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1)
51화 파종(播種) (3)
식사를 마친 뒤 찾아간 현무대 무관.
명운은 그 앞에 늘어선 무인들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문 앞에 진을 친 숫자만 열을 넘는군. 설마 서북상단주가 직접 왔단 말인가?’
그는 앞서 서북상단 일로 자명단에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현무대 조장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혔다.
“공자님, 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안내하게.”
“저를 따라오시죠.”
현무대 조장은 무관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이곳입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무인이 입을 열었다.
“호위무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돌리자 하후문이 두 손을 모았다.
“속하, 이곳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명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스륵.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그가 예상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오! 왔구나! 왔어!”
들뜬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오공자 명정이었다.
‘다섯째 형이 왔다면…… 무관 주변에 늘어선 무인들은 적풍대란 말인가?’
오공자 명정은 적풍대를 배경으로 두고 있었다.
명운은 문을 닫은 뒤 말끝을 올렸다.
“이곳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명정이 특유의 과장 된 몸짓을 하며 대답했다.
“네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왔단다!”
명운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평소에는 편지도 보내지 않던 사람이 여기까지 절 찾아오셨단 말입니까?”
그가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형제는 함께 부면에 참석했던 오공자 명정과 육공자 명탁 정도였다.
명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하, 평소에는 바빠서 말이야.”
“형님이 말입니까?”
“운, 오늘따라 까칠하구나.”
명운은 입구에서 팔짱을 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돌아가겠습니다.”
명정이 양손을 흔들며 그를 말렸다.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느냐! 여기서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고나 있느냐?”
“그건 형님 사정입니다.”
명운은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쯧…… 손님이라고 해서 자명단주나 서북상단주를 생각했는데 다섯째 형이라니.’
그는 명정과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면 명정은 명운의 차가운 반응에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하…… 예전에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과거 명운은 만만한 막냇동생에 지나지 않았다.
“운아, 너무 차갑구나.”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몰라서 그러십니까?”
“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이것은 진심이었다.
명정은 명운을 무시하긴 했지만, 명탁처럼 괴롭힌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명운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명운이 오른손 식지를 세우며 말했다.
“옛말에 이르길 평소 왕래가 없던 사람이 찾아오면, 반드시 부탁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넌 내가 부탁을 하려고 널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럼 아닙니까?”
명정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내가 동생에게 부탁할 리가 없지!”
명운은 문 앞에서 아직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부탁이 아니라면, 절 왜 찾아오신 겁니까?”
명정이 의자를 툭툭 치면서 답했다.
“여기 앉으면 대답을 해 주마.”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뭔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군.’
그는 앞으로 걸어가 명정의 앞에 섰다.
“이곳에 앉긴 좀 그렇고, 이 정도 거리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명정이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하……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지. 운아, 지금 큰일이 났다.”
명운은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큰일입니까?”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이 무렵은 큰일이라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가 과거로 돌아온 순간 역사의 물줄기는 이미 바뀌고 있었다.
큰 사고나 혈사가 몇 년 앞당겨질 수도 있었고, 이전에는 없었던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명정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했다.
“탁이 둘째 형 밑으로 들어갔다.”
이는 명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겨우 그 일 때문에 절 찾아오신 겁니까?”
명정은 시큰둥한 반응에 멈칫했다. 하지만 그가 오늘 명운을 찾아온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 일 때문에 큰형님이 너와 날 보자고 하시는구나.”
첫째 명천의 부름.
이것은 명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큰형이 우리를 불렀다고?’
그는 명천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흠, 명각이 명탁의 대설진가를 얻었으니, 명정의 복주원가와 이쪽의 귀주석가를 아군으로 돌리겠다는 말인가?’
명천의 뜻대로 그림이 그려진다면, 그가 명각을 누르고 명증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하긴…… 명각과 명탁이 움직였으니, 큰형 또한 움직일 수밖에.’
과거에는 명탁이 움직였음에도 명천이 그를 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에 나는 아무 힘이 없는 막내였다. 그래서 큰형은 날 부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그는 귀주석가를 배경으로 두고 있으며, 사마진을 비롯한 대명궁 원로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었다.
즉, 지금의 명운은 명천이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곤란하군.’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그래서 형님은 그 부름에 응하실 겁니까?”
명정이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오늘 명운을 찾아온 것은 이번 일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함이었다.
‘운은 아버지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강단이 있다. 녀석이라면 큰형의 위세에 눌리지 않고 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
명정은 마지막 부면에서 그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일단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명정이 바로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명운이 답했다.
