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4)
54화 파종(播種) (6)
“찬성입니다.”
다섯째 명정이 가장 먼저 명운의 의견에 손을 들었다.
“내 생각에도 이번 계책은 괜찮은 것 같구나.”
첫째 명천과 대립하던 명원도 명운의 의견에는 이견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명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 제법이구나.”
그는 명운의 계책을 쓰면, 명각의 독주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 계책을 짤 줄 아는 녀석이 왜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명천의 마음속에서 명운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명운 또한 자신에게 시선이 쏠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모임은 당분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는 충분한 힘을 키울 때까지는 몸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형님들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삼공자 명원이 큰형 명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천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답했다.
“운의 계책이 좋구나.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그는 이 정도 계책 정도는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었다.
명정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형님, 그래도 저희가 돕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힘을 합치면 어떠한 일이든 낫다.
명천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계책을 쓸 때는 사람이 적은 것이 좋다. 손이 많으면 이야기가 새어 나갈 뿐이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한 것을 함구하도록.”
명정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형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형제들 간의 회의가 끝나자 삼공자 명원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가 다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명천은 그를 잡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거라.”
다섯째 명정이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형님, 저도 가 보겠습니다.”
명천은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명운뿐.
“오랜만에 형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도 자리를 뜨려 했다.
명천은 바로 허락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운을 이대로 보내는 것은 뭔가 찝찝하구나. 하지만…… 명각을 견제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느 쪽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그는 명운을 잡아 두는 것보다 명각을 쓰러뜨릴 계책을 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명천은 형제들을 모두 내보낸 뒤, 측근들을 불렀다.
“계책이 결정되었다.”
그의 측근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주군, 명을 내려 주십시오!”
명천의 수하들은 그를 공자보다는 주군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명천과 함께한 세월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천은 측근들에게 명운의 계책을 설명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참으로 훌륭한 계책이십니다!”
“이것이라면 손쉽게 이공자를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와 같은 귀모는 신산자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명천은 측근들의 극찬에 미간을 좁혔다.
‘운의 계책이 이 정도였나? 아니면 녀석들의 아첨이 극에 달한 것인가?’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백암귀.”
명천의 호명에 백암귀가 앞으로 나오며 두 손을 모았다.
“주군, 하명하십시오.”
“운이 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자네가 가서 데려오게.”
“존명!”
백암귀가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백암귀는 명운을 발견할 수 없었다.
명운은 회의장을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하후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하후문은 재빨리 말을 준비했고, 명운은 형제 중 가장 먼저 비로궁을 빠져나갔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가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을 본 명정이 명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공자 명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받았다.
“그런 것 같구나.”
명운은 단 한 명의 호위무사만을 데려왔기에 빠르게 떠날 수 있었다.
명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설마 녀석은 비로궁을 빠져나가는 것까지 고려해 단 한 명만을 데려온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심계는 대단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삼공자 명원이 말 위에 오르며 물었다.
“정, 큰형이 처음부터 우리 모두를 부른 것이냐?”
오공자 명정이 멈칫하며 답했다.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면?”
“처음에는 저와 운만을 불렀습니다.”
삼공자 명원이 말끝을 올렸다.
“이후 나를 부르게 된 것이냐?”
“그것이…….”
오공자 명정은 이곳에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형님, 그것은 밖에 나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삼공자 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밖에서 듣겠다.”
두 사람은 각각 수십 명의 수하를 이끌고 비로궁을 나섰다.
궁문과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삼공자 명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
오공자 명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천의 부름과 명운의 대처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공자 명원은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손뼉을 쳤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명운의 계책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나이에 이 모든 계책을 짰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구나.’
명원은 확신했다.
‘내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내의 지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명운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첫째 명천은 몰라도 둘째 명각에게는 뒤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 *
명천은 명운이 서둘러 비로궁을 빠져나갔다는 보고에 혀를 찼다.
“쯧쯧,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는 어떻게든 명운을 붙잡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가서 잡아 올까요?”
맹공이라는 수하의 물음에 명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누굴 잡아 온다는 말이냐?”
맹공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암귀는 맹공의 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군, 정말로 칠공자가 필요하다면,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명천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운의 주변에 원과 정이 있을 것이다. 괜히 흠 잡힐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는 이미 쏟아진 물이라 생각했다.
명천의 손에서 벗어난 명운, 그는 비로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을 달렸다.
이윽고 시야에서 비로궁이 사라지자 그는 말을 멈췄다.
“후우…….”
명운이 긴 숨을 내쉬자 하후문이 창을 비껴들며 물었다.
“호랑이 굴이었습니까?”
명운이 되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했나?”
“들어가자마자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운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곳에서 나와 큰형의 차이를 명확히 알게 되었네.”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 차이를 실제로 보는 것은 느낌이 크게 달랐다.
‘다른 것은 느낌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재력이나 그것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 그리고 소모된 시간.
그 모든 것들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한고비를 넘었군.”
하후문이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추격은 없을까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괜찮을 걸세.”
