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대격돌 (4)
명운이 흑암굴 밖으로 나왔을 때 대세는 이미 사옥찬의 흑기병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결국, 이런 결말이군.”
지금의 전황은 그가 원하던 결말에 가까웠다.
흑기병의 창에 쓰러지는 오월교도들, 그리고 그들을 짓밟으며 전진하는 사옥찬과 그의 부하들.
부교주 서막과 그의 수하들은 무너지는 전선을 어떻게든 메우고자 했지만, 될 턱이 없었다.
“허헉!”
짧은 비명과 함께 오월교 고수가 쓰러졌다. 그는 일류 고수에 가까운 자였으나 흑기병의 집단 공격에 제대로 힘조차 써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늘이 날 버렸도다.”
서막은 싸울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다.
“부교주님, 퇴각해야 합니다.”
그의 곁에서 검을 휘두르던 향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로 간단 말이냐?”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일단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서막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퍼엉!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말과 흑기병 한 명이 쓰러졌다. 오월교도들은 말에서 떨어진 병사를 죽이고자 했지만, 사방에서 흑기병들이 몰려들어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아군을 보호하라!”
흑기병들을 지휘하는 별장 중 하나가 서막의 옷이 화려한 것을 보고 창을 세웠다.
“저놈이 대장인 것 같다!”
흑기병들은 그의 외침에 말머리를 돌렸다.
“놈의 수급을 취하라!”
“적의 대장을 베어라!”
“돌진!”
서막의 주변에 있던 호위들은 그들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부교주님을 지켜라!”
“놈들을 막아라!”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기병들.
서막과 그의 수하들은 흑기병들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쾅!
기병 충돌에 다섯 명이 동시에 하늘을 날았다.
“커헉…….”
맨몸으로 기병의 돌진을 막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명운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자업자득이군.”
이무산 남쪽에서는 당오비와 제갈연연이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 선배, 우리가 할 일은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갈연연의 말에 당오비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게 좋은 거야.”
그가 귀주 지부에 요구한 지원은 전투가 마무리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무림맹답군.’
당오비는 무림맹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이런 식의 느릿한 일 처리는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산에서 내려갈까요?”
제갈연연은 지난 밤 지나친 남매가 걱정되었다. 그녀는 산을 내려가 무고한 양민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오비는 생각이 달랐다.
“난 안으로 가 볼 생각인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놈들의 신전 안에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제갈연연은 당오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두 사람은 전투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오월교의 신전인 월신전 쪽으로 경공을 전개했다. 그들이 월신전 근처에 다다를 무렵.
전장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리리. 삐리리리리.
퉁소 소리였다.
당오비는 미간을 좁혔다.
“느낌이 좋지 않아.”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기감이 뛰어난 명운은 물론이고, 전장에서 군을 지휘하고 있던 총병 사옥찬도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그는 소리가 난 곳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소리는 마치 옆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가까웠다.
‘기괴한 소리다.’
곧 별장들도 소리를 듣게 되었다.
“퉁소 소리입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요?”
사옥찬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뭔가 변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뒤로 물러나 대열을 정비하라.”
그는 오월교도를 추격하기보다는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하고자 했다.
‘다 끝난 싸움인데, 무엇이 더 남아 있단 말인가?’
별장들이 그의 명을 병사들에게 전했다.
“선진은 물러나 전열을 정비하라!”
눈앞에 적을 둔 병사들은 아쉬움이 컸지만, 창을 거두며 복명복창했다.
“전열을 정비하라!”
“뒤로 물러난다!”
명운은 퉁소 소리에 깊은 내공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기감이 뛰어났기에 사옥찬이 찾지 못한 퉁소 소리의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산의 중턱.”
정확히는 산의 북쪽과 서쪽을 잇는 지점.
게다가 소리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는 퉁소를 불고 있는 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오월교의 고수, 혹은 교주 진마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일은 아니군.”
명운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경공을 전개했다.
휙.
나무와 나무를 건너뛰며 앞으로 나아갔을 때였다.
‘이것은!’
그가 걸음을 멈춘 이유는 지독한 탁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온다!’
미간을 좁힌 순간 인간이 아닌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수는 무력 백이 넘었다.
‘백 구가 넘는 강시라고?’
백이라는 숫자는 그가 흑암굴에서 파괴한 강시의 숫자와 맞먹는 것이었다.
쉬익. 쉬익.
강시들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산 아래로 내달렸다.
쿵. 쿵. 쿵.
선두에 선 강시들은 더욱 짙은 마기를 내뿜고 있었다.
명운은 앞에 선 것들이 혈강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강시까지 동원하다니…….”
그가 습격한 흑암굴 외에도 제조 시설이 더 있었던 것이었다.
“모두 파괴하지 못했다는 말이군.”
명운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삐이, 삐이, 삐리리릭.
퉁소 소리와 함께 강시들이 총위 감병위의 별동대를 덮쳤다.
퍼억!
단 일격에 말과 사람이 날아갔다.
감병위는 그 모습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무슨 괴력이란 말인가?”
병사들은 말머리를 돌려 강시들에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쾅! 쾅! 콰쾅!
폭음과 함께 곳곳에서 말과 사람이 허공을 날았다.
“무, 물러서라!”
감병위로서는 물러서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들이 물러서자 패배 위기에 놓였던 오월교도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 살았다.”
“다 죽는 줄 알았다.”
한숨을 돌린 것은 부교주 서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보다는 미간을 좁혔다.
“사형이 왔구나.”
그는 퉁소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삐리리리릭.
퉁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강시가 나타났다.
쾅! 쾅!
혈강시는 무자비하게 흑기병을 쓸어버렸고, 전황은 삽시간에 뒤바뀌고 말았다.
