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맹주와 교주 (3)
무공이 얼마나 뛰어나야 황제를 죽일 수 있을까?
강호인들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주제에 관해 논쟁을 벌이곤 했다.
“황제? 일류면 족하지 않을까?”
“일류 고수가 어떻게 황제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황제는 무공이 뛰어나지 않으니까. 일류만 되어도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지. 문제는 어떻게 그의 곁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야.”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무공이 뛰어난 황제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황제가 삼류는커녕 호위병 수준의 무공도 지니지 못했다.
따라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면 일류고수라고 해도 황제를 죽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군. 황제의 무공은 낮지만, 그 주변의 호위들은 그렇지 않아.”
황제의 호위, 즉 금군을 고려하지 않는 답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맞아. 황제를 호위하는 이들의 무공은 최소한 일류는 될 거야.”
황제를 호위하는 금군의 무공이 전부 일류라는 뜻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황제를 호위하는 호위대장 또는 호위무사의 무공이 최소한 일류는 된다는 뜻이었다.
“호위무사가 일류이면 주변 병사들까지 생각한다면…….”
“적어도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는 절정은 되어야겠지.”
절정의 고수가 황제를 찾아낸다면 그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절정고수라면 황제를 죽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다음은 어려울 거야.”
“그다음이라고?”
“살아서 돌아오는 것 말이야.”
황궁의 수비는 일이백이 아니었다.
많을 때는 만 명, 적을 때도 수천 명을 헤아리는 것이 황궁을 지키는 금군이었다.
황제를 살해한다면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었다.
“황제를 죽였으니, 된 것 아닐까?”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고?”
“그렇지. 아무리 절정고수라고 해도 황제를 죽인 뒤 황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무리야.”
찻집에 모인 강호인들은 황제를 죽일 수는 있지만,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금군과 금의위는 물론이고 동창과 서창의 환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동창과 서창에는 절정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절정이 아닌 초절정고수라고 해도 그들을 모두 베고 빠져나오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다면 황제를 죽인 다음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는 것이 깔끔하다는 이야기군.”
강호인들이 이야기의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때였다.
검은 수염이 돌기처럼 솟아난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헛똑똑이들이군.”
그의 힐난에 강호인들이 시선을 돌렸다.
“허평, 자네가 뭘 안다고.”
검은 수염은 정주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무공을 가르치고 있는 허평이었다.
“자네들보다는 잘 알고 있지.”
“자네가?”
“매부가 금군에 있거든.”
허평의 한마디에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네 매부가 황궁에 있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그러면 자네도 황궁으로 가는 건가?”
허평이 오른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황도나 황궁은 딱 질색이야.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난단 말이지.”
십여 년 전 그는 매부의 추천을 받아 황궁을 경호하는 호위무사로 뽑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관료들의 딱딱한 예법과 기대보다 적은 봉급에 실망해 정주로 돌아왔다.
허평이 정주 무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있다 해도 그는 절대로 황제를 시해할 수 없을 걸세.”
화경의 경지는 당금 무림의 최고수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중원에서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선화한 검선 장천선인과 전전대 맹주 남궁민 정도였다.
정주 무인들은 허평의 호언장담에 미간을 좁혔다.
“자네 매부가 금군이라는 것은 알겠네. 하지만 화경의 경지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경지가 아닐세.”
“맞아,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검기가 아니라 검강을 쓴단 말이지.”
검강을 쓰는 무인은 수백 명의 적을 한 장소에서 쓰러뜨릴 수 있었다.
탁.
허평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강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그러면?”
“나는 황제를 만나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자네들에게 하고 싶네.”
황제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황제를 죽일 수 없으니,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황궁에 들어가면 황제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허평은 순박한 무인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자네는 황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모양이군. 황궁은 현청이 아니었다. 우리 정주성보다도 더 크다고.”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황제가 머무르는 황궁은 호위병 수천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궁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런 것이군.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황제를 만날 수 없으니, 강호의 고수는 황제를 죽일 수 없다.”
허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황제들은 두 발을 편히 뻗고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었다.
‘강호에는 구파일방만 있는 게 아니니까.’
혈마나 마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흑도의 고수들은 종종 화경의 경지에 올라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황제를 만나는 일이 쉬웠다면, 벌써 몇 명은 혈마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거야.’
그는 황제를 위협하는 것은 백도보다는 흑도라 생각했다.
* * *
황궁.
밖에서 보는 황궁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었다.
하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황궁은 세상 전부라 할 수 있었다.
“누구냐?”
목소리를 높인 무관은 황궁으로 통하는 열두 개의 문 중 하나인 청인문을 지키는 수문장이었다.
“상선별감께 전할 물건이 있습니다.”
상선별감.
그는 상선태감을 보좌하는 자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태자의 수라상을 담당하고 있었다.
“통행증은?”
여인은 상선별감의 이름을 댔지만, 황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이 꼭 필요했다.
“여기 있습니다.”
수문장은 여인에게 받은 통행증을 살폈다.
“직인이 없지 않은가?”
그는 통행증 하단에 있어야 하는 직인이 없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그, 그것은…….”
수문장은 미간을 좁혔다.
“돌아가라.”
