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11)
511화 후일담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마흔 둘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무림맹은 보위산에서 철군하여 적토채로 회군하였다. 맹주님의 말씀대로 마교는 우리를 추격하지 못했다. 새로운 마교주 명운은 소문처럼 호전적인 인물은 아닌 듯 보였다.
아마도 그는 유리한 상황에서 이득 보는 것을 즐기는 이가 아닐까?
우리는 보위산에서 물러났으나 맹원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며칠 동안 많은 이들이 맹주님께 존경을 표했다. 맹주님께서 보위산에서 보여 주신 무위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싶다. 마교주 명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당금 무림에 맹주님밖에 없을 듯하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쉰 여섯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원정군은 적토채에서 해산하였다. 각 문파로 돌아가는 맹원들의 얼굴이 밝았다. 그들은 돌아가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할 것이다.
맹주님께서는 그들 덕분에 맹의 사기가 오르고 맹이 단단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반만 동의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교하여 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맹주님의 무위와 덕을 시기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맹주님이 보여 준 신위를 거짓으로 덮으려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이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이날 저녁.
맹주님께서는 소림사 방장 혜명대사와 회담을 나누었다.
무림맹주와 소림사 방장의 회담은 한 시진 가까이 이어졌다.
나는 문밖에 머물렀기에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두 분의 얼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야기가 잘된 듯싶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아흔 둘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개봉 총단으로 개선하였다. 맹주님은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않았으니, 개선이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적토채를 위기에서 구하고 마교와 마교주를 보위산에 묶은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주님께서는 이번 원정을 지원하고 계획한 이들에게 상을 내리셨다.
나 또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맹주님을 찾아가 명단에서 이름을 지워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맹주님께서는 받아들이시지 않았다.
내가 빠지게 되면 나보다 공적이 적은 이들에게 상을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맹주님께서는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상을 주시고 싶은 모양이다.
법보다는 덕으로 맹을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 같다.
이날은 개방 용두방주가 찾아와 맹주님과 회담을 가졌다.
용두방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번뇌를 털어 버린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고민하던 일이 해결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좋은 일인 듯싶었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백 여섯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오늘은 세 사람이 맹주님을 찾아왔다. 한 명은 사공 대협과 함께 귀주에서 맹주님과 함께 싸운 협객이었다. 그의 이름은 곽권.
맹주님은 그를 크게 우대하며 사공 대협과 같은 자리에 앉게 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의 무위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공 대협도 절정에 이르렀을까?
사공 대협의 무위가 절정이라면 맹의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룬 이는 드물었다.
절정이란 화산의 매화검수나 무당의 협객들도 쉬이 이루기 힘든 경지였다.
게다가 사공 대협은 이목이 뚜렷하여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당 사형의 말에 따르면 맹주님보다도 부러운 사내라고 했다.
곽 대협과 함께 맹주님을 찾은 또 다른 이는 맹주님의 사매와 그녀의 시녀였다.
맹주님의 사매는 맹주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적어도 서른 후반은 되어 보였다.
그녀를 보니, 맹주님의 나이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맹주님의 나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많을 수 있었다.
맹주님은 그녀를 부맹주와 삼각주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 사매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니, 본좌가 없을 때는 사매에게 도움을 청하시면 됩니다.
맹주가 부재할 때는 부맹주가 일을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맹주님께서는 부맹주와 삼각주의 무공에 믿음이 없는 듯했다.
네 사람 모두 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맹주님은 그들을 신뢰하시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매의 무공은 절정 이상이라는 것일까?
그녀의 무위가 초절정이라고 한들 맹주님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녀의 무위가 맹주님과 같은 화경의 경지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리원에 화경의 고수가 또 있으리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아참.
그녀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맹주님께서는 그녀를 염빙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시녀 이름은 노서라 했다.
당 사형은 그녀의 무위가 부맹주를 넘어 구파일방 장문인들과 동등하리라 추측했다.
