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03)
503화 마음을 얻는 길 (4)
뜻밖의 손님이라는 것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명운은 앞에 앉은 사내를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장군님의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보위산 원정을 앞둔 그를 찾아온 이는 바로 대장군 민자충이었다.
물론 대장군이라는 직함은 과거의 것이고, 현재는 양광 총독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축하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맹주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척을 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척질 일이 없었기에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명운은 밝은 웃음과 함께 민자충의 축하를 받았다.
“하하하, 여러 무림 동도의 추천으로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민자충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심이 장 맹주님에게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명운을 직접 만나 보고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젊은 외모였다. 이것은 그만이 아니라 명운을 만난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는 명운의 나이가 어린 것이 아니라 그의 내공이 고강하여 늦게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놀란 사실은 외모에 가려진 분위기였다. 민자충은 명운의 눈빛과 어조, 그리고 행동에서 무림 명숙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꾸민다고 해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만만한 사내가 아니다.’
그는 명운이 무공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동창과 서창을 역으로 찍어 눌렀으니까.’
민자충은 대장군부를 나오기 직전 척후와 비선들을 통해 서창의 사례태감 이웅지가 명운에게 패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가 여행 경로를 바다가 아닌 운하로 바꾼 이유도 이 사실 때문이었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할 생각입니다.”
“맹주께서 개봉에 머물러 주시니, 본관은 든든할 뿐입니다.”
중원의 북쪽인 황도에는 황제가 중원의 남쪽에는 양강 총독인 자신이 있으니, 중원의 가운데는 당신에게 맡기겠다는 말이었다.
명운은 그의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운 말씀이시군요.”
민자충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심이 담긴 말이라는 소리였다.
명운은 목소리를 낮췄다.
“개봉에도 적지 않은 관리가 있습니다.”
개봉에도 관리가 있다.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내세운 것이었다.
민자충은 찻잔을 비운 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들을 믿을 수는 없지요.”
그는 관과 무림의 불가침이란 금의위와 동창이 등장하면서 깨어졌다고 생각했다.
“장군께서는 그들을 믿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명운의 물음에 민자충이 답했다.
“믿음을 주고자 해도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그는 과거로 뽑힌 관리들을 믿지 않았다.
‘팔고문만 파고든 이들이 어찌 세상을 알 수 있을까?’
팔고문을 중심으로 한 과거제도는 작문 실력이 뛰어난 문장가를 뽑을 수는 있었지만, 조정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면 장군께서 그들을 믿을 수 있게 바꾸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관리를 바꾸는 것은 관리의 몫이다.
옳은 말이었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맹주께서 본관에게 어려운 과제를 내어 주시는군요.”
명운이 살짝 말끝을 높였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환관들 때문입니까?”
환관들이 득세한 이후 관리들은 그들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환관들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관리들 자신들도 문제입니다. 부귀영화에만 마음을 둘 뿐 진충보국이나 위국위민 같은 일에는 마음을 두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무림맹이 부럽습니다.”
명운은 무림맹이 부럽다는 그의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본맹도 밖에서 보는 것과 사정이 다릅니다.”
그가 찻잔에 차를 따르자 민자충이 물었다.
“의견의 다름은 있을 수 있으나 다른 마음을 품는 이는 없지 않겠습니까?”
“관리들이 부귀영화를 꿈꾸듯 무림인들도 강호군림이나 천하제일부호 같은 꿈을 꾸고 있지요.”
“협의나 의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더러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이 차갑게 그의 말을 받았다.
“더러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가 그렇습니다. 만에 하나 모두의 뜻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중원 무림에서 사마외도의 무리를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민자충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이나 조정이나 같은 처지라는 말씀이시군요.”
두 사람의 대화가 새로운 황제에 이르렀을 때였다.
민자충이 슬쩍 새로운 화제를 언급했다.
“조정의 대신들은 장 맹주의 힘으로 폐하를 지키고자 합니다.”
명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썹을 세웠다.
“본 맹주의 힘으로 말입니까?”
“선황께서 고수의 암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기에 맹주님의 힘을 원하는 듯싶습니다.”
명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금의위와 동창에는 많은 고수가 있지 않습니까?”
민자충은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도록 세웠다.
“그렇지 않습니다. 동창과 서창, 그리고 금의위는 숫자만 많을 뿐입니다. 그곳에 진정한 고수는 없지요. 조정의 대관들은 무림맹의 고수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수라 생각합니다.”
금의위에는 분명 빙왕을 막을 수 있는 고수가 있었다. 하나 그를 베어 버린 것은 명운이었다.
“진정한 고수라. 과찬이시군요.”
“폐하께서 사람을 보낸다면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명운은 민자충의 요청에 목소리를 낮췄다.
“이야기는 들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무림맹주로서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민자충은 그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쉽지 않은 사내다.’
