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무림맹의 주인 (6)
이길 수 없는 상대와 싸운다는 것.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길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적과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인은 검을 들었다.
‘맹주좌를 어찌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은사태가 걸고 있는 것은 무림맹주라는 지위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작게는 항산파, 크게는 오악검파의 운명이 이 일전에 달려 있다.’
그녀가 패하면 무림맹주 자리는 강남대협 장하에게 돌아가게 될 터였다.
말이 좋아 강남대협이지, 장하는 중원이라 할 수도 없는 운남 출신이었다.
지금까지 운남 출신이 무림맹주에 오른 적은 없었다.
‘아무리 임시 맹주라 해도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검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나 장하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검을 받아넘겼다.
자은사태는 반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연격을 가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은 모두 막히고 말았다.
‘확실히 나보다 위다.’
금선탈각(金蟬脫殼)이라 했던가?
매미가 허물을 벗듯 위기에서 새로운 경지를 깨달아야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의 승부가 어렵다는 것은 첫 초식을 교환한 뒤 알게 되었다.
장하는 명성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기룡검 장익천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축하연을 준비해야겠군.”
하노대는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자은사태는 낭패한 지경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를 빼앗긴 것은 사실이지만, 패배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몰린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장 대협의 움직임을 보게. 여유가 넘치지 않는가?”
풍류를 아는 자라면 멋들어진 초식을 펼치면서 자은사태의 검을 받아냈을 것이다.
“여유 있는 것은 좋지만, 상대를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세함은 쉽게 교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교만은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태원각주 조명은 처음부터 자은사태의 승산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비무가 진행되면서 더욱 굳어졌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
제자는 그의 물음에 멈칫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난다면…….’
태산파는 전대 무림맹주 좌건 때문에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태산이라는 그 위치만으로도 명문 정파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명문 정파의 제자로서 적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다.’
그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뒤 사부 조명의 물음에 답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조명이 자은사태를 주시하며 말했다.
“죽기를 각오하면 죽을 것이다.”
그의 제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도망쳐야 합니까?”
조명은 제자의 물음에 미간을 좁혔다.
“태산파 제자가 어찌 도망을 친단 말이냐.”
“사부님, 제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답을 알려 달라는 말.
조명은 자은사태의 검이 허공을 치자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자은사태는 너와 마찬가지로 깨닫지 못한 것 같구나.”
무엇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는 법이 세상에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사부님,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조명은 제자의 부탁에 차갑게 말했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딱 한 가지 방법.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은 조명의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와 제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것일까?’
그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귀를 열고 사부와 제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자 했다.
“어떤 방법입니까?”
제자가 묻자 조명은 그제야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는 법을 말해 주었다.
“동귀어진이다.”
동귀어진(同歸於盡).
상대와 함께 죽는다.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은 태원각주 조명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죽는다면 패배만은 면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러나 이 자리는 함께 죽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총단 대전에는 조명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자은사태는 이번 비무의 열쇠를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냉담한 평가를 내린 이는 개방의 후개였다. 법개는 그의 말을 듣고는 눈썹을 세웠다.
“이번 비무는 상대를 압도해야 이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후개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게 아닐세.”
상대를 압도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법개가 그에게 재차 물었다.
“상대를 압도하지 않고도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까요?”
상대가 탄복할 무엇인가를 보여 줘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이보게, 이번 비무의 규칙을 생각해 보게.”
법개는 후개의 대답에 미간을 좁혔다.
‘이번 비무의 규칙이라면…….’
가장 먼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상대를 살해하면 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설마 상대의 살수를 유도하는 것이 승리의 열쇠입니까?”
후개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살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검이 내 가슴을 찌르게 만든다면 어떨까?”
법개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크게 놀란 상대는 급히 검을 거둘 것입니다.”
“그 틈을 노린다면 이길 수 있을 걸세.”
법개는 후개의 계책에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제대로 된 승리를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하물며 이 자리는 임시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중원 무림맹의 맹주를 가리는 자리였다.
‘그런 승리로 강호의 영웅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마교와 싸움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겠지만, 이곳은 무림맹 총단이었다.
‘후개의 방법이 옳은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탕!
자은사태의 명검 선학이 왼쪽으로 크게 튕겨 나왔다. 그녀는 힘에서도 장하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일류 이상의 고수라면 이 비무에서 누가 이기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시간을 더 끌게 된다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더 싸울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앞으로 이십 초식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자은사태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쉬이이이익!
그러나 이번 공격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히고 말았다.
타앙!
명운은 공격을 막아 낸 뒤 거리를 벌렸다. 이는 그녀가 연격을 시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검을 아래로 내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태, 힘이 처음만 못합니다.”
자은사태는 그의 한마디에 검을 세웠다.
“그대의 발놀림도 처음만 못하네.”
그녀는 명운도 지쳤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명운의 속도는 처음과 비교해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장 대협의 승리군.”
진주언가의 언웅 같은 인물들도 이번 싸움의 유불리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장 대협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적은 없습니다.”
언웅의 말을 받은 것은 같은 진주언가 출신의 언잉이라는 소녀였다.
“장 대협이 깔끔하게 이기길 원하기 때문에 승부가 길어지고 있는 것뿐이다.”
