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개봉으로 가는 길 (4)
“쿨럭.”
오단은 피가 아닌 헛물을 토해 내고는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누가 보아도 그의 패배였다.
“젠장…….”
명운은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기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오단은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싸울 수 있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피를 토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결국,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졌다.”
부채주의 한마디에 비선채 수적들이 무기를 아래로 내렸다.
“부채주님께서 패하셨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오단은 얼굴을 찡그리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마차를 배로 옮겨라.”
수적들은 그의 명에 무기를 거두었다.
“예! 알겠습니다!”
명운은 절도 있게 움직이는 비선채 수적들과 내뱉은 말을 책임지는 오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강수로채의 명성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군.’
물론, 그는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마차나 배를 옮기는 척하면서 빙왕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께서는 자리를 비켜 주시죠.”
명운의 말에 빙왕과 노서가 마차에서 내리자 조광이 그들을 호위했다.
“마님, 이쪽입니다.”
빙왕은 겁을 먹은 듯한 얼굴로 명운에게 다가와 물었다.
“대협, 괜찮을까요?”
명운은 그녀의 물음과 표정이 모두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이면 비선채가 아니라 장강수로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총채주의 목도 가볍게 따겠지.’
천마신교에서도 그녀와 견줄 수 있는 실력자는 부교주 유청이나 신교좌사 양대충뿐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럴까요?”
“절 믿어 주십시오.”
빙왕은 아주 자연스럽게 겁먹은 중년 여인을 연기했다.
“대협께서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오단은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 몸을 돌렸다. 그러곤 품 안에 넣었던 복대를 확인했다.
‘복대에 아무 자국도 없다!’
그는 나무와 천을 엮어 만든 복대가 부러졌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가 확인한 복대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중수법인가?’
중수법을 펼칠 수 있는 고수라면 애초에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오단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염라대왕 앞으로 불려 갔었다는 말이군.’
그는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강호 밥을 제법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헛먹었군.’
무공과 식견.
두 가지 모두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 *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전선.
오단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돛과 연결된 밧줄을 잡고 앉아 있었다.
“실력이 대단하더군.”
명운은 엄지를 세우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쪽 실력도 괜찮았네.”
오단은 그의 칭찬에 씁쓸한 마음뿐이었다.
‘약관을 막 넘은 것으로 보이는데, 중수법까지 익히고 있다니.’
명운의 뒤에는 하후문이 창을 든 채 빙왕과 노서를 지키고 있었고, 조광은 마부였기에 일행과 떨어져 마차 옆에 서 있었다.
오단이 일행을 슬쩍 살펴보고는 물었다.
“진짜로 호부상서의 부인인가?”
그는 아직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내 실책이지만, 호부상서 부인의 행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명운은 그의 물음에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측실이라면?”
오단은 이해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렇군.”
정실부인이 아닌 측실이라면 호위나 시녀의 수가 적은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쯧, 왜 측실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 빙왕을 한 번 더 살폈다.
‘중년인데도 불구하고 갸름한 얼굴에 가녀린 몸이라.’
젊었을 때는 분명 아름다웠을 것이다.
‘과거에 사랑을 받았지만, 나이가 들어서 푸대접받는 측실인가?’
그가 한껏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명운이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이쪽의 사문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군.”
오단은 뱃전에 몸을 기대며 그의 말을 받았다.
“녹림과 수채 친구들은 과거나 출신을 묻지 않는다네.”
과거에 무엇을 했고, 사문이 어디고, 누구의 제자이며, 누구의 아들인가?
이런 것을 묻는 것은 무림맹에 속한 이들뿐이라는 말이었다.
“서로 불편한 것은 묻지 않는다. 좋군.”
오단이 시선을 강변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쪽 말이야. 그런 식으로 소문을 흘리면서 다니면 노리는 자들이 점점 많아질 걸세.”
그는 빙왕이 호부상서의 측실로 위장한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흠, 노리는 자들이 많아질 것이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인가?”
오단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그게 아니지. 다들 나처럼 그쪽이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할 거란 말이지.”
호부상서의 측실이라면, 호부상서의 부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쪽이 낫다는 말이었다.
명운은 오단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충고는 받아들이지.”
그는 오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해 보니, 생각보다 질이 나쁜 친구는 아닌 것 같군.’
오단은 마차를 습격했을 때도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준 바 있었다.
“저 친구도 강해 보이는군.”
오단이 눈으로 가리킨 이는 하후문이었다.
“창을 잘 쓰는 친구지.”
“창을 잡고 서 있는 자세가 좋아.”
“창에 관심이 있나?”
“예전에 좀 다뤘으니까.”
오단은 무관답게 권법이 아닌 창법이 특기였다. 그러나 수적이 된 이후, 그는 창보다는 권이나 칼을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적이 창이라. 혹시 수군 출신인가?”
명운의 물음에 오단이 미간을 좁혔다.
“과거를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 하지 않았나?”
“미안하군.”
명운의 사과에 오단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호부상서의 측실이라면 황도로 가는가?”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단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차 물었다.
“그럼, 수로를 따라가는 게 낫지 않겠나?”
오단은 대운하를 이용하라 말하고 있었다.
명운도 대운하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쪽은 배에 익숙한 이가 적었다.
‘나와 조광, 그리고 하후문, 셋 중 그 누구도 배를 다룰 줄 모르니까.’
뱃사공이 딸린 배를 빌릴 수도 있었지만, 명운은 뱃사공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뱃사공들이 수적이나 흑도 세력과 결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말을 둘러대기로 했다.
