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1)
파천궁.
궁주 천혁은 수왕의 보고에 얼굴을 굳혔다.
“결국, 일이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수왕의 보고는 이무산 패전에 관한 것이었다.
“저희가 배교자의 힘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교자란 오월교 교주 진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파천궁은 오월교와 힘을 합쳐 세상을 손에 넣고자 했지만, 이무산 패전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수왕이 목소리를 죽이며 대답했다.
“단리원의 장하라는 자가 이상합니다.”
단양성의 영웅 장하, 그는 이번 이무산 전투에서도 대활약을 펼쳤다. 파천궁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혁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끝을 올렸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인가?”
“너무 뜻밖의 인물입니다.”
“무명의 고수가 나타나 천하를 평정한다. 예부터 있어 온 일이 아니던가?”
“하나, 단리원은…….”
천혁은 관심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단리원이 아니라 더 이름 없는 문파라고 해도 가능한 일이야. 수왕, 세상을 너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려 하지 말게.”
우리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말.
몇 번의 실패는 천혁을 좌절에 빠뜨렸지만, 반대로 그의 시야를 넓혀 주는 지렛대가 되었다. 그는 이전과 달리 더 넓은 시야로 천하를 바라보고자 했다.
“속하는 단리원의 장하가 가교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왕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천혁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가 가교의 인물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단 말인가?”
그는 비루한 예측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무산의 패전은 쏟아진 물과 같아 되돌릴 수가 없다.’
수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가교의 고수들이 이무산에 있다면 역으로 대산을 노려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천혁은 수왕의 계책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도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다. 대산을 공격하는 것은 무리야. 그리고 장하라는 자가 가교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십만대산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가 움직이지 않았으니, 대산의 수비에는 이상이 없을 걸세.”
그는 장하가 명운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천마신교의 신진고수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사대호법급 인물이겠지.’
천마신교의 사대호법이라면 뛰어난 고수였다. 하지만 그러한 자가 움직였다는 것 하나로는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었다.
수왕은 바로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주님, 이번 기회를 그냥 날리는 것이 속하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월교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을 때 뭔가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진마와 그 무리는 가라앉는 배와 같다. 이제는 작별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는 말을 마친 뒤, 서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왕은 천혁을 쫓는 대신 두 손을 모았다.
“속하, 물러가서 다른 계책을 찾아보겠습니다.”
파천궁주 천혁은 진마와 오월교의 몰락을 보고는 그들과 동맹을 끊고자 했다. 수왕은 그 판단이 아쉬웠지만, 그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교 정벌과 멀어지는 결정이지만, 교주님의 말씀대로 본교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에는 접는 것이 좋겠구나.’
단양성 전투로 인한 돌격대의 손실은 지난 단곡 전투의 손실과 맞먹는 것이었다. 두 전투의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 * *
“귀주에서 전서가 올라왔습니다.”
전서를 내미는 손이 백옥처럼 맑았다.
“교주님께서 보내신 것인가?”
전서를 받은 이는 천마신교 부교주 유청이었고, 전서를 내민 이는 대호법 사마진이었다.
“아닙니다.”
“하면?”
“귀주지부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흠, 귀주지부인가?”
귀주는 무림맹의 세력이 크지 않아 오월교는 물론이고, 천마신교도 상당한 세력을 구축한 곳이었다.
유청은 그 귀주지부에서 보낸 전서를 펼쳤다. 잠시 뒤,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무 눈에 띄는 일을 하시는군.”
전서는 이무산 전투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이무산 전투의 영웅 장하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원하신 바를 이루신 것 같습니다.”
유청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오월교의 몰락 말인가?”
“인외의 무리입니다.”
사마진은 여러 경로로 오월교의 만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바 있었다. 그녀는 오월교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자들이다.’
유청은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멸망해 마땅한 자들이라는 이야기군.”
“혈교는 본디 우리와 가는 길이 달랐습니다.”
혈교는 과거 천마신교와 십만마도의 주도권을 두고 맞붙은 바 있었다. 쉽게 말해 혈교는 천마신교의 적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가?”
“교주님의 뜻에 따르고자 합니다.”
“교주님의 뜻인가?”
유청이 왼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전서를 흔들자 곧 불이 붙었다.
화르륵.
전서는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사실 천마신교 부교주쯤 되면 이러한 무공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귀주지부에 명을 내리고자 합니다.”
유청이 잔잔하게 웃었다.
“후후후, 귀주지부를 움직이기 위해서 내 이름이 필요하다는 말이군.”
사마진이 두 손을 가볍게 쥐었다.
“본교의 부교주님이시니까요.”
“하지만 교주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면?”
“그때는 물러나야겠죠.”
유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네 뜻대로 하게.”
그는 그녀가 명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만큼 교주님을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
유청은 사마진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사마진의 인사는 전에 없이 공손했다. 그것을 본 유청이 한마디를 더했다.
“자네 말일세. 예법을 배우는 모양이군.”
“다예를 조금 하고 있습니다.”
“다예라고?”
“차를 끓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유청은 나쁜 취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가 전장에 나갈 일은 없으니까.’
그는 그녀가 명운의 옆을 지켜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마진은 두 손을 모아 인사한 뒤 물러나고자 했다.
“잠깐.”
사마진이 멈칫하며 물었다.
“따로 말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석 대주는 어떻게 하고 있나?”
유청이 물은 것은 석비연의 근황이었다.
“흑살대와 함께 대기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흑살대주 석비연 그녀는 명운의 측근 중 한 명이었다.
