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모든 것이 끝나는 곳 (3)
명운에게는 마군이라는 천리마가 있었다. 마군은 하루에 수백 리를 거뜬히 뛰며 때때로 천 리를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마군은 십만대산에 있었다.
“서두르지.”
명운이 허리띠를 바짝 조이자 빙왕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대협, 말을 준비하겠습니다.”
“전투가 이미 시작했으니, 말을 타고 가면 늦을 거야.”
경공을 전개해 정악산까지 달려가겠다는 말.
“정악산까지는 무려 이백 리입니다.”
이백 리.
평범한 군마는 물론이고, 마군과 같은 천리마도 한나절은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왜? 내가 시간에 못 맞출 것 같나?”
명운의 경공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빙왕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대협께서는 말을 타고 따라와 주십시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명운의 몸 상태였다.
“내 걱정할 필요는 없네.”
“원래는 내일까지 쉬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대협!”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갈 걸세.”
빙왕의 걱정을 키운 것은 아수라와 싸울 때도 이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친 상태에서 진마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진마는 최강의 상대 중 하나였다.
그녀가 명운을 막아서며 말했다.
“제가 선행해서 전황을 살피겠습니다.”
“날 믿지 못하는군.”
“대협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마를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마는 명왕과 같은 무위를 지녔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빙왕의 말대로라면 지친 상황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뒤 도착하면 모든 것이 무의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정악산에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곤란하군.”
빙왕은 그가 고민한다는 것을 알고는 목에 힘을 주었다.
“제가 힘을 아끼지 않고 경공을 전개하겠습니다. 그러면 대협에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천리마보다는 빠를 것입니다.”
빙왕의 무공은 사마진이나 천준기를 압도했다. 그녀가 전력을 다해 경공을 전개한다면 그녀의 말대로 명운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보다는 훨씬 빠를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지. 대신 내가 올 때까지 싸움에 끼어들지 말게.”
빙왕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 보게.”
“선행하겠습니다!”
빙왕은 몸을 돌린 뒤 바로 경공을 전개했다.
쉬익!
바람이 그녀의 몸을 타고 뒤로 흘러 나갔다.
명운은 그녀가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쩌면 그녀가 양 좌사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군.”
신교좌사 양대충.
그는 천마신교의 삼인자로 명운과 부교주 유청 다음의 무위를 지닌 고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다함에 발이 묶여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도 서둘러야 한다.”
명운은 말을 타고 가기 위해 마굿간으로 향했다.
* * *
급히 달려온 전령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교주님, 강시들이 곧 멈출 것입니다.”
서막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모악이 그렇게 말하더냐?”
주교 모악, 그는 주술사들과 함께 반대편 숲에서 강시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낮이라서 강시들의 마기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고 합니다.”
해와 양기는 강시들의 천적이었다. 대낮에 활동하는 강시들은 그 위력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움직일 수 있는 시간마저 크게 줄어들었다.
서막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이래서 빨리 끝냈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가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돌아가 전해라. 강시들이 멈출 때까지 싸우라고.”
전령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그렇게 전해도 되겠습니까?”
서막이 노기를 일으키며 되물었다.
“내가 명을 바꾸는 것을 보았느냐?”
“아, 아닙니다.”
전령은 급히 두 손을 위로 올린 뒤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서막은 강시 이백 구를 모두 잃더라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장하가 나타났다면 이곳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정악산 앞의 이름 없는 벌판에서 오월교와 그의 운명이 결정될 터였다.
“깃발을 세워라!”
그가 명을 내리자 옆에 서 있던 향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깃발을 세워라!”
깃발을 세운다는 것은 총공격을 펼친다는 뜻이었다. 본진에 모여 있던 이백 교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부교주님께서 나서시는 것인가?”
“장하가 나타났으니, 당연하겠지.”
그들은 서막이 선두에 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막은 선두에 서지 않았다.
“염두, 네가 공격을 맡아라.”
향주 염두는 그의 명에 두 손을 모았다.
“존명.”
