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꽃과 검 (3)
마교의 준동.
이 소식은 화산파에 이어 무림맹 총단에도 전해졌다.
정묘각주 형우제와 태원각주 조명의 얼굴은 어두웠다.
“맹주님, 십만대산의 비선으로부터 전서가 도착하였습니다.”
명운이 정묘각주 형우제에게 물었다.
“전서가 아니라 두 각주가 직접 오셨으니, 중요한 내용인가 봅니다.”
형우제가 살짝 목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마교주가 폐관을 끝내고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명운은 낮게 신음했다.
“으음…….”
이번에는 태원각주 조명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맹주님, 마교의 준동은 쉬이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오악검파의 이익을 우선시했으나 마교와 싸움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교주가 폐관을 끝낸 것만으로 준동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마교주는 젊고 강합니다. 그는 십만대산에 그대로 머물 인물이 아닙니다.”
명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십만대산을 떠나 동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태원각주 조명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건 곤란하군요.”
그가 곤란하다고 말하자 형우제가 굳은 음성으로 뜻을 밝혔다.
“영웅대연을 연기하고, 새로운 황제와는 화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교와 싸우기에 앞서 내부 단속을 하자는 말이었다.
‘진짜로 싸운다면 형우제의 말대로 해야겠지.’
하지만 명운은 알고 있었다.
대명궁에 모습을 드러낸 마교 교주가 가짜라는 것을.
“영웅대연은 연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먼저 황제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겠습니다.”
두 사람은 명운의 대답에 짧게 탄식했다.
“아…….”
“매, 맹주님.”
다음 순간 명운은 목소리를 굳혔다.
“마교 교주가 움직인다면 영웅대연에 모인 영웅들과 함께 서쪽으로 진군할 것입니다.”
형우제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맹주님, 만에 하나 영웅대연보다 빨리 진군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명운이 굳은 음성을 살짝 풀었다.
“마교와 최전선은 소림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소림의 백팔나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영웅대연에 참석한 영웅들과 함께 서쪽으로 갈 때까지 소림이 마교를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태원각주 조명은 명운의 설명을 듣고는 모았던 두 손을 풀었다.
“맹주께서는 구파일방을 믿으시는 것이군요.”
명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은 탐욕스러운 자들이기에 마교와 중원을 나누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림의 평화나 정의가 아닌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조명은 구파일방이 전력으로 싸운다면 마교의 진격을 어느 정도는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바로 지금의 구파일방을 가리키는 것이지.’
그는 마교의 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운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것은 바로 영웅대연에서 오악검파가 낸 후보가 명운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최선의 후보를 찾지 못한다면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지난번에 명운과 겨루었던 항상파 장문인 자은사태 정도의 인물이라면, 승산이 없었다.
명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화산파가 내세우고 있는 진명도장 이상의 인물이 필요했다.
문제는 지금 오악검파에 그 정도의 인물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명과 형우제는 조용히 맹주의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서준, 우리를 기다렸는가?”
제갈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상한 일이군.”
“무엇이 이상합니까?”
태원각주 조명이 대답했다.
“자네는 우리보다는 맹주님과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두 분께서 맹주님과 이야기를 끝낸 것 같아서 두 분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조명은 연수각주 제갈서준이 그들과 같은 이유로 맹주를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 가서 이야기하세.”
세 사람은 대전과 태원각 사이에 있는 작은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께서는 맹주께 영웅대연을 연기하고자 건의하신 것이 아닙니까?”
제갈서준은 맥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정묘각주 형우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네가 바로 보았네. 우리는 영웅대연을 연기하자고 건의했지.”
“맹주께서 받아들이셨습니까?”
“맞춰 보게.”
형우제의 한마디에 제갈서준이 턱을 쓰다듬었다.
“정묘각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맹주께서는 연기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유는?”
“맹주께서는 마교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형우제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네. 맹주께서는 구파일방이 마교의 선봉을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네.”
제갈서준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명운이 그린 그림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맹주께서는 마교의 선봉을 구파일방으로 상대하고, 본군이 진격할 때 직접 대군을 이끌고 맞서고자 하시는구나.’
