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꽃과 검 (1)
“자객이 황궁을 빠져나갔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태감 진증의 말을 금군 도독 장형이 받았다.
“진 공공, 금군의 피를 요구하는 겁니까?”
정명과 이웅지의 부재 덕분에 진증은 동창과 서창의 무인들을 통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궁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인 금군을 통솔하는 것은 금군 도독 장형이었다. 그는 자객을 놓친 책임을 금군에 미루는 진증의 말에 부아가 살짝 치밀어 올랐다.
진증은 눈치가 빠른 자였기에 금군 도독 장형이 화가 났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장 도독, 이쪽은 오치를 내어놓았습니다.”
장형은 환관 측이 오치를 내놓았다는 그의 말에 목소리를 굳혔다.
“오치는 자객을 안으로 들인 자입니다.”
그는 내놓은 것이 아니라 마땅히 벌을 받아 마땅한 자라는 이야기였다.
태감 진증은 그의 말에 가볍게 소매를 털었다.
“이것 참……. 장 도독, 폐하를 지키던 호위들에게 오치가 어떠한 일을 했는지 물어보셨습니까?”
장형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어떠한 일을 했다니요? 설마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진증이 담담하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
“오치는 호위무사들에게 폐하의 시신을 수습하게 하고, 남은 이들로는 자객을 잡고자 했습니다. 이는 그가 자객에게 속았음을 의미합니다.”
장형은 진증의 말을 듣고는 눈썹을 세웠다.
“진 공공, 오치가 속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증이 장형에게 되물었다.
“장 도독은 역용술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강호에서 말하는 변장술 말이군요.”
“자객은 오치가 데려가기로 한 여인을 빼돌리거나 죽인 뒤 그녀를 대신해 궁 안으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자객이 역용술을 사용해서 오치를 속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인즉슨…….”
“오치로서는 억울하겠지요.”
장형이 차갑게 말했다.
“진 공공의 말이 진실이라 해도 그가 자객을 폐하께 데려온 것은 사실입니다.”
무공이 뛰어나도 황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황제를 죽일 수 없었다.
장형은 오치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속았든 속지 않았든 이번 일에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오치다.’
태감 진증이 장형을 향해 말했다.
“억울함과 상관없이 자객을 데려간 오치가 죄인이라면, 자객을 놓친 별장들 또한 죄를 벗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객을 놓친 북문의 별장 또한 그 의도와 상관없이 자객을 놓친 것이 사실이었다.
장형은 진형의 지적에 낮게 신음했다.
“으음…….”
진증은 그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장형이 입을 열었다.
“별장 중 하나를 처벌하겠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실 것입니까?”
“참수형에 처하겠습니다.”
진증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참수면 족하겠군요.”
그는 능지처참이나 오마분시 같은 극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다음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장형이 눈썹을 세우며 물었다.
“벌써 시작되었다고요?”
진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미 동창의 무인들이 병부시랑 안회의 저택을 포위했습니다.”
“병부시랑 안회가 이번 일의 배후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병부시랑 안회는 성격이 별나 친분이 있는 자가 드물었다. 그러나 그는 사욕을 탐하는 자는 아니었다.
“안회가 무슨 이유로 폐하를 해하고자 했는지 모르겠군요.”
진증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정변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장형이 놀라 물었다.
“정변이란 말입니까?”
진증이 목소리에서 한기를 풍기며 대답했다.
“그가 실제로 노린 것은 노부와 같은 환관들일 것입니다. 그는 이전부터 환관을 미워했고, 환관을 중용하는 폐하께 역심을 품었습니다.”
장형이 눈썹을 내리며 그의 말을 받았다.
“하나 그것만으로 그가 정변을 일으켰다고 하기에는…….”
진증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배경과 세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겠지요?”
장형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병부시랑은 낮은 벼슬이 아니나 역모를 주모할 정도의 벼슬 또한 아닙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병부시랑은 병부의 첫 번째도 아닌, 두 번째였기에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실권이 없었다.
