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53)
453화 무림맹주 장하 (3)
탁.
물병을 내려놓은 이는 하후문이었다.
“자네도 앉게.“
그는 오늘 내내 명운의 집무실 앞을 지켰다.
“괜찮습니다.“
“이제 올 사람도 없네.“
해가 지고 나면 맹주의 공식 업무도 끝이었다.
“그럼 앉겠습니다.“
하후문은 창을 어깨에 기댄 채 앉았다.
“답답하지 않은가?”
무림맹에서 생활은 전장에서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를 때와 달랐다.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분을 숨긴 자는 언제든 그 신분이 드러날 수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운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쪽도 마찬가지일세.“
그의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무림맹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임시지만 무림맹주가 천마신교 교주라면 그 어떤 무림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테지.’
하후문이 그에게 물었다.
“한데 권은 왜 보내신 것입니까?”
곽권은 조광의 가명이었다.
하후문은 조광이 명운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광이 있다면 내가 없을 때, 대신 교주님의 곁을 지킬 수 있다.’
명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물음에 답했다.
“자네와 조광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리게 될 테니까.“
하후문은 그의 말을 듣고는 자세를 고쳤다.
“대협, 저는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명운은 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을 바꾸지 않았다.
“혼자일 때는 그렇겠지. 하지만 둘이라는 든든함이 그대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릴 걸세.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하후문은 이 말을 듣고는 살짝 말끝을 높였다.
“어떤 이유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네의 무공은 창술이라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을 걸세. 하지만 권은 다르다네.“
조광의 주무기는 검이었다. 그가 검법을 펼치는 순간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그의 검법이 어느 문파에서 유래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명운은 조광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그를 빙왕에게 보낸 것이었다.
하후문이 항변하듯 말했다.
“하지만 권이 알고 있는 검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천마신교의 검법이 아닌, 다른 검법을 펼치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명운은 알고 있었다. 조광의 실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검법이 천마신교의 검법이라는 사실을.
“조광은 다급한 상황이 되면 본교의 검법을 쓸 수밖에 없네.“
조광, 그리고 본교의 검법.
하후문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대협, 지금 한마디는…….“
너무나 위험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경계한 것이었다.
명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네. 주변에 기를 펼쳐 놓았으니까.“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한 말이라는 뜻이었다.
기로 자신만의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것.
이것은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시종들도 없습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 있네. 하지만 그는 무공을 모르네.“
명운이 가장 가까이에 두고 부리는 소년은 무공을 알지 못했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임시 맹주가 된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으나 진짜 무림맹주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컸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명운의 물음에 하후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명운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대협.“
하후문은 장강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명운이 오른손을 들었다.
“마지막 손님이 오시는 모양이군.“
해는 이미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손님은 그의 업무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것이겠지.’
하후문은 급히 일어나 문밖으로 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이가 보였다.
‘교주님은 저 거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느끼신 것인가?’
사방이 열린 벌판이나 아주 조용한 한밤이라면 그도 이 정도 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기척을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무림맹 총단이었다. 주변의 소음도 많았고, 오가는 이들의 인기척도 많았다.
이러한 공간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대단한 무공이 필요했다.
하후문은 손님이 다가오자 두 손을 모았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찾아온 이가 구면이었기에 그의 신분을 묻지는 않았다.
“맹주님을 뵙고자 하네.“
하후문은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당 대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명운을 찾아온 것은 당오비였다.
“들어오시지요.“
하후문은 명운의 말이 떨어지자 옆으로 물러났다. 당오비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맹주님을 뵙니다.“
명운은 자리에 앉은 채 두 손을 모았다.
“조사에 진척이 있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당오비가 답했다.
“현원문 제자들을 고문하였으나 문주의 명에 따라 습격했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모두가 같은 대답이란 말입니까?”
당오비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한 명을 빼고 다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명운이 재차 물었다.
“대답이 다른 한 명은 누구였습니까?”
“채 문주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당가의 고문에도 말입니까?”
당오비는 당가의 고문이라는 말에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제 손이 무뎠을지도 모릅니다.“
명운은 그의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가 보도록 합시다.“
당오비는 그가 직접 나서자 눈썹을 세웠다.
“맹주께서 직접 고문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고문하지 않고도 답을 들을 방법이 있습니다.“
당오비는 그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혹시 채찍 뒤에 당근인가?’
고문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정보를 얻어 낼 수도 있었다.
‘장 맹주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는 명운이 더러운 일에는 남을 보내고 내세울 수 있는 일은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운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 *
무림맹 총단 지하 뇌옥.
이곳에 투옥된 이들은 대부분 무림맹에 반기를 들었거나 천마신교 또는 사마외도의 무리와 내통한 자들이었다.
끼익.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수십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현원문 사람이었다.
명운은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의 냄새를 맡고는 미간을 좁혔다.
‘좋지 않군.’
그는 민감한 기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내뿜고 있는 부정적인 기운 역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안에서 죄인들을 감시하고 있던 제자들이 몸을 돌려 포권을 취했다.
