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
4화 천마의 후예 (4)
잠시 뒤.
일조장 권택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부대주 원훈이 찌푸렸던 이마를 펴며 말했다.
“왔는가?”
권택은 그의 표정만 보아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어째 좋은 일로 부르는 법이 없군.’
그가 확인하듯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원훈이 소매를 살짝 걷으며 대답했다.
“별것 아닐세. 칠공자께서 가솔들을 이끌고 오셨다군. 자네가 맡아 주겠나?”
권택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번 문제는 칠공자인가? 자기가 나서기 싫으니 나를 불렀군.’
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명가와 관련된 일이군요. 하면 어느 선까지 지켜야 하는 겁니까?”
“선? 그런 것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알아서 하라.
이는 아랫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답 중 하나였다.
‘쯧,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이군.’
기준을 정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에서 해방되겠다.
속이 뻔히 보이는 지시였다.
권택은 부아가 상당히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상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존명.”
원훈은 그가 허리를 숙이자 걱정을 덜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택, 고맙네. 자네가 있어 내가 언제나 발을 편히 뻗을 수 있네.”
“속하는 책무를 다할 뿐입니다.”
권택은 대전을 나오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항상 입으로만 고맙지.’
그는 게으른 상관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그것을 입에 옮기진 않았다.
정문으로 나아가니, 원훈이 말한 것처럼 명운과 시종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를 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권택은 재빨리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일조장 권택이라 합니다. 공자께서는 무슨 일로 현무대를 찾아오셨는지요?”
그는 명운의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최근 현무대 무사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있어 사례를 하고자 왔네.”
사례.
권택은 피를 보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원한이나 시비가 아니었군. 이런 일이라면 몇십 건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천마신교에는 어떠한 사건을 두고 반대로 이야기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뭐 칠공자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진 않지만 말이야.’
그가 명운에게 물었다.
“현무대 무사라면 누구입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십칠조 조장 정문일세.”
정문.
그는 권택도 익히 알고 있는 무인이었다.
“혹시 정 조장이 어떠한 도움을 드렸는지 알 수 있을까요?”
명운은 자신이 겪은 일에 적당히 양념을 쳐서 이야기했다.
“내가 궁에 들어갔을 때였네. 여섯째 형과…….”
권택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정 조장이 공을 세웠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처럼 사례를 하고자 하네.”
권택은 사례를 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명운의 호의를 그냥 물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은자 같은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무인이었기에 명운의 계책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 총관.”
명운이 부르자 강하원이 허리를 굽히며 무복이 담긴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명운은 그것을 받은 뒤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하나 더 넣었다.
“권 조장, 이것을 정 조장에게 전해 주게.”
권택은 상자를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께서 직접 전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물음에는 강하원도 동의했다.
‘공자께서는 직접 사례를 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명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런 일로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는 않네. 마음이 전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네.”
애어른 같은 말투였지만, 권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이것을 정 조장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권 조장, 부탁하네.”
“살펴 가십시오.”
권택은 돌아서는 명운 일행을 보고는 무난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상자에 무엇을 담은 것일까?’
호기심.
그것은 때때로 일을 망치는 원인이 되었다.
“하…….”
낮은 한숨.
권택은 상자에서 시선을 뗐다.
‘풋내기도 아니고, 이런 것에 호기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는 무엇이 일을 그르치는지 잘 알고 있는 무인이었다.
‘호기심이 많으면 대명궁에서 오래 살긴 힘들지.’
“권 조장님, 괜찮으십니까?”
권택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팔조 조장 주영군이었다.
“아, 영군.”
“조장님을 도우라는 지시가 있어 왔습니다만, 일이 이미 끝난 것 같군요.”
권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었네.”
“제가 부대주님께 보고할까요?”
“아닐세. 내가 직접 가겠네.”
권택은 상자를 든 채 부대주 원훈에게 돌아갔다.
그는 원훈에게 일의 전후를 설명하고는 명운이 준 상자를 내밀었다.
“이것이 칠공자가 내린 사례품입니다.”
부대주 원훈.
그는 얼핏 보면 게으르고 나태하며 자기 일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무능력자였다.
그러나 실력을 중시하는 천마신교에서 그런 자가 부대주에 오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현무대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열어 보게.”
권택이 멈칫하며 물었다.
“열어도 될까요?”
원훈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에 따라서 이번 일이 정의될 걸세.”