그는 앞서 전령처럼 왜 자신이 공격을 맡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부교주님께서는 아마 교주님께 가실 생각이신 것 같다.’
교주 진마.
그가 등장한다면 전장의 소란은 미풍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교주님은 그만큼 대단하니까.’
염두는 교주 진마의 권능을 본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나를 따르라!”
염두와 함께 본진을 지키던 정예병 이백이 왼쪽으로 향했다. 그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그곳에 장하라고 추측되는 사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막은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는 길게 심호흡했다.
“후우…….”
그는 염두가 생각한 것처럼 교주 진마를 만나고자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지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서막에게는 한 가지 패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주 진마가 만든 마물 나가였다. 그는 나가를 깨우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가 떠난 뒤.
전장에서는 격전이 이어졌다.
“공격! 공격하라!”
기세를 탄 산의 전사들과 관군들이 반격에 나섰고, 오월교도와 강시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쾅!
강시가 휘두른 팔에 전사의 방패가 날아갔다. 그러나 전사는 물러나지 않고 강시의 목에 만도를 꽂았다.
팍!
“죽어라!”
강시는 이미 죽은 자였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대신 크게 팔을 휘둘러 전사를 날려 버렸다.
“크윽.”
바닥에 쓰러진 전사가 신음을 흘렸을 때였다. 다른 전사 두 명이 악착같이 싸워 강시의 목을 잘라 냈다.
투둑.
머리가 잘려 나간 강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강시를 죽였다!”
“보았는가? 우리도 강시를 이길 수 있다!”
산의 전사들은 점점 강시와 싸움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전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니었다. 주교 도악과 향주, 염두가 이끄는 증원이 도착하자 오월교는 어느 정도 전력을 맞출 수 있었다.
“본산을 지켜라!”
“성지가 더럽혀지는 것을 어찌 지켜볼 수 있단 말인가!”
“본산과 성지를 지키자!”
도악이 선두에서 정예병을 이끌자 산의 전사들이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다시 힘을 낸 것이 하후문이었다.
파악!
그가 휘두른 창이 갑옷을 입은 오월교도를 쓰러뜨렸다.
“비켜라! 비켜!”
수백 명 단위의 전투에서는 창이 검을 압도했다. 특히 하후문과 같은 명창이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면 그 위력은 배가 되었다.
파악!
창을 다시 휘두르자 정예병 두 명이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저 녀석이!”
도악은 그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강시로 놈을 막아라!”
“강시로 말입니까?”
“숲으로 가서 전해라! 놈을 막아야 한다고!”
“존명!”
도악의 명을 받은 전령이 급히 주교 모악에게 달려갔다. 모악은 전령의 연락을 받고는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강시 중 열 구를 움직여 하후문을 공격하고자 했다.
‘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우익이 무너질 것이다.’
하후문은 강시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말을 달려 우측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강시들 또한 그를 따라왔다.
그는 마기를 내뿜는 강시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것이 바로 강시구나!”
강시와 싸우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는 앞서 산의 전사들이 강시를 쓰러뜨리는 것을 목격한 바 있었다.
‘간다!’
하후문은 말의 속도를 높인 뒤 창을 크게 들었다. 그러고는 위에서 아래로 전력을 다해 내리찍었다.
“하합!”
퍼어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강시의 머리가 깨어졌다.
머리가 깨어진 강시는 머리가 잘려 나간 강시와 마찬가지로 무력화되었다.
하후문은 움직이지 않는 강시를 밀치고 두 번째 강시를 상대했다.
“타핫!”
옆으로 크게 휘두른 창이 강시의 목을 베어 냈다.
팍!
머리가 떨어진 강시 또한 그 움직임을 멈췄다.
하후문은 나머지 강시들에게 포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른쪽으로 말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말도 그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강시 사이를 돌파해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왔다.
“강시로는 날 쓰러뜨릴 수 없다!”
그가 고삐를 틀어쥐며 목소리를 높이자 강시를 움직이던 주교 모악은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사옥찬과 같은 놈이구나.’
