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2)
52화 파종(播種) (4)
명운이 향한 곳은 낙산원이 아닌 서숙이었다.
그는 강하원과 만나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자 했다.
강하원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물음을 던졌다.
“결국, 장공자께서 움직이셨단 말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더군. 여기서 밀리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일세.”
“공자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참석하기로 했네.”
강하원이 낮게 신음했다.
“음, 좋지 않습니다.”
“이번 모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낙산원에서 모두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강하원은 모임에 조광을 비롯한 호위무사 모두를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운의 생각은 달랐다.
“그럴 필요 없네.”
강하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장공자님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장공자 명천이 어떠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계산이 빠르면서 잔인하다. 그는 이번 모임에서 어떻게든 동생들을 누르려 할 것이다.’
명운도 명천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믿을 수 없지. 하지만 무력으로 우리를 겁박할 수는 없을 걸세.”
강하원이 물었다.
“삼공자님 때문입니까?”
“그것도 그렇고, 아직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테지.”
명운이 조광을 비롯한 호위무사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만에 하나 도망쳐야 한다면, 인원이 적은 것이 낫다.’
그는 조광을 비롯한 모두를 데려간다면, 오히려 탈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 무위는 아직 다른 이를 도울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강하원은 명운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만에 하나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명운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강 총관, 그 일보다는 큰 그림을 생각하게.”
“큰 그림 말입니까?”
“여섯째 형이 쏜 화살이 모두를 움직였네.”
명운은 앞으로 손을 잡는 형제들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식이라면 무공의 고하보다는 합종연횡으로 후계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강하원은 수염을 쓰다듬은 뒤 고개를 서서 흔들었다.
“공자님, 손을 잡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명운이 바로 말끝을 올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강하원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했다.
“육공자는 다른 길이 없어 그러한 선택을 했지만, 세력이 큰 삼공자나 오공자가 그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강하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두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작지.”
강하원이 목소리를 바꾸며 말했다.
“앞으로 공자님께 손을 내미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밖에서 볼 때, 명운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명탁보다도 떨어졌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큰 이는 명운이었다.
“다들 이쪽을 흡수하려 할 것이라는 말인가?”
강하원이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명운은 강하원을 탓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도 지금 가장 세력이 약한 것은 자신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강하원이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무엇을 물으시는 겁니까?”
“내가 어디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강하원이 명운과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어디에도 붙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명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혼자 서라는 말인가?”
강하원이 굳은 음성으로 답했다.
“대업을 이루실 분은 오직 공자님뿐입니다.”
그는 명운이 다른 공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자님의 재능은 군계일학이다. 잔인무도한 소인배들에게 어찌 그 자리를 빼앗긴단 말인가?’
강하원은 명운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시간과 배경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 가지가 갖춰질 때, 공자께서는 크게 서실 것이다.’
그는 조용히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이날 저녁.
자명단의 아소가 서숙을 찾아왔다.
그녀는 두 부하와 함께 찾아왔는데 복장이 평소와 다르게 화려했다.
“아소가 공자님을 뵙니다.”
명운은 집무실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오랜만이군.”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소와 명운이 만난 것은 다섯 달 만이었다.
그녀는 금광석 채굴 때문에 종종 낙산원을 방문했으나 보통은 경은과 만나 일을 논의했다.
“단주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명단주 사마진.
그녀는 설원에서 명운과 비밀을 공유한 바 있었다.
“단주께서 무엇이라 말씀을 하시던가?”
아소가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단주님께서는 공자께서 보여 주신 관심에 감사하고 있으며, 자명단과 서북상단은 가능한 한 빨리 이번 일을 해결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적인 내용을 배제한 지극히 공적인 전언이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이쪽도 자명단의 빠른 조치에 감사한다고 전해 주게.”
그가 어제 보낸 편지는 자명단주 사마진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자명단주와 연이 없었다면 도민국 군주의 일은 쉬이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명운은 사마진과 연을 맺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소는 그의 말에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식적인 대화가 끝나자 명운은 살짝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겨우 이 말을 전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는 아소의 화려한 복장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가?”
아소가 명운의 물음에 답했다.
“다른 곳을 다녀오는 길은 아니고, 자심전주의 생일잔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자심전주는 대명궁의 예산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요직이었다.
“음, 자심전주라.”
명운은 팔짱을 꼈다.
“자심전주와 단주님의 사이는 어떠한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다.
약간 애매한 대답이었다.
‘하긴, 사이가 좋았다면 수하를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방문했겠지.’
반대로 사이가 나빴다면 아무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명운은 아소가 적절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강 총관!”
