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동창의 고수들 (4)
환관.
이들은 사내로 태어났지만, 궁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내를 포기한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후세를 남기겠다는 뜻도, 사랑하는 여인과 생을 함께하겠다는 행복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이들보다도 더 강하게 권력과 돈, 그리고 힘을 추구했다. 혹자는 그들의 욕망이 천마신교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명.
그는 환관에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인 사례태감에 오른 자였다.
수천이 넘는 환관을 통솔하고, 황제의 뜻을 뭇 관리들에게 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황제의 은밀한 사생활을 모두 꿰뚫고 있는 종복이었다.
황후는 물론,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들도 그보다 황제를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 그가 황도를 떠나 남쪽으로 향한 것은 한 사내 때문이었다.
대협 장하.
운남 출신으로 오월교의 반란을 토벌해 천하에 이름을 날린 협객.
황제는 그의 명성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강호인이라면 몰라도 뭇 백성들은 그를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했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이 아닌 대협 장하를 떠받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도육사가 놈을 추격하고 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정명 앞에 선 이도 그와 같은 환관이었다.
“나를 기다리지 않고 선행했단 말이냐?”
“사마혼을 베고 종적을 감추었기에 선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명이 나선 것은 그 잘난 금의위가 대협 장하를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쯧, 금의위는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장하의 종적마저 놓치고 말았단 말이구나. 이것들을 정녕 어디에 쓰겠느냐?”
“그러니 금의위가 아니겠습니까?”
동창의 정예들은 금의위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태조 황제 때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나라의 녹을 축내는 버러지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역할이 겹치는 금의위보다는 만리장성 밖에서 싸우는 대장군부를 더 지지했다.
“쯧쯧, 오 도독이 이리저리 뛰어 봐야 금의위는 금의위일 뿐이다.”
정명은 금의위 도독 오순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 밖의 금의위 무인은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공공,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도육사가 나섰으니, 결과는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정명은 오도육사의 무위라면 충분히 장하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면 남양에는 가지 않는다고 통보할까요?”
“음, 남양이라.”
정명은 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굳이 남양에 가야 할까? 하지만 그곳에서 사마혼이 죽었다.’
사마혼은 자타가 인정하는 금의위 최고수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면 제법 격렬한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흠, 그 흔적을 볼 가치가 있을까 모르겠군.’
다른 무인이라면 오도육사의 보고만으로 끝냈겠지만, 사마혼이 죽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일단 가 보기는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공공.”
정명은 남양으로 향하고자 했다.
같은 시각.
오도육사는 하후문을 추격하고 있었다.
“놈이 장하의 끄나풀인 것은 확실한가?”
“놈이 귀주에서 남양까지 함께 관리의 처를 호위한 것을 확인했다.”
조광은 마부 역할을 했기에 빙왕을 호위한 무인은 하후문과 명운, 두 사람뿐이었다.
“최소한 놈을 털면 뭔가 나온다는 이야기겠군.”
그들은 하후문을 고문해 대협 장하의 행방을 알고자 했다.
“누가 선두에 서겠는가?”
여섯 환관은 동시에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내가 서지.”
오석은 눈썹이 옅고 안광이 섬뜩한 환관이었다. 그가 선두에 나서겠다고 하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석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게.”
“내가 석의 뒤를 받치지.”
눈썹의 흰, 백각이라는 환관은 오석의 뒤를 받치겠다고까지 말했다.
오도육사가 모두 오석의 뜻을 따른 이유는 그가 오도육사에서 가장 잔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문하면 녀석이지.’
‘그쪽으로 녀석보다 더한 녀석은 없지.’
환관은 사내가 아니었지만,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월교처럼 사람의 목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자들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사람을 죽일 뿐이었다.
쉬익!
파공성과 함께 오석이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퇴로를 막는다.”
백각이 목소리를 높이자 나머지 환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쯤 하후문도 오도육사가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는 말을 따라잡을 정도라니.’
그는 상대가 일류고수, 그것도 수준이 높은 일류고수라고 생각했다.
