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폐관수련 (3)
조광.
그는 명운에게 가장 먼저 무공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성과를 낸 자였다.
“놀랐나?”
조광은 명운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음에 답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명운이 원한 대답과 거리가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다? 그 말은 내 위장이 어설펐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무공을 가르치는 내내 병풍 뒤에 있었으니까.’
그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쪽의 위장이 부족했다는 뜻인가?”
조광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장에 허술함은 크지 않았다는 말.
“언제 알았나?”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서숙에서부터였습니다.”
“서숙에서부터? 그렇다면 어제는 다 알고 있으면서 놀란 척 목소리를 떤 것인가?”
조광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얻은 깨달음은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었다.
명운은 그의 깨달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 영상(永相).
‘역시 생각이 깊은 자를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군.’
명운이 재차 물었다.
“어떻게 알았나?”
조광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털어놓았다.
“경은을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이, 아니 그녀를 쉬이 이용할 수 있는 자를 생각한 것인가?”
조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은은 공자님과 가까웠지만, 강 총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에 강 총관은 배제했습니다.”
명운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역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광이 답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강 총관이 제게 정체를 숨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강하원이 무공을 가르쳤다면, 병풍 뒤에 숨을 이유가 없었다.
명운이 혀를 찼다.
“그렇다고 해도 정체를 숨긴 것이 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 몸이 불편한 이가 정체를 숨긴 채 무공을 가르쳤을 수도 있네.”
조광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 가능성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와 경은의 접점을 찾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다?”
“공자님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 말고 다른 이도 있었단 말인가?”
조광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은과 가깝지만,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지?”
“정 부인이었습니다.”
명운은 멈칫했다.
“정 부인?”
그가 모르는 이름이었다.
아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정 부인이라고? 그런 자가 서숙에 있었단 말인가?’
명운이 이마를 찌푸리자 조광이 대답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한쪽 발이 불편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고 있었죠.”
명운은 찌푸렸던 이마를 폈다.
“흠,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군. 그래서 내가 몰랐던 것이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녀가 가장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낙산원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다.
명운은 그가 무엇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무후차 때문이군.”
조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결국, 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인가?”
조광이 답했다.
“실제 보는 것과 머릿속으로 추측하는 것은 크게 다르니까요. 게다가 정 부인은 이곳 낙산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가면 고수가 낙산원에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정 부인은 탈락이었다.
“자네 말고도 내 정체를 눈치챈 이가 있었나?”
조광이 잠시 생각을 한 뒤 대답했다.
“종영세는 반신반의했을 것이고, 팽헌충과 관흠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하후문은?”
“하후문은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쉬이 읽을 수 없는 친구입니다.”
명운은 하후문이 동료들을 불신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후문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중시하지.”
조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님께서는 그를 그렇게 보셨습니까?”
“하후문은 결국 자네들을 신뢰하게 될 걸세.”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화제를 바꾸었다.
“연공실 말일세. 폐관에 들어가는 동안 자네들에게 호위를 맡겨도 괜찮겠지?”
폐관수련을 하는 이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거나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문의 호위를 맡겼다.
제자가 있는 이는 제자에게.
스승이 있는 이는 스승에게 부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는 규모가 큰 문파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개방방주가 폐관에 들어가면 호법들이 문을 맡았고, 천마신교 교주가 수련에 들어가면 좌우양사 중 한 명이 그를 지켰다.
조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속하, 목숨을 바쳐 공자님을 지킬 것입니다.”
그는 명운의 연공실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다섯 명이 나누어 지킨다면, 수련에 방해가 되진 않을 걸세.”
명운은 어떻게 시간을 배분할 것인지는 지시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조광이 알아서 할 수 있다.’
그는 조광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조광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공자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공자님께서 폐관에 드신 동안 저희는 누구의 명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까?”
강하원은 서숙에 머물렀기에 그에게 명을 내릴 수 없었다.
“흐흠…….”
명운은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명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경은에게 물으면 될 것이네.”
“경은 말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조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명운은 경은을 조광 아래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제자에게 낙산원을 맡기기로 했다.
‘가르친 시간은 일 년을 조금 넘을 뿐이지만, 그 아이는 내 첫 번째 제자이다.’
제자를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더 물을 것이 있나?”
조광이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없습니다.”
명운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손을 내저었다.
“조광, 돌아가서 연공실을 준비하라.”
조광이 두 손을 모은 채로 명을 받았다.
“속하,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명운은 그와 자신의 잔에 차를 따랐다.
“지금은 차밖에 마실 수가 없군.”
조광이 잔을 받으며 말했다.
“폐관을 마친 뒤에는 차가 아닌 술을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명운은 열일곱이 되었다.
천마신교에서 열일곱이면 충분히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였다.
“삼 년 뒤 자네와 차가 아닌 술잔을 기울이도록 하지.”