명운은 오른손을 살짝 들어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수고가 많소.“
당오비는 명운의 한발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맡은 책임자였다.
“밖에 있는 이들이 이번에 잡혀 온 현원문 제자들이고, 안쪽에 맹주님을 습격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명운의 숙소를 습격했던 자들은 따로 두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그들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오비는 재빨리 앞으로 나와 명운을 안쪽으로 인도했다.
뇌옥 안쪽은 죽음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마치 천마신교의 감옥 같군.’
누군가는 죽어 가고, 누군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채 문주의 딸도 이곳이 있습니까?”
명운의 물음에 당오비가 답했다.
“아닙니다. 그녀는 밖에 있습니다.“
“그녀는 중요 인물이 아닙니까?”
“하나 무공이 약한 여인의 몸인지라.“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이는 당오비에게 이곳의 관리 또한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하나씩 데려와 주십시오.“
명운이 명하자 당오비와 무림맹 제자가 안으로 들어가 그를 습격했던 이를 한 명 데려왔다.
그는 양손과 두 발이 모두 쇠사슬로 묶여 있어 어떠한 반격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심문하시겠습니까?”
명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면 충분합니다.“
당오비가 간수역을 맡은 무림맹 제자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명운은 끌려 나온 현원문 제자를 살폈다.
‘외상은 크지 않군.’
이는 당오비가 침술과 점혈을 이용해 고문했기 때문이었다.
‘당가는 확실히 솜씨가 좋군.’
그가 말끝을 높였다.
“이름이 무엇인가?”
현원문 제자가 몸을 떨며 대답했다.
“허전입니다.“
“음, 허전인가?”
명운은 그와 일다향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당오비는 명운과 현원문 제자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무림맹주가 지하 뇌옥까지 내려왔다면, 분명 뭔가가 있을 터였다.
‘내가 생각이 지나친 것인가?’
그가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다음 죄수를 데려오게.“
명운이 죄수를 바꾸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무림맹 제자들은 밖으로 나왔던 이를 안으로 밀어 넣고, 새로운 이를 다시 데려왔다.
당오비는 그 과정을 보며 생각했다.
‘흠, 누군가를 찾는 것인가?’
그는 명운이 마음이 약하고, 쉽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 같은 이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당근을 쓴다면 가장 잘 먹히는 이에게 쓰는 것이 나을 테니까.’
명운은 이번에 데려온 자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이름과 사는 곳, 그리고 현원문에 입문한 시간을 물었다. 어쩌면 가장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장 맹주는 현원문에 오래 머무르지 않은 자를 찾아내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명운이 세 번째 죄수와 면담을 끝냈다.
“이제 됐네.“
당오비는 그의 한마디에 속으로 혀를 찼다.
‘흠, 그냥 한번 내려와 본 것뿐인가?’
무림맹주로서 현장을 좌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방문일 수도 있었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명운이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현원문주의 딸을 심문해야죠.“
가장 중요한 현원문주의 딸을 심문한다.
당오비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심문하실 예정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밖에서 심문하면 모두가 듣게 될 것입니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빈 뇌옥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데려오십시오.“
단둘이 격실에 가까운 뇌옥에서 심문하겠다.
당오비는 현원문주의 딸이 나쁘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장 대협 같은 이가 문제 될 일을 만들지는 않겠지.’
그는 설마 하는 마음을 가진 채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잠시 뒤 현원문주의 딸 채양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죄인을 뇌옥으로 옮겨라.“
당오비의 명이 떨어지자 무림맹 제자들이 빈 뇌옥으로 그녀를 옮겼다.
“이쪽으로 와라!”
당오비는 명운이 보이지 않자 이미 빈 뇌옥 안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한데 명운은 그곳이 없었다.
‘장 맹주는 어디 있는 건가?’
고개를 돌려 살피니, 명운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습격했던 자들의 혈도를 찍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목숨을 끊으려 하는 건가?’
당오비가 크게 놀라 다가가자 명운이 말했다.
“혈도를 찍어 눈과 귀를 막는 것입니다.“
당오비는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절을 시키는 것뿐이군요.“
명운은 재빨리 혈도를 찍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현원문주의 딸 채양이 있는 뇌옥으로 향했다.
채양은 가녀린 팔다리와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엉겨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고생을 제법 한 모양이군.’
명운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뇌옥 안으로 들어섰다.
“그대가 현원문주의 딸인가?”
채양은 한 젊은이가 자신을 향해 묻자 미간을 좁혔다.
“너희에게는 해 줄 말이 없다.“
명운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한 기운을 가진 여인이군.’
무공이나 내력이 강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뿜고 있는 기운은 지조가 있는 여인이나 충신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다.“
채양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녀는 현원문주 채문조가 죽은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흠, 당오비는 무공은 뛰어난데, 사람을 다루는 기술은 부족한 것 같군.’
명운은 그녀를 심문해서 당오비가 알아내지 못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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