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다 된 밥이라 할 수 있을까? (6)
영웅전 안은 대협 장하를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장 맹주의 승리다!”
“장 맹주가 이겼어!”
“장 맹주! 축하드립니다!”
반대로 구파일방과 그들을 지지하는 문파 사람들의 얼굴은 침통함 그 자체였다.
“이럴 수가 있나.”
“열 표 중 단 한 표라니.”
“이건……. 도무지…….”
이제 남은 표를 대협 장하가 다 가져간다면 결선은 싱겁게 끝날 터였다.
개방의 후개 역시 오른손을 꾹 쥐었다.
‘남은 표는 이제 열여덟 표, 포기가 한 표 나오더라도 승리하는 것은 장 맹주다.’
그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현원문의 채양 때문이라 생각했다.
‘오악검파는 좌 맹주 암살에 우리 구파일방이 연루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오악검파와 그들을 지지하는 문파들은 대협 장하를 맹주로 뽑아 구파일방에 그 죄를 묻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일이 어렵게 되었군.”
비관적인 말을 내뱉은 이는 무당파 이대제자 태인진인이었다.
후개는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말로 어려워졌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포기 표가 셋이나 나와야 했고, 비기기 위해서도 두 표가 필요했다.
‘첫 번째 선택에서 포기 표는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은 이번에도 포기 표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나는 몰라도 둘은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구파일방은 이번에도 맹주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태인진인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후개, 어쩌면 참마대를 해산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참마대는 구파일방이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육성하고 있는 정예부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맹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무림맹에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후개는 그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참마대가 해산한다면 마교에 유리할 뿐입니다.”
그는 참마대를 이끌 유력한 신진 고수 중 한 명이었다.
“하나 상황이 이렇지 않은가?”
구파일방이 전면에 나서기 위해서는 진명도장의 승리가 절실했다.
하지만 결선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늘이 더는 구파일방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마음속으로 후개와 같은 질문을 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패배가 유력한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었다.
진명도장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본도가 부덕한 탓이로다.”
그는 채양의 핑계를 대는 대신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간 중원 무림이 아닌 화산파나 구파일방을 먼저 생각했기에 무림 동도들로부터 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현진도장이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도장,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했습니다.”
그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구파일방 진영을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채양의 등장이 장 맹주의 계책이라면, 그쪽의 준비가 우리보다 나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파일방은 영웅대연에 앞서 최대한 표를 확보하고자 했지만, 오늘과 같은 일은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이런 계책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 맹주! 승리 선언을!”
“어서 승리 선언을 해 주십시오!”
명운은 영웅전 안의 분위기를 다독이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
“여러분! 아직 의결권 행사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들 목소리를 낮춰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게 낮아지지 않았다.
“장 맹주! 장 맹주!”
“축하드립니다!”
“맹주좌에 앉아 주십시오!”
제갈서준을 비롯한 오대세가 사람들의 얼굴은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못지않게 밝았다.
“숙부님, 맹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제갈연연의 말에 제갈서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뜻밖의 결과가 나왔구나.”
영웅대연이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오늘의 승산을 삼 할 정도로 예상한 바 있었다.
‘내 예상이 틀려서 다행이구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태원각주 조명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후후후, 의심할 짓을 했으니, 의심을 받는 것이겠지.”
그는 태산파 출신으로 형산파 장문인 악흔을 지지했지만, 악흔이 결선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자 대협 장하 쪽으로 지지 방향을 틀었다.
물론, 태산파를 대표해 손을 든 것은 그가 아니라 장문인이자 사제인 하명도장이었다.
그러나 하명도장과 그는 표결에 앞서 전음으로 대협 장하에게 표를 주자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다.
그들이 표심을 바꾼 이유는 구파일방을 현원문의 배후로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언행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갈연연은 조명의 혼잣말을 듣지 못했으나 마치 들은 것처럼 제갈서준에게 이야기했다.
“결국, 사필귀정인 듯싶습니다.”
구파일방이 오악검파와 대립하여 결국 그들의 표를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제갈서준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연연아, 결선에서는 이겼지만, 앞으로가 걱정이 되는구나.”
제갈연연은 숙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숙부님, 무엇이 걱정이란 말입니까? 설마 결선에서 이기고도 맹주좌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결선에서 이겼으니, 맹주님께서 맹주좌의 주인이 되시겠지. 다만 구파일방은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제갈서준은 구파일방이 맹의 일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리라 예상했다.
“구파일방이 그렇게까지 할까요?”
제갈서준이 그녀의 물음에 반문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저지른 짓을 잊었느냐?”
“그렇긴 하지만…….”
제갈연연은 새로운 맹주를 지지하는 길만이 마교를 이길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설마 구파일방이 그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길을 알고도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을 넘어 해악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 구파일방에 대한 믿음을 남겨 두기로 했다.
영웅전 안의 함성과 고함이 잦아들자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무림 동도 여러분, 아직 첫 번째 후보의 표를 확인해 보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두 번째 후보의 표 또한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포기하는 표, 다시 말해 기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서준은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기권이 두 표가 나온다고 해도 동률이니, 이쪽이 다소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명운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물었다.
“단상 아래 계신 분 중에 두 번째 후보를 지지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른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를 지지하는 이들.
대협 장하를 지지하는 이가 열일곱을 넘으면, 결선은 여기에서 끝이었다.
곧 의결권을 지닌 이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단상 근처 있던 무림인들은 손을 든 이들의 숫자를 셀 수 있었다.
“오! 많다!”
“자, 장 맹주가 이겼어!”
무림맹 총단 제자들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맹주님께서 이기셨습니다.”