‘일대일로도 벅찬 상대란 말이군.’
그는 조광이나 정문처럼 절정의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젠장…….’
천마신교의 무인인 이상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죽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보위산에서 싸우다 죽는 것이 나았겠군.’
하후문은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이랴!”
그는 창을 꼬나들고는 오석을 향해 돌진했다.
오석은 하후문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격에 끝내 주마.’
그는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검을 뽑았다.
스릉.
창백한 백광.
오석의 검은 평범한 청강검이 아니었다.
하후문도 즉시 그것을 알아차렸다.
‘제길, 무공만 뛰어난 게 아니란 말이구나.’
그가 손에 든 검이 현검 수준의 보검이라면 창대가 아닌 창날이 잘려 나갈 수도 있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하후문은 상대를 과대평가해서 자신감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하합!”
그의 창날이 맹렬히 회전하며 오석을 노렸다.
붕붕붕!
오석은 그의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에 멈칫했다.
‘이것은!’
밖으로 뻗어 나온다면 창기요.
안으로 삼켜진다면 금강이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멈추진 않았다.
‘이쪽이 더 빠르다!’
검의 빠름으로 창의 거리를 제압하고자 했다.
창과 검이 만난 순간 격렬한 금속 마찰음이 들려왔다. 이는 검의 빠름이 창의 거리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파파파파팍!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어느새 오석이 하후문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첫 공격이 막혔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두 번째 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타앗!”
그가 기합과 함께 검기를 뻗어 내자 하후문은 창대로 그것을 막아 냈다.
파팍!
검기는 창대를 절단하지 못한 채 날카로운 자국을 남긴 채 사라졌다.
이는 하후문이 창에 내력을 불어 넣어 검기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큭.”
하후문은 검기를 막긴 했지만, 두 손목이 찌릿했다.
‘일류가 아니라 절정이란 말인가?’
검기는 일류가 아닌, 절정의 경지에 이른 이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검기를 사용한다는 말은 일류가 아니라 절정고수라는 뜻이었다.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는 말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오석의 뒤를 따르는 나머지 환관을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나머지 환관들은 그를 공격하지 않고, 넓게 퍼져 사방을 포위했다.
‘협공하지는 않는다는 말인가?’
그는 어쩌면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의 생각은 무너지고 말았다.
오석이 검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공하라!”
그는 하후문과 단 두 초식을 겨뤘을 뿐이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그는 하후문이 일류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류고수를 상대로 일대일 승부는 손해 보는 짓이다.’
여섯 명이 협공하면 쉽게 이길 수 있는데, 굳이 혼자 나서서 어려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환관들은 긍지나 자존심을 중시하는 강호의 무인들과는 생각 자체가 달랐다.
“정말로 협공인가?”
백각이 묻자 오석이 답했다.
“놈은 일류다.”
나머지 네 명의 환관도 오석의 답을 이해했다.
‘조금 전 격돌이 진짜였단 말이군.’
‘놈이 일류라면 우리도 신경을 좀 써야겠어.’
‘절정고수라고 해도 일류가 동귀어진의 마음으로 달려들면 위험할 때가 있으니까.’
여섯 명의 환관 중 허도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검을 뽑으며 동료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각, 놈의 이력은 들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백각이 하얀 눈썹을 세우며 반문했다.
“놈이 일류고수이니, 이름이라도 알아보자는 말인가?”
허도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게 아닐세. 저자의 창법을 보니, 양가창법이 생각나서 말이야.”
양가창법.
이 창법은 한때 대장군부에서 널리 사용했던 창법이었다.
그가 양가창법을 언급하자 오석도 미간을 좁혔다.
“놈이 대장군부 무인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상대가 대장군부의 무인이라면 사정이 복잡해졌다.
‘대장군부와 금의위의 싸움에 우리가 말려든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들이 공격을 멈추자 하후문도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이놈들은 정체가…….’
하후문은 자신을 둘러싼 여섯 고수의 얼굴에 수염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이놈들 목소리가 이상해.’
