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현경과 화경 (4)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빙왕은 거듭 명운을 말렸다.
“대협, 정녕 가셔야 합니까?”
“그와 약속하지 않았나?”
“약속한 것은 대협이 아니라 저입니다.”
“그대는 나의 대리인으로 약속한 것이다.”
빙왕이 명운을 바짝 따라붙었다.
“제가 거짓말했다고…….”
“그대가 거짓을 말했다고 해도 이쪽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다.”
“대협!”
명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싸워야 할 사람 아닌가?”
명왕과는 언젠가 결판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아닙니다.”
“이쪽이 이길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던가?”
경험에서 앞선다.
빙왕도 명운의 주장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오늘의 싸움을 반대했다.
“아직 진마가 남아 있습니다.”
마음을 돌리기라도 한 것일까?
명운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진마인가?”
빙왕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에 힘을 주었다.
“자칫 명왕과 싸워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진마를 이롭게 할 뿐입니다. 명왕과 싸움은 진마를 무찌르고 난 뒤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명운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럼, 그에게 이야기를 해보지.”
“대협, 그는 진마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의 말을 들어 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오월교의 몰락을 막기 위해 명왕이 나섰다.
명운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가 걸음을 옮기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전장에서 그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지금 싸우는 것이 낫네.”
그는 결전의 날 진마만을 상대하고 싶었다.
‘진마와 명왕이 협공하면 그것이 오히려 더 까다롭다.’
명운은 한마디로 각개격파를 꿈꾸고 있었다.
반면, 빙왕은 소모전으로 인한 패배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녀는 명왕을 이기고 나면 진마와 싸울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전은 무리다.’
그녀는 어떻게든 명운을 말리고자 했다.
“대협, 전장에서는 제가 그를 상대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무리야. 그리고 그대가 맡아 줘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그는 그녀가 진마의 남은 제자 중 하나를 맡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서 상대한 둘은 빙왕 못지않게 강했다. 그녀가 나선다고 해도 남은 하나를 상대로 쉽게 우위를 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수.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오월교 부교주 서막과 동시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녀가 막는 사이 내가 진마를 쓰러뜨리고 전투를 마무리 짓는다.’
이것이 그가 그리는 승리의 전개도였다.
빙왕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제가 맡아야 할 사람이라면 진마의 제자입니까?”
“그래.”
“그럼, 제가 그와 빙왕을 동시에…….”
명운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빙왕, 그를 얕보지 말게.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네.”
불가능한 일을 말하지 말라.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명운이 건조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다 왔네.”
멀리 버드나무 아래 한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명왕이었다. 빙왕은 그를 보고는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명왕의 존재감은 과할 정도였다. 그는 마치 자신이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사방에 알리고자 하는 듯 투기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의 투기는 길을 지나는 평범한 사람들은 느낄 수가 없었다.
“며, 명왕입니다.”
“한눈에 알 수가 있어서 좋군.”
명운은 그를 향해 걸어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지웠다.
저쪽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면 이쪽은 감추겠다.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대협.”
명운이 차갑게 말을 받았다.
“여기서 싸우진 않을 거야.”
명왕은 빙왕과 함께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흠, 기척을 지운 것인가?’
기척을 지우는 자들은 암습에 능한 경우가 많았다.
‘대협이라고 하더니, 소문과 다를지도 모르겠군.’
명운은 농부와 숯장이를 지나쳐 버드나무 앞에 이르렀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이십 보 정도에 불과했다.
빙왕은 두 사람이 이미 서로의 간격에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 검강이나 수강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명운은 천천히 포권을 취했다.
“단리원의 장하라고 합니다. 절 찾아오셨다고요?”
명왕은 포권을 취하는 대신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나는 명왕이라고 한다.”
명백한 하대.
빙왕은 명왕의 하대가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도발이다!’
그는 연공실 안에서 무공만 수련한 것이 아니었다. 명왕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빙왕은 그의 도발에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평정심을 흐리기 위한 심리전이다. 여기에 말리면 안 된다.’
그녀는 전음을 통해 명운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명운의 목소리가 그녀의 전음보다 더 빨랐다.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명왕은 그가 태연하게 도발을 받아넘기자 눈썹을 살짝 세웠다.
“내 명성을 들었다고?”
“제 뒤에 서 계신 부인께서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난 분이라고 하더군요.”
빙왕은 명운이 자신을 부인이라 칭하자 가볍게 놀랐다.
‘응대가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미리 생각해 둔 말일까?’
그러나 명운의 한마디는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임기응변으로 대했을 뿐이었다.
명왕이 낮게 웃었다.
“후후후후,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나다?”
명운은 포권을 취한 채 말끝을 올렸다.
“아닙니까?”
명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도발하는군.”
“도발이 아닙니다. 그저 들은 것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날 찾아왔다는 것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순간 명운이 날을 세웠다.
“저는 제 눈으로 본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
명왕은 그의 한마디에 얼굴을 굳혔다.
“좋아. 그대가 원하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하지.”
그는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 주고자 했다.
명운은 여전히 포권을 취한 채였다.
“싸움에 앞서 명왕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유언인가?”
“이번 싸움을 미뤄 주셨으면 합니다.”
명왕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싸움을 미뤄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이유는?”
“저는 진마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명왕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거절한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진마가 죽으면 이쪽도 곤란해지니까.”
명왕은 진마를 혐오했지만, 오월교와 파천궁은 일단 동맹 상태였다.
‘게다가 오월교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다.’
명운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것 참, 어렵게 되었군요.”
명왕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설마 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찾아온 것인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명왕께서 부탁을 들어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말인가?”
