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01)
501화 마음을 얻는 길 (2)
자은사태는 명운과 진명도장의 비무를 보며 생각했다.
‘진명도장의 무공이 나보다 낫구나.’
진명도장은 화산파 장문인다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그와 싸우고 있는 명운은 그 나이가 의심될 정도였다.
‘상대의 검과 기운을 자유자재로 읽고 받아치니, 그 경지는 화경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운의 무공은 그녀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었다.
‘경지가 다르다.’
경지가 다르니, 승패 또한 의미가 없었다.
첫 격돌부터 명운이 앞서 나갔고, 지금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두 사람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까요?”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 이는 숭산파 장문인 홍익선이었다. 그는 오악검파의 일원이었지만, 명운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자은사태는 그의 물음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것은 진명도장의 결심에 달렸을 겁니다.”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진명도장이 승복하는 순간 비무가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답을 들은 홍익선이 재차 물었다.
“사태, 진명도장이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자은사태는 그의 두 번째 물음에 멈칫했다.
“그것은…….”
그녀는 영웅연에서 있었던 비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명예만이 걸린 싸움이라면 검을 아래로 내린 채 패배를 인정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검에는 항산파의 명예는 물론이고, 오악검파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 진명도장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것은 화산파가 아니라 구파일방 더 나아가서는 중원 무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명도장은 싸움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어깨에 중원 무림이 올려져 있었기에.
쉬익!
검이 바람을 갈랐지만, 곧 상대의 검에 막히고 말았다.
타악!
아귀에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격돌.
하나 상대의 검은 그의 검을 밀어내고는 뒤로 물러났을 뿐이었다.
‘여유? 아니면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것인가?’
공격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아니다. 장 맹주는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비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 나은 모습을 무림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명운은 충분히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눈이 있으면 다 보았으리란 것인가?’
진명도장은 입안이 바싹 말랐다.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내가 진명도장을 사지로 내보냈구나.’
진명도장의 성품은 강직 그 자체였다. 그는 검이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고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구파일방 장문인 중 처음으로 패배를 입에 담은 이는 형산파 장문인 악흔이었다.
“악 장문?”
청성파 장문인 자현도장이 놀라 눈썹을 세우자 악흔이 대답했다.
“다들 알다시피 화산파는 무당파와 함께 천하이검으로 불리는 문파입니다. 문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험한 꼴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험한 꼴.
그것은 진명도장의 검이 부러지거나 그의 목젖에 대협 장하의 검이 닿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완벽한 패배는 검의 명가인 화산파의 명예를 떨어뜨릴 게 분명했다.
자현도장이 진명도장을 대변하듯 말했다.
“진명도장은 아직까지 큰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명도장이 더 싸울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악흔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절반은 승부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앞서 자은사태와 명운의 영웅연 비무를 목격한 바 있었다.
명운이 그날 보여 주었던 무위를 발휘한다면 승부는 십 초식 안에 갈릴 터였다.
‘진명도장의 검에는 강한 힘과 진중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장 대협의 검을 넘기에는 벅차다.’
진명도장의 검은 분명 초절정과 화경의 경지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경지에 이미 오른 명운의 검과는 그 차이가 컸다.
“이미 승부가 끝났다니요?”
자현도장이 말끝을 높인 순간, 아미파 장문인 혜명사태가 목에 힘을 주었다.
“진명도장의 검에는 구파일방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다들 잊고 계신 겁니까?”
진명도장이 쓰러지면 대협 장하에게 맹주좌가 넘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원 무림은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악흔은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혜명사태, 사태는 정녕 화산의 검이 꺾이는 것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
“화산의 검이 꺾이다니요!”
두 사람의 논쟁이 커지려 할 때쯤이었다.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은 결심을 굳히고는 단상 위에서 싸우고 있는 진명도장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진명, 그대의 검과 그대의 고군분투는 나와 무당이 기억할 것이오. 지금 검을 내리고 물러나면 장 맹주는 그대를 따라붙지 않을 것이오.
승기가 상대에게 넘어갔으니, 패배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진명도장은 전음을 보낸 것이 현진도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크게 놀랐다.
