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7)
47화 변동 (5)
“전장에 나가고 싶다고?”
명탁이 굳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형들과 같이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명증은 고개를 흔드는 대신 웃었다.
“하하하, 탁은 형들이 부러운 모양이구나.”
그는 여전히 명탁을 아이 취급했다.
그러나 명탁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 전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명증이 웃음을 지우며 물었다.
“탁아, 넌 전장이 어떠한 곳인지 알고 있느냐?”
“보위산이 곧 전장 아닙니까?”
보위산.
그곳은 천마신교와 무림맹이 맞붙는 최전선 격전지였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감숙의 명사산과 대설산 사이로, 천마신교가 이곳을 차지하게 되면 중원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 수 있었다.
반대로 무림맹이 이곳을 수성한다면 천마신교의 중원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명운은 무리한 요구라 생각했다.
‘팽헌충이나 관흠과 같은 이들도 꺼리는 곳이 바로 보위산이다. 명탁은 보위산이 어떤 곳인지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명증의 생각도 명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넌 보위산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느냐?”
명탁이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소자, 그곳에 나아가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명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곳에 간다면 이 아비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소자, 보위산에서 큰 공을 세워 아버님의 걱정을 덜어 드리겠나이다.”
명증은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정 보위산에 오르고 싶다면, 무공을 더 수련하도록 하라.”
“아버님!”
명운은 명탁이 아닌 대설진가에 의문을 가졌다.
‘보위산은 신교 최고의 격전지다. 아버지가 명탁을 그곳에 보낼 리가 없다. 대설진가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명탁을 충동질을 했단 말인가?’
그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탁, 마음이 앞서면 실수가 잦은 법이다. 내년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명증은 명탁의 청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명탁은 아버지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풀지 않았다.
“그러면 둘째 형에게 배우겠습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전개였다.
명증이 말끝을 올렸다.
“각에게?”
명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형은 잇달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저도 둘째 형처럼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명증은 턱을 쓰다듬었다.
“흐흠…….”
명각은 지난해 무림맹의 지원군을 진안에서 격파해 자신의 재능을 널리 알렸다.
‘각에게 배운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각이 이것을 달가워할까?’
명각은 홀로 지내는 것을 즐기며, 다른 형제들과는 왕래가 적은 편이었다.
명증이 망설이자 명탁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 동생이 형에게 배우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망설이던 명증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탁, 네 뜻이 그러하다면 각에게 배우도록 하라.”
명탁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큰일이라는 것이 이것이었나?’
그는 이번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형인 명각에게 배운다는 것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는 명각과 명탁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둘째 명각에게 명탁이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
‘대설진가는 탁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설진가의 선택은 이공자 명각.
그들은 명각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 명탁을 그에게 붙이려 한 것이었다.
‘사람 생각이란 다 비슷하군.’
대설진가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바로 귀주석가였다.
그들은 명운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어려우나 유력한 후계자 후보에게 힘을 보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명탁이 명각을 선택했으니, 석가가 바빠지겠군.’
명운은 귀주석가가 자신을 첫째인 명천이나 셋째인 명원과 연결시키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결국 승자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후계자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섯째 형, 축하드립니다.”
명탁은 생각지도 못했던 명운의 축하에 멈칫했다.
“고, 고맙다.”
명증은 명운과 명탁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니, 보기가 좋구나.”
그는 과거 명탁이 명운을 얼마나 많이 괴롭혔는지 알지 못했다.
명운이 아버지 명증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들이 앞서 나가니, 저도 조바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명증이 타이르듯 말했다.
“형들은 나이가 너보다 훨씬 많지 않느냐? 너도 언젠가는 전장에 나아가 형들처럼 공을 세우게 될 터이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명운이 순진한 척 말을 받았다.
“아버님의 말씀,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명증은 명운의 얼굴이 맑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아이는 확실히 자기의 길을 찾은 것 같구나.’
그는 명운이 금사단을 가져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운은 결국 문(文)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명증은 명운이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 *
광명정에서 나온 직후.
명탁이 반대편을 바라보며 명운에게 말했다.
“아까는 고마웠다.”
명운은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고개를 갸웃했다.
“형?”
과거 명탁은 명운을 괴롭히기만 했을 뿐이었다.
“어설픈 검법도 칭찬해 주고, 내 편도 들어 줬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운은 생각했다.
‘철부지가 드디어 철이 든 것인가?’
명탁의 무공은 큰 발전이 없었으나 세상을 보는 눈은 크게 변한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널 많이 괴롭혔지. 미안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
그냥 장난이라 말한 괴롭힘이 어린 명운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이제라도 미안한 것을 알아서 다행이군.’
명탁이 계속해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로 그게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네게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명운은 명탁의 사과가 마치 유언처럼 들렸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던데…….’
