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변동 (3)
해가 지자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가 우송을 찾아왔다.
“금석.”
우송은 아직 화로 앞에서 무기를 다듬고 있었다.
탕. 탕. 탕.
그의 망치는 연신 박도를 두드리고 있었다.
“당신들 방식은 항상 잔인하군요.”
사내가 말했다.
“내기에 이기기 위해 마을 청년들을 변경으로 보낸 것은 아닐세.”
우송이 미간을 좁혔다.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겁니까?”
사내가 답했다.
“나는 백호대의 계획을 알고, 자네에게 내기를 걸었을 뿐일세.”
마을 청년들이 끌려갈 것을 알고, 내기를 제안했다는 말이었다.
탕! 탕!
우송이 망치를 거칠게 휘두르며 말했다.
“처음부터 당신들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말이군요.”
“화가 나나?”
“화가 나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겠죠.”
탕! 탕!
우송은 망치를 내려놓고는 박도를 다시 불 속으로 넣었다.
“자네가 마음을 바꾼다면 마을 청년들을 구할 수 있네.”
“당신이 변경으로 보내는 명령을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명령을 바꿀 수는 없네. 하나 자네에게 의뢰할 분 중 하나가 그 명령을 바꿀 수 있지.”
우송이 고개를 사내에게 돌렸다.
“처음부터 난 당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군요.”
“거절하겠나?”
우송이 차가운 얼굴로 답했다.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닙니까?”
“응하는 것으로 알겠네.”
우송은 말이 없었다.
그는 사내가 찾아온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음을 알았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내 착각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꿔도, 그는 새 삶을 살 수 없었다.
“금석, 물건만 제대로 만든다면,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네.”
“…….”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품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 주도록 하지.”
우송이 다시 망치를 들며 물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합니까?”
사내가 답했다.
“그것은 어르신께 물어보도록 하겠네.”
윗선의 대답에 따라 우송은 죽을 때까지 무기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의 주문을 받을 테니, 청년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는 말을 마친 뒤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은 징집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송은 그 환호성에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대산에서 태어난 자는 신교의 뜻에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망치를 들었다.
* * *
낙산원에 도착한 강하원은 명운에게 일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수고했네. 한데 백호대는 어떻게 설득한 것인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마을 청년 한 명당 은자 한 냥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그들이 겨우 그 정도 돈에 움직였다고?”
“의외로 순순히 거래에 응했습니다.”
백호대가 강하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칠랑 때문이었다.
백호대주 조자건은 강하원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칠랑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솜씨는 좋던가?”
강하원은 대답 대신 한 자루의 비수를 꺼냈다.
명운은 그가 내민 비수를 받아 보았다.
잘 벼려진 날과 은은한 빛이 도는 검신.
‘예상보다 훌륭하다.’
명운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강하원이 물었다.
“공자님, 다섯 호위가 쓸 무기를 만들게 하실 겁니까?”
명운이 답했다.
“첫 무기는 자네의 것으로 하지.”
“공자님?”
“상과 벌은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명운은 말을 마친 뒤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번 일에 대한 상일세.”
주머니 안에는 열 냥짜리 금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과합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상과 벌을 분명히 하겠다고, 자네가 이것을 받지 않으면, 상과 벌이 불분명해질 것이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강하원은 금괴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명운이 던지듯 물었다.
“최근 초하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있다 들었네. 잘되어 가는가?”
강하원이 금괴를 소매에 넣으며 답했다.
“재능은 둘째치고, 무공을 배우려는 의지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확실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제대로 키워 보게.”
“그 말씀은…….”
“시녀가 아닌 무인으로 키우라는 말일세.”
강하원이 두 손을 모았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명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능이 있는 자가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를 하게. 우리 서숙은 일손이 항상 모자라니까.”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서숙은 다른 무력 집단에 비해 고수와 하수를 가리지 않고 무인의 숫자가 크게 부족했다.
강하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화제를 전환했다.
“사공자가 사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명운이 물었다.
“무림맹이 천라지망을 펼치지 않은 것인가?”
“소문에 따르면 장공자가 직접 나섰다 합니다.”
“큰 형이?”
명가의 장남 명천, 그는 아버지 명증의 명을 받아 동생을 구하기 위해 사천으로 향했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흑살대가 장공자와 동행했다고 합니다.”
흑살대는 교주와 교주일가의 명만을 받았다.
명운은 그들이 자신을 찾아왔던 것을 떠올리고는 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께서 큰형에게 힘을 실어 주신 것이군.”
“사공자의 실책을 수습했으니, 공이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명각이 공을 세우자 이번에는 큰형 명천이 동생을 구해 자신의 이름을 높였다.
두 형은 나머지 동생들과 거리를 빠르게 벌리고 있었다.
“강 총관.”
“예, 공자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명운은 아버지 명증이 후계자를 결정하는 시점을 알고 있었다.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그 시점이 크게 앞당겨지진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 * *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명운은 환영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십성의 환영검이라.”