두 사람은 이후 무거운 이야기를 피한 채 덕담을 나누었다.
민자충이 떠난 후.
하후문이 명운에게 물었다.
“대장군이 무엇 때문에 왔을까요?”
명운이 민자충이 앉았던 자리에서 시선을 떼며 대답했다.
“그는 이제 대장군이 아니다.”
군에는 아직 민자충을 따르는 장군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번 떠난 북벽은 다시 돌아가기 힘들 듯싶었다.
‘환관들이 허락하지 않겠지.’
환관들로서는 민자충이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평생 황도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민자충이 가진 위세가 너무나 크기에 그는 머나먼 남쪽 땅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뭐,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
명운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같은 시각.
무림맹 총단을 떠난 민자충 곁에는 열여섯 명의 수하 장수가 말을 달리고 있었다.
“장군, 일은 잘되셨습니까?”
민자충이 앞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잘되었다.”
“하면…….”
“그가 환관들에게 휘둘릴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자충이 명운을 찾아갔던 것은 황제의 경호를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맥이 없는 인물이었다면 이대로 떠날 수 없었겠지.’
그는 비장 중 뛰어난 이를 남겨서 군과 무림맹 사이에 다리를 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명운은 자신은 물론, 황제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라면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무림맹주라…….’
아무리 낮춰 보아도 그는 구파일방의 허수아비가 절대 아니었다.
* * *
팔월 초하루.
무림맹주 장하가 이끄는 무림맹 군세가 무림맹 총단을 출발했다.
“목표는 보위산이다! 출발!”
기룡검 장익천이 목소리를 높이자 무림맹 제자들이 일제히 그의 명을 받았다.
“출발!”
무복을 챙겨 입은 채 말에 오른 무인들의 행렬은 대로를 가득 메웠다.
개봉성 밖에서 그들과 마주치는 이들은 모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저 백마를 탄 청년이 바로 장 맹주인가?”
“무림맹주가 저토록 젊을 수가 있나?”
“개봉에 삼십 년을 살았지만, 저런 맹주는 처음 보는군.”
길가에 선 여인들도 명운에게 시선을 보냈다.
“저분이 바로 장 대협?”
“그래, 대협 그 자체인 분이야.”
“어떤 복 받은 여인이 대협의 부인이 되었을까?”
감탄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게, 장 대협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고 해.”
누군가의 말에 주변 여인들이 깜짝 놀랐다.
“장 대협이 아직 혼자라고?”
“무림맹주나 되는 분이 어째서 혼자이실까?”
“어쩌면 무림맹 일로 바빠서 여인을 곁에 두시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
“설마…….”
여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명운을 바라보았다.
“음, 그렇다면 아직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네?”
“기회라고?”
“맹주님께서 우리에게 눈길을 주실 수도 있잖아.”
“정말로?”
“맹주님도 우리도 개봉에 살고 있으니, 마주칠 일이 적지 않을 거야.”
제갈연연은 행렬 중간에서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쳇, 헛물켜지 말라고. 맹주님은 여인에게 곁을 내어 주시는 분이 아니니까.’
그녀는 명운이 혼인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혼인이 되리라 생각했다.
‘맹주님은 여인을 사귈 시간이 없으니, 결국 정략혼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파일방은 물론, 오대세가와 유력한 문파들은 모두 명운이 혼자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명운이 필요에 따라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하리라 예상했다.
개봉성에서 삼백 리 떨어진 양성현.
이곳은 전국시대 항우가 양성 학살을 저지른 역사의 현장이었다.
물론, 그때 죽은 이들의 귀신이 나오거나 병사들의 검이나 갑옷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당시 사건이 사서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장 맹주가 오늘 출정한다고 합니다.”
탁.
하얀 돌이 투박한 바둑판 아래 놓였다.
“가주는 함께 가지 않는가?”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제갈세가 가주 제갈진석이었다.
“연연이 가기로 하였습니다.”
“서준도 아니고 연연인가?”
눈썹을 세운 이는 연수각 부각주 제갈연연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연연이면 괜찮을 겁니다.”
“가주는 태평해 보이는군.”
“여러 길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여러 길인가?”
제갈세가 가주 제갈진석과 바둑을 두고 있는 인물은 천태사 주지 법송이었다. 그는 법송이라는 법명 이전에 제갈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숙부님께서는 제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송이 하얀 돌을 잡으며 대답했다.
“가주, 중요한 것은 과거의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선택일세.”
앞으로 있을 선택.
제갈진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 판단을 의심하고 계시는 모양이구나.’
그가 바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항상 최선을 택하고자 합니다.”
법송이 하얀 돌을 바둑판에 놓았다.
타악.
힘을 주어 놓았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돌을 놓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그러면 하나 묻지. 가주는 가문에 어떠한 이득을 가져올 것인가?”
이득.
구파일방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단어였다.
