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현경과 화경 (3)
십만대산 대명궁.
대명궁의 심장인 태화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누각인 명존각, 이곳의 여섯 기둥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의 첫 번째 제자 명존의 모습이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탁.
찻잔을 놓은 손은 백설처럼 희었다.
“부교주님께서 그들을 남쪽으로 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교주 유청은 움직임이 크지 않은 사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마진의 요청을 받지 않고 움직였다.
“나도 교주님을 모시는 자라네.”
교주 명운을 생각해서 움직였다는 말.
“연배 때문일까요? 부교주님께서는 교주님을 모신다기보다는 조언하는 쪽으로 자꾸 생각하게 되네요.”
“교주님을 모시는 데 나이는 상관없네.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명운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 두 사람이 천마신교를 움직였다.
“그대야말로 큰 수를 두었더군.”
“그녀 스스로 움직인 것입니다.”
그녀.
사마진이 입에 올린 것은 빙왕이었다.
“나는 그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들을 보낸 것이네.”
“잘하셨습니다.”
사마진은 유청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오월교와 싸움이 커졌으니,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실 것이다.’
유청이 하얀 주전자를 들며 화제를 바꾸었다.
“북쪽의 일은 어떤가?”
북쪽.
그곳에는 명운의 큰형이자 명증의 장남인 명천이 대족장 이누한과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올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닌가?”
“글쎄요.”
명천은 언제나 남하를 꿈꿨다. 그러나 대족장 이누한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십만대산보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교역로가 훨씬 중요했다.
“북쪽에 조금 더 관심을 두게.”
“부교주님께서는 아직 명천을 염려하시는 것이군요.”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전대 교주님의 장자니까.”
사마진이 살짝 말끝을 올렸다.
“그에게 이끌리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십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기우라고 하기에는…….”
“교주님께서 대명좌의 주인이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네. 지금은 아주 작은 가능성까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네.”
사마진은 찻잔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교주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부교주 유청은 북쪽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남쪽의 파천궁, 북쪽의 명천, 이 둘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당분간은 걱정이 없을 걸세.”
그와 사마진이 명존각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십만대산에서 남쪽으로 천 리가 넘게 떨어진 계곡에서 두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랴! 이랴!”
말을 탄 채 창을 등에 멘 자가 선두에 섰고, 그 뒤를 검은 무복에 검을 찬 자가 따랐다.
“다음 마을은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지도에 따르면 삼십 리.”
“그 짧은 거리가 삼십 리나 되나?”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할 거야.”
창을 멘 자는 하후문, 검을 찬 자는 조광이었다. 그들은 부교주 유청의 밀명을 받고는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부교주님께서 왜 우리를 남쪽으로 보내셨을까?”
“밀서에는 대협 장하와 협조해서 오월교를 토벌하라고 되어 있던데?”
“대협 장하라면 소문의…….”
“단리원의 고수라고 하더군.”
단리원은 무림맹에 속한 문파가 아니었기에 천마신교와 척을 지고 있지 않았다. 좋게 보면 중립, 나쁘게 본다고 해도 적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우리를 보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후문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실적을 쌓으라는 말일 수도 있지.”
실적.
두 사람은 명운이 교주가 된 이후, 요직에 기용되었지만, 아직 확실한 뭔가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특히 조광의 경우 무명에서 단번에 요직에 기용되었기에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흠, 오월교 토벌, 그게 실적이 될까?”
“남쪽에서는 제법 큰 사건이라고 하더군.”
두 사람은 아직 그들이 도와야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후문이 앞서 달리며 말했다.
“조금 더 달린 뒤에 말을 바꾸지.”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두 사람은 여섯 필의 말을 바꿔 타면서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며칠 지나지 않아 귀주에 도착할 터였다.
“조광.”
“왜?”
“옛날 기억나나?”
“옛날이라면 서숙에서 처음 만난 그날?”
하후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는 모양이군.”
조광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엉망이었지.”
“그랬던가?”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은 나았어.”
조광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시비가 붙어서 싸우던 관흠과 종영세였다.
‘도토리 키재기였지만, 그 둘은 좀 심각했지.’