황제를 암살하고, 환관들을 살해한다고 해도 병사를 움직일 수 없다면 황도와 황궁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안회가 기댄 이가 있습니다.”
장형은 마른침을 삼켰다.
“안회와 함께 정변을 일으키고자 했던 자가 황도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황도에 없습니다.”
“황도에 없다면…….”
장형이 말을 흐리자 진증이 차갑게 말했다.
“대장군 민자충이 바로 이번 일의 흑막입니다.”
대장군 민자충.
장성을 지키는 중원의 방패.
그가 이끄는 정병 삼십만이 움직인다면, 금군 오천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장형이 앓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끄응…….”
그는 민자충이 황도를 공격해 온다면 막을 자신이 없었다.
“걱정이 크신가 봅니다.”
장형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민자충이 이곳을 공격한다면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쪽에는 황명이 있습니다.”
“정성왕의 명을 그가 받아들이겠습니까?”
“황태후의 교지에 따라 황좌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정성왕이 아니라 폐하이십니다.”
장형은 태감 진증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보았다.
“민자충이 받들지 않으면 끝 아닙니까?”
민자충에게는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정예병 삼십만이 있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황제의 명을 거역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순순히 군권을 놓고 형장으로 향할까요?”
진증은 형장이라는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장 도독은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장형은 그의 말을 듣고는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했다.
‘쯧,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 누구인데…….’
그가 살짝 말끝을 올렸다.
“제가 일을 쉽게 생각한다고요?”
진증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민자충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정병 삼십만을 거느리고 있는 대장군입니다. 그에게 죄를 실토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당장 대군을 이끌고 황도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장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방금 황명으로 그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는 늙은 태감이 꿍꿍이를 몰라 답답할 뿐이었다.
“장 도독, 우리는 민자충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그 목표가 달랐다.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요?”
진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성왕께서 황제에 즉위하신 이후,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를 양광의 총독으로 임명할 것입니다.”
양광이란 광동과 광서 두 성을 동시에 언급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한 성의 총독이라면 대장군에 비해 그 직위가 낮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동과 광서 두 성을 다스리는 총독이라면 그 지위가 대장군에 비해 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으음, 사약이나 유배가 아니라 근무지를 남쪽으로 옮기고자 한다는 이야기군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라고.”
“그가 받아들일까요?”
“병부시랑 안회가 참수되면 그도 일이 글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장형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일이 틀어졌으니, 군사를 일으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황도에 끈이 떨어졌으니, 그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광의 총독은 낮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자 할 것입니다.”
장형은 진증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노괴가 나이를 헛먹은 것이 아니군.’
암계에 있어서는 무관인 그가 환관인 진증을 따라갈 수 없었다.
* * *
“할 말 있으면 하게.”
명운의 앞에 선 이는 하후문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맹주님…….”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편히 말하게.”
명운을 이미 기파를 펼쳐 주변을 확인한 바 있었다.
하후문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맹주님께서 일을 너무 크게 벌이시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는 명운이 동창과 서창의 우두머리를 베고, 그것도 모자라 천하의 영웅들을 소집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이번 일을 그대로 묻는 것도 아니고, 점점 판을 키우시니…….’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수 있었다.
“문, 내가 일을 크게 벌일수록 사람들은 날 의심하지 않을 걸세.”
크게 벌인 일에 시선이 끌려 명운의 신분이나 정체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오나 맹주님, 자칫 일이 잘못된다면…….”
수습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명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잘못될 일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걸세.”
그는 이번 일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환관들은 충이나 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오히려 상대하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조정의 관리들은 이쪽이 흑막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할 것이다.’
환관과 조정의 관리들.
그들은 이번 일로 서로 싸우기 바쁠 터였다.
“맹주님, 최근에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듭니다.”
“무슨 안 좋은 생각인가?”