무림 맹주를 정하는 비무였기에 신중하게 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칠게 싸우면 십 초식 안으로 승부가 갈리게 될까요?”
“십 초식은 어려워도 이십 초식 안에는 승부가 갈리겠지.”
하후문은 묵묵히 단상 뒤쪽에서 명운과 자은사태의 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명운이 가진 힘의 일 할도 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진짜 실력을 발휘하신다면 단 일격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운은 자신의 실력을 전부 발휘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언웅이 말한 것처럼 깔끔하게 이번 비무를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명운이 검을 살짝 들며 말했다.
“그럼, 조금 더 싸워 보도록 합시다.”
자은사태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흥! 여유가 지나치면 교만이 되는 것일세.”
그녀가 검을 앞으로 뻗고자 할 때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 사태, 이기고 싶다면 상대의 검을 향해 몸을 내밀게.
상대의 살수를 유도하여 이득을 취하라.
이는 조명과 후개가 했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었다.
‘상대의 검을 향해 몸을 내밀라고?’
자은사태는 전음을 보낸 자의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대를 죽인 자는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말을 이용하라는 뜻이구나.’
그러나 그녀는 이 수법이 가진 단점 또한 꿰뚫어 보았다.
‘하나 상대의 측은지심을 이용해 이긴다면, 고수들이 어찌 승복하겠는가?’
단상 아래 고수들이 승복하지 않으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타핫!”
자은사태는 기합과 함께 검을 뻗었다. 이는 규칙을 이용한 계책으로 승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타앙!
격렬한 타격음과 함께 그녀의 검이 왼쪽으로 크게 쏠렸다.
‘큭, 힘에서 밀렸다.’
명운은 그녀의 검을 밀어낸 뒤, 오른발을 뻗어 그녀를 넘어뜨리고자 했다.
자은사태는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다. 그녀는 그의 수법을 읽고 대노했다.
‘어림없다!’
그녀는 명운의 발을 막는 대신 비선승(飛仙昇)라는 경공을 전개했다.
이 비선승은 준비동작 없이 허공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경공술이었는데 명운 또한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명운은 뒤로 날아가는 자은사태를 보며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흠, 저런 수법을 숨기고 있었군.’
그는 평범한 수법으로는 자은사태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자리에서 검강은 쓸 수 없으니, 가형검이라도 써 볼까?’
가형검은 그가 처음으로 사마진을 이겼을 때 사용한 수법이었다.
명운이 승부를 마무리 지을 수를 찾고 있을 때, 자은사태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헉……. 헉……. 헉…….”
그녀는 자신의 숨이 가쁜 것을 느끼고는 미간을 좁혔다.
‘검기를 쓴 것도 아닌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처음에는 비선승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이유는 압박감에 몸과 마음이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력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여유가 없다는 말인가?’
자은사태는 명운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했다.
‘큭, 이길 수가 없겠구나.’
순간 포권을 취하며 승복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까 들려온 전음이 그녀를 자극했다.
– 이대로 맹주좌를 포기할 것인가?
이대로 맹주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은사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녀는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명운은 그녀가 두 손으로 검을 잡자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이라.’
그가 알고 있는 항산검법은 두 손으로 검을 잡지 않았다.
‘항산검법이 아닌 다른 검법을 쓰겠다는 뜻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검법을 쓰겠다는 뜻일지도.’
각 문파의 비기는 마음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기에 처했거나 반드시 이겨야 할 때만 비로써 쓸 수 있었다.
명운은 자은사태가 알려지지 않은 항산파의 비기를 쓰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비기를 부드럽게 막아 내면,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자 했다.
하지만 자은사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타핫!”
기합과 함께 그녀가 돌진했다.
명운은 그녀의 내력이 어느 한 곳에 모이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 손을 검을 잡았다면 검에 기를 모으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검에는 옅은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검이 아니라 각인가?’
검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다리로 승부를 보려 하는 수법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방심은 금물이다.’
상대의 수법을 모르니, 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쉬익!
검풍과 함께 검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빠르긴 하지만, 평범하다.’
변초나 묘수가 숨겨져 있는 검격이 아니었다.
명운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받아 냈다.
타앙!
그는 자은사태의 검을 막은 뒤 부드럽게 검을 회전시켜 그녀의 어깨를 노리고자 했다.
한데 바로 다음 순간 변고가 일어났다.
‘이건!’
자은사태가 그의 검로를 읽고 검이 향하는 곳에 목을 대고자 했다.
가슴이 아닌 목.
일 촌 깊이로 베어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부위였다.
‘이런 수법을 쓸 줄이야.’
명운은 자은사태가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은사태는 명운의 놀란 눈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원망하지 말게.’
그녀는 명운이 검을 멈춘 순간 그의 가슴에 검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방어는 상대의 측은지심에 맡기고, 이쪽은 오로지 공격만을 생각하는 그런 수법이었다.
자은사태는 이 수법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운의 검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날아왔다.
자은사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내 목을 베고, 패배를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검을 멈추면 그녀에게 패배하니, 그녀를 베고 함께 단상에서 퇴장하겠다.
이것은 또 다른 동귀어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