* * *
강시를 조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기다. 이 마기를 다룰 수 있어야 강시를 조종하는 술자가 될 수 있었다.
부교주 서막은 사부로부터 마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의 사부 진마는 마기를 느끼는 법, 그리고 모으는 법을 차례로 가르쳐 주었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진마는 조금 기괴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마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으로 변해 갔다.
대사형 무막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마기와 강시에 몰두한 사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마기를 모으고, 강시를 개량하면서 그는 모습만 사람일 뿐 머릿속은 사람이 아닌 외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오직 부교주 서막만이 사람으로 남았다. 물론 그의 인성도 차츰 파괴되어 살인에 익숙한 사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버리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사형, 결국 성공했군요.”
서막은 퉁소 소리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기가 흐르는 줄로 강시를 움직이는 것은 열이 한계,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다른 방법, 그것은 바로 소리로 강시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 방법에 성공한 이는 없었다.
쾅!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말과 사람이 허공을 날았다. 전황은 이제 오월교의 우세였다.
“놈들이 물러난다!”
“대열을 바로 잡아라!”
오월교 향주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무너지던 오월교도들을 바로 세우려 했다.
명운은 이대로 전세가 변하는 것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사악한 자들이 이기는 것을 어찌 그냥 둘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강시를 조종하는 술자를 찾고자 했다.
‘근처에 반드시 술자가 있을 것이다.’
기감을 높였으나 강시와 연결된 끈을 찾을 수 없었다.
‘마기를 전달하는 끈이 없단 말인가?’
끈이 없다면 무엇으로 강시를 조종한단 말인가?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그의 설마가 옳았다.
전장을 휩쓸고 있는 강시들을 조종하는 힘은 바로 퉁소 소리였다.
음으로 줄을 대신한다.
진마의 대제자 무막이 그것을 해낸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일이구나.’
명운의 시선이 무막을 향했을 때였다.
“저놈이 퉁소를 불고 있다!”
총위 감병위의 수하 중 몇 명이 무막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놈이 강시를 불러왔을지도 모릅니다.”
감병위는 수하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저곳까지 어떻게 말을 달린단 말이냐?”
무막이 서 있는 곳은 말이 오르기 힘든 곳이었다.
“가까이 가서 활을 쏘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접근한 뒤 활로 공격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가 가겠느냐?”
감병위가 묻자 별장 오진이 창을 세웠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는 뛰어난 활 솜씨로 오유기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로 그의 오유기란 별칭은 오진이라는 그의 본명에 전국시대 유명한 명궁 양유기의 이름을 합친 것이었다. 첨언하면 양유기는 백발백중의 고사를 남긴 장본인이었다.
“오유기인가? 좋다! 그대에게 맡기겠다!”
오진은 결사대 스무 명과 함께 무막이 서 있는 칠부능선을 향해 전진했다.
“저놈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강시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마기를 느끼거나 강시의 조종 원리를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장의 감으로 강시를 조종하는 자를 알 수 있었다.
‘놈이 퉁소를 분 순간 강시가 나타났다. 하면 이놈들은 놈이 데려온 것이다.’
명운은 오진의 결사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사대로 놈을 쓰러뜨린다. 좋은 생각이군.”
그는 결사대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경공을 전개했다.
탁! 탁!
나무와 나무를 건너뛰던 그는 어느새 나무가 없는 팔부능선에 이르렀다. 이곳은 무막과 나머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뒤는 잡았다.”
그가 산 위로 오른 것은 무막의 퇴로를 끊기 위함이었다.
‘놈이 도망친다면 싸움이 길어질 수도 있다.’
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결사대가 거리를 좁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녀석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는 이번 싸움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여기서부터는 말이 어렵습니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활을 든 뒤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활이 닿지 않는다.’
그와 결사대가 숲을 밀치며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크아아아아악!”
괴이한 비명과 함께 강시들이 튀어나왔다.
“이런!”
병사들은 창을 휘두르며 강시들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혈강시였다.
쾅!
폭음과 함께 병사들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제기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고지가 눈앞이었다.
조금만 더 접근한다면 무막을 화살로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강시들의 방해 때문에 오진과 병사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무막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후후후, 어리석은 것들 본좌가 네놈들의 접근을 몰랐을 것 같으냐?’
수백의 강시가 그의 눈과 귀가 되어 모든 움직임을 전달하고 있었다.
“할 수 없지!”
오진은 삼백 보가 넘는 거리에서 화살을 당겼다.
쉬익!
위로 향한 화살은 무막의 바로 앞에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툭.
아쉽고도 아쉬운 일이었다.
오진은 주먹을 꾹 쥐었다.
“큭!”
평지에서 평지로 쏘는 것보다 아래에서 위로 쏘는 것은 사거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안 되는가?’
그가 재차 화살을 쏘려고 할 때였다.
강시 두 구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진은 첫 번째 강시의 돌진은 피해 냈지만, 두 번째는 피하지 못했다.
쾅!
혈강시의 오른손에 얹어 맞은 오진은 비명을 내질렀다.
“크헉!”
옆구리의 뼈가 모두 부러진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끝인가?’
의식이 아득히 멀어졌다.
무막은 오진을 쓰러뜨린 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본좌에게 화살을 쏜다고 해서 통할 것 같으냐?’
오진이 가까이 접근했다고 해도 화살로는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는 진마의 대제자이자 오월교의 이인자였다.
명운은 오진의 실패를 보고는 검을 뽑았다.
스릉.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구나.’
그가 움직이려는 순간 무막의 퉁소 소리가 바뀌었다.
‘하나 더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퉁소의 음이 바뀌자 팔부능선 곳곳에 숨어 있던 강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으으으.”
그들은 사방에서 일어나 명운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무막은 명운의 움직임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에서 모두 죽으리라.’
그는 이무산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