“장 맹주는 은혜를 잊는 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 것입니다.”
법송은 제갈진석의 말을 듣고는 혀를 찼다.
“쯧쯧, 어찌 그리 물렀는가? 가만히 있으면 다른 가문에 이득을 빼앗기고 말 걸세.”
“숙부님.”
제갈진석은 법송이 너무 옛날 생각만 한다고 생각했다.
‘숙부께서 천태사에서 출가하신 지 벌써 오십 년이 흘렀다. 강호 일에 밝지 못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는 법송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자 했다. 한데 법송의 다음 이야기는 그가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주, 맹주의 옆이 비어 있다고 들었네.”
제갈진석은 법송의 말을 듣고는 멈칫했다.
“숙부님께서 노리시는 것은 맹주의 반려자 자리입니까?”
무림맹주의 아내.
실권은 전혀 없었지만, 맹주와 관계에 따라 무림맹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장 맹주와 정략결혼에 나선다면, 그것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법송은 그 자리를 제갈세가에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주, 우리 가문은 장 맹주를 처음부터 지지해 왔네.”
그는 다른 가문에 반려자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팽가는 몰라도 남궁세가나 당가는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남궁세가나 사천당가에 그 자리를 빼앗긴다면, 이는 모두 제갈진석의 책임일 터였다.
“숙부님, 제게는 딸이 없습니다.”
제갈세가 가주 제갈진석에게는 세 아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연연이 있지 않은가?”
제갈연연,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연수각주 제갈서준도 명운의 반려로 고려한 바 있었다.
“연연은 나이가 많습니다.”
제갈진석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든 것은 실제로 그녀의 나이가 반려자가 되지 못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완곡하게 법송의 요구를 거절하고자 했다.
“음, 맹주가 어리고 아름다운 여인을 원한다면 양녀를 들이면 되지 않겠나?”
법송은 어떻게든 이번 일을 밀어붙이고자 했다.
제갈진석은 미간을 좁히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숙부님, 장 맹주는 속물이 아닙니다.”
“그럼, 더욱 잘되었군. 이쪽에서 내세운 여인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혼사를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제갈진석은 화를 내는 대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 가주 회의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정말로 혼사를 원한다면 오대세가 가주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맹주와 혼약은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법송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주는 너무 눈치를 많이 봐.”
“…….”
“남과 나눌 수 없다면 먼저 입에 넣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걸세.”
먼저 입에 넣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도저히 출가인의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법송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의 법송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절대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세가 사람들을 대할 때는 달랐다. 제갈세가 사람들 앞에서 법송은 천태사의 주지가 아닌 제갈세가의 노강호였다.
“숙부님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주, 오대세가 이전에 제갈세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법송은 바둑을 다 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진석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인사 없이 그 자리에 머물렀다.
“후우……. 가문의 이득을 위해 의를 저버리란 말인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이득이 훗날 더 큰 손해로 돌아온다는 것을.
‘소탐대실이다.’
제갈진석은 법송의 말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음, 그건 그렇고, 숙부님께서 이 모든 사실을 어찌 알고 계신 것일까?”
제갈진석은 제갈세가의 누군가가 법송에게 바람을 넣었다고 생각했다.
* * *
보위산.
사마진은 동쪽에서 날아온 전서를 받아 들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은 석비연이 물었다.
“대호법, 좋지 않은 소식입니까?”
사마진이 전서를 불태우며 대답했다.
“장 맹주가 출전했다고 하네.”
석비연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목표는 보위산이군요.”
“자네는 걱정이 되지 않는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지?”
석비연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와 주실 테니까요.”
그녀는 자신들과 함께 있는 이가 명운이 아닌, 그림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마진은 그녀의 발언에 눈살을 찌푸렸다.
“비연, 알고 있어도 입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사실들이 있네.”
“주변에 사람을 물렸습니다.”
사마진은 찌푸렸던 눈살을 폈다.
“내게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군.”
그녀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을 물린 것이라는 말이었다.
“대호법, 큰 싸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석비연은 흑살대주로서 일전에 대비하고자 했다.
“싸움이 일어날지 아닐지는 교주님만 알고 계시네.”
“아직 명령을 받지 못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네.”
석비연은 사마진이 감추고 있는 것이 드러낸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호법이 사실을 감춘다면 그것조차 교주님의 계책일 테지.’
그녀가 살짝 주먹을 쥐며 말했다.
“교주님께서 명을 내리신다면 저희 흑살대는 불길 속이라도 들어갈 것입니다.”
사마진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그대들의 충심은 나도 잘 알고 있네. 하나 나는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네.”
석비연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나 깊이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가서 싸움에 대비하겠습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사마진이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 곧 교주님을 만날 수 있을 걸세.
석비연은 순간 얼굴이 밝아졌다.
‘교주님께서 돌아오시는구나.’
그러나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사마진의 장막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