현실적이면서도 정석적인 계책이었다.
‘하지만 마교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천마와 그의 제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
마교는 패도보다는 묘책이나 암수를 더 선호했다.
제갈서준은 마교가 명운이 생각한 것과 같이 정면으로 승부하려 하진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맹주께서는 구파일방이 마교를 막는 사이 구원대를 꾸릴 작정이시군요.”
태원각주 조명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렇지 않네. 맹주께서는 그사이 영웅대연을 열어 맹주좌의 주인을 가릴 생각이시네.”
마교와 싸우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새로운 맹주의 책무다.
“하면 맹주께서는…….”
형우제가 덧붙이듯 말했다.
“맹주께서는 맹주좌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시네. 영웅대연에서 진명도장이 뽑힌다고 해도 맹주께서는 그의 뜻을 따를 것이네.”
구파일방이 영웅대연에서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을 내세우고자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었다.
“맹주께서는 그렇게 하시겠죠.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명운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출신 문파의 뜻을 따를 것인가를 물은 것이었다.
“나는 맹주를 따르고자 하네.”
정묘각주 형우제는 전부터 명운을 지지했기에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
제갈서준의 시선이 태원각주 조명에게 향했다.
태원각주 조명은 무림맹의 중진이자 태산파의 중심이었다.
“서준, 자네는 내 위치를 알고 있지 않나?”
제갈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 사형은 오악검파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이 몸은 어쩔 수가 없네.”
제갈서준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 더 바빠지기 전에 태산에 다녀오십시오.”
지금이라면 태산에 올라 태산파의 뜻을 알아볼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더 늦으면 갈 수 없을 테니까.’
조명은 그의 말을 듣고는 그답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내 생각을 다 해 주다니 별일이군. 자네야말로 본가에 다녀오는 게 좋지 않겠나?”
제갈서준이 굳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쪽은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대세가의 결정과 상관없이 맹주를 지지하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조명은 제갈서준에게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오대세가는 확실히 다르군.’
오대세가는 구파일방이나 오악검파와 달리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다.
적이 나타나면 힘을 합하지만, 무리해서 뜻을 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지.’
화산파가 구파일방을 선택한 상황에서 남은 사악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 * *
황제의 죽음.
대장군 민자충은 비보를 전해 듣고는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를 둘러싼 비장들 또한 침통한 얼굴이었다.
“대장군,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 황도로 달려가 역적을 처단하여야 합니다.”
민자충이 수하 장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가 역적이란 말인가?”
장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폐하의 눈과 귀를 어지럽혔던 환관들이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사내도 계집도 아닌 자들을 싹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황궁에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뻔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병부시랑 안회의 주장과 같았다.
‘내 수하 중 안회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 있는 것인가?’
군권은 그가 가지고 있지만, 군의 소속은 병부였다.
수하 장수 중 병부시랑 안회와 끈이 닿아 있는 자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아직 역적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그의 한마디에 수하 장수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장군,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지금 군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쪽이 당합니다.”
“장군, 우리가 움직일 때입니다.”
장수들은 이참에 황궁의 환관들을 몰아내길 원했다. 하지만 대장군 민자충은 알고 있었다.
군을 이끌고 황도로 향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성공하면 영웅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그 순간 역적이 되어 구족이 멸족될 것이다.’
그는 군권을 쥐고 있는 대장군이었기에 수하 장수들처럼 성공만 생각할 수 없었다.
‘황도의 성벽을 높고, 오천 금군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
시간이 끌리면 각지에서 구원병이 당도할 것이고, 그들은 앞뒤에서 적을 맞아 싸워야 했다.
‘쉽게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수하 장수들을 내리누르기만 할 수도 없었다.
민자충은 결심한 듯 수하 장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장수들은 돌아가 병사들의 태세를 정비하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라.”
그의 명을 들은 장수들이 반색했다.
“대장군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민자충은 돌아가는 장수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으로 며칠은 벌 수 있겠지.’
