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무림맹의 주인 (4)
아언이란 이름은 별 뜻이 없었다.
아씨 집안의 여자아이.이것뿐이었다.그래도 아언은 만족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이에게 이름이 있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언이 여섯 살 때였다.
그의 아버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을에는 꼭 옷을 지어 주마.”
가을에 풍년이 든다면…….
지주에게 바치는 쌀을 빼고도 옷감을 살 수 있는 쌀이 남는다면 옷을 지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옷을 지어 줄 수가 없었다. 그해 계 땅에는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풀은 마르고, 가축은 뼈만 남아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여름이 지나자 아언의 집도 쌀이 떨어졌다.
가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았다. 간신히 가을을 넘겼으나 고생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주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던 것이었다.
“뭐? 수확한 쌀이 없다고? 그럼 내 땅을 가져가 써 놓고 농사를 망쳤다는 말이야?”
대지가 갈라졌고, 개울이 말라 있었다. 눈이 있는 자라면 농사가 힘들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주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돈이 없고, 쌀이 없다면 네 딸이라도 데려가겠다.”
아언의 아버지는 지주를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막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떨어진 집에서 겨울을 나는 것보다는 지주의 집에서 하녀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지주가 아언에게 손만 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주는 그녀를 하녀로 쓰지 않았다. 지주는 쌀 반석을 받고 아언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 버렸다.
중원에는 공식적으로 노예가 존재하지 않았다. 황도의 황제가 노예제를 금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예 상인도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음지에 사는 이들은 사람을 가축처럼 부렸다. 사람들은 그들을 사마외도라 불렀다. 그들에게는 황제의 법은 물론이고, 무림맹의 검도 통하지 않았다.
노예 상인은 아언을 끌고 가면서 히죽 웃었다.
“넌 그래도 운이 좋은 것이다. 노 방주의 장원에 들어간다면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언은 자신이 지주보다 더 부자인 노씨 가문에 팔려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디든 배를 곯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녀는 아버지와 생각이 같았다.
하지만 노 방주라는 자는 그녀와 노예 상인이 생각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장원에 들어간 지 이틀째.
노 방주와 그의 부하들은 그녀를 마른 벌판으로 끌고 갔다.
가뭄 때문에 풀조차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그런 들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고개를 숙인 뒤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개들이 널 쫓을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지 않으면 잡아 먹힐 것이다.”
아언은 귀를 의심했다.
개에게 잡아 먹히다니.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 주세요.”
노 방주라는 자가 씽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을 셀 것이다. 어서 도망쳐라. 저 벌판 끝까지 잡히지 않는다면 널 살려 주마.”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숫자를 세웠다.
“하나.”
아언은 급히 일어나 뛰었다. 사냥개가 그녀보다 빠르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노 방주라는 자와 그의 부하들은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녀는 심장이 터지라고 뛰었다.
노 방주는 잰걸음으로 도망치는 소녀를 보며 씽끗 미소를 지었다.
“풀어.”
부하는 그의 명에 고개를 갸웃했다.
“방주님, 아직 다섯 밖에는 세지 않았습니다.”
“계집이 빨리 달리고 있잖아.”
혹여라도 살아남을까 열조차 세기 전에 사냥개를 풀고자 한 것이었다.
노 방주는 부하도 기겁할 정도의 악인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노 방주의 부하들이 사냥개를 풀자 아언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주, 죽고 싶지 않아.’
그녀는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뛰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의 두 발이 사냥개의 네 발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언과 사냥개들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컹! 컹! 컹!
사냥개들의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이제 끝이야.’
아언은 절망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바로 뒤에서 사냥개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커커커컹!
파아악!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피와 함께 사냥개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노 방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칼을 뽑아 들었다.
“저년이!”
그의 부하들도 무기를 들었다.
“계집이 미쳤나 봅니다.”
사냥개를 베고, 그녀를 살려 준 은인은 검을 든 여인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의 잡것들이 어찌 중원을 더럽힌단 말이냐!”
아언은 뒤 귀로 똑똑히 들었다.
‘마교, 마교라고?’
그녀를 죽이려 했던 자들, 귀신보다 흉악한 그자들의 정체는 바로 마교였다.
“저년을 죽여라!”
여인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내들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그들을 모두 베었다.
툭. 툭.
검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여인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아언에게 물었다.
“걸을 수 있겠느냐?”
아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 수 있습니다.”
“좋다.”
여인은 그렇게 아언을 거두었다.
열흘 뒤.
아언은 여인과 함께 항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아언에게 자은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오십 년 전.
아언이라 불리었던 소녀는 지금 자은이라는 법명으로 무림맹 총단에 서 있었다.
‘마교를 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맹주좌를 손에 넣어야 한다.’
자은사태는 사부에게 구해진 그 순간부터 마교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미워하게 되었다.
“자은사태, 그대에게 유리한 규칙을 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녀를 걱정한 이는 숭산파 일대제자 종호였다.
종호는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의 사제로 일류고수에 속하는 무인이었다. 그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녀의 승산을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자은사태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검갑을 꾹 쥐었다.
‘오십 년을 검과 함께 살아왔다. 검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항산파 최고수이자 산서제일검이라는 사실이었다.
“저는 자은사태를 믿습니다.”
자은사태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은 앞서 그녀를 추천한 형산파 장문인 악흔이었다.
“악 장문께서 믿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악흔이 두 손을 모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전 자은사태를 믿기에 모두에게 추천한 것입니다.”
그의 행동과 말은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그는 진심으로 자은사태를 믿고 있었다.