권택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사례품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사연이 있는 건가?’
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스륵.
원훈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
“쯧쯧, 큰일이군. 큰일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 * *
서숙으로 돌아가는 길.
강하원은 명운이 상자 안에 넣은 물건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상자 안에 무엇을 넣은 것일까? 혹 비수나 비표 같은 물건일까?’
명운은 그의 얼굴이 편치 못한 것을 보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왜 울상인가?”
강하원이 얼굴을 펴며 대답했다.
“울상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답?”
“공자님께서 상자에 넣은 물건 말입니다.”
강하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은자입니까?”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게 은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맞는 말이었다.
강하원은 명운에게 은자를 내어 준 적이 없었다.
“그럼 무엇을 넣으신 겁니까?”
“알고 싶나?”
강하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속하가 알면 안 되는 일이라면,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운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화운심공(化雲心功).”
강하원은 명운의 말을 듣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운심공이란 말입니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명운은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왜? 내어 주면 안 되는 물건인가?”
강하원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공자님, 그것은 절대 내어 줘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그는 나이 어린 명운이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또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깊지만, 아직은 완벽할 수가 없구나.’
화운심공은 서숙에서 보관하고 있는 무공서 중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것을 이리 쉽게 내어 줄 수는 없었다.
“절대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강하원은 앞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명운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말끝을 올렸다.
“서숙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기에 내어 줄 수 없다. 그 말인가?”
“그러합니다.”
강하원은 당장 돌아가 물건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운심공이 그리 대단한 책이라면, 돌아가서 다시 만들도록 하지.”
강하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만들다니요?”
“화운심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고 있다네. 외운 것을 그대로 적어 책을 만들면 또 한 권의 화운심공이 되지 않겠는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화운심공을 다 외웠다니, 도대체…….’
강하원이 재빨리 물었다.
“정말로 화운심공을 다시 쓰실 수 있는 겁니까?”
명운은 속으로 피식했다.
‘스승님께 종아리를 맞으면서 외우고 또 외운 것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는 대답 대신 화운심공의 첫 구절을 읊었다.
“화운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화합하게 하는 이치이다. 이는 통(通)과 합(合) 그리고 서(緖)로 나뉘며…….”
강하원은 눈을 크게 뜨며 생각했다.
‘세상에! 이 아이는 내 잣대로 재주를 잴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그가 명운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공자께서 화운심공을 다 외우셨기에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화운심공을 내어 줄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 그것을 내어 주신 겁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필요해서 그랬네.”
“필요해서라니요?”
명운이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강 총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강하원에게는 억울한 물음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속하, 이번만큼은 공자님의 생각을 읽지 못하겠습니다.”
명운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무복으로 넷째 형의 시기심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정문의 마음은 얻을 수 없을 것 같더군. 정문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가 현무대에서 내쳐진다고 해도 우리 쪽으로 온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정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과한 선물.
그것이 바로 화운심공이었다.
“화운심공이라면…….”
“정 조장의 마음을 조금은 움직일 수 있겠지.”
강하원은 명운이 노리고 있는 것이 정문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대산팔가 중 하나인 귀주석가의 힘을 얻을 수 있다면, 화운심공 정도는 몇 권이라도 내어 줄 수 있다는 건가?’
그는 열두 살 소년의 심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 * *
화운심공.
지금은 사라진 월교의 무공.
이것은 흔히 익힐 수 있는 토납법과는 격을 달리하는 내공심법이었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난처한 얼굴을 한 이는 현무대 일조장 권택이었다.
“자네 말에 따르면 칠공자가 정문에게 보내는 사례품 아닌가?”
“사례품이라 하기에는 지나칩니다.”
부대주 원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 사실을 알면 사공자가 가만히 있지 않겠군.”
“사공자께서 말입니까?”
“현무대 조장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공자와 이 정도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의심병이 도질 걸세. 필시 그것을 받은 정문을 내치라 하겠지.”
사공자 명준의 의심병은 현무대에서도 유명했다.
“사례품을 돌려보낼까요?”
원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사례품을 받지 않았나? 받은 것을 돌려보낸다면 칠공자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겠지.”
권택은 성실한 무인이었지만, 계책에는 약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훈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이렇게 하세.”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계책을 권택에게 말했다.
계책을 들은 권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은 계책입니다.”
원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게 좋은 계책은 아닐세. 미봉책이라고 할까?”
그는 나태해 보였지만,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