“이번 일로 석 대주가 섭섭해할 수도 있네. 자네가 좀 챙겨 주게.”
흑살대는 교주 명운의 호위대를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주가 남쪽으로 떠났음에도 석비연과 흑살대는 대명궁에서 교주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가 말입니까?”
사마진이 반문한 것은 부교주 유청이 직접 챙겨도 괜찮지 않겠냐는 뜻을 표한 것이었다. 유청도 그녀의 이와 같은 뜻을 알아들었다.
“나는 너무 늙었지 않나. 내가 하는 말은 다 꼬장꼬장한 늙은이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걸세.”
“그렇지 않습니다.”
유청은 손을 흔들었다.
“자네가 하게.”
사마진은 두 손을 모았다.
“부교주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석비연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석 대주도 교주님을 따르는 이들 중 하나니까.’
게다가 석비연은 경은이나 일함과 같은 연적도 아니었다. 그녀는 유청의 집무실을 나온 뒤 석비연을 찾아갔다.
흑살대주 석비연은 예상외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대호법을 뵙니다.”
사마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석 대주,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이 어떻습니까?”
“걱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석비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아마도 교주님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마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녀도?’
그녀가 의심한 것은 명운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러나 석비연은 명운에게 애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명운을 진심으로 걱정할 뿐이었다.
“걱정을 내려놓으시지요. 모든 일이 교주님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석비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교주님께서 홀로 남정하셨는데, 어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걸리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마진은 그 한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실입니까?”
“속하가 교주님의 남정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석비연은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명운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 명이 말을 흘린다면 곧 천하게 다 알게 될 것이다.’
사마진은 그녀의 걱정을 꿰뚫어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주변인들까지 철저히 속였어야 했단 말이군요.”
“제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마진이 찌푸렸던 눈살을 풀며 말했다.
“기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겠지요.”
석비연은 상체를 움직여 사마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혹시 묘수가 있으십니까?”
사마진은 그녀의 눈에서 기대를 읽었다.
‘사실대로 다 말해 주면 좋겠지만…….’
앞서 석비연이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였을까?
사마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묘수는 없습니다.”
석비연이 뒤로 물러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사마진은 느릿한 어조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교주님을 도울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명운을 도울 준비.
그녀는 그 일을 귀주지부에 맡기고자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다.’
자신을 능가하는 무공을 지닌 여인.
빙왕.
사마진은 빙왕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녀라면 반드시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녀는 파천궁 사천왕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
이무산 전투가 끝난 직후.
명운은 무림맹과 합류하는 대신 흑암굴로 되돌아갔다. 그가 흑암굴로 돌아간 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잔당 소탕과 강시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잔당 소탕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찾은 흑암굴은 죽음의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곳곳에 쓰러진 이들과 움직이지 않는 강시들이 짙은 탁기와 마기를 내뿜고 있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깊은 곳까지 기를 뻗어 보았지만, 움직이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느낌은…….”
슬픔과 증오.
얼마나 많은 이가 이곳에서 죽어 갔을까?
그는 너무나 짙은 탁기에 기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짙은 탁기에 현혹되어 헛것을 보거나 광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물론 그의 정신과 몸은 호신강기로 보호되고 있었기에 그러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모두 태울 수 없을 것 같구나.”
이 많은 것을 태우려면 기름이나 염초 같은 인화 물질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인화 물질을 찾을 수 없었다.
“태우는 것은 포기하는 수밖에.”
명운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초를 찾아 불을 지폈다.
파팍.
심지에 불이 붙자 주변이 밝아졌다.
“윽.”
그가 짧게 신음을 내뱉은 것은 주변 모습이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광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의 팔다리가 잔뜩 걸려 있는 벽.
그 반대편 벽에는 몸과 분리된 사람들의 머리가 걸려 있었고, 구석에는 머리카락이 마치 짚단처럼 쌓여 있었다.
명운은 이런 광경이라면 평생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토악질을 했겠지.’
사실 이런 장면이라면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었다.
명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안쪽 방으로 이동했다.
안쪽 방은 동굴의 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탁자와 의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서재인가?”
촛불을 들어 주변을 살피자 책과 문서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음.”
명운은 책을 꺼내기보다는 탁자 위에 놓인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은?”
한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팔.
대체 무엇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가?
그는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혈강시가 아니야.”
혈강시는 다른 강시들보다 강력할 뿐, 이런 기괴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오월교는 이곳에서 미증유의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었다.
명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월교는 항상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어쩌면 녀석들에게 죽어 간 사람들의 원한일지도 모르겠군.”
그 어떤 사마외도도 오월교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의 잔인함과 인간이기를 포기한 만행은 천마신교 출신인 그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펄럭.
다음 장을 넘기자 앞서 보았던 괴물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이것을 연구한 자는 자신이 행한 연구의 결과를 자세히 적어 놓았다.
명운은 미간을 좁힌 채 그 연구를 읽어 내려갔다.
“드디어 팔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몸에 붙인 여러 팔을 말하는 것 같았다.
펄럭.
다음 장에는 괴물의 움직임과 실패, 그리고 어떻게 실패를 극복할 것인가를 적어 놓았다.
“실패를 극복할 방법은 더 많은 사람을 실험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이것을 적은 자는 괴물의 제조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적은 이는 사도 자암이었다. 그는 진마의 대제자 무막의 명을 받아 이곳에서 갖가지 악행을 자행했다.
그중 하나가 이런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완성품은 없다.’
명운은 주먹을 꾹 쥐었다.
‘설마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딘가에 이 괴물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기록에 따르면 새로운 괴물은 혈강시 수십 구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