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변동 (6)
“놀라신 모양이군요.”
석준명이 애써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명운은 순간 입술 끝을 올렸다.
“사람의 생각이란 다 비슷한 법이죠.”
심지가 있는 한마디.
석준명은 그 심지를 모르는 척 말을 받았다.
“이공자는 등에 날개를 달게 되었군요. 교주님께서는 무엇이라 하십니까?”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다가 여섯째 형이 재차 부탁하자 허락하셨습니다.”
석준명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음…… 그렇군요.”
그는 모든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공자가 승리하는 그림만은 막아야 한다.’
귀주석가가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삼공자 명원이 후계자가 될 때였다.
그러나 이공자 명각이 치고 나간다면, 명원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크게 떨어졌다.
‘역시 장공자뿐인가?’
석준명은 첫째 명천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운은 그의 사고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큰 형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가 깊이 찌르자 석준명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그럼 누굴 생각하셨습니까?”
석준명이 답했다.
“교주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을 말입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그것을 허락하셨는지 헤아려 보려 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님의 마음은 읽으실 수 없으실 겁니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석준명은 속으로 낮은 신음을 흘렸다.
‘끙……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은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하지만 명운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본가의 사람들과 의견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명운이 차를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이 정리되면 다시 만나도록 하죠.”
그는 오늘 만남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공자님, 벌써 가시는 겁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석준명이 물었다.
“낙산원에서 성취는 어떠하십니까?”
“생각한 이상입니다.”
“정말입니까?”
명운이 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좋은 스승을 만난 것 같습니다.”
석준명은 명운의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좋은 스승이라. 대체 누가 그에게 무공을 가르친단 말인가?’
그는 낙산원에 비선을 보냈으나 명운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설마 교주님께서 내리신 무공서를 바탕으로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무공을 모르는 자가 무공서만으로 일류 고수가 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성취가 있으시다면 비무대회에 나가 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명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비무대회 말입니까?”
대명궁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성인식을 올리지 않은 소년들을 대상으로 비무대회를 열었다.
이 비무대회에서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무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이 대회에 참여하는 소년은 권법과 장법, 그리고 금나수와 유술 정도를 사용할 수 있었다.
“비무대회는 상금도 있고, 승리자가 될 경우 검이나 무복 같은 부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는 석준명이 비무대회를 추천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쪽의 무공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겠지.’
명운은 그에게 자신의 무공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이쪽에서 거짓 참가자를 보내 공자님의 승리를 만들 수도…….”
승부 조작을 하자는 말.
명운은 웃을 뿐이었다.
“가주님,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석준명이 목소리를 낮췄다.
“비무대회 승리 또한 경력입니다. 높은 곳에 오르시기 위해서는 경력을 차분히 쌓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명운이 짐작대로 칠공자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공자의 무공이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무공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실전에서 쓸 수 없는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이쪽에서 새로운 스승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운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공자님.”
“이쪽은 형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낙산원에 은거 중입니다. 비무대회에 나간다는 것은 그 모든 노력을 무로 돌린다는 뜻입니다.”
명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잘 마셨습니다.”
석준명은 돌아서는 그를 잡지 못했다.
‘흠…… 쉽지 않은 아이구나.’
그는 명운을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아이가 어디를 보아서 열셋이란 말인가?
* * *
서숙으로 돌아온 명운.
그는 강하원과 마주 앉았다.
“석가의 반응은 예상대로더군.”
“공자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명운이 시선을 낮추며 답했다.
“바뀌는 것은 없을 걸세.”
그는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지금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강하원의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실수를 하게 되는 법이죠. 저도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일은 강 총관에게 맡기겠네.”
강하원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무기는 누구던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하후문입니다.”
우가촌의 명인 금석은 특이한 방법으로 무기를 만들었다.
그는 창이나 검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사용하는 이를 만나 직접 펼치는 무공을 보고 무기를 만들었다.
처음 만든 비수를 제외하면, 모든 무기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하후문이라. 알겠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서숙을 나섰다.
낙산원에서 서숙으로 올 때, 그를 수행한 이는 조광과 하후문 그리고 종영세였다.
“조광.”
명운의 호명에 앞서가던 조광이 목소리를 높였다.
