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75)
475화 정주성 (5)
비릿한 피 냄새.
궁중에서는 쉽게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하지만 정명에게는 익숙한 냄새였다. 그는 황제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황제에게 실수를 범한 궁녀, 황제의 새로운 애첩을 시기한 후궁, 황제를 비난한 대신 그리고 그들의 가족, 심지어 황제를 위협할 만한 황족들과 그들의 후원자까지.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였다.
‘그래서 사례태감이 될 수 있었지.’
사례태감.
환관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태감 중에서도 최고인 자리.
그러나 사례태감이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크크크, 나도 이제 죽는 것인가?’
많은 이들을 죽었으니,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쉬운 것은 산처럼 쌓아 둔 재물을 반도 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괜히 많이 모았구나.’
화려하게 써 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일어나.”
짧은 외침.
정명은 그 짧은 외침이 아련하게 들렸다.
‘누가 나를 깨우는가?’
십팔 층 지옥도의 간수라도 되는 걸까?
‘그렇군. 나는 결국 지옥에……. 하지만 아직 삼도천도 건너지 못했는데 말이야.’
죄가 깊었기에 삼도천을 건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일어나.”
두 번째 목소리는 더욱 생생하게 들렸다.
“으음…….”
정명은 낮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죽지 않은 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니 그와 함께 정주로 온 환관들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든 모양이군.”
정명은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내를 확인하고는 재차 신음을 흘렸다.
“음……. 너는…….”
그의 앞에 앉은 이는 무림 맹주 장하였다. 그러나 장하는 무림 맹주다운 기풍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장강수로채 두목처럼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서로 다 아는 사이가 아닌가?”
말투도 가벼웠다.
“네가 다 죽인 것이냐?”
정명의 물음을 장하가 짧게 받아쳤다.
“그럼, 누가 죽였을까?”
정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
‘다 틀렸구나.’
그는 더 많은 호위와 병사들을 동원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군대를 동원했다면 좋았을 것을.’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수천의 군대를 혼자 격파할 수는 없었다.
‘오순의 말을 따르는 것을.’
이제와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죽고 싶은 건가?”
정명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죽음과 삶은 다를 것이 없다.”
죽일 테면 죽이라는 말이었다.
명운은 그의 대답에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제법이군.”
제법이라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환관들은 남성을 잃고 시작하기에 명예를 중시하는 이가 적었다.
환관들이 중시하는 것은 재물이나 권력과 같은 현실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명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대로 죽고 싶다면 죽여 줄 수도 있다.”
정명은 명운의 말을 듣고는 눈을 떴다.
“다 죽였는데, 날 살려 주겠다고?”
그는 자신을 살려 두는 게 더 이상하다는 듯 묻고 있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넌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정명은 그의 대답을 듣고 낮게 웃었다.
“후후후, 날 너무 쉽게 보는군. 이대로 살려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았나?”
명운이 담담하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
“그러면?”
“입 안에 쓴맛이 돌지 않던가?”
정명은 명운의 물음을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입 안이 쓰다. 뭔가 먹였구나!’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였다.
명운이 그를 향해 말했다.
“약을 좀 썼지. 제때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아마 미쳐 버릴 테지.”
정명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 무림 맹주가 고(蠱)를 썼다고?”
환약으로 금제를 거는 고는 사마외도 특히 마교에서나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명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중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가 보군. 하지만 대리에서는 종종 쓰는 방법인데 말이야.”
정명은 무림 맹주 장하가 대리 출신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먹은 것이 남만의 고란 말인가?’
그가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긍지도 모르는!”
“긍지? 나는 너희 관리들을 대신해 많은 백성을 구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죽이려 했다. 이는 배은망덕한 일이 아니던가?”
배은망덕한 자는 긍지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다.
정명이 무거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 너는…….”
명운은 차가운 태도로 그의 말을 잘랐다.
“살고 싶다면 날 화나게 하지 마라.”
정명의 명줄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그였다.
정명은 그의 한마디에 손을 내렸다.
“차라리 죽여라.”
고에 고통을 당하느니, 이곳에서 검에 찔려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정명이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를 벨 생각이 없었다.
“깔끔하게 죽겠다? 환관치고 제법이군. 사례태감이 될 자격이 있어.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죽을 수는 없을 거야.”
정명은 쓴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 네가 죽이지 않는다면 자결하면 그만이다.”
명운이 그에게 물었다.
“자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아직 명예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나?”
그는 황제를 위한 충성심 때문에 정명이 죽으려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인물은 아니다.’
정명이 명운을 쏘아보며 대답했다.
“네 장난감이 될 생각이 없으니까.”
명운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그가 죽으려는 이유를 이해했다.
“음, 내 노예가 되어서 구르느니, 그냥 죽겠다는 말이군.”
동창의 사례태감다운 태도였다.
“좋아, 그러면 제안을 바꾸도록 하지.”
정명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제안이라고? 달리 말할 것이 더 있던가?”
명운이 그에게 말했다.
“네게 권력을 주겠다.”
“고를 당한 채 네 말을 믿으란 말이냐?”
“서로의 신뢰가 없으니, 그 정도는 부담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바보 같은 소리.”
명운은 혀를 찼다.
“쯧쯧, 아직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군.”
“상황이라고? 내가 네 녀석을 얕보아 낭패를 당했다. 그뿐이다.”
명운은 들고 있던 검신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게 아니야.”
정명은 그의 말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아니라고?”