나는 이를 두고 당 사형과 내기를 했다. 그녀의 무위가 당 사형의 말처럼 높다면, 개봉에서 크게 한턱내겠다고 말이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백서른 셋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황실에서 맹주님께 혼사를 넣었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황제의 딸과 맹주님의 혼약이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정략결혼이었다.
맹주님께서 정략결혼에 응하신다면 무림맹과 황실은 인척으로 엮이게 되어 지난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좋지 않게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맹에서도 태원각주 조명등이 이 혼사에 반대하였다. 그는 관과 무림은 불침이라며 이번 혼사에 반대했다.
맹주님은 그의 의견을 듣고 심사숙고하여 판단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당 사형은 맹주님께서 이번 혼약을 무르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이번 혼사가 성립된다면 개봉의 많은 여인이 가슴을 칠 것이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백마흔 일곱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맹주님께서 황실의 혼약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맹주님께서는 마교와 싸우기 위해서는 중원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서는 황실과 화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태원각주 조명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은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맹주님께서 거듭 설득하자 두 손을 모으며 물러났다.
맹주님께서는 명예나 부귀영화가 아닌 맹을 위해서 이번 혼약을 결정하신 것이다.
나는 맹주님의 결정을 존중한다.
나만이 아니다.
총단의 많은 이들이 맹주님의 결정을 지지했다.
특히 부맹주께서는 맹주님께서 용단을 내리셨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맹주께서는 황실의 공주와 혼례를 올리게 되면 그 장소는 황궁이 아닌, 무림맹 총단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는 무림맹의 권위와 관의 불침을 나타내기 위한 안배인 듯싶다.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백아흔 첫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황실의 공주가 개봉에 도착했다.
놀라운 것은 황제가 수양딸이 아닌, 친딸을 신부로 보내왔다는 것이다.
대대로 황실에서는 정략결혼에 친딸이 아닌 방계의 여인 다시 말해 수양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황제는 수양딸이 아닌 친딸을 신부로 내세움으로써 무림맹주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한마디로 황제는 진심으로 맹주님과 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홍포 사이로 보이는 신부의 얼굴이 차가웠다. 그녀의 얼굴은 한겨울 설영처럼 한기가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와 혼례를 올리는 것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알아야 한다.
맹주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백아흔 둘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하루 만에 공주의 얼굴이 달라졌다. 오늘 아침 그녀의 얼굴은 화사한 봄꽃과 같았다.
어찌 이리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맹주님께서 지난밤 그녀에게 꿈과 같은 날을 보내게 해 주신 것일까?
아직 시집가지 않은 나는 모를 일이다.
총단 사람들 또한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그녀가 차가운 얼굴이었던 것은 맹주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설마 그녀는 맹주님이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른 채 시집을 온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황제는 맹주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자신이 친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단 말인가?
그저 그의 신분만이 관심이 대상일 뿐이란 말인가?
조정의 관리나 황제의 마음을 알 수가 없구나.
어쨌든 공주는 한시름을 덜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가는 줄 알았는데, 말씀한 청년의 신부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이백마흔 다섯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맹주께서 부맹주와 삼각주를 불러 암행에 나서신다고 발표하셨다. 맹주께서는 마교와 싸움에 앞서 맹의 부조리를 근절하고 중원 곳곳에 퍼져 있는 악습과 악인을 처단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부맹주는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삼각주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맹주님은 암행을 위장하기 위해 폐관 수련을 준비하라 말씀하셨다.
낮에는 곽권, 곽 대협을 황궁으로 보냈다. 이는 황궁에서 황제를 호위할 고수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태원각주 조명은 맹주님의 사매인 염빙을 황궁으로 보내는 것을 건의했으나 맹주께서는 그 의견을 거절하셨다. 맹주께서는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 총단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맹주께서 이처럼 중히 여기는 것을 보면 염빙의 무공이 정말로 화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류고수 중 화경에 이른 이는 최근 오십 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무림맹주 장하 기록일지 이백마흔 여섯째 날.
기록자 제갈연연.