“맹주님의 표가 한 표 더 많습니다.”
남은 표가 모두 명운에게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운은 열일곱 표를 얻어 한 표 차이로 진명도장을 앞설 수 있었다.
명운도 이러한 결과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승리 선언을 하지 않았다.
“결선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진명도장과 본 맹주 모두 무림 동도들에게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파일방 제자들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장 맹주에게 질 줄이야.”
“우리가 장 맹주를 너무 쉽게 보았어.”
“현원문 사건으로 상황을 뒤집어 버리다니…….”
몇몇 제자는 현원문 사건은 조작이며 채양과 장하가 짜고 일을 계획한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러한 주장을 할 수는 없었다.
‘장문께서도 나서지 않는데, 우리가 나설 수는 없다.’
구파일방은 그 어떤 문파들보다 위계질서가 강했으며, 하극상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총단 제자들은 명운이 곧 승리 선언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명운의 승리 선언은 그들의 예상과 달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는 앞으로 길면 십 년 이상 짧아도 몇 년은 무림맹을 이끌어 갈 맹주를 뽑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표결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제갈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승리 선언과 어조가 다르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후개 또한 그의 이야기에 뭔가 다른 뜻이 섞여 있음을 깨달았다.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표결 자체가 결과가 아니라는 말인가?’
명운이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표결을 통해 두 후보 모두 많은 이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지를 받는 것과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다릅니다.”
이제는 제갈서준을 넘어 제갈연연과 정묘각주 형우제조차 눈썹을 세웠다.
“맹주님…….”
그들은 명운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승리 선언이 아니다.’
제갈연연은 그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숙부님, 맹주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제갈서준은 그녀의 물음에 낮게 신음했다.
“지금의 이야기는 내게도 해 주신 적이 없다.”
참모이자 심복인 그에게조차 말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명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아진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내공이 실려 있어 영웅전 밖에서도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무림맹은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에 있습니다. 특히 마교는 그 어느 때보다 위협적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덕, 그리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무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무공.
눈치 빠른 자들은 그의 한마디를 듣고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장 맹주는 비무를 원하고 있다.’
후개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후개, 장 맹주가 비무를 원하고 있는 것인가?”
태인진인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태인진인은 진명도장이 맹주좌를 탈환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장 맹주가 스스로 함정을 팠군.”
오만이 지나쳐 스스로 함정을 팠다.
그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후개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장 맹주는 겉모습과 달리 계책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 그가 순수한 목적으로 비무를 계획했을 리 없다.’
대협 장하가 비무를 말한다면,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을 터였다.
‘무엇을 준비했는지 꿰뚫지 못한다면 앞서와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는 대협 장하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비무는…….”
후개가 말끝을 흐리자 태인진인이 눈썹을 세웠다.
“후개, 왜 그러는가? 뭔가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가?”
후개가 주먹을 쥐며 대답했다.
“선배님, 그의 칼끝은 진명도장이 아닌, 구파일방 전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태인진인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장 맹주의 칼끝이 구파일방 전체를 향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질문과 답변은 단상 위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태인진인과 같은 질문을 던진 이는 제갈연연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제갈서준이었다.
“맹주께서는 구파일방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내가 너희 구파일방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터이니, 이번에도 패한다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
제갈연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말을 받았다.
“내가 너희를 세력과 무공에서 모두 압도했으니, 구파일방은 나를 따라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나는 맹주님의 말씀이 그렇게 들리는구나.”
구파일방 장문인 중 상당수가 명운의 말에 담겨 있는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으음.”
“장 맹주가 바라는 것은…….”
“아마 그것일 것입니다.”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이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에게 말했다.
“진명도장, 이번 비무는 위험합니다.”
진명도장이 장하와 비무에서 패한다면 구파일방은 그 날개가 완전히 꺾여 버릴 터였다.
하지만 검으로 답하는 무림 문파가 영웅대연에서 비무를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이번 비무는 이쪽에 불리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무에서 이긴다면 맹주좌를 탈환할 수도 있었다.
진명도장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장문, 기회가 왔는데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나는 도장을 믿으리다.”
현진도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진명도장을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이윽고 명운의 입에서 비무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지혜와 덕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무림 동도들의 지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공입니다. 본 맹주는 무림 동도들의 큰 지지를 받은 두 사람이 서로의 무공을 확인하여 맹주를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비무를 제안하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 맹주의 말이 옳습니다!”
“비무로 승자를 가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덕과 무공을 모두 지닌 이가 맹주가 된다면 마교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오대세가와 총단 제자들은 명운의 비무 선언에 살짝 실망하는 눈치였다.
“다 이겼는데 비무까지 해야 하는 건가?”
“비무에 지면 정말로 맹주좌를 내줘야 하잖아.”
“이건 이쪽에 너무 불리한 싸움이야.”
“맞아, 구파일방도 뭔가를 걸어야 하지 않겠어?”
영웅전 내부가 술렁거릴 때였다.
남궁세가 가주 남궁책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맹주님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하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명운이 남궁책에게 물었다.
“남궁 가주께서는 무엇이 아쉽습니까?”
남궁책이 두 손을 모은 채 대답했다.
“두 사람의 무공이 백중지세여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명운이 답하려는 순간 진명도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 가주께서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무공이 같아 우열을 논하기 힘들 때는 장 맹주께서 맹주좌에 앉으시면 됩니다.”
장하가 더 많은 표를 가져갔으니, 무공이 같을 때는 그가 맹주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은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자 했다.
한데 용두방주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든 것을 진명도장에게 맡기자는 뜻이었다.
“…….”
나운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검으로 패한다면 미련이 남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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