“며칠 전 황제의 밀지가 도착했다. 네가 정주로 오리라는 것은 물론 서창의 이웅지라는 자가 함께 온다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
정명은 그의 대답에 경악했다.
“거, 거짓말.”
명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과거의 원한 때문에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고 생각한 모양이군.”
“그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당연히 아니지. 무림 맹주가 조정의 대관을 둘이나 죽이면 어떻게 되겠나?”
명운은 대관이라는 말로 정명을 살짝 올려 주었다.
“으음…….”
“내가 조정의 대관을 죽이면, 관과 무림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지겠지.”
정명이 무거운 음성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넌 폐하의 밀지에 따라 우리를 습격했다는 말이냐?”
“그렇지.”
“거짓말이다!”
명운은 그의 외침에 살짝 말끝을 높였다.
“왜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건가?”
“네가 밀지에 따라 날 죽이고자 했다면, 독환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끗이 죽인 뒤 황제에게 역적을 죽였다고 편지를 보내면 그만이라는 이야기였다.
명운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흐흠, 머리가 나쁘지 않군.”
정명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장하! 넌 결국 날 이용하려 한 것뿐이다.”
명운은 그의 말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살짝 말끝을 높였다.
“이봐, 내가 황제의 밀지를 따르면 무슨 이득이 있지? 기껏해야 두 역적을 베었다는 공로를 적은 검이나 옥패를 얻는 게 고작이겠지. 무림 맹주에게 그런 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오히려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황제의 개가 되었다고 비난을 받겠지.”
그는 냉정한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음……. 그래서 넌 날 이용하기로 한 것이냐?”
명운이 정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널 움직이고, 넌 권력을 갖는다.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림 맹주가 제안한 거래.
정명은 그의 제안을 듣고는 낮게 웃었다.
“후후후후…….”
명운이 물었다.
“왜 웃지?”
“나는 황제가 죽이라는 밀지까지 보낸 역적인데, 어찌 다시 권력을 쥘 수 있을까?”
정명은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황제의 손에 죽게 된다고 생각했다.
‘대장군 민자충이 황제와 손을 잡고 있을 줄이야.’
병부시랑 이웅지가 찾아와 말한 대장군 민자충의 음모.
그는 그 음모가 무림 맹주의 손을 빌려 그와 이웅지를 제거하는 것이라 예상했다.
명운이 살짝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명,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정명이 그에게 물었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고?”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황제를 죽여 주지.”
황제를 죽이겠다.
정명은 그의 말에 경악했다.
“폐, 폐하를 죽이겠다고?”
“써먹기 좋은 자를 황좌에 올리는 것. 너희가 가장 잘하는 짓 아닌가?”
“…….”
정명은 부인할 수 없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환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황제를 암살하는가 하면, 유언을 바꾸어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곤 했다.
“황제가 죽으면 넌 더 이상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다시 권력을 쥘 수 있게 되겠지.”
정명이 명운에게 물었다.
“네가 직접 황제를 암살하겠다는 건가?”
그는 더 이상 지금의 황제를 폐하라 부르지 않았다.
명운은 그의 물음을 듣고는 그가 자신의 계책에 동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림 맹주가 직접 황궁에 들어가 황제를 죽인다면 큰일이 나겠지.”
직접 나서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면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인가?”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 여인을 보내겠다. 넌 적당히 황제 근처까지 안내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쪽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정명은 미간을 좁혔다.
“폐하의 잠자리 상대를 추천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무리하게 여인을 강요하면…….”
모든 일이 어그러질 것이다.
그의 말대로 황제의 밤 시중을 드는 여인을 고르는 것은 그가 아닌 다른 태감의 일이었다.
“누가 황제를 침전에서 암살한다고 했던가?”
정명은 그의 물음에 눈을 가늘게 떴다.
“침전이 아니라면 어화원 같은 곳에서…….”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가 오십 보 안에 들어가면 황제는 죽는다.”
오십 보.
화살이나 강침 같은 암기를 사용하는 것일까?
‘암기에 뛰어난 장인이라면 혹시 사천당가 출신의 여인인가?’
정명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죽은 다음에는?”
그는 황제가 암살당한 다음을 알고자 했다.
“정성왕을 황좌에 앉히면 된다.”
정성왕 주현문.
그는 황제의 네 번째 동생이자 명운을 사모하는 여인 주가령의 아버지였다.
‘다음 황제는 어차피 주현문이다.’
그의 지난 생에서 주현문은 형을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바 있었다.
“음, 그대는 정성왕을 꼭두각시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명운이 그의 물음에 반문했다.
“그 정도면 좋다고 생각하지 않나?”
정명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것은 없지. 하지만 내가 돌아가면 바로 대장군 민자충이 황궁을 칠 것이다.”
명운도 대장군 민자충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것이 없었다.
‘황제는 내 검으로 서청과 동창의 우두머리를 베고, 대장군 민자충의 군대로 남아 있는 환관을 다 죽일 생각이었던 건가?’
그가 생각한 계책은 황제가 아닌 병부시랑 안회의 계책이었다.
“그대가 죽었다는 소식이 황궁에 닿기 전에 전서구를 보내 황제를 죽이는 수밖에.”
정명이 멈칫하며 물었다.
“살수는 이미 황도에 있는 건가?”
명운이 짧게 대답했다.
“그렇다.”
정명은 생각했다.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황제를 죽이지 못하면 그와 동료들이 죽을 운명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