‘현진도장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고전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는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에 단상 아래에서 지켜보는 이들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내게 승산이 없다는 말인가?’
미간을 좁힌 순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기가 일어났다.
겨우 이런 꼴을 천하 영웅들에게 보여 주려고 검을 쥐었단 말인가?
삭풍을 뚫고 선녀봉에 올라 검을 휘두른 것이 겨우 이것을 위해서였단 말인가?
이윽고 사부와 사숙들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물러나면 더는 검을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했지만, 이 자리에서만큼은 패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화산의 검을 보여 주겠다!’
진명도장은 하단전과 중단전을 동시에 열었다. 그러고는 전신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하하하하합!”
거친 기합.
맹렬한 기세.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한 검.
현진도장은 진명도장의 검을 보고는 눈썹을 세웠다.
“이런!”
그는 자신의 한마디가 진명도장을 자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실수다.’
진명도장은 검을 아래로 내리기는커녕 마지막 한 수를 두고자 했다.
‘장 맹주는 어쩌면 이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명도장의 마지막 한 수를 멋지게 꺾은 뒤 승리를 선언하는 것.
그것은 새로운 맹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폭죽과도 같았다.
개방의 용두방주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한 수로 승부가 끝날 것이다.’
그는 명운이 어렵지 않게 진명도장의 공격을 막아 내리라 생각했다.
‘지리멸렬한 싸움이 이어지는 것보다는 이렇게 끝나는 것이 진명도장에게 나을 것이다.’
그와 생각이 같은 이가 있었으니, 그는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었다.
나운은 진명도장의 검격을 보며 짧게 말했다.
“끝이군.”
쉬이이이익!
거친 바람과 함께 검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명운은 검이 이르기 전에 검풍이 먼저 도착한 것을 느끼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 화산파의 질풍검인가?’
질풍검은 진명도장의 마지막 한 수였지만, 초절정 무인들의 비기라 할 수 있는 검오기는 아니었다. 그 말은 이번 검격이 진명도장의 모든 힘이 실려 있는 공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검오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단상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생각했다는 말이군.’
명운은 검격을 통해 진명도장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검은 제대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는 몸에 응축했단 내력을 청운검에 모았다. 그러고는 거칠게 날아오고 있는 검을 향해 그것을 내뿜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단상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영웅전으로 이어졌다.
투두둑.
기와 몇 장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의 진동.
영웅전 안과 밖의 무림인들은 두 사람의 기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짜 고수들의 싸움인가?”
“무서울 정도의 힘이구나!”
“순간이지만 귀가 아팠어.”
“대단한 내공이야!”
구파일방 장문인들은 강렬한 폭음이나 흔들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검이 격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파팍.
얼음이 깨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면서 진명도장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이 부스러졌다.
타타탁.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것은 조금 전까지 검신을 이루고 있던 강철이었다.
“검이 부스러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두 사람의 내공을 검이 버텨 내지 못한 것이야.”
구파일방 장문인들의 놀람에 단상 주변을 경계하던 총단 고수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긴 것은…….”
“맹주님이다!”
“맹주님이 승리하셨다!”
진명도장의 검은 바스러졌으나 명운의 청운검은 그대로였다.
용두방주를 비롯한 몇몇 고수들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짧게 탄식했다.
“허, 이리 승부가 갈릴 줄이야.”
“진명도장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것은 알지만…….”
“결과를 받아들입시다.”
진명도장은 검오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검오기를 사용할 때와 동등한 내력을 일으켜 질풍검을 펼쳤다. 그는 후회 없는 일검이라 생각했다.
‘깨끗하게 막혔군.’
그는 질풍검을 펼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협 장하에게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가 이겼네.”
명운은 진명도장의 한마디를 듣고는 담담하게 받았다.
“제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에 들려 있던 청운검의 검신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탕.
진명도장은 바닥에 떨어진 청운검의 검신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자는 대체!’
그가 놀라는 사이 단상에서 가까이 있던 무림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청운검도 잘려 나갔다!”
“진명도장의 검격도 보통이 아니었던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화산 장문인의 검이니 당연하지!”
“두 사람 모두 대단했구나!”
