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58)
58화 폐관수련 (4)
희미한 촛불.
그것 외에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호흡이 답답하다.”
낙산원의 지하 연공실에는 환기를 위한 통로가 여럿 만들어져 있었으나 지상과는 차이가 컸다.
“이곳에서 홀로 삼 년인가?”
봉인된 석문은 외부세계와 그를 완벽히 갈라 놓았다.
“할 수 없지.”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폐관수련이었다.
불평이나 불만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꼬르르륵.
아침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까?
뱃속에서 신호가 전해졌다.
명운은 문 오른쪽의 작은 방을 향했다.
이 작은 방에는 그가 삼 년 동안 쓸 여러 물품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것인가?”
명운이 손에 든 것은 작은 단환이었다.
‘벽곡단.’
벽곡단은 폐관수련에 들어가는 무림인들의 필수품으로 이것을 먹으면 밥을 먹지 않고도 허기를 이길 수 있었다.
‘연공실에서 거하게 한 상 차려 먹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는 첫 번째 벽곡단을 입에 넣었다.
‘맛없어.’
과거도 몇 번인가 벽곡단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맛이 없진 않았다.
‘조광이 상한 물건을 놓았을 리는 없고, 원래 이 맛이라고 봐야겠지.’
벽곡단이 담긴 항아리를 닫은 뒤, 왼쪽의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각종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이었다.
‘벽곡단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저곳에 갈 일도 드물 것이다.’
명운은 연공실 북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잠을 청할 수 있는 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그 위에 누웠다.
“차가워.”
땅속으로 깊이 들어선 연공실, 하지만 겨울 한기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추운 것은 아니야. 그럭저럭 잠은 잘 수 있겠군.”
명운은 차고 있는 검을 내려놓은 뒤, 신발을 벗었다.
‘우선은 몸을 가볍게 한다.’
그가 첫날 일정으로 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였다.
‘무공 수련보다는 적응이 먼저다.’
폐관수련을 견디지 못한 채 뛰쳐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폐관수련 삼 일 차.
명운은 드디어 검을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더 힘들군.”
대화상대도 없는 흐릿한 석실.
편히 쉬려고 해도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무공 수련.
“후우…….”
명운은 길게 호흡을 한 뒤 검을 뻗었다.
슉!
검이 앞으로 나아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타핫!”
그는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빨리했다.
검광이 일렁거릴 때마다 검 끝에서 시작된 바람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명운은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은 채 순수하게 초식만을 구사하고 있었다.
‘가볍게 검을 뻗는다.’
슥!
그의 환영검은 이미 완숙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손목을 돌리면서 검을 뻗자 검 끝이 허공에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합!”
이번에는 기합과 함께 바닥을 차고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환영검의 여섯 번째 초식 비영회천(飛影回天).
탁.
바닥에 착지한 직후, 오른발을 길게 뻗으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열아홉 번째 초식 선영측검(仙影測劍).
검은 명운이 뜻대로 움직였다.
슉!
검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빨라졌다.
흥이 일어난 명운은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올렸다.
“더 빨리!”
내력이 온몸을 휘감자 검에서 뻗어 나오는 바람이 달라졌다.
“더!”
솨! 솨솨솩!
허공을 가르는 사나운 기세는 앞을 막는 모든 것을 갈라 버릴 듯했다.
“하하합!”
격한 함성과 함께 뻗어 낸 검.
검 끝에 맺힌 것은 검풍이 아닌 검기였다.
찌찌직!
앞으로 뻗어 나간 검기가 그대로 석실 벽을 긁었다.
‘하, 중단전을 열지 않으면, 겨우 이 정도인가?’
명운은 검을 가볍게 휘두른 뒤, 그 끝을 아래로 내렸다.
“그나마 낫군.”
그는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곧 ‘적응’이라고.
* * *
석준명은 자신에게 온 편지를 내려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상의조차 하지 않을 줄은 몰랐네.”
그의 앞에 앉은 이는 비조검 석주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폐관수련이었습니다.”
귀주석가는 명운의 폐관수련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가 세운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어.”
그는 나름대로 명운의 무공을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정문을 보내 무공을 가르치려 했건만.’
하지만 명운은 그와 상의도 없이 폐관수련에 들어가고 말았다.
“상황이 그만큼 어려웠다고 생각됩니다.”
석준명이 말끝을 올렸다.
“상황이 어려워?”
그가 말끝을 올린 이유는 석주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안 석주가 고개를 숙였다.
“칠공자는 장공자의 움직임에 압박감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공자 명각이 실각한 이후, 장공자 명천의 위세가 크게 높아졌다.
명천은 매일 같이 태화전에 나아가 신교의 대소사를 살폈다.
이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소문이 퍼졌다.
– 장공자 명천이 곧 소교주에 임명될 것이다.
“장공자의 움직임에 압박감을 느꼈다면, 다른 형들을 찾아가는 것이 정상 아닌가?”
석준명이 그린 그림은 삼공자 명원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운은 폐관수련이라는 행동으로 그 그림을 거부했다.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 오공자가 칠공자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오공자가?”
오공자 명정의 방문은 석준명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공자가 폐관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선을 그은 것은 그 직후입니다.”
석준명은 미간을 좁혔다.
“오공자의 방문이 칠공자의 폐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을까 합니다.”
