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지옥도 (10)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자들.
험악한 목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거기서라!”
달아나는 이들은 여자나 아이 같은 노약자들이었고, 추격하는 자들은 칼은 든 사내들이었다.
“잡히면 안 돼.”
“어서 달아나야 한다.”
“이번에 끌려가면 반드시 죽게 될 거야.”
약간 경사진 길을 사람들은 정신없이 내달렸다.
“앗.”
짧은 비명과 함께 한 아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어서 일어나. 잡히면 죽게 될 거야.”
“다리가 아파요.”
“그럼, 누나에게 업혀.”
누이로 보이는 소녀가 아이를 일으켜 세웠으나 사내들은 성큼 거리를 좁혀 왔다.
“어딜 달아나느냐!”
소녀는 동생을 업고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으나 곧 사내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이 녀석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녀와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앗.”
충격이 컸는지 소녀와 아이는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잡아들여라!”
선두에 선 사내가 소리치자 뒤쪽에서 달려온 자가 밧줄을 들었다.
“이리 와!”
털이 수북한 손이 소녀와 아이를 향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밧줄을 든 사내의 움직임이 멈췄다.
“헉.”
그는 답답한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툭.
앞서 소녀를 쓰러뜨렸던 자가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러느냐? 암기에 맞았나?”
무릎을 꿇은 사내는 오른손을 뻗으며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웅얼거릴 뿐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뒤이어 다가온 동료들이 그의 상태를 보고는 눈썹을 세웠다.
“가슴에 작은 암기가 박혀 있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면 암기에 독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상태를 살피는 사이 암기를 맞은 사내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었어.”
“제기랄.”
선두에 섰던 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끝을 올렸다.
“설마 놈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
놈.
그 한마디에 뒤에 서 있던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럴 리가요? 놈이 여기 있다면 우린 다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암기가 날아오지 않았느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녀가 고개를 들며 외쳤다.
“장 대협께서 오셨으니, 너희는 다 죽을 것이다!”
사내들은 얼굴을 굳혔다. 그녀가 그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입에 올렸던 것이었다.
“이게!”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사내가 칼을 들었을 때였다.
팍!
짧은 타격음과 함께 그가 비틀거렸다.
“으윽.”
그도 암기에 당한 것 같았다.
“또 암기다!”
“진짜로 놈이 있는 건가?”
“어디냐?”
“흩어져! 뭉치면 암기에 맞는다!”
사내들은 감히 소녀를 공격하지 못하고 뒷걸음쳤다.
“향주님, 도, 도망칩시다.”
“놈이 나타나면 진짜 다 죽습니다.”
무리해서 소녀를 잡아가 봐야 대단한 공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선두에 선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제길…….”
결심이 섰는지 그가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며 외쳤다.
“철수한다!”
그의 외침과 함께 사내들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모두 돌아간다!”
“돌아간다! 향주님의 명령이다!”
스무 명의 사내들은 추격을 중지하고는 이무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녀와 아이는 그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구사일생이었다.
그들을 도운 이가 한 걸음만 늦었어도 이무산으로 잡혀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다리는 어때?”
소녀가 동생을 살피고자 할 때였다.
인자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괜찮느냐?”
소녀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괘, 괜찮습니다.”
여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이윽고 뒤쪽에서 사내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있는데, 당연히 괜찮지.”
여인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거리에서 암기를 던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왜?”
“잘못되면…….”
“연연, 지금 당가의 암기를 무시하는 건가?”
소녀를 구한 이는 여인이 아니라 사천당가의 고수 당오비였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반박하는 여인은 바로 그의 후배 제갈연연이었다.
“당가의 고수라면 백 보 밖에서도 깃대를 맞출 수 있어야 해. 이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
제갈연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알겠습니다.”
그녀는 소녀와 동생의 상태를 살피고는 당오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타박상은 좀 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네요.”
당오비가 소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까 장 대협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소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장 대협은 저희를 구해 주신 은인이에요.”
제갈연연은 당오비와 얼굴을 마주했다.
“역시 장 대협이군요.”
“장 대협, 이 사람 정말 발이 빠르단 말이야.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당오비는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장하,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사람이다.’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드러나지 않았고, 드러난 이후에도 자신을 뽐내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부러워 보이시네요.”
“부럽다기보다는 탄복했다고 봐야겠지.”
제갈연연이 소녀에게 물었다.
“장 대협이 구한 사람들이 많으냐?”
“예, 아주 많아요.”
당오비가 설명을 덧붙이듯 말했다.
“보나 마나 아까 도망치던 사람들이 모두 장 대협이 구한 사람들이겠지.”
그들은 수십 명이 남쪽으로 도망치는 것을 이미 목격한 바 있었다.
소녀가 당오비의 말을 받았다.
“저희 말고도 장 대협이 구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당오비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는 시선을 이무산으로 돌렸다.
‘대체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는 이무산으로 오는 도중 무림맹 귀주지부에 연락을 넣었다.
전서의 내용은 가능한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 이무산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곳 이무산을 오월교와 결전 장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 총병과 장 대협만의 일이 아니다.’