수염이 없고, 목소리가 이상하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환관인가?’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환관.
그는 그들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동창이군.’
동창의 환관이 대체 왜 그를 공격했단 말인가?
‘설마 금의위에 이어 동창도 교주님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는 말인가?’
대협 장하 척살에 동창까지 나섰다면 황제의 뜻은 명확했다.
“너는 누구냐?”
허도가 날카롭다 못해 뾰족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후문은 창을 고쳐 잡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제남사공가의 사공문이다!”
제남의 사공가.
그렇다면 그는 대장군부와 관련이 없었다.
“사공가라고?”
“그렇다!”
“후후후, 잘되었군.”
오도육사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대장군부라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대장군부가 아니라면 죽여도 상관없지.”
“사공씨 따위 죽어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제남의 사공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척. 척.
오도육사는 여섯 방향으로 나뉘어 섰다.
하후문은 뭔가 대답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큭……. 오답을 고르고 말았구나.’
그가 미간을 좁힐 때쯤 명운도 주변에 도착했다. 그는 앞서 검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는 오도육사가 일류가 아닌,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정에 이른 고수가 여섯이나?’
절정고수가 여섯 명이나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구파일방으로 따지면 화산이나 무당의 일대제자 전원이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들의 협공을 일류고수인 하후문이 무슨 수로 당해 낸단 말인가?
결국,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언제 나서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그는 화경 이상의 힘을 써야 할 수도 있었다.
명운은 기척을 숨긴 채 거리를 좁혔다.
다행히 오도육사는 하후문과 싸움에 집중하느라 그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석, 내가 먼저 가겠다.”
선공에 나선 것은 백각이었다.
촤악!
검기가 뻗어 나오며 하후문과 말을 노렸다.
하후문은 내력을 잔뜩 불어넣은 창으로 검기를 막아 냈다.
펑!
짧은 타격음과 함께 창과 사람이 동시에 밀려났다.
‘으윽, 이것이 검기의 위력이란 말인가?’
검기를 접해 보지 못한 무인들은 검기에 실려 있는 내력을 날카로움만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검기란 날카로움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기의 진짜 정체는 절정에 이른 무인의 강대한 내력이었다.
검기와 충돌로 창날이 밀려나거나 폭음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타핫!”
하후문은 쉴 틈이 없었다. 그는 창을 맹렬히 휘두르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기를 쳐 냈다.
펑! 펑!
오도육사는 그의 호수비를 보고도 무감각했다.
‘일류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이십 초식 뒤에는 어떨까?’
그들은 범 사냥에 앞서 살쾡이를 사냥하듯 하후문을 몰아붙였다.
펑! 펑!
다시 두 번의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후문이 타고 있던 말이 두 무릎을 꿇었다.
“히히히히힝!”
그가 타고 있던 말이 검기로부터 전해져 온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어쩔 수가 없구나.’
하후문은 말 위에서 뛰어내린 뒤 창을 뻗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와라!”
오도육사는 그의 도발에 냉소했다.
“죽음을 재촉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일 시간이 있다면 유언이라도 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구나.”
“이 어르신들이 시간이 나면 그 사공가문인가 뭔가 하는 곳에 네 마지막 한마디를 전해 줄 수도 있으니까.”
하후문이 창을 맹렬히 휘두르려는 순간 짧은 전음이 들려왔다.
– 놈들의 주의를 끌어라.
하후문은 전음의 주인공이 명운이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기뻐했다.
‘교주님께서 오셨다!’
명운이 주변에 있다면 땅에 쓰러지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오도육사였다.
그는 명운의 한마디에 용기백배했다.
“하합!”
하후문은 단전의 기운을 크게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투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솨아아아아아!
오도육사는 하후문이 큰 기술을 쓰려는 것을 알고는 재차 냉소했다.
“누구 하나 데려갈 기세군.”
“하지만 저렇게 뻔히 외치니, 누가 저 창에 당하겠는가?”
“동의하네.”
그들은 어렵지 않게 하후문을 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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