당시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린 것은 총관 강하원이었다. 그가 말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피를 보고 나서야 싸움을 끝냈을지도 몰랐다.
하후문은 조광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멀쩡한 것은 자네 하나였지.”
조광은 그의 말에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허, 날 너무 띄워 주는데?”
“띄우는 게 아니야. 나도 제법 문제가 있었거든.”
“자네가?”
하후문은 관흠이나 종영세처럼 호전적이지 않았고, 팽헌충처럼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지도 않았다.
“마음이 병들어 있었으니까.”
그는 서숙에 오기 전까지 일종의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져 있었다.
조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살인 때문이었나?”
천마신교 무인 중에는 여자나 어린아이를 죽이라는 냉혹한 임무를 맡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경우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이들이 있었다.
조광은 하후문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사신대에 속해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하후문의 사연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살인 때문은 아니었어.”
“하면?”
“상관의 배신쯤일까?”
“상관의 배신이라고?”
“말하면 너무 길어.”
조광은 그가 말을 흐리자 어깨를 으쓱했다.
“뭐, 깊이 묻지는 않지.”
하후문이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자님께서 그 삐뚤어짐을 고쳐 주셨다는 것이야.”
그는 아직도 명운을 공자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교주님을 만나고 달라졌다는 말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지.”
두 사람은 어느덧 산길에서 벗어나 평지로 들어섰다.
“자네 말대로 마을이 보이는군.”
하후문이 앞서 달리며 물었다.
“그때가 그립나?”
“종종.”
“자네라면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조광이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라면 다르다고?”
“조장이 된 이후, 완벽한 모습만 보였잖아.”
조광은 명운이 가장 먼저 재능을 일깨워 준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정이라는 벽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후……. 난 틀렸어.”
하후문이 그의 긴 한숨에 혀를 찼다.
“자네가 틀렸으면, 난 답 근처에도 못 갔을 거야.”
조광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요즘 내 꼴을 보라고.”
“자네가 어때서?”
“심마가 가득해.”
조광의 마음을 채운 심마.
그 심마는 한 여인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이지.’
그가 마음에 품은 여인은 혜선단주 장연비였다.
장연비는 부교주 유청의 제자로 무공의 고강함은 대호법 사마진과 견줄 수 있었다. 조광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만큼은 아니라도 그 차이가 낮은 언덕과 태산의 봉우리만큼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심마?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런 게 있어.”
조광은 자신을 귀주로 파견한 것이 부교주 유청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대호법님이나 석 대주님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일지도 모른다.’
대호법 사마진, 흑살대주 석비연.
두 사람 중 한 명이 그의 심마를 읽고 그를 십만대산에서 멀리 떠나게 한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번 여행에서 심마를 떨쳐 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품은 정을 지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절정의 경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 * *
“손님이 왔는가?”
빙왕은 명운의 물음에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을 어찌…….”
명운 정도 되는 사내가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봤을 리는 없었다.
‘우연히 본 것인가?’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명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 기운을 가진 자가 나타났는데, 내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빙왕은 그의 한마디에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녀는 명첩을 보고 나서야 명왕이 이곳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가 내뿜고 있는 기운만으로도 그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격이 다르다.’
그녀가 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이 장 대협을 찾아왔었습니다.”
쪼르륵.
명운은 먹물을 만들기 위해 벼루에 물을 채웠다.
“어떤 손님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빙왕이 짧게 대답했다.
“자객입니다.”
“자객?”
“파천궁에서 장 대협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보낸 자객입니다.”
탁.
명운이 연적(물통)을 내려놓았다.
“그대가 설득해서 돌려보낸 것인가?”
“아닙니다.”
“아니다?”
“그저 시간을 벌었을 뿐입니다.”
명운은 낮게 신음했다.
“흐흠.”
빙왕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협께서는 대전을 앞두고 계십니다. 지금 일이 벌어진다면 대전에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굳이 명왕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시진이면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다.’
명왕은 뛰어난 무공을 지녔지만, 추적술까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명운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걸릴 터였다.
명운은 먹을 잡았다.
“그래서 도망치라는 말인가?”
“도망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시 자리를 피하시면…….”
스윽. 스윽.