그는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라 했지만, 당장 북벽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물러난 뒤.
그는 한 명의 비장을 불렀다.
“이청.”
이청이란 이름을 가진 비장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장군, 명을 내려주십시오.”
“그대의 기마대의 기마술은 본군 제일이다.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황도로 가라. 그리고 그곳의 실상을 살핀 뒤 전서로 보고하라.”
이청이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존명!”
대장군 민자충은 일단 황도의 분위기를 살피고자 했다. 그는 전쟁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같은 시각.
병부시랑 안회의 저택은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어찌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의 계책은 정명과 이웅지가 죽은 뒤 민자충의 군대로 황궁의 환관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명과 이웅지의 생사는 불명이 되었고, 민자충의 군대는 북쪽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황제가 죽었고, 황궁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혼란을 틈타 군을 동원하고자 했지만, 병부상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뒤.
병사들이 그의 저택을 포위하고 말았다.
“대인, 어찌합니까?”
총관을 향해 안회가 말했다.
“병사들이 식솔들을 모두 죽이진 않을 것이다. 다들 후원으로 물러나라.”
“대인은 어찌하시려는 것입니까?”
안회가 옷을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태어나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는가?”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대인!”
“물러가라. 네가 날 따라온다면 저택의 식솔들은 누가 살피겠는가?”
“대인!”
안회는 총관을 뒤로한 채 가장 높은 누각으로 향했다. 그가 오른 누각은 밖에서 볼 수 있을 만큼 높았다.
누각의 끝에 이르자 저택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 금군인가?’
저택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도독 장형이 보낸 이들이었다.
‘오 도독이 있을 때 일을 벌였어야 했던 것인가?’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인물은 금군 도독이자 금의위 수장이었던 오순이었다.
오순은 때로는 환관들과 손을 잡는가 하면 때로는 환관들을 밀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강남대협 장하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직하고 말았다.
“일이 틀어진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이겠지.”
안회가 쓰디쓴 웃음을 흘렸을 때였다.
“저기! 안회입니다!”
그를 본 병사의 외침에 주변 병사들이 시선이 누각을 향했다.
“안회다!”
“안회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안회는 자신을 향해 창을 돌리는 병사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가 필요한 것은 내 시신이겠지? 이곳에 와서 가져가라!”
그는 말을 마친 뒤 누각에서 뛰어내렸다.
환관들을 몰아내고 황권을 바로 세우려던 충신의 최후였다.
* * *
“후우…….”
긴 한숨과 함께 의자에 주저앉은 이는 대호법 사마진이었다.
“태화전이 끝났으니, 그래도 한숨 돌리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있는 여인은 복심 아소였다.
“눈치 빠른 자들은 알아차렸을 거야.”
사마진은 명운으로 역용한 채 그를 대신해 태화제를 주관했다.
그러나 그녀의 역용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성별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란 말이지.’
겉모습은 다양한 도구와 변장을 이용해 바꿀 수 있었지만, 목소리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명운은 현경에 접어든 고수라 그 존재감이 대단했다.
그녀는 그의 존재감까지 흉내를 낼 수는 없었다.
“사대호법 말인가요?”
오늘 태화제에는 멀리 서장에 나가 있던 사대호법이 돌아와 참석했다.
그들은 교주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사마진의 역용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만이 아니야.”
삼단주 더 나아가 사신대주 중에서도 그녀의 역용을 알아차린 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들이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삼단주와 사신대주는 모두 교주 명운의 심복이었다. 교주의 부재를 안다고 해서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작았다.
“그렇긴 하지.”
“내일은 어떻게 할까요?”
아소의 물음에 사마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일은 일정이 없을 거야.”
일정이 없으면 이처럼 복잡한 역용을 할 필요도 없었다.
“교주님께서 대호법님의 수고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마진이 명운으로 역용한 것은 중원에 나가 있는 그를 돕기 위함이었다.
“교주님께서 알아주시지 않아도 괜찮아.”
“대호법님?”
“교주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된 거야.”
사마진은 고개를 동쪽에 난 창문으로 돌렸다.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명운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그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