“말들 때문에 말이야.”
오단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팔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군.”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말은 전우와 같아서 물건처럼 쉽게 사고팔지 않았다.
특히 군관들은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빈 말을 전우처럼 대했다.
이번에는 명운이 그에게 물었다.
“장강수로채는 큰 건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우리를 습격한 것인가?”
“큰 재물이 마차에 실려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마차에 큰 재물이 실려 있다고?”
오단이 시선을 강변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호부상서의 부인이라는 이야기는 거짓이고, 진짜는 귀주에서 황도로 보내는 뇌물이라고 생각했지.”
명운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수행원의 숫자가 부족해서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군.”
그는 비선채 수적들이 습격에 앞서 나름대로 이쪽을 분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자네가 우리를 계속 미행했나?”
명운은 멀리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비선채의 수적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단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라고?”
“우린 딱 이틀을 지켜보고 결정을 내렸네.”
“그렇다면 멀리서 우리를 지켜본 이는 장강수로채 사람이 아니란 말이군.”
오단이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우리 말고 미행하는 자들이 또 있었단 말인가?”
명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척을 숨기는 데 능한 자였네.”
오단은 산 넘어 산이라는 표정이었다.
“여차하면 피하게. 조정의 관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으니까.”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맡은 일이네.”
“하긴, 자네 정도의 실력이 있는 자가 관리의 측실을 호위하진 않을 테니까.”
오단은 명운이 전문 표사나 호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
그가 품속에서 작은 패 하나를 꺼냈다.
“이걸 가져가게.”
명운은 그가 던진 패를 받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내 신분을 증명하는 패일세.”
장강수로채 비선채 부채주의 명패라는 뜻이었다.
“이것을 그냥 내주어도 되는 건가?”
정확히 신분도 모르는 이에게 명패를 맡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만을 위해서가 아닐세.”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사정이 있다는 말이군.”
“산채나 수채 형제 중에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형제를 만나면 내 명패를 내밀어 싸움을 피하게.”
싸움이 일어난다면 당하는 것은 산채나 수채의 무인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장강수로채 수적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명운에게 명패를 건넨 것이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수채에 있을 줄이야.”
그는 오단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는 나도 큰 꿈을 꾸었지. 하지만 말 그대로 옛날 일이라네.”
오단은 총병 더 나아가서는 대장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관직 생활은 현위에서 끝나고 말았다. 관리들의 혼탁함은 문과 무를 가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자네의 명패, 꼭 돌려주겠네.”
오단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네. 황도에 도착하면 명패를 파괴하게.”
그는 굳이 이곳까지 되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고마운 말이군.”
오단은 명운이 자신의 명패를 악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딱 보면 알지.’
그는 명운에게 대협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 * *
대명궁 태화전.
명운은 공식적으로 폐관 수련 중이었다. 따라서 교주의 업무는 부교주 유청과 대호법 사마진, 그리고 신교우사 공복진에게 나뉘어 돌아갔다.
그중 가장 많은 일을 받은 이는 부교주 유청이 아닌 대호법 사마진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아침부터 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부교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마진은 손을 멈췄다.
“어서 안으로 모시어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면서 부교주 유청이 나타났다.
“대호법은 오늘도 바쁜 모양이군.”
사마진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부교주님을 마중 나가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부교주 유청은 오른손을 들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남쪽에서 소식이 도착해 이렇게 연락 없이 자네를 찾아왔네.”
“남쪽이라면…….”
부교주 유청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교주님일세.”
사마진의 표정이 금세 변했다.
“교주님께서 전서를 보내신 것입니까?”
“교주님께서 보낸 전서는 아닐세.”
순간 사마진의 얼굴에 떠올랐던 빛이 바랬다.
“교주님께서 보내신 것은 아니군요.”
그녀의 실망하는 표정에 유청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흐흠, 교주님께서는 신분을 위장하고 계시니까. 직접 전서를 쓰는 것이 힘드셨을 걸세.”
그는 명운이 대협 장하라는 이름으로 강호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마진이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떤 전서입니까?”
부교주 유청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귀주지부에서 보낸 전서일세.”
“귀주지부라면…….”
“오월교 본산이 있는 곳이지.”
사마진은 눈치가 빠른 여인이었다.
“부교주님의 표정이 좋으신 것을 보면, 교주님께서 또 승리하신 모양이네요.”
부교주 유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오월교가 패망했다네.”
사마진은 명운이 귀주로 떠난 이상 오월교의 패망은 예정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남쪽에서 온 소식은 그게 다인가요?”
“그렇다네.”
“실망이네요.”
유청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교주님께서 승리하셨는데, 실망인가?”
사마진이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돌아오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일이 끝나셨으니, 돌아오시겠지.”
“돌아오신다면 돌아오신다고 전서를 보내셨을 거예요.”
사마진은 명운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뭔가 일이 생긴 거야.’
그녀는 대협 장하의 행적을 조사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릇된 일을 보면 그냥 넘기시지 못한단 말이지.’
사마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부교주 유청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사실 한 가지 소식이 더 있네.”
사마진이 눈썹을 세우며 물었다.
“한 가지 소식이 더 있다고요?”
부교주 유청이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사천에 괴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야.”
“본교 사람이 아니군요.”
“자네가 조사해 줬으면 좋겠네.”
사마진은 그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명단을 움직이겠습니다.”
자명단은 그녀가 이전에 단주로 있던 곳으로 정보 수집과 첩보에 특화된 무력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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