명운이 먹을 갈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가 자리를 피하면 쫓아오겠지.”
“대전이 끝난 뒤에 싸우셔도 됩니다.”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파천궁에서 자객을 보냈다면, 오월교 정벌을 막기 위함이었다.
“굳이 싸우시겠습니까?”
“무리해서 싸우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피하는 것은 원치 않네. 게다가 상대는 파천궁이 아닌가?”
“대협.”
명운은 먹을 놓은 뒤 빙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날 걱정하는 것인가?”
“그, 그렇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말았다.
명운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군.”
그는 파천궁의 고수들과 여러 차례 싸운 경험이 있었다.
‘그녀보다는 확실히 강한 것 같고, 아마 두 호법보다도 위인 모양이군.’
파천궁의 좌우호법보다 위에 있는 존재.
명운은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오늘 찾아온 이는 명왕인가?”
빙왕은 그의 물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교주님은 속일 수 없겠군요.”
“날 속인다고 해도 얻는 이득은 크지 않을 걸세.”
“맞습니다. 오늘 교주님의 목숨을 거두고자 찾아온 자는 명왕입니다.”
명운은 시선을 다시 책상으로 돌렸다.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나와 비교하면 어떠한가?”
“모르겠습니다.”
빙왕은 명운의 실력을 알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녀가 모르겠다고 말했다면, 상대는 최소한 무극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었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군.”
“아닙니다.”
“아니야. 둘이 동등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
빙왕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는 거짓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두 사람의 무공을 나란히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명운은 붓을 잡았다.
“둘의 무공 수위가 같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네.”
빙왕은 두 손으로 치마를 꾹 잡았다.
“대협, 무공 수위가 같다면, 승산은 반반입니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운은 붓을 움직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공 수위가 같다면 반반이 아닐세.”
“대협,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빙왕은 명운이 오만에 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명운은 오만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자네 정도 되면 무공의 수위로만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 않나?”
무공 수위를 빼면, 그날의 몸 상태나 감정의 기복 정도가 승패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것들은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대협께서는 명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군요.”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네.”
“가능성이라고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움직였다.
“명왕이라는 자는 분명 뛰어난 무공을 지녔을 걸세.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
빙왕이 덧붙이듯 말했다.
“그는 제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그 말은 그가 부지런히 무공을 수련했다는 뜻이겠지.”
명운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빙왕은 그래서 더욱 걱정되었다.
“대협께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는군요.”
“설사 그의 무공 수위가 나보다 조금 높다고 해도 이기는 것은 이쪽일세.”
“혹시 신병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빙왕은 그의 현검이 매우 뛰어난 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명운이 믿고 있는 것은 현검의 위력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하면, 무엇을 근거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명운이 짧게 대답했다.
“경험이지.”
“경험이라고요?”
빙왕은 눈썹을 세웠다.
‘나이는 교주님이 더 어리지 않은가? 혹시 반로환동한 고수인가?’
만약 그렇다면 명운의 정체는 명증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장을 누볐네. 중원은 물론이고 서장과 청해 그리고 서역까지 다녀왔지만, 그곳에서 나는 많은 고수를 만났네.”
무공은 약하지만, 끈질김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던 아라산, 그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준 화산파의 검선, 죽은 자를 앞세웠던 무막과 마막, 그리고 믿기지 않는 괴력을 지니고 있던 아수라까지. 그는 아버지 명증보다도 더 다양한 상대와 싸웠다.
‘실력이 같다고 하면, 결단력과 경험으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명운은 그 두 가지에서 자신이 명왕을 능가한다고 자부했다.
“그들과 싸운 경험이 있기에 명왕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명왕이 지금까지 싸운 자들은 그대들 파천궁 고수들과 일부의 적뿐이겠지. 그 정도로는 나의 경험에 미치지 못할 걸세.”
빙왕은 그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협의 말씀대로 여러 적과 싸운 경험은 대협이 더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요.”
그녀는 생각했다.
명운이 앞선다고 해도 승률은 육 할을 넘지 않으리라고.
‘승률이 육 할이라면, 열 번 싸우면 네 번은 진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그 네 번이 오늘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