명각에게 쓰러지기 전만은 못했지만, 고수라 칭한다고 해도 부족함은 없었다.
이 시간 동안 다섯 호위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조광의 검법은 이제 완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종영세의 비도는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관흠이 문제인데 말이야.”
관흠은 명운의 가르침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명상과 면벽은 물론 일대일 지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흠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하후문의 창법은 준수하다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조광처럼 스스로 알아서 강해지는 사내였다.
“팽헌충은 조금 부족하지만, 뭐 그 정도는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남은 이는 경은이었다.
그녀는 의외로 무공에 진전이 없었다.
명운은 그녀의 무공이 왜 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총관의 업무가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경은은 낙산원 총관으로서 이곳을 운영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진전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하루에 반 시진 정도를 내서 무공을 수련했는데, 이는 진전보다는 유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조광의 무공이 완성되면, 그녀에게도 시간을 줄 것이다.’
명운은 그때까지는 경은에게는 시간을 주기 힘들다 생각했다.
‘경은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더 일을 맡길 수밖에.’
드르륵.
문이 열리자 경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속하, 공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무공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일 처리와 언행의 부드러움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은 어떤 일인가?”
“자명단과의 이번 달 거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금액은?”
“한 달 동안 채굴된 금은 서른두 냥이었으며, 자명단은 그중 열여섯 냥에 대한 값을 치렀습니다.”
경은은 장부 정리는 물론 접견이나 협상 같은 업무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제자를 뽑았는데, 어느새 훌륭한 총관이 되고 말았군.’
그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경은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서숙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서숙에서? 강 총관인가?”
“그러합니다.”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그래, 무슨 일인가?”
“태화전에서 날짜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반년에 한 번, 명운은 아버지 명증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서장에서 사신이 방문했기에 만남 자체가 취소되고 말았다.
‘일 년 만에 가지는 아버지와의 만남인가?’
경은이 말했다.
“강 총관이 말하길 새 옷을 준비하고자 하니, 조금 일찍 와 주셨으면 한다고 합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도록 하지.”
며칠 뒤.
명운은 낙산원을 떠나 서숙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만나기 전까지는 사흘 정도 서숙에 머물 예정이었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명운이 오른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얼굴이 편해 보이는군.”
최근에는 명운이 지시한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강하원은 서숙 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쪽은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명궁은 어떠한가?”
명운은 서신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자 했다.
“삼공자께서 돌아오신 것 외에는 큰일이 없었습니다.”
삼공자 명원은 대상단을 이끌고 안식국(페르시아)을 향해 떠난 바 있었다.
“셋째 형까지 성공했다면, 넷째 형은 완전히 끝나 버리겠군.”
사공자 명준은 고생 끝에 십만대산으로 돌아왔으나 대명궁 입궁을 허락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명증은 명준의 죄를 물어 그를 북방으로 쫓아내 버렸다.
현재 명준은 몽고 초원에 머물고 있었다.
“오공자께서 현무대 부대주가 되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오공자 명정은 목소리가 컸지만, 인물 자체는 그리 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배경인 복주원가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공자 명정이 현무대 부대주에 임명된다면, 현무대 자체가 복주원가에 귀속될 가능성도 있었다.
“넷째 형이 사고를 친 덕분이군.”
강하원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복주원가가 적풍대에 이어 현무대를 얻게 된다면, 그들의 무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일세.”
“공자님, 장담은 곤란합니다.”
“강 총관, 현무대가 어떤 부대인가?”
강하원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현무대는 사신대 중 하나입니다.”
“그보다는 대명궁을 지키는 부대라고 봐야겠지.”
명운은 아버지 명증이 대명궁의 경호 병력을 복주원가에 넘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께서는 다섯째 형을 현무대로 보내 대산노가에 경고를 하시려는 것 같네.”
강하원이 허리를 펴며 물었다.
“하면, 대주 교체는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교체가 없었지 않나?”
그가 말한 그 사건은 사천성에서 있었던 오룡문 멸문 사건을 말했다.
청성파를 비롯한 무림맹 문파들은 사공자 명준이 오룡문을 멸문시키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들은 사천성 곳곳에서 천마신교의 거점을 공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천지부 지부장 송암과 명준을 지키던 현무대 일조 조장 권택이 전사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명운이 말했다.
“그보다 귀주석가 쪽 이야기는 없던가?”
강하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귀주석가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용하다. 그 말이군.”
“그렇습니다.”
명운이 찻잔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시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손님께서 명첩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강하원은 시녀에게 명첩을 받은 뒤 고개를 갸웃했다.
“비조검이면 그자 아닙니까?”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도 자기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더니, 석주가 그 짝이군.”
그가 손을 들며 명을 내렸다.
“손님을 안으로 모셔라.”
비조검 석주.
그는 귀주석가의 일원으로 적비단에 적을 두고 있었다.
석주가 안으로 들어오자 강하원은 명운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적비단의 석주가 공자님을 뵙습니다.”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그와 석주가 만나는 것은 거의 일 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