그의 부름에 강하원이 뒤쪽 문을 열고 나타났다.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오늘 자심전주께서 생신을 맞이하셨다는군.”
“그렇다면 축전을 올리시겠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전에 선물을 더하지. 서재의 그림 중 소나무가 있는 것을 찾아보게.”
강하원은 바로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의 지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강 총관.”
“예, 공자님.”
“자네가 직접 가서 선물과 축전을 전하고, 그곳에 분위기를 읽도록 하게.”
강하원은 명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심전주의 생일잔치에 가서 대명궁 원로들의 분위기와 행동을 읽으라는 말씀이시구나.’
그는 세세히 알려 주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시진 뒤.
강하원은 서숙으로 돌아왔다.
“공자님, 다녀왔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잔칫집에서 맡을 수 있는 익숙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명운이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
“미묘했습니다.”
“미묘?”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일잔치라면 웃고 떠드는 이가 많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흠, 그렇다면 자심전주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겠군.”
“그것이…… 자심전주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잔치 분위기가 미묘한데 자심전주는 괜찮았다?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는가?”
강하원이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오늘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셋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셋인가?”
“자심전주와 친한 이들, 축전과 선물만을 전한 이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이들이었습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자심전주의 기분이 괜찮았다면, 친한 이들이 다수 참석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강하원이 그 이유를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자심전주와 친한 이들 중에는 검혼대와 기린대 무인이 많았습니다.”
명운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명각!”
검혼대와 기린대는 이공자 명각의 휘하에 있는 이들이었다.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자심전주는 이공자 쪽에 줄을 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상황은 이공자 명각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심전주 송전흠의 기분이 괜찮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첫째 형과 셋째 형에게 줄을 댄 이들이 있었다면, 표정이 썩 좋지 않았겠군.”
강하원이 그의 말을 받았다.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오히려 자심전주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더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허, 그 정도였나?”
“자심전주 송전흠은 셈이 빠르나 마음이 넓은 이가 아닙니다.”
강하원은 표정이 좋지 않은 이들의 얼굴을 가능한 한 많이 기억하고자 했다.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자들이니까.’
그러나 모두를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명운이 자세를 바꾸며 물었다.
“자네에게 접근하는 자들은 없었나?”
강하원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앞서 그는 명운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말한 바 있었다.
“많았다는 말이군.”
“현무대와 적풍대, 그리고 대산유가 출신들이 합석하고자 했습니다.”
현무대는 사공자 명준, 적풍대는 오공자 명정, 대산유가는 이공자 명각을 지지하고 있었다.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그래서 어느 쪽에 허락을 했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명운은 그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그는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 최대한 몸값을 높일 생각이었다.
‘이쪽은 명탁과 다르니까.’
강하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말하게.”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닌 듯합니다.”
명운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유는?”
“위에서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하원은 신교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신교는 장공자나 이공자의 것이 아니다.’
명운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움직이는 자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날 것이라는 말이군.”
“그러합니다.”
과거 명운은 이 시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하원은 술과 여자에 빠져 있었으며, 무공을 가르쳐 줄 스승 또한 없었다.
‘그때 기억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번 모임에는 하후문만 데려가도록 하지.”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명을 받았다.
“공자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침실로 향했다.
* * *
교주 명증의 첫째 아들 명천.
그는 형제 중 유일하게 혼인을 해 아내와 처가가 있었다.
사는 곳 또한 형제들과 달랐다.
그는 대명궁에서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비로궁(碑路宮)이라 불리는 저택을 짓고, 이곳에서 무인들을 키웠다.
명운은 비로궁에 딱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큰형의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지.’
아직 세 번째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오 년 뒤인가? 그러고 보니, 명각도 혼인을 했었다.’
죽을 때까지 혼인하지 않은 것은 그와 다섯째 명정 정도였다.
‘쯧, 이쪽은 죽어서 총각 귀신이 되었단 말이군.’
명운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하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공자님, 저곳이 바로 비로궁입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성채나 다름없는 저택이 서 있었다.
명운은 거대한 벽과 문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저런 저택을 지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아야 하는 걸까?’
재력으로 따지면 명천이 둘째 명각을 압도할 것 같았다.
“지나치게 크구나.”
두 사람은 일다경 정도를 더 걸어서 비로궁 앞에 도착했다.
비로궁은 성채와 같이 사방에 해자가 있어 도개교를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숙의 칠공자께서 오셨다!”
하후문이 목소리를 높이자 성벽 위에 있던 무인들이 도개교를 내렸다.
끼익. 끼익.
쇠사슬이 엇갈리는 소리와 함께 도개교가 아래로 내려왔다.
쿵.
명운은 도개교가 내려오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시끄러워.”
혼잣말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하후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