“큰형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등을 진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큰형님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명정은 명천의 심성이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순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말했다.
“운, 우리가 찾아가면, 큰형님은 그 자리에서 독환으로 금제를 걸거나 피로 충성서약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상대가 명천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명운은 명정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결국, 큰형의 간계를 막을 묘책이 필요하단 말이군.’
자신을 위해서도 묘책은 필요했다.
‘잘 생각해야 한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자 명정은 질문하지 않고 기다렸다.
‘운, 제발 좋은 생각을 부탁한다.’
이윽고 명운이 입을 열었다.
“셋째 형님과 함께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공자 명원.
그는 명천, 명각보다는 세력이 부족했지만, 후계자 후보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셋째 형님과?”
“셋째 형님께 이번 일을 말씀드리면, 반드시 참석하고자 하실 겁니다.”
명정은 명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큰형에게 고개를 숙이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셋째 형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가 큰형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가 물었다.
“만약 큰형이 셋째 형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지?”
명운은 그것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셋째 형과 저희가 뭉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명원과 명정 그리고 명운.
셋이 함께 뭉치면 그 세력이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정은 명운의 계책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흠…… 하지만 우리 셋이 뭉치면 셋째 형에게 가장 유리하잖아.”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었다.
‘형들의 수하가 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명운이 목소리를 낮췄다.
“형님,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나기?”
“형님은 큰형님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하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셋째 명원에게 힘을 실어 주자.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명정이 낮게 신음했다.
“끄응…….”
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른 방법이 정말로 없는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명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겠다. 네 말대로 소나기는 피해야겠지. 셋째 형에게 이번 일을 알리도록 하겠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말을 받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공자들 간에 세력 싸움과 음모는 그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합종과 연횡인가? 자칫 잘못하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겠군.’
명운은 지금 큰불이 일어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 * *
짹. 짹. 짹.
명운은 새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건가?”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밖이 이미 환했다.
‘흠, 문밖에 인기척이 있군.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군.’
명운은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밖에 누가 있느냐?”
굳은 음성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서북상단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오너라.”
끼익.
문이 열리자 현무대 무인이 안으로 들어와 편지를 전했다.
명운은 편지를 받은 뒤, 그 자리에서 그것을 펼쳤다.
“음…….”
어제 그가 보냈던 편지의 답장이었다.
“하후문은 어디 있는가?”
“아래에서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운은 몸을 일으켰다.
“곧 내려갈 것이라 전하라.”
“알겠습니다.”
잠시 뒤, 명운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하후문이 허리를 굽혔다.
“공자님을 뵙니다.”
명운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군주께서 기다릴 테니, 서두르는 것이 좋겠군.”
두 사람은 현무관 무관을 떠나 도민국 군주 고민이 머물고 있는 삼영객잔으로 향했다.
그들이 삼영객잔에 도착하자 점소이가 재빨리 뛰어나왔다.
“말은 이쪽에 맡기면 됩니다.”
삼영객잔은 그 규모가 커서 말과 마차를 관리하는 이가 따로 있었다.
“사람을 찾아왔네.”
“사람 말씀입니까?”
“도민국 군주께서 이곳에 머무르고 계시다 들었네.”
점소이가 허리를 굽혔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제가 가서 전하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점소이가 들어간 뒤, 하후문이 미간을 좁혔다.
“사람을 길에 세워 두는 것은 예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군주의 원수인지 아닌지 모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네.”
의심 없이 원수를 안으로 들였다가는 객잔 안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잠시 뒤, 점소이가 달려 나왔다.
“군주께서 안으로 들라 하십니다.”
명운은 하후문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객잔 안은 상당히 붐비고 있었는데 점소이는 그들을 이 층으로 안내했다.
“이곳입니다.”
군주의 방은 계단과 멀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명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끼익.
문이 열리자 검을 찬 시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오시죠.”
명운이 안으로 들어서자 고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한마디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명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민은 명운의 한마디에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명운이 붉은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서북상단에서 보내온 초대장입니다.”
이 초대장은 오늘 아침 도착한 편지 안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민은 새가 날개를 펼치듯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서북상단으로 가시면, 대금을 내어 드릴 것입니다.”
고민이 보름달처럼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되는 겁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단주와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고민은 너무 기쁜 나머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명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공자,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행동은 중원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에 크게 어긋난 것이었으나 이곳은 중원이 아닌 십만대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