“존명!”
명운과 조광, 두 사람은 마치 술잔을 비우듯 찻잔에 담긴 차를 동시에 비웠다.
* * *
명운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왜?’
그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얻어 낸 답.
그것은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난 생은 물론 이번 생에서도 폐관수련은 처음이다.’
과거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연공실에서 몇 년을 보낸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을 생각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공에 미친 무인이 아니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종일 무공만 생각할 수 있을까?’
며칠, 아니 한두 달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 년 내내 그것이 가능할까?
명운은 확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폐관수련은 필수다.’
대부분의 무인이 폐관수련이나 은둔 생활을 통해 무극의 경지에 도달했다.
주변 사람들과 덕담을 주고받거나, 무관에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경지에 오른 이는 없었다.
‘사람들과 섞이면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폐관수련의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하늘이나 숲, 새나 나비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빛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하 연공실은 오직 촛불에 의지해 수련해야 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지금 상황에서 폐관수련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형들의 권력 싸움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날 수 있었고, 부족한 무공 또한 채울 수 있었다.
‘천마신교의 후계자, 소교주의 위는 정치적 놀음이나 잔재주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마신교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국가였지만, 작은 의미에서 보면 무림문파에 속했다.
무림문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공이었다.
‘소교주는 형제 중 가장 뛰어난 고수이어야 한다.’
무극에 달하지 못하더라도 명각과 명천만큼은 반드시 뛰어넘어야 했다.
‘중단전을 연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삼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수련한다면, 명천과 명각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불안감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우…… 곤란하군.”
명운은 한숨을 내쉬며 침상 위에 누웠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미식가도,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한도,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도 아니다. 난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 총관도 폐관수련을 한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강하원을 불러 물을 수는 없었다.
‘무리야. 그것 하나 묻자고 강 총관을 이곳까지 부를 수는 없다.’
폐관수련은 당장 내일 아침 시작이었다.
서숙에 머물고 있는 강하원을 낙산원으로 부른다는 것은 과한 행동이었다.
“폐관수련이라…… 결국 해 봐야 아는 것일까?”
명운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잡념을 떨치는 데 연공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는 가부좌를 취했다.
그리고는 호흡을 고르게 한 뒤, 단전에서 내력을 불러일으켰다.
한 줄기 진기가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솟구쳐 올랐다.
‘진기를 나눈다.’
그는 독맥과 임맥으로 나뉘어 진기를 불어넣었다.
강렬한 진기가 독맥과 임맥을 통과하자 중단전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소주천을 이룬다.’
흔히 연정화기(練精化氣)라 불리는 소주천은 중단전을 완전히 열어야만 성취할 수 있었다.
독맥과 임맥에 진기가 끊임없이 흐르자 중단전이 활짝 열렸다.
* * *
다음 날 아침.
명운은 겨우 반 시진을 잤음에도 몸이 가벼웠다.
“연공이 답이었나?”
고개를 돌리니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이군.’
침상 밖으로 나오자 시녀 둘이 세숫물을 가져왔다.
“공자님, 아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갈 것이다.”
그는 세수를 마친 뒤,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시녀 중 한 명이 그에게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전갈입니다.”
명운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이 방은 청소할 필요가 없다.”
두 시녀가 무릎을 굽히며 그의 명을 받았다.
“공자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명운은 검을 찬 뒤에 방을 빠져 나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지하 연공실이었다.
‘앞으로 삼 년 동안은 햇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햇빛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겨울 하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있어라.’
명운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탁.
연공실 앞에 이르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광과 호위무사들은 물론 경은과 시녀들까지 복장을 단정히 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운은 그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 출정식에 나가는 장수 같군.’
그가 문 앞에 이르자 조광이 허리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았다.
“모두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준비는 끝났나?”
조광이 대답했다.
“무복과 벽곡단, 물과 무기, 촛대와 촛불까지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명운은 앞으로 연공실에서 입고,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모두 해결해야 했다.
“경은.”
명운이 호명하자 경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명운이 또렷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매년 정월 초일이 되면, 그간 있었던 일을 적어 안으로 보내도록.”
연공실 안에는 밖에서 물과 음식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편지는 그 통로를 통해 전달될 터였다.
경은이 허리를 굽히며 명을 받았다.
“그간 있었던 일을 상세히 적어 올리겠습니다.”
명운은 모든 지시를 마쳤다는 듯 시선을 연공실로 돌렸다.
“열어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관흠과 팽헌충이 연공실의 문을 좌우로 활짝 열었다.
명운은 마지막 심호흡을 한 뒤 연공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삼 년이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팽헌충과 관흠이 연공실 문을 닫았다.
스르륵. 쿵.
석문이 닫히자마자 하후문과 종영세가 봉인을 의미하는 봉서를 붙였다.
이로써 명운의 삼 년 폐관수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