이번 싸움에서 주력은 사옥찬의 군대가 분명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무림맹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은 해야지.’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무림맹의 임무라 생각했다.
“조심해서 달아나거라.”
당오비의 말에 소녀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갈연연은 소녀와 아이를 끝까지 바래다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소녀가 사람들이 도망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괜찮을까요?”
당오비가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괜찮기를 바라야지.”
그는 이무산에서 짙은 탁기를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아.’
고개를 들자 먹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군.’
피를 씻기 위한 비일까?
아니면 죽어 간 자들을 위해 하늘이 흘리는 눈물일까?
이무산에 올라 봐야 어느 쪽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오월교 부교주 서막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기도에 열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급히 달려온 부하들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부교주님을 뵙니다.”
서막은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회악인가?”
회악은 앞서 명운의 기습에 크게 당황하여 도움을 요청한 바 있었다. 서막은 그가 돌아왔으니, 어느 정도 일이 해결되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회악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동공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준악이 전사하였습니다.”
“준악이?”
“그렇습니다.”
주교 준악은 그의 오른팔이었다.
“무림맹 놈들이 습격해 왔단 말이냐?”
“적은 한 명이었습니다.”
서막의 눈이 더욱 커졌다.
“겨우 한 명에 준악이 당했다고?”
“준악만이 아닙니다. 소악과 진악 또한 그자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진악은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소악과 준악은 적을 토벌하고자 상당한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그들이 모두 단 한 사람에게 당했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소악은 몰라도 준악이라면 방심해서 당했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한 명이 누구인지 아느냐?”
회악이 두 손을 높이며 대답했다.
“장하라는 자가 분명합니다.”
“장하!”
단양성에서 그의 사제 마막을 격살한 단리원의 고수.
파파파파팍.
서막이 주먹을 꾹 쥐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묵주가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놈이!”
그의 분노에 회악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게 불똥이 튈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은 침묵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
서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준악의 호위들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
회악이 재빨리 대답했다.
“호위 수십 명이 달려들었으나 장하라는 자를 이기지 못한 것은 물론, 그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란 말이냐?”
노기가 가라앉으면서 서막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본디 침착한 자였다.
‘단양성의 공적은 그냥 세운 것이 아니란 말인가?’
회악의 보고가 이어졌다.
“도망친 자의 말에 따르면 소악 또한 일격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소악은 무공이 뛰어나 준악과 경쟁하던 인물이었다.
‘소악까지 일격에?’
그 정도 무공이면 서막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 정도라면 대사형을 넘어설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사부님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월교 교주 진마.
부교주 서막은 사부의 무공이 화경을 넘어 현경에 이르렀다고 추측했다.
“놈의 무공이 과장된 것은 아니냐?”
“다소 과장이 있을 수는 있으나, 세 주교가 당하고, 저도 그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서막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도 그자와 겨뤄 보았느냐?”
“경공이 너무 빨라 감히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서막은 그의 대답에 낮게 신음했다.
“으음.”
사옥찬과 대결을 앞두고 나타난 무림맹의 고수 장하.
그는 쥐었던 주먹을 풀며 생각했다.
‘놈을 잡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적의 대군이 코앞에 있는 지금 그에게 신경을 쓰다가는 대국을 그르칠 것이다.’
서막은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남쪽과 서쪽의 병력을 물려라.”
회악은 서막의 명령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철수하는 것입니까?”
그는 서막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명운을 추격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교주 서막의 판단은 그의 예측과 달랐다.
“파리에 휘둘려 날아오는 칼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주교 회악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존명!”
일다향 뒤.
명운을 수색하기 위해 흩어졌던 천여 명의 교도들이 본진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철수다!”
“모두 돌아간다!”
마치 썰물처럼 오월교도들이 숲을 빠져나갔다.
* * *
명운의 몸에서는 짙은 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는 오월교도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계곡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갔다.
흐르는 물도 그의 몸에 밴 피 냄새를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아직 구하지 못한 이가 많을 것이다.’
그는 서막의 본진에 잡혀 있는 이들이 아직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휴식 없이 계속해서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옥찬의 군대가 도착하고 나서야 진짜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피를 머금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툭. 투투툭. 투투투툭.
명운은 눈을 감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정신이 맑아지기는커녕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무산에 모이고 있는 탁기와 마기가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억울하게 죽어 간 이들의 혼이 탁기가 되어 산에 흩어져 있다.’
그가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 아니 그가 도착하기 전에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이 마치 귀령처럼 산을 떠돌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은 기감이 뛰어난 자일수록 더욱 크게 들렸다.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
정신력이 뛰어난 그였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곤란해.”
이런 곳에서 운기행공에 들어간다면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이 컸다.
‘마공이라도 익히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 운기행공을 할 이유가 없지.’
명운은 물에서 나온 뒤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싸움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운기행공이 필요했다.
그는 이무산에서는 운기행공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떠도는 영혼들이여. 조금만 기다려 주게. 머지않아 그대들의 원통함을 풀어 줄 테니까.”
그는 잠시 이무산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