그는 명탁이 마치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말이야. 우리 뜻대로 살아갈 수가 없어. 어머니와 외숙부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지. 넌…… 그렇구나. 미안하다.”
명탁이 다시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명운에게는 잔소리를 할 어머니나 외숙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운이 감정을 억제한 채 말했다.
“괜찮아.”
반대편을 바라보던 명탁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네게는 정말 이것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이제 알았으니 되었다.
모든 것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증오할 정도로 묵은 감정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형.”
“왜?”
명운이 물었다.
“어째서 둘째 형이지?”
그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명탁이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외숙부께서 그러시더라. 신교의 미래는 둘째 형에게 달려 있다고.”
역시나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결국, 명탁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없었구나.’
그가 기억하는 명탁은 주변에 휘둘리다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명운이 질문을 던졌다.
“전장에 나아가겠다는 말은?”
“그건 내 꿈이었다.”
대설진가는 처음부터 명탁의 전공 따위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지금의 명탁이 전공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들은 명탁의 무공에 진전이 없자 깔끔하게 그를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손절인가?’
명탁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운, 아무래도 우리는 행복해지지 못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는 쓸쓸한 한마디를 던지고는 걸음을 옮겼다.
명운은 지난 일 년 동안 명탁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외숙부들이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겠지.’
고수가 될 자질이 없는 자에게 채찍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학대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보다는 그가 더 괴로운 삶을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명운은 적어도 그를 학대할 가족은 없었다.
그는 쓴 약을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태화전을 나왔다.
이윽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강하원이 재빨리 달려왔다.
“공자님, 일은 어떠셨습니까?”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답했다.
“이쪽은 문제가 없었네.”
“그렇다면 육공자 쪽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명운이 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대설진가가 둘째 형에게 붙었어.”
강하원은 명운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강 총관, 목소리가 너무 크군.”
명운의 지적에 강하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어쨌든 좋은 일은 아니군요.”
“그렇지. 힘의 균형이 무너질 테니까.”
명각의 외가는 대산팔가 중 하나인 대산유가였다. 그들은 명각이 장성하자 검혼대를 그에게 맡겼다.
‘명각이 벌써 팔가 중 둘을 손에 넣었다.’
지금 당장 후계자 선출을 위한 회의가 벌어진다고 해도 명각은 다른 형제들을 압도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오직 큰형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명천이 훌륭한 인물이라면 그를 도와 명각을 제압하는 그림을 그려도 문제가 없었다.
하나 명천은 명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사내였다.
아니, 그는 명각보다 더 잔인했다.
‘그가 이십 년간 일으킨 혈사를 생각한다면…… 결국 내가 해내야 한다.’
명운은 결심을 더욱 굳혔다.
“공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하원의 물음에 명운이 답했다.
“초예를 보내서 날짜를 잡지.”
“초예를 말입니까?”
“의녀이니, 약방에서 귀주석가에 심부름을 보낸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네.”
강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습니다.”
명운은 귀주석가와 만나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자 했다.
* * *
명운과 석준명이 다시 만난 곳은 허름한 찻집의 구석이었다.
“사람 많은 곳을 찾으셨군요.”
석준명이 금이 간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때로는 이런 곳이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에 더 좋습니다.”
“대화가 밖으로 새어 나가도 괜찮은 겁니까?”
“주변 탁자에 앉은 이들은 모두 이쪽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농부, 잡상인, 마부로 보이는 이들은 전부 귀주석가의 비선들이었다.
명운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철저하시군요.”
석준명은 차로 입 안을 씻었다. 그리고는 명운의 말을 받았다.
“지난번에 석주가 실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명운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명첩을 들고 정문으로 찾아왔으니, 실수가 아닌 실책이겠죠.”
“엄하시군요.”
“이런 일은 실수가 있으면 안 됩니다.”
석준명이 물었다.
“교주님과의 만남은 어떠셨습니까?”
“족자를 올렸습니다.”
“족자라…….”
석준명은 생각했다.
‘철저히 문(文)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구나.’
어쩌면 자신에게 보여 주는 이 모습도 진짜 모습이 아닐 수 있었다.
‘이런 철저함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상합니까?”
명운의 물음에 석준명이 답했다.
“아닙니다.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장로님을 만나고자 한 것입니다.”
석준명은 지금부터 본론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그는 석주를 보내 소문을 명운에게 전한 바 있었다.
“소문은 항상 왜곡되는 법이죠.”
석준명이 물었다.
“그럼, 진실은 무엇입니까?”
명운이 차갑게 답했다.
“진가가 둘째 형에게 붙었습니다.”
석준명은 순간 들고 있던 찻잔을 놓쳤다.
탁.
찻잔이 깨어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군요.”
그는 손을 씻으며 미간을 좁혔다.
명운은 그가 예상 이상의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귀주석가도 명각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귀주석가는 대설진가에 선수를 빼앗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