“악 장문, 언젠가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악흔이 두 손을 풀며 말했다.
“은혜라니요. 자은사태께서 맹을 바른길로 인도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자은사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악 장문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그녀는 오악검파 사람들을 뒤로하고 단상에 올랐다.
조명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하가 실수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그의 제자가 물었다.
“사부님, 자은사태는 절정을 넘어선 무인이 아닙니까? 한데도 상대의 실수가 필요합니까?”
조명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장하를 보고도 깨닫지 못했느냐?”
제자는 고개를 돌려 장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끔한 얼굴의 청년일 뿐이었다.
‘무엇을 깨달으라는 말씀인 걸까?’
제자는 고개를 돌린 뒤 두 손을 모았다.
“제자,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조명은 제자의 대답을 듣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월교를 토벌하고 금의위의 추격을 뿌리친 자라면 응당 날카로운 예기가 뿜어져 나와야 할 것이다. 하나 지금 그에게서는 어떠한 예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명운이 금의위의 추격을 따돌린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 말씀은…….”
“그래, 예기를 완전히 감출 수 있을 정도로 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는 뜻이다.”
조명은 명운이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가 절정고수였다면 금의위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개방에 심어 둔 비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면 어떻게 합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장하가 실수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경지가 다른 두 무인이 싸울 때, 경지가 높은 쪽의 승산은 구 할이었다.
승산이 십 할이 아닌 구 할인 것은 실수나 자만과 같은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개는 단상 위에 선 장하와 자은사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예기만 보면 자은사태 쪽이 낫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개는 법개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장 대협은 예기를 감춘 것뿐일세.”
법개는 그의 말을 듣고는 눈썹을 세웠다.
“밖으로 기가 드러나지 않게 갈무리했다는 말입니까?”
“장 대협은 금의위와 동창의 추격을 따돌린 고수가 아닌가?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개방은 대협 장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문파였다.
후개는 좁혔던 미간을 펴며 장하를 주시했다.
‘자, 어디 그 실력을 보여 다오.’
두 사람의 싸움이 막 시작하려는 순간 법개가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한데 말입니다. 아까 우리가 손을 들었다면 장 대협이 무난히 맹주좌에 앉지 않았겠습니까?”
대전으로 들어온 개방제자의 수는 열 손가락을 넘었다. 이들이 모두 명운을 지지했다면, 비무는 필요하지 않았다.
후개는 법개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랬을 걸세.”
“그럼, 왜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후개가 입술 끝을 올리며 대답했다.
“이쪽이 받은 명은 상황을 지켜보라는 것이었네. 우리가 나서서 장 대협을 맹주로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선을 넘게 되는 것이겠지.”
선을 지키기 위해서 나서지 않았다.
법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개는 구파일방을 대표해야 한다는 짊을 짊어지기 싫었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장하를 지지한다고 밝히게 된다면, 구파일방이 대협 장하를 지지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후개가 감당하기 힘든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누가 이길까요?”
후개가 대답했다.
“글쎄, 소문대로라면 장 대협이 이기겠지.”
자은사태의 무공에 대한 소문은 많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그녀가 사마외도와 마교를 그 무엇보다 미워한다는 것뿐이었다.
* * *
명운은 현검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이 없어도 검을 이기는 경지를 화경이라 했다.’
화경은 구파일방에서 무극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두 분 앞으로 나오시지요.”
이번에도 단상 위에 선 것은 하노대였다.
명운과 자은사태는 그의 지시에 따라 거리를 좁혔다.
“비무는 서로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선에서 끝날 것입니다. 만약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살수를 펼쳐 상대의 목숨을 빼앗게 되면, 실격패가 된다는 뜻이었다.
“알겠네.”
자은사태는 오른손을 살짝 들어 답했고, 명운은 예를 갖춰 포권을 취했다.
“살수는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은사태는 명운이 예기를 갈무리한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자다.’
소문만큼 강하진 않지만, 얕볼 수 없는 무공을 지닌 고수 같았다.
“단상 아래로 떨어져도 패하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하노대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알겠습니다.”
하노대가 말을 이었다.
“두 분 모두 검을 쓰시니, 암기 또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암수로 이길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내가 어찌 그런 수를 쓰겠는가?”
자은사태는 살짝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반면 명운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하노대의 말을 받았다.
“공명정대하게 검을 겨루겠습니다.”
하노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승패는 한쪽이 승복하거나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 확인하게 차이가 났을 때 결정될 것입니다.”
그는 초식 제한이나 시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이번 비무는 일다경을 넘겨 한 시진에 이를 수도 있었다.
“시작하게.”
자은사태의 말에 하노대가 뒤로 물러났다.
“그럼, 지금부터 두 분의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물러나자 자은사태가 먼저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녀의 검은 선학(仙鶴)이라 했다.
선학에서 뿜어져 나온 백광이 단상 위를 가득 채웠다.
명운은 그것을 보고는 담백하게 말했다.
“좋은 검이군요.”
자은사태는 그의 여유에 미간을 좁혔다.
“뽑게.”
명운은 그녀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스르릉.
검갑 밖으로 나온 검은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청강검이었다.
“그 검의 이름이 뭔가?”
자은사태가 묻자 명운이 대답했다.
“무명입니다.”
“무명?”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자은사태는 혀를 찼다.
“쯧, 그런 검으로 오월교를 쓰러뜨렸단 말인가?”
명운이 검을 아래로 내리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검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겠죠.”
자은사태는 명운의 한마디를 듣고는 속으로 냉소했다.
‘날 도발하려 하는군.’
그녀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