“명왕께서는 제가 허튼 이야기를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명운의 명성은 천하에 자자했다. 그는 자신의 명성에 기대어 명왕을 시험하고자 했다.
명왕은 그가 도발을 걸어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그는 명운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구파일방의 협객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사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떠한 자인지.
‘이자는 희대의 효웅이다.’
명왕은 더는 명운을 얕보지 않았다.
“나와 싸울 만한 자격이 있군.”
명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명왕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싸움을 미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거절한다.”
명운은 포권을 풀 수밖에 없었다.
“곤란하군요.”
빙왕은 명왕의 투기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고는 오른손을 가볍게 쥐었다.
‘곧 시작한다.’
두 사람의 강기가 폭발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휩쓸릴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강기가 일어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명왕은 미간을 좁혔다.
“거절한다고 말했다.”
“싸움을 미뤄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싸움을 미뤄 달라는 말이 아니라고?”
“저희가 이곳에서 싸운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말려들 것입니다.”
명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강기는 빙왕의 생각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예정이었다.
“대협이라는 칭호를 지키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
“제 인생의 마지막 부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왕은 이것까지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도 사람들이 많은 마을 입구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장소를 말하라.”
명운이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들며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빙왕은 그가 싸움을 피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장소를 옮긴다는 말은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좋아, 안내해라.”
빙왕은 명운을 따라 이동하기 위해 경공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러나 명운은 경공을 전개하는 대신 명왕에게 말했다.
“이동에 앞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또 묻고 싶나?”
“이쪽을 감시하는 자는 명왕의 수하입니까?”
빙왕은 그의 물음에 멈칫했다.
‘이쪽을 감시하는 자라고?’
그녀는 즉시 오감을 끌어 올렸다.
남서쪽으로 백 보 떨어진 곳에 미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격대인가? 아니면 수왕의 부하?’
명왕이 명운의 물음에 답했다.
“그는 내 수하가 아니라 오월교의 끄나풀이다.”
“그럼, 제거해도 되겠습니까?”
백 보 밖에 있는 적을 죽이겠다.
명운과 같은 고수가 한 말이라면 이는 진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명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허락하지 않겠다.”
“싸움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내가 죽게 되면, 그가 본교에 알릴 것이다.”
자신이 죽게 된다면.
명왕이 죽음을 생각했다.
빙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죽음을 각오했단 말인가?’
그녀가 알고 있는 명왕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내였다.
‘패배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내가 죽음을 말하고 있다. 진심일까?’
명왕의 한마디는 진심이었다. 그는 직접 만나 보고 깨달았다. 대협 장하가 어떠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의 뒤에 감춰진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내가 막지 못하면 진마는 죽는다.’
진마가 죽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파천궁이 위험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명운은 명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령이라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경공을 전개했다.
휘익!
바람과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명왕은 그보다 한발 늦게 경공을 전개했다.
슈익!
그 또한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명운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적당히 달리고 있군. 훗, 그렇군. 전력으로 달리면 오월교의 끄나풀이 따라오지 못할 테니, 속도를 맞춰 주고 있는 것이군.’
강하면서도 세밀하다.
이는 난적이라는 이야기였다.
명왕이 뒤따라오고 있는 빙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빙왕, 그대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명운을 강적으로 인정한다는 말.
빙왕은 미간을 좁혔다.
“두 분이 싸우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명왕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낮게 웃었다.
“후후후, 죽음과 패배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찾아오지.”
죽음과 패배.
빙왕은 파천궁을 떠날 때까지 이 두 단어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파천궁을 떠난 이후, 그녀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겪고 말았다.
‘이번에도 누군가는 그 두 가지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짧게 말을 받았다.
“동의합니다.”
명왕이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물었다.
“빙왕, 내가 그를 이긴다면 본교로 돌아올 것인가?”
빙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한 자를 따르는 것은 성존이 정한 이치. 저는 그것을 어길 생각이 없습니다.”
명왕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대에 대한 처벌은 본교로 돌아간 이후 생각하겠다.”
그는 죽음과 패배를 언급했지만,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
절대적인 강함.
이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탁.
명운이 걸음을 멈춘 곳은 산과 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평지군.’
명왕은 지형에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명운의 선택한 전장을 환영했다.
‘나쁘지 않아.’
타악.
명왕은 명운의 맞은편에 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이전과 같은 이십 보.
빙왕은 그 둘과 거리를 벌린 채 왼쪽으로 돌아갔다.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명왕은 그녀의 말에 낮게 웃었다.
“후후후, 굳이 증인이 필요할까?”
둘 중 하나는 오늘 죽는다.
명운이 오른손으로 검을 만지며 말했다.
“승패를 결정하는 선에서 끝내면 안 되겠습니까?”
서로의 무위를 견줘 보는 선에서 그치자.
명왕이 비웃듯 말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명운은 아직 검을 뽑지 않았다.
“살기가 없는 검은 제대로 된 검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명왕이 차갑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
“살기? 그런 것이 아니지. 전장에서 생과 사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기고자 하는 절실함이 부족한 것뿐이야.”
명운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비무로는 안 된다는 말이군요.”
빙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무공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온다. 교주님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녀는 명운의 질문 그 자체에 의문을 가졌다.
설마 명왕을 흔들고자 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실패였다.
명왕은 이러한 말에 흔들리는 사내가 아니었다.
스르릉.
명운이 검을 뽑았다.
“도착한 것 같군요.”
빙왕은 도착한 것이 오월교 첩자라는 것을 깨닫고는 살짝 눈썹을 위로 올렸다.
‘교주님은 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것뿐이었단 말인가?’
명운이 검을 뽑자 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군.”
그는 무기 없이 수강으로 싸우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