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6)
비명과 불, 그리고 죽음.
모든 것이 익숙했다.
단 하나만 빼고.
“물러나지 마라! 우리가 물러나면 다 죽는다!”
“어떻게든 버텨라!”
상의를 입지 않은 사내들은 칼을 든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루족 사내들로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파악!
핏물이 튀어 오르면서 한 사내가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아도!”
친구의 이름을 불렀지만, 내려가 구할 여유는 없었다. 오월교도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루족 사내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서 처리해라.”
공격을 맡은 이는 오월교의 중간 간부라 할 수 있는 향주였다. 그는 수십 명을 동원하고도 작은 마을 하나를 끝내지 못한 것에 불만이 컸다.
“겨우 십여 명에 시간 이렇게 끌린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서둘러 처리하겠습니다.”
이루족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싸움 장소도 나무 위였다. 그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오월교에 저항했다.
싸움터가 나무 위가 아니었다면 오월교는 진즉 이들을 쓸어버렸을 것이다.
“암기를 써라!”
“예, 향주님!”
오월교도들이 강침과 비표 같은 암기를 던지자 이루족은 나무 방패로 그것을 막았다.
“그깟 것으로 우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향주는 미간을 좁혔다.
“한심하구나.”
그는 소매를 크게 털어낸 뒤 경공을 전개해 나무 위에 올랐다. 그러고는 선두에 선 이루족 사내를 일격에 쓰러뜨렸다.
퍼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사내가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초, 촌장님!”
선두에서 용맹하게 싸우던 사내는, 바로 이루족 촌장이었다. 그가 쓰러지자 이루족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오월교도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촌장이 쓰러졌다!”
“사내들은 남김없이 죽여라!”
“존명!”
가장 큰 나무로 연결되는 나무다리들이 하나둘 오월교도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라!”
이루족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막을 수가 없구나! 다리를 끊어라!”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다리를 끊고자 했다. 하지만 오월교도들이 암기를 던져 그것을 막았다.
팍!
다리를 끊고자 했던 중년인 둘이 그대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향주님, 이제 가장 큰 나무만 남았습니다.”
가장 큰 나무에는 이루족 촌장의 집이 있었다.
촌장을 쓰러뜨린 향주가 두 손을 내리고는 이루족이 몰려 있는 나무를 주시했다.
“계집과 아이들이 모두 저곳에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오월교가 이루족 마을을 습격한 것은 마기를 모으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해서였다.
‘인간 사냥은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부교주님의 명이니 어찌할 수 없다.’
오월교 부교주 서막은 정악산에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기를 모으기 위한 인간 사냥은 그 준비 중 하나였다.
“계집과 아이들은 모두 살려라. 본산으로 데려갈 것이다.”
“존명!”
오월교도들이 촌장의 저택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솨아아아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과 같은 것이 쏟아졌다. 그것들은 그대로 오월교도의 몸을 관통했다.
파파파팍!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커헉!”
“허허헉!”
촌장의 집으로 진입하려고 했던 오월교들이 전부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오월교도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냐?”
“새로운 적이다!”
뒤에 있던 오월교도들은 눈을 크게 뜨며 적을 찾고자 했다.
“어디서 쏘는 화살인가?”
“나무 위인가?”
“적의 방향을 찾아라!”
향주는 앞서 보여 준 것처럼 다른 교도들보다 무공이 뛰어났다. 그는 하늘에서 쏟아진 것이 화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화살이 아니다! 정신 차려라!”
그는 무기가 화살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부하들을 쓰러뜨렸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표나 강침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혹시…….’
예로부터 남만 부족들은 독침을 사용하는 데 능했다. 그는 긴 대롱에 넣어 입으로 발사하는 독침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독침이다!”
그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다시 한번 하늘에서 공격이 쏟아졌다.
솨아아아아아!
오월교도들은 방패를 가진 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를 들어 그것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공격을 막아 낸 이는 하나도 없었다.
팍! 파파팍!
오월교도들의 몸을 관통한 무엇인가가 그대로 나무에 큰 상처를 냈다.
향주는 그 공격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독침은 저런 상처를 남길 수 없다.’
독침은 상대를 마비시킬 수는 있었지만, 상대의 몸을 관통할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독침이 아니었다.
‘독침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오월교도들은 순식간에 십여 명이 쓰러지자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무, 물러서라.”
“나무 뒤로 숨어라!”
향주는 두 손을 꾹 쥐었다.
“젠장! 다 되었는데!”
그는 적의 방향을 찾고자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냐?’
좌우를 살폈지만, 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귀주에 이렇게 기척을 지울 수 있는 부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전신의 솜털이 바짝 섰다.
자칫 잘못하면 이곳에서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전멸이라고? 있을 수 없다!’
그의 옆에 선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향주님, 퇴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도 퇴각할 수 있다면 퇴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적의 방향을 몰랐기에 어느 쪽으로 퇴각해야 하는지 정할 수가 없었다.
향주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하에게 물었다.
“넌 놈들이 어디에서 공격한다고 생각하느냐?”
“위 아닙니까?”
“나무 위?”
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무 위를 아무리 보아도 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 눈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면…….’
고수가 아니라더라도 고수에 근접한 은신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잘못 걸렸구나.’
그가 미간을 좁힌 순간이었다.
“간악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너희를 찾아왔다.”
묵직한 음성에는 중후한 내공이 서려 있었다.
향주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고, 고수다!”
그것도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
‘제기랄!’