영웅전 안에 모인 사람들은 진명도장의 검격 또한 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윽고 명운을 지지하는 이들이 그들의 말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긴 것은 장 맹주야.”
“맞아, 장 맹주의 청운검이 더 오래 버텼다고!”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은 알고 있었다. 진명도장의 질풍검이 청운검의 검신을 자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형산파 장문은 악흔은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완벽한 승리군요.”
용두방주는 속으로 탄식했다.
‘장 맹주는 진명도장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청운검을 절단했다. 그의 대인대용을 우리가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손을 모았다.
“두 분의 무공을 잘 보았습니다. 본 방주는 장 맹주의 무공이 조금 더 나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명운은 두 손을 모으며 단상 아래로 몸을 돌렸다.
“제가 운이 좋아 작은 이득을 보았을 뿐입니다.”
구파일방 장문인들은 속속 자리에서 일어나 명운에게 승복했다.
그들에 이어서 일어난 것은 오대세가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명운의 승리를 축하하며 무림맹을 잘 부탁한다는 덕담을 덧붙였다.
개방의 후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상대의 검을 꺾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꺾은 것이구나. 저 나이에 어찌 저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협 장하가 자신의 또래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 끝났군.”
허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인진인이었다. 그는 구파일방 출신이었기에 끝까지 진명도장을 응원한 바 있었다.
“차이가 컸습니다.”
두 사람은 절정에 이르지 못했지만, 오늘의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알고 있었다.
“장 맹주과 완벽하게 이겼지.”
후개가 그에게 물었다.
“제가 장 맹주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태인진인은 후개의 질문에서 짙은 감정을 느꼈다.
“무량수불. 무공이란 남이 아니라 자신을 깎는 수련일세.”
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무공을 대성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오늘 보여 준 장 맹주의 무공은 보고도 믿기 어려운 경지였다. 후개가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태어났다고 해도 그와 같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수십 년이 지난 뒤 화경에 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개가 화경에 이르렀을 때, 장하는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 있을 터였다.
후개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장 맹주를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립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그것은 투쟁심과 질투였다.
“부디 마음을 비우게.”
태인진인은 무당파 도인답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후개의 마음속에 일어나 파도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와 같은 눈높이에서 천하를 바라보고 싶다.’
그는 무공만이 아니라 대협 장하와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했다.
태인진인은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개…….”
그는 후개의 얼굴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렇군. 후개는 주유와 같구나.’
제갈량이라는 천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사나이.
물론, 주유와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과장된 것이 적지 않았다.
“장 맹주께서 승리 선언을 하시려 하는 것 같습니다.”
후개와 태인진인에게 말한 것은 해남파 이대제자 마릉이었다.
태인진인은 그의 말을 듣고는 시선을 단상으로 돌렸다.
“으음.”
언제 올라왔는지 단상 위에는 무림맹 총단의 삼각주와 연수각 부각주인 제갈연연이 올라와 있었다.
이윽고 명운이 모두를 향해 이야기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무림 동도 여러분, 본 맹주는 여러분께…….”
후개는 그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넘을 수 없는 벽과 같구나.’
무공은 물론이고, 사람을 다루는 기술과 일을 꾸미는 계책.
그 모든 것이 그보다 나았다.
“맹주의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명운의 이야기가 끝나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 맹주!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장 맹주를 따를 것입니다!”
“무림맹 만세!”
“맹주님 만세!”
함성은 영웅전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지만, 후개는 그 함성과 함께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저 함성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의 마음에서 일어난 투쟁심과 질투는 결국 야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웅전 밖에서 모든 것을 확인한 한 사내가 몸을 돌렸다.
“결국, 장 맹주는 모든 것을 다 이뤘구나.”
무림맹 총단을 빠져나가는 사내는 바로 오도육사의 생존자 염초였다.
그는 사례태감 정명의 명을 받아 여러 문파에 대협 장하를 지지할 것을 지시한 바 있었다.
표결에서 명운이 예상 이상의 표를 받은 것도 동창과 금의위의 뒷공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마저 삼켜 버릴지 모르겠구나.’
장하는 그 어떤 사내보다 큰 그림자를 지닌 사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