그는 여인의 용모와 상관없이 그녀를 돌려보내고자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내가 불렀네.”
문 안쪽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상선별감 밑에서 일하는 오치라는 자였다.
“오 공공…….”
오치는 황궁의 환관 중 중간쯤 되는 위치였으나 문을 지키는 수문장보다는 그 직급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오나 이 여인의 통행증에 직인이 빠져 있습니다.”
오치가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내가 직인을 찍으면 되는가?”
그는 손을 뻗어 통행증 하단을 내리눌렀다. 그러자 하단에 그의 지문이 박혔다.
수문장과 병사들은 그의 무공을 확인하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치는 시선을 여인에게 돌렸다.
“그대가 바로 연홍인가?”
여인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합니다.”
오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외모가 나쁜 것은 아니나 황상을 유혹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연홍이라는 여인은 나이도 제법 있어 보였다.
‘황상의 취향은 아닌데 말이야.’
그는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나를 따라오라.”
“알겠습니다.”
연홍이라는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걸음을 옮겼다.
오치가 앞서 걸으며 물었다.
“황궁은 처음인가?”
“처음입니다.”
“그렇군.”
오치는 앞서 진공이라는 환관으로부터 연홍이라는 여인을 상선별감 염주에게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었다.
‘염 공공에게 뇌물을 대려는 사람이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상선별감은 수라상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 옆에 항상 대기하며 황제가 원할 때마다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덕에 상선별감은 황제와 대화하는 일이 많았고, 그에게 줄을 대면 높은 벼슬은 아니라고 해도 적지 않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외궁을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황궁의 외궁은 황제를 지키는 금군이 머무는 장소였다. 그 때문에 이곳을 오가는 궁녀들은 특히 조심해야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오치는 호기심이 많은 이가 아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를 들여보낸 것은 나지만 내가 너와 연결된 것은 아니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오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맑아 외모 이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흠, 목소리 미인이란 말인가?’
어쩌면 노래 실력이 뛰어난 가기일 수도 있었다.
‘가기 치고는 분내가 나지 않지만…….’
가기란 신분을 지우기 위해 분내를 지운 것일 수도 있었다.
‘뭐, 내가 거기까지 생각할 것은 아니지.’
오치는 그녀를 상선별감에게 안내하면 그만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직 폐하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가 염 공공을 만날 수 있을까?’
상선별감 염주가 황제의 거처에서 물러나는 것은 황제가 업무를 끝마친 다음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해가 진 뒤에도 상소를 읽고 그 내용을 검토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후궁을 찾기보다는 밀린 상소를 뒤적이고 있었다.
“곧 내궁이다.”
연홍은 내궁에 이르기 전까지 두 개의 문을 더 통과해야 했다.
“내궁에서는 눈을 아래로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치의 지시에 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내궁은 황제의 거처를 제외하면 병사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환관들과 궁녀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어긋나게 된다면 황궁을 나가기도 전에 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오 공공,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오치에게 인사하는 이는 호인방의 장인전이라는 태감이었다.
“장 공공, 사람을 안내하는 길입니다.”
장인전은 연홍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미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황자가 아닌 상선별감께 가는 길입니다.”
“아, 염 공공께서 부르신 여인이군요.”
장인전은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연홍에게 말했다.
“이곳의 환관 중에는 여인을 탐하는 자들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남성성을 잃은 환관이 여인을 탐한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여인을 탐한다의 뜻은 궁 밖과 조금 달랐다.
환관들은 여인의 인생을 망치는 것을 여인을 탐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상선별감께서 너와 연결되어 있으니, 웬만한 환관들은 눈길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일이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상선별감 이상의 신분을 가진.
다시 말해 태감 직급을 가진 환관이라면 연홍을 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여인과 환관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오치는 누구는 무시하고 누구에게는 예를 올리며 더 깊이 들어갔다.
이윽고 그와 연홍은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는 전각에 이르렀다.
“오 공공, 무슨 일이십니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하는 이는 허리에 검을 찬 무관이었다.
연홍은 그의 무공이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일류는 되는 것 같구나.’
일류고수가 호위하고 있다면 이곳에 머무는 이의 신분이 낮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태자? 아니면 황후?’
어느 쪽이든 그 신분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염 공공께서는 아직이십니까?”
무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보실 상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폐하.
이곳의 주인은 바로 황제였다.
“그러면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오치는 여인을 염주에게 인도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귀찮은 일이야.’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홍의 복장이 궁녀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무관이 오치에게 물었다.
“한데 옆에 있는 여인은?”
오치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염 공공께 온 손님일세.”
무관은 그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는 오치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여인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염주의 취향이 이런 쪽이었나?’
무관은 연홍을 상선별감 염주의 노리개쯤으로 생각했다.
“그냥 두고 가시면 제가 염 공공께 인도하겠습니다.”
오치가 오른손을 들었다.
“아닐세. 내가 직접…….”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줄기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무관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커헉!”
오치는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너, 너는!”
그를 따라온 연홍이라는 여인은 순식간에 무관을 제압하고는 검을 빼앗아 전각 안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막아라!”
황제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이게 대체…….”
오치는 그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을 보고는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