사천총병 사옥찬.
그는 이무산에서 철기와 철창으로 오월교와 강시를 짓밟은 바 있었다.
‘그때를 재현해서는 안 된다.’
모악은 남은 강시들로 하후문을 잡고자 했다. 하지만 하후문이 탄 말은 강시들보다 빨랐다.
‘큭, 이무산 때와는 다르구나.’
이무산 전투는 오월교도와 강시에게 유리한 산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이곳은 평지였다. 하후문은 강시들과 거리를 벌린 뒤 태세를 정비해 선두에 선 강시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투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그를 쫓아오던 강시의 숫자가 네 구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넷이면 해볼 만하다!’
그는 말을 돌려 단숨에 네 구의 강시를 쓰러뜨렸다.
파악! 파파팍!
그가 십여 구의 강시를 쓰러뜨리자 산의 전사들이 환호했다.
“패왕의 강림이다!”
“장군을 따르라!”
주교 도악은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후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놈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다.’
무공이 뛰어난 준악이나 소악이었으면 모를까?
그의 무공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다.’
지금 도망친다면 당장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부교주 서막은 배신자를 결단코 용서하지 않았다.
‘버틸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가 잔뜩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반대편 전장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장 대협이 적장을 베었다!”
관군이 장 대협이라고 칭한 이는 조광이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적진을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적병을 지휘하던 염두의 몸에 검을 박아넣었다.
파악!
붉은 핏물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윽.”
향주 염두는 용맹한 자였지만,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의 일검을 받아 내기에는 무공이 부족했다.
“향주님!”
그의 부하들이 달려들자 조광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왼쪽에 혈로가 열렸다. 그는 말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오며 검을 들었다.
“적장을 베었다!”
그의 외침에 관군이 열광했다.
“와아아아아아!”
“장 대협이 적장을 베었다!”
주교 도악이 들은 것은 바로 이 환호성이었다.
염두의 부하들이 검을 든 조광을 보며 무기를 들었다.
“향주님의 복수를 해야 한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나머지 오월교도들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장하는 이길 수 없어.”
“맞아, 장하를 이기려면 부교주님이 있어야 해!”
오월교도들은 고개를 돌려 본진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곳에 있어야 할 서막이 보이지 않았다.
“부교주님이 우리를 버렸단 말인가?”
“제길!”
“다 끝났어.”
모두가 물러나자 염두의 수하들도 버틸 수가 없었다.
“퇴각, 퇴각하라!”
“퇴각한다!”
조광은 굳은 얼굴로 그들을 뒤쫓았다.
촤아아악!
그가 검을 뻗을 때마다 어김없이 오월교 정예가 쓰러졌다.
“장 대협을 따르라!”
관군도 그를 따라 진군했다.
“오월교를 토벌하라!”
“승리가 눈앞에 있다!”
관군의 별장들까지 힘을 내서 목소리를 높이자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중군에 남은 오월교 향주들은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이길 수가 없다.”
“이렇게 끝날 줄이야.”
“부교주님과 교주님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향주들은 마치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달아나자.”
한 사람의 공포가 옆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달아나자고?”
“우리가 다 죽게 생겼잖아.”
“그렇게 하자.”
“달아나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다.”
향주들마저 전장에서 달아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백여 구 이상 남아 있던 강시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강시들이 멈췄다?”
오월교도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강시들을 맡고 있던 주교 모악은 혀를 찼다.
“쯧, 시간이 다했구나.”
강시들의 몸에 쌓여 있던 마기가 태양의 열기에 모두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주교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사들의 다급한 물음에 주교 모악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월교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바로 그때 깊은 울림이 정악산에서 들려왔다.
우우우우우우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울림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듯했다.
“이것은 저세상의 울림이다.”
주교 모악은 전신의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미간을 좁힌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하후문도 창을 꼬나 들고는 미간을 좁혔다.
‘저주가 담긴 울음인가?’
조광 또한 말을 멈췄다.
“이건 위험하다.”
울음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위험은 모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