“예, 공자님.”
“하후문과 들릴 곳이 있네. 그러니, 그대들 먼저 돌아가도록 하게.”
조광은 명운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자님, 저희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명운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벌써부터 말을 듣지 않은 것인가?”
“공자님.”
“자네 그것을 알고 있나?”
“예?”
“자네 말이야. 강 총관을 너무 닮고 있어.”
걱정이 너무 앞서 나간다.
명운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조광은 그의 지적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명운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내 말을 따르게.”
조광이 말 위에서 두 손을 모았다.
“그럼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좋아. 낙산원에서 만나도록 하지.”
명운은 하후문과 함께 남문을 향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우가촌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대명궁이 보이지 않게 되자 명운은 말에서 내렸다.
“문, 쉬었다가 가지.”
하후문은 말없이 말에서 내린 뒤, 고삐를 근처 나무에 묶었다.
명운은 그가 제법 과묵하다고 생각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가 바위 위에 앉으며 물었다.
“낙산원은 어떠한가?”
하후문이 창을 어깨에 기대며 대답했다.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뿐인가?”
“청룡대와 비교한다면 더 높은 수준의 무공을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명운이 물었다.
“하면 생활은 어떤가?”
낙산원의 호위들은 각기 다른 방을 쓸 정도로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또한 청룡대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다네.”
하후문은 명운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어떠한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손버릇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었지.”
도벽이 있어 쓸 수 없다.
명운은 강하원에게 그런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하후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헛소문입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하후문의 행동을 보면, 헛소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가 물었다.
“왜 그런 소문이 난 것이지?”
하후문은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제 잘못일 겁니다.”
“의심받을 짓이라도 한 것인가?”
하후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면 어떤 일인가?”
명운은 하후문의 사연에 호기심이 생겼다.
“정정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청룡대의 무인인가?”
“아닙니다. 매향루의 기녀였습니다.”
명운은 그의 말에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에게 원한을 산 모양이군.”
하후문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조원들과 함께 매향루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전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제 품속에 조장의 돈주머니가 들어 있었습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억울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명운은 하후문의 위아래를 살폈다.
‘키도 크고, 종영세만큼은 아니지만 얼굴도 괜찮은 편이다. 하면 일이 그렇게 된 것인가?’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정이라는 여인 때문에 누군가 자네에게 질투를 느낀 모양이군.”
하후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정이 제 옆에 앉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과했을 때, 자리를 옮겼어야 했습니다.”
그날 정정의 애교는 누가 보아도 과할 정도였다.
하후문은 그녀의 애교를 전부 받아 준 것이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지분 냄새와 분위기에 너무 빠지고 말았다.’
명운이 물었다.
“그래서 누가 질투를 한 것인가?”
하후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조장의 돈주머니를 훔칠 정도라면 조장과 가까운 이가 분명했다.
‘조장 본인인가? 아니면 부조장?’
명운은 누가 그를 모함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불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후 하후문은 동료와 섞이지 못하고 기름과 물처럼 겉돌았다.
서숙에서는 물론 낙산원에서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동료가 없었다.
명운이 말했다.
“난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네.”
순간 하후문의 짙은 눈썹이 꿈틀했다.
“전화위복이란 말입니까?”
“그 일 덕분에 자네를 청룡대에서 빼내 올 수 있었으니까.”
하후문이 청룡대에서 계속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그를 데려오는 것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공자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명운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큰 공을 세워 청룡대 녀석들에게 자네가 어떠한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 주게.”
그의 말에 하후문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발.
하나 하후문의 속마음은 크게 달랐다.
‘낙산원에 온 뒤로 무공은 늘었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공을 세울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전장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운은 하후문의 어색한 미소에서 그러한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문, 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후문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명운은 그가 침묵으로 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사기가 떨어지겠지.’
그가 다독이듯 말했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공의 크기가 커질 걸세.”
하후문은 명운이 애늙은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공자님이 강 총관보다 더 나이가 드신 것 같습니다.”
명운은 속으로 피식했다.
‘실제로 더 오래 살았으니까.’
그가 오른손을 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네.”
자신이 애늙은이가 된 것은 많은 독서량 때문이다.
명운은 이렇게 설명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