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74)
374화 눈과 귀를 얻다 (4)
명운과 지소가 회담을 가진 지 이틀.
명운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지소와 수하들은 그가 원하는 정보를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드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은 마부와 행상의 관리를 맡은 박 노인이었다.
“오셨습니까?”
지소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박 노인이 편한 자세로 앉았다.
“이리저리 알아보았네.”
다른 사람이 없을 때, 두 사람은 이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가요?”
“대충 그가 원하는 것은 모았지. 한데 말이야. 그가 진짜 장 대협일까?”
박 노인은 명운의 정체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장께서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반반하단 말이지.”
박 노인도 지소와 마찬가지로 명운의 외모가 천하를 아우르는 대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소가 한 장의 전서를 내밀며 말했다.
“귀주상단에서 보내 온 서신입니다.”
박 노인은 지소가 내민 서신을 받고는 눈을 크게 떴다.
“벌써 귀주상단이 움직였단 말인가?”
“적지 않은 거래가 있을 듯싶습니다.”
“으음, 그가 정말로 장 대협일지도 모르겠군.”
박 노인이 낮게 신음했을 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문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지소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게.”
드르륵.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는 진두였다. 그가 들어서자 박 노인이 자세를 고쳤다.
“왔는가?”
“북쪽 향들에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지소가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
“이틀 전. 그러니까 장 대협이 우리를 처음 찾아온 그 날 아침, 장 대협은 만후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후는 청우현에서 백 리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박 노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도 없이 한나절 만에 백 리를 넘게 내달렸다는 말인가?”
진두가 대답했다.
“그가 장 대협이라면 그렇게 되겠죠.”
그의 대답에는 강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지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이 장 대협이 가짜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네.”
“향주님, 반나절 만에 백 리를 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소가 되물었다.
“안 될 것이 있나?”
“향주님.”
지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공이 극에 달한 고수는 하루에 천 리를 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 대협과 같은 고수에게 백 리는 먼 길이 아닐 것입니다.”
박 노인은 명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친 것은 아니었지만, 백 리를 뛰었다는 것만으로 그를 의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전에 만난 개방 고수는 하루에 삼백 리를 뛰었네. 그가 장 대협이라면 능히 백 리를 뛸 수 있을 걸세. 그리고 그날 그를 보았을 때, 옷에 묻은 먼지와 약간의 흙을 보았네. 이것은 그가 산길을 걸어왔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어르신까지…….”
지소가 진두의 말을 잘랐다.
“진두, 이것을 보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귀주상단에서 온 서신이야.”
진두는 귀주상단에서 서신이 왔다는 말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주상단에서 말입니까?”
“상당한 거래를 제안하더군.”
“으음, 그렇다면 그가 장 대협이 아니라고 해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자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지소는 진두가 끝내 명운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두는 왜 그의 정체를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녀는 계속해서 진두를 설득하기보다는 일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장 대협이 원하는 정보는 모았나?”
진두가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그쪽 일은 실수 없이 진행했습니다.”
그는 의심은 의심,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내였다.
“수고했네.”
진두가 두 손을 풀며 물었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모은 소식들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모은 소식과 이틀 전 전달한 정보들은 오월교 토벌과 큰 관계가 없어 보였다.
“글쎄, 그것까지 우리가 알 수 없겠지.”
지소도 진두와 마찬가지로 명운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겉으로 나타내진 않았다.
‘깊은 의심은 때때로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녀는 강호인과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 *
“이번에 모은 소식은 이것이 다입니다.”
명운은 지소가 가져온 정보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나요?”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월교에 특이한 동향이 있다면 그 즉시 알려 주십시오.”
“연통은 어느 쪽으로 하면 될까요?”
“귀주상단이면 족할 것입니다.”
지소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귀주상단으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귀주상단은 청우현에도 여러 점포를 가지고 있었기에 소식을 전하는 일이 쉬웠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명운이 방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지소가 오른손을 들었다.
“장 대협?”
명운이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무엇을 묻고 싶으십니까?”
“귀주에는 하오문 향이 수십 개입니다. 한데 왜 저희 향을 찾아오신 것이죠?”
지소는 귀주의 수많은 하오문 향 중 청우향을 선택한 이유를 묻고 있었다.
“청우현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답이 되었을까요?”
청우현에 일이 있다.
지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고 싶지만, 이 이상은 실례가 될 것 같아 삼가겠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포권을 취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윽고 그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소는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과거의 나였다면 반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남자를 믿고, 사랑을 품었던 여인이었다. 하나 기녀가 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는 더는 사내를 믿지 않았으며,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청우현의 향주가 될 수 있었다.
* * *
명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될지 모르겠구나.”
그가 준비한 것들은 지소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지.”
시간이 부족했기에 이 이상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바로 짐을 챙겨 객잔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청우현의 현청이었다.
명운은 몰래 담을 넘는 대신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갔다.
현청의 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창을 아래로 내려 그의 앞을 막았다.
“무슨 일이냐?”
문지기는 상대가 강호인이라는 것을 알고도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설마 현청 앞에서 검을 뽑지는 않겠지.’
명운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단리원의 장하가 왔으니, 현령께 알리게.”
단리원의 장하.
문지기는 깜짝 놀랐다.
“자, 장 대협이란 말입니까?”
명운이 손에 든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을 보여 드리게.”
문지기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뒤, 그것을 가지고 현청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현의 관리가 달려 나와 그를 맞이했다.