부하들을 습격한 것은 독침이나 화살이 아니었다. 그들을 쓰러뜨린 것은 바로 검기였다.
‘검기를 뿌릴 수 있는 고수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터무니없는 상대였다.
백 명, 아니 이백이 있어도 상대가 불가능했다.
“도망쳐라!”
향주의 명이 떨어지자 오월교도들이 크게 놀랐다.
“도, 도망치는 것입니까?”
“도망치란 말이다!”
향주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향주의 도주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누가 나타났기에 향주님이 저렇게 당황하는 것인가?”
그들은 상대가 고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와 달리 상대가 얼마나 뛰어난 고수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설마 그자인가?”
누군가 설마라는 말을 내뱉자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 자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야?”
설마를 내뱉은 자가 동료들의 물음에 답했다.
“장하 말이야.”
단양성의 영웅 장하.
오월교도들에게 그의 이름은 사신과 같았다.
오월교도들은 장하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는 향주가 왜 도망쳤는지 알 수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해!”
달아나지 않으면 죽는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제기이이이이일!”
“놈에게 잡히면 모두 죽을 거야!”
“죽고 싶지 않아!”
파악! 파파팍!
검기에 맞은 이들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은 대부분 즉사였기에 두 번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칠 줄이야.’
명운은 눈에 보이는 족족 검기를 날렸지만,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오월교도를 죽이는 것이 아닌 이루족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쯤 하면 될 것이다.’
그는 손을 멈추고는 마을 한가운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단리원의 장하가 왔으니, 안심하십시오.”
명운이 목소리를 높이자 살아남은 이루족들이 하나둘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 *
촌장의 집.
살아남은 이루족 사내들은 명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협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명운이 살짝 말끝을 올렸다.
“상의할 시간을 드릴까요?”
그가 제안한 것은 함께 오월교를 토벌하자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루족에게 명운은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게다가 오월교는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그들은 명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희는 대협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명운은 그들이 제안을 수락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여러분들께서 힘을 모아 주신다면 충분히 그들을 쓰러뜨리고 잡혀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루족 사내들이 모두 일어나 그와 마찬가지로 포권을 취했다.
“대협,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촌장의 집에 모인 이들은 십수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명운은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했다.
‘작은 눈덩이가 굴러 큰 눈 뭉치를 만들 듯 이 사람들이 대업의 씨앗이 돌 것이다.’
명운이 모았던 두 손을 풀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했다.
“이 소식을 다른 마을에도 전하겠습니다.”
명운이 멈칫하며 물었다.
“다른 마을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루족은 하나의 마을로 된 부족이 아니었다. 사내는 이루족이 여섯 개 마을에 퍼져 있으며, 여섯 개 마을 사람들을 다 합하며 천여 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부족 사람이 천여 명에 이른다면…….”
“싸울 수 있는 전사는 백이 넘을 것입니다.”
백여 명의 병력.
이는 의외의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백 명이 넘는 전사라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다른 부족들까지 합하면 천이 넘는 숫자를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이 넘는 병력이 모인다면 오월교와 대적할 만했다. 하지만 명운은 안심하긴 이르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이루족과 같진 않을 것이다.’
그는 앞서 두 부족에게 제안을 거절당한 바 있었다.
“다른 부족들과 힘을 합칠 수 있을까요?”
사내가 왼팔을 굽히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명운은 반신반의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군요.”
그가 이루족 사내들과 회의하는 사이 여인과 아이, 그리고 노인들이 죽은 이들의 시신을 치웠다. 이윽고 마융과 사혼이 마을에 도착했다.
“이거 난리가 났군.”
“참혹한 장면이야.”
두 사람은 시체를 치우고 있는 이들을 돕고자 했다. 그러나 이루족은 그들이 거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손님들께서는 촌장님의 집으로 가시죠. 대협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은 앞서 두 사람에게 명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었다.
“촌장님의 집이라면…….”
“저기 가장 큰 나무 위에 지어진 집입니다.”
촌장의 집이 올려진 나무는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보다 훨씬 굵고 높았다.
‘나무가 저렇게 크니, 집이 올라갈 수도 있구나.’
마융은 예를 갖춘 뒤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와 사혼이 촌장의 집에 도착했을 때, 회의가 끝났다.
명운은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이제 오셨습니까?”
마융은 명운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협, 혹시 설득이 끝나신 것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루족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사혼은 참혹한 장면을 되돌아보고는 그의 말을 받았다.
“이렇게 습격을 받았으니, 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루족에게 싸움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했다.
“빨리 도작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닙니다. 대협께서 계셨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것입니다.”
사혼은 명운이 이루족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월교는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명운의 시선은 이루족 사람들의 시신을 향하고 있었다.
“저도 다시 한번 형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사혼의 말에 명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님도 이 광경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명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형님은 생각을 바꾸시지 않을 것입니다.”
“대협!”
이루족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사혼을 본 이루족 사람들이 멈칫했다.
“자네는……”
사혼이 두 손을 모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사린의 동생 사혼이라고 합니다.”
묘족 촌장 사혼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 자네가 사 촌장의 동생인가?”
“더 일찍 도착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이렇게 와 준 것만 해도 다행일세.”
이루족은 묘족도 자신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나 사혼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루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묘족은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어려우니, 그럴 수도 있겠군.”
그들은 묘족을 탓하기보다는 같이 싸울 수 있는 부족을 찾고자 했다.
다음 날.
이루족 사내 셋과 명운 일행이 마을을 떠났다. 그들의 목표는 가능한 많은 부족을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