석준명은 오공자 명정이 어떠한 말을 전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물을 수는 없고, 역시 강하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자네가 가 줘야 할 것 같네.”
석주가 두 손을 모았다.
“가주님, 하명하시지요.”
석준명이 목소리를 바꾸며 말했다.
“서숙에 가서 강하원을 만나게. 그리고 그에게 폐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묻게.”
그는 편지만으로는 명운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음 날.
석주는 서숙을 찾았다.
하지만 봉인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석주로서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폐관수련도 모자라 봉문인가?’
명운은 세상과 단절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날 저녁.
석수는 서숙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는 강하원의 집무실로 스며들었다.
드륵.
강하원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석주를 보자마자 붓을 멈췄다.
“아니, 이거 비조검 아니십니까?”
석주가 오른손을 들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강 총관, 오랜만이네.”
강하원이 그에게 물었다.
“비조검께서는 서숙이 봉문을 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봉문은 객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편지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었네.”
귀주석가는 명운의 유일한 배경이었다.
“그렇군요.”
석주는 강하원의 뻣뻣한 태도에 살짝 부아가 났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여기서 강하원과 언성을 높여 봐야 얻을 것이 없다.’
그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했다.
“가주께서는 공자의 본심을 알고자 하시네.”
“공자님의 본심 말입니까?”
“어째서 폐관에 들어가신 것인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공자께서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 폐관에 들어가셨습니다.”
석주가 혀를 찼다.
“쯧, 강 총관, 날 속이려 하는 것인가?”
강하원이 어깨를 펴며 대답했다.
“제가 비조검, 아니 석가를 속여 무슨 이득을 얻는다는 말입니까? 공자께서는 정말로 무공을 성취하기 위해 폐관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석주가 얼굴을 굳혔다.
“공자께서는 아직 제대로 된 스승을 모시지 못했는데, 그 상태에서 폐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강하원은 그의 물음에 흔들리지 않았다.
“스승은 없지만, 비급은 있습니다.”
“비급?”
“비조검께서는 교주님께서 내리신 비급을 잊으신 것은 아니시겠죠?”
석주는 강하원의 당당한 태도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교주님께서 내리신 비급이라. 그것이 그토록 대단한 것인가?’
다른 이도 아니고 천마신교의 절대지존인 교주가 아들에게 선물로 내린 비급.
이 비급이 평범할 리 없었다.
“공자께서는 그 비급을 연마하고자 폐관수련에 들어가셨다는 말인가?”
강하원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비급의 제목은 십비십무록이라 합니다.”
석주는 나직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십비십무록이라…….”
그가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무공서였다.
‘한마디로 명가(明家)의 비급이란 말이군.’
석주는 모든 의문이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전을 완성하기 위해 폐관에 들어갔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그가 굳혔던 얼굴을 풀며 물었다.
“공자께서는 언제 폐관을 끝내시는 건가?”
“십비십무록을 완성한 뒤에 나오실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말이군.”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여기까지입니다.”
석주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인 뒤 자리를 떴고, 강하원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공자께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게 되실지 모르겠구나.”
그는 명운의 지식이 해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 * *
자심전주 송전흠.
그는 이공자 명각이 실각한 이후, 처음으로 교주를 마주했다.
“전흠, 잘 있었나?”
송전흠은 이공자 명각에 줄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속하, 교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죄를 범했나이다.”
명증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죄?”
송전흠은 머리를 바닥에 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심전주 자리에서 물러나 초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는 이공자 명각이 실각했을 때부터 용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명증은 그의 청에 낮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초야로 돌아간다. 흙이 되고 싶은 것인가?”
송전흠은 바닥에서 머리를 떼지 못했다.
“교주님, 자비를…….”
명증이 오른손을 들었다.
“전흠, 돌아가 본분을 다하라.”
유임.
송전흠은 쿵쿵 소리가 날 때까지 머리로 바닥을 두드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속하, 교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가 돌아간 뒤, 시녀장 석비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교주님, 칠공자의 서신입니다.”
명증이 손을 들자 마치 실이 달린 것처럼 편지가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석비연은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천마신교 교주에게 허공섭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음…….”
명증은 막내아들의 편지를 읽은 뒤, 그것을 다시 석비연에게 보냈다.
이는 한번 읽어 보라는 뜻이었다.
석비연은 바로 편지를 펼쳤다.
‘이것은!’
그녀가 고개를 들자 명증이 물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석비연이 답했다.
“운이 폐관에 들어간 것은 십비십무록을 익히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말인가?”
“지금 이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도 삼 년은 너무 긴 것이 아닐까?”
그는 폐관수련의 고독함과 지루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면 대성하지 못할 것이다.’
석비연이 물었다.
“운의 물러섬은 교주님께서 바라시던 일이 아니었습니까?”
명증은 형들의 눈에서 멀어지라는 뜻으로 십비십무록을 내린 바 있었다.
“자숙과 폐관은 크게 다른 것이다.”
석비연이 편지를 갈무리하며 말을 받았다.
“운은 잘 해낼 것입니다.”
“그 아이가 말인가?”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 생각합니다.”
명증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대의 말대로 폐관을 이겨 낸다면 천이나 각과도 해 볼 만하겠지. 하지만 폐관수련은 쉬운 일이 아닐세.”
“쉽지 않기 때문에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대는 운을 응원하는 모양이군.”
석비연이 말했다.
“천이나 각보다는 응원할 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명증은 그녀의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