“현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명운이 관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객청이었다. 객청에는 서예가들의 족자와 풍경을 그린 수묵화가 여럿 걸려 있었다.
‘공손 현령이 서법에 정통하다고 하더니, 정보가 틀리지 않았군.’
청우현의 현령은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청우현 현령 공손박이라고 합니다.”
복성인 공손 씨는 남쪽에서 흔한 성이 아니었다.
명운은 그가 화북 출신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강호인답게 두 손으로 포권을 취했다.
“장하라고 합니다.”
공손박은 명운을 크게 환대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예법은 지키고자 했다.
“앉으시죠.”
그가 자리를 권하자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명운이 자리에 앉자 공손박이 물었다.
“단양현의 영웅께서 무슨 일로 저희 현을 찾아 주신 것입니까?”
인사말 없이 바로 본론이 나왔다.
명운은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이것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현령께 제안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제게 제안할 일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공손박은 시큰둥했다.
“강호와 관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데, 어떠한 제안인지 모르겠군요.”
명운이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들며 말했다.
“강호와 관, 양쪽에 해를 입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공손박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월교 말씀이시군요.”
“오월교를 토벌하지 않으면 귀주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공손박은 미간을 좁혔다.
“사 총병께서 이무산에서 그들을 토벌하였으니,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지방 관리들은 일을 벌이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명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이 다시 현성을 위협해 올 것이라는 말입니까?”
“정악산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정악산은 청우현과 멀지 않았으나 그의 관할은 아니었다.
“정악산 일이라면 곽 현령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명운이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운 것은 그가 말한 곽 현령, 즉 곽사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만났습니다.”
“그가 움직이지 않았군요.”
“조건부로 움직이겠다고 했습니다.”
공손박은 그가 내건 조건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쪽에서 협조하면 자신도 움직이겠다고 말한 것입니까?”
그는 곽사위가 잔머리를 굴렸다고 생각했다.
‘쯧, 명성이 자자한 대협 장하의 청을 거절하자니 부담된 것이겠지.’
지방 관리 입장에서 협객에 불과한 명운의 요청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명성이 자자한 협객의 청을 거절한다면 민간에 악평이 퍼질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악평이 널리 퍼진다면 반대파에서 탄핵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
곽사위는 그것을 막기 위해 공손박에게 일을 돌린 것이었다. 한마디로 공손박에게 명운은 불청객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운은 놀랐다는 듯 눈썹을 세웠지만, 이것은 연기였다.
‘관리들이 서로의 생각을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놀란 척하자 공손박은 순간 우쭐해졌다.
“자신의 관할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현에 미루다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현령께서 나서 주신다면…….”
공손박이 오른손을 바짝 세우며 그의 말을 끊었다.
“정악산은 이쪽의 관할이 아니니 나설 수가 없습니다. 대협께서는 그것을 고려해 주십시오.”
그는 관할을 핑계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내 일도 아닌데, 힘을 뺄 필요가 있나.’
게다가 먼저 오월교를 토벌하고자 한다면 오월교도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정악산에서 난이 일어나면 청우현도 무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손박은 명운의 말에 불쾌감을 표했다.
“대협께서는 지금 본관을 협박하시는 것입니까?”
“협박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공손박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혈기 왕성한 검객이라면, 바로 검을 뽑거나 혈도를 찍을 만한 상황이었다. 물론 명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쪽도 곽사위와 같군.’
그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자신의 패를 꺼내 들었다.
“대인, 사 총병이 이무산에서 중상을 입고 물러났으니, 오월교가 크게 일어난다면 막을 군대가 없을 것입니다.”
사옥찬과 흑기병들은 사천으로 물러나면서 사옥찬의 부상을 비밀에 부쳤다. 물론 소식이 빠른 이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 공손박 같은 지방 관리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 총병께서 중상을 입으셨단 말입니까?”
“말을 탈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것을 대협께서 어찌 아십니까?”
명운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흔들리고 있군.’
그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 자리에 있었으니,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명운이 이무산에서 사옥찬과 함께 오월교를 무너뜨린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그는 사옥찬이 자신을 지켜 줄 수 없다는 사실에 한기를 느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명운은 조금 더 겁을 주기로 했다.
“사 총병의 부상 외에도 흑기병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흑기병은 당분간은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오월교는 교주와 부교주가 모두 건재하니, 곧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는 대인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흑기병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기댈 수 있는 것은 운남에 머물고 있는 허 총병뿐이었다. 하지만 귀주 관리들은 알고 있었다.
운남총병 허진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공손박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허 총병은 난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한 운남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우리끼리 막아 내야 한단 말인가? 후우…….’
그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다행히 오월교에 대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공손박의 눈빛이 약간 살아났다.
“무림맹입니까?”
그도 무림맹의 위명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양성에서 그들이 도움을 주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명운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무림맹은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입니까?”
“산의 민족들이 연합하여 오월교를 막고자 합니다.”
산의 민족들.
관리들에게 귀주의 소수 민족들은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들과 힘을 합해 오월교를 치자는 말씀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공손박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끄응.”
명운은 그가 망설이자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자 했다.
‘관리들이 망설일 때는 이만한 것이 없지.’
그가 꺼낸 마지막 패는 바로 뇌물이었다.
“이것은 이루족이 보낸 선물입니다.”
공손박은 이루족의 선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서현장의 글귀입니다.”
서현장은 오백 년 전에 산동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떨쳤던 서예가였다.
명운은 그가 서예와 서화에 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적절한 뇌물을 준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