#맹주께서 암행을 위해 총단을 떠나셨다. 맹주께서는 사공 대협만을 데려갔을 뿐이었다.
맹주님의 아내인 공주는 신혼임에도 의연한 얼굴로 맹주님을 전송했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맹주님이 몇 달씩 심지어 반년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 *
경은의 일기.
교주님께서 돌아오셨다. 대산을 떠난 지 무려 일 년 만에.
대호법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이 이전과 다르게 밝아졌다.
그리고 더 이상 교주님의 대역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교주님께서는 돌아오신 그날 부교주 유청의 은퇴를 허락하고, 공석이 된 부교주 자리에 명왕을 임명했다.
신교우사 공복진이 아직 그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교주님께서는 무극에 이른 무인이 부교주를 맡지 않으면 누가 부교주를 맡을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이에 신교우사 공복진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밖에도 각주와 전주 몇 명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사신대와 삼단주는 유임되었고, 신교좌사 양대충 또한 그대로 서장에 머물게 되었다.
교주님께서는 돌아오신 이후에도 홀로 주무셨다.
대호법은 물론, 어떠한 여인도 침실에 들이지 않으셨다.
아마도 일함 공주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호법과 교주님은 일함 공주와 혼사를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 듯싶다.
많은 이가 교주님과 일함 공주의 혼사를 걱정했다.
몇몇 사람은 혼사를 파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함 공주에게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교주님께서 다시 도민국까지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교주님께서 결단을 내리셨다.
교주님께서는 일함 공주와 혼사를 파하자는 이들의 말을 물리시며 직접 도민국으로 출발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많은 이들이 반대하였다.
신교우사 공복진은 사방에 적이 교주님의 부재를 노리고 몰려들 것이라 말했고, 혜선단주 장연비는 적이 교주님의 행렬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교주님께서는 무림맹주 장하가 폐관에 들어갔으니, 무림맹은 걱정할 것이 없으며, 자신은 암행할 것이니, 행렬이 노려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늦은 밤.
교주님께서 도민국을 향해 떠나셨다.
오직 대호법과 나만이 교주님을 전송하였다.
교주님이 떠난 뒤.
대호법이 내게 말했다.
부럽고 또 부럽다고.
교주님께서 떠나신 지 반년.
이상한 소식이 서역에서 도착했다.
교주님께서 도민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합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교주님께서 왕이 되셨다면 대명궁과 신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호법은 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교주님은 돌아오실 것이다.
다만, 자주 떠나실 것이다.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교주님께서 다시 대명궁을 떠나신다면…….
그때는 어떻게든 교주님을 따라갈 것이다.
기다림의 괴로움을 알게 되었으니까.
* * *
자심전주 강하원 기록.
교주님께서 서역을 정벌하시고 대합국의 왕위에 오르셨을 때 신교의 많은 이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신교는 대대로 서역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닌 중원 정복에 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십 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은 교주님께서 왜 서역을 정복하고 대합국을 세우셨는지 알게 되었다.
서역과 길이 넓게 트이고 난 이후.
신교의 교리는 서쪽으로 널리 퍼졌다.
매년 수천이 넘는 신도가 대명궁에 도착해 공물을 바치고 교주님의 축복을 받았다.
이 새로운 신도 중에는 중원과 교역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은 중원 곳곳을 다니며 신교의 교리를 전파하였다.
무림맹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서역과 중원의 교역을 막는 것은 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었으며, 중원을 지키겠다는 대의명분에도 합치하지 않았다.
결국 중원 곳곳에 신교의 사원이 세워지고, 신교는 중원에 그 가르침을 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힘으로 누른 것이 아니었기에 무림맹의 세력이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무림맹주 장하는 여전히 중원 무림의 거인이며, 구파일방 또한 건재하여 쉬이 승패를 논할 수가 없다.
교주님께서 이르시길 진정한 강자는 상대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기는 자라 하셨다.
백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뒤 낙수가 바위를 뚫듯 중원을 우리 신교의 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오직 교주님만을 믿을 뿐이다.
– 完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