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장 대협.”
명운이 앞으로 나아가며 그의 말을 받았다.
“제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진도장이 쟨 걸음으로 따라붙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면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영진도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무림맹 사천지부를 대표해서 대협께 한 가지 묻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가 명운을 찾아온 것은 무림맹 총단으로부터 내려온 지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운은 그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번 일에 관해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도 좋습니다.”
“장 대협, 감사합니다.”
“어서 물으시구려.”
영진도장은 명운을 바짝 따라붙고 있었지만, 나머지 무림맹 제자들은 처음 걸음을 멈췄던 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현위 서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췄다.
‘이 이상 다가간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될 테니까.’
그는 선을 지킬 줄 아는 무관이었다.
“장 대협, 아미파 제자들의 말에 따르면 장 대협께서 강시와 싸우셨다고…….”
“오월교의 강시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영진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는 강시에 관한 조사를 위해 단리현에 파견된 것이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싶습니까?”
“가능한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명운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이곳에서 말입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한두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양이 많으니, 지필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영진도장은 명운의 말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기억력 하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서 대협께 들은 내용을 적으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청성파 제자 중에서 기억력이 좋기로 유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듣고 본 것에 관해 이야기해드리죠.”
명운은 자신이 어떻게 강시들과 싸우게 되었는지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진도장은 귀를 세우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명운은 그에게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기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걸음을 멈춘 뒤 부적을 던져 그것을 태웠다.
화르르륵.
영진도장은 명운의 도술이 기이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마음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무림맹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강시에 대해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명운이 부적을 소매에 넣은 뒤, 몸을 돌렸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영진도장은 명운이 이야기가 끝났다고 말하자 두 손을 모으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장 대협의 말씀, 빠짐없이 본맹에 전하겠습니다.”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이번에는 명운에 그에게 물었다.
“제 이야기만으로 괜찮은 것입니까?”
“개인적인 질문이 있지만, 대협의 시간을 너무 빼앗으면 안 되니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명운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도장, 다음은 없을 것입니다.”
영진도장은 그의 말에 눈썹을 세웠다.
“예?”
“이틀 뒤, 서 현위와 함께 귀주로 떠날 것입니다.”
“장 대협, 귀주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것입니까?”
명운이 서윤을 향해 걸어가며 대답했다.
“오월교의 본거지를 찾을 것입니다.”
영진도장은 오월교의 본거지를 찾는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 잠입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설마요.”
“하면 오월교의 본거지를 찾으시는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오월교를 토벌하기 위함입니다.”
영진도장은 명운의 대답에 재차 물었다.
“장 대협께서는 관군과 함께 오월교를 토벌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명운은 걸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오월교를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오월교의 본거지를 찾기만 하면 서 총병이 대군을 이끌고 그들을 멸하리라 하더군요.”
사천총병 사옥찬.
그가 언급되자 영진도장은 미간을 좁혔다.
“대장군부에 강호의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까?”
영진도장의 물음에 명운의 걸음이 멈췄다.
“강호란 강의 물이 불어나 민과 관을 덮친다면, 어찌 무림만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오월교의 혈겁이 너무 커져 무림맹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 그것은…….”
명운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영진도장은 바로 받아칠 수가 없었다.
“사 총병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를 돕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영진도장은 앞서 사옥찬이 청성파의 도움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공을 탐할 뿐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공을 탐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협?”
“대장군부의 장군이라면 공명심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공명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누가 공명심을 가지겠는가?
“하나, 그 공명심이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앞서 걱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사 총병은 말이나 행동이 앞서는 사내가 아니었습니다.”
영진도장은 명운과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이 소인배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겉모습은 이십 대에 불과한데, 말의 깊이는 불혹인 나보다 깊구나.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가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현위 서윤이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말끝을 올렸다.
“장 대협, 이야기가 끝나셨는지요?”
명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영진도장에게 돌렸다.
“다 끝난 것입니까?”
영진도장은 더 물을 것이 있었으나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종일 따라다니며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그가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명운은 그가 포권을 취하자 마주 포권을 취했다.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의 말과 행동은 군더더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