예상대로 추격은 없었다.
그들은 대명궁에 입궁한 뒤 바로 서숙을 향했다.
“다 왔습니다.”
두 사람이 문 앞에 이르자 강하원이 밖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수고하셨습니다.”
명운이 말에서 내리며 인사를 받았다.
“십년감수했네. 앞으로는 쭉 낙산원에 머물 걸세.”
그는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몸을 낮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조금 무리했어.’
강하원이 말했다.
“손님이 오셨었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손님?”
“도민국 군주라는 분이셨습니다.”
명운은 푸른 눈의 여인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고민이 왔다 갔군.”
“공자님께서는 그분과 친분이 깊으십니까?”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그렇지는 않네. 이번에 대관촌에서 잠시 만났을 뿐일세.”
그는 고민이 자신의 이마에 입을 맞춘 일을 생각하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깊이 생각하지 말자. 서역의 예법은 이쪽과 많이 다르다고 하니까. 그녀의 행동은 서역의 예법 중 하나일 것이다.’
강하원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그쪽은 공자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심지어 천리마까지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명운은 천리마라는 말에 멈칫했다.
“천리마를?”
“지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쉬고 싶군.”
“그럼, 말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네가 천리마라 했으니, 천리마가 맞겠지. 말은 다음에 확인하겠네.”
강하원이 그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어쨌든 도민국과는 좋은 인연을 맺으신 것 같습니다.”
“서역의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 그건 그렇고, 강 총관 우리도 언젠가는 상단을 꾸려야 하지 않겠나?”
강하원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상단 말입니까?”
명운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큰형이 쌓은 부를 눈으로 확인하니,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네.”
“장공자의 부는 상단만으로 쌓은 것이 아닐 겁니다.”
명운도 그가 여러 방법으로 부를 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서역과 중원을 잇는 중계 무역이 있었다.
‘여유가 되면, 이쪽에 쓸 사람을 찾아봐야겠어.’
강하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그가 이렇게 목소리를 낮출 때는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음?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군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명운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어떤 이야기 말인가?”
“공자님께서 사기를 당한 도민국과 군주를 도와주셨다고 하더군요.”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거늘.’
그는 사마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도민국과 고민에게는 모든 것을 비밀로 하라 적었다.
하지만 사마진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사실을 고민 군주에게 이야기한 뒤, 명운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고민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한 것이었다.
“어떤 계책으로 이번 일을 해결하신 것입니까?”
명운이 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대단한 것은 아닐세. 도민국과 군주가 서북상단을 사칭한 이들에게 사기를 당했으니,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대금을 지불하라 편지를 쓴 것뿐이네.”
강하원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돈을 내어준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서북상단에 큰 손해가 아닙니까?”
“대금을 내어 주는 쪽이 서역의 여러 나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그쪽이 손해가 적다고 생각했네.”
강하원은 명운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서북상단을 사칭을 한 사기꾼이 횡횡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진짜 서북상단마저 의심을 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명운이 말을 덧붙였다.
“그뿐이 아닐세. 서북상단이 의심을 사게 되면, 본교의 신뢰에도 금이 가게 될 걸세.”
강하원은 명운이 심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문제를 해결할 정도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공자님의 계책은 이런 것이군요. 일단 서역의 나라들을 안심시킨 뒤, 범인을 잡아 그 손해를 메운다. 이렇게 하면 서북상단의 신뢰를 지키면서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명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범인을 잡아 손해를 메우지 못한다고 해도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네. 그리고 이렇게 은혜를 베풀면 도민국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당연히 도민국에서는 크게 고마워하겠지요.”
“강 총관, 친구를 하나 사귀면, 그 친구의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것일세.”
강하원은 명운이 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의 친구를 사귄다. 이는 단순히 도민국만 생각해서 낸 계책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는 명운의 심계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의문이 더 있습니다.”
“어떤 것인가?”
“도민국 군주께서는 공자님께서 사기꾼을 잡을 수 있는 계책까지 짜셨다고 하셨습니다.”
일을 해결하는 큰 그림과 사기꾼을 잡는 계책은 분명 달랐다.
명운이 내원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편지에 이런 말을 덧붙이긴 했네. 말을 가져간 이들은 그것을 군마로 쓰지 않고 다시 되팔 테니, 초원의 마시장을 유심히 살피면 사기꾼들을 쉬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사기꾼들이 토로번의 마시장에서 말을 팔 것이라 예상했다.
‘거래의 규모나 받을 수 있는 가격을 생각하면 그쪽이 가장 유력하다.’
강하원은 명운의 계책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십니다.”
명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았다.
“뭐가 훌륭하단 말인가?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세.”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돈을 내주기보다는 바보 같이 사기를 당했다며, 도민국 사람들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강 총관, 날 구름 위로 띄우지 말게.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면 몹쓸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그는 여러 계책을 잇달아 내었으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잔꾀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
대업을 이루는 것은 결국 꾀가 아닌 실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