“일이 너무 쉽게 풀리고 있습니다.”
명운은 그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폭풍이 불기 전에는 날이 맑은 법이라는 말이군.”
“제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음, 일이 잘 풀릴 때를 경계해야 하는 법이지. 자네 조언은 참고하겠네.”
하후문이 한마디 더 하고자 할 때였다.
멀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누가 오는군.”
하후문은 그의 말을 듣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제가 손님을 맞이하겠습니다.”
“그러게.”
하후문이 밖으로 나오자 맹주의 집무실로 뛰어오는 이가 보였다.
그는 바로 연수각주 제갈서준이었다.
“연수각주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하후문이 묻자 제갈서준이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맹주님을 뵈어야겠네.”
하후문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열어 주었다.
“맹주님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제갈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문을 두드렸다.
“연수각주입니다.”
명운이 낮은 음성으로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들어오십시오.”
끼익.
제갈서준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난리가 났습니다.”
명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끝을 높였다.
“난리가 났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갈서준이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황제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순간 명운이 눈썹을 세웠다.
“누가 전해 온 소식입니까?”
“북경지부와 북경의 여러 문파에서 동시에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여러 곳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으니, 잘못된 소식일 리 없다는 것이 제갈서준의 판단이었다.
명운은 빙왕의 암살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빙왕의 실력은 역시 대단하군.’
빙왕의 실력은 부교주 유청과 비슷하거나 살짝 더 높은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실력은 천마신교에서 명왕 다음이었다.
“음, 그렇다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소식이 아니군요.”
“일이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제갈서준이 공교롭다고 말한 것은 명운이 동창과 서창의 환관들을 벤 직후 황제가 암살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과 맹주님의 일이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정주에서 상대한 사람들과 황궁의 음모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황제의 밀지가…….”
제갈서준은 명운에게 황제의 밀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수각주께서는 황제가 내게 보낸 밀지가 발각되어 환관들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맹주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겠습니까?”
명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정말로 그렇게 돌아간다면 천하의 영웅들에게 보낸 전서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환관들의 횡포를 규탄하며 뜻을 같이할 이들을 모은다는 전서를 사방으로 보낸 바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환관들과 큰 싸움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제갈서준은 걱정이 깊은 얼굴이었다.
“연수각주, 나는 무림맹주입니다.”
“맹주님…….”
“맹주란 맹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의를 미워하고, 그것을 벌하는 이가 바로 무림맹주입니다. 맹주란 자가 불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저지른 자의 힘을 걱정한다면 본맹은 바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갈서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맹주님은 단호하시구나.’
그는 명운이 환관들과 일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맹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습니다.”
이전이라면 어떻게든 싸움을 피하고자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명운이 맹주가 된 이후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명운이라면…….
깊이 가라앉고 있는 무림맹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연수각주.”
제갈서준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맹주님, 하명하십시오.”
명운이 목소리를 풀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림맹과 황궁의 정면충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맹주님께서 말씀하신 인질 때문입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었기에 제갈서준은 직설적으로 물은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맹주님, 인질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입니까?”
“중요한 사람입니다.”
제갈서준은 그의 대답에 두 손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황궁에서 일어난 일은 북경지부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의 죽음에 관한 조사와 대처를 북경지부장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황제의 죽음은 작은 일이 아니니, 북경지부에 인원과 자금을 더 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사람과 돈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제갈서준은 재차 허리를 굽혔다.
“속하, 맹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가 돌아서 나가려 할 때였다.
명운이 그에게 물었다.
“개방에서 전서가 왔습니까?”
개방은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황궁과 황도에서 일이 났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소식을 접했을 가능성이 컸다.
제갈서준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오지 않았습니다.”
명운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갈서준은 그가 개방에 크게 실망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방은 무림맹의 일원이니, 총단에 소식을 전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본맹과 맹주님을 무시한 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구파일방과 무림맹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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