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승천(昇天) (1)
정월 초하루.
이날 아침 순번은 하후문이었다.
그는 창을 든 채 석문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탁. 탁.
계단을 내려오는 걸음 소리.
그러나 하후문은 긴장하지 않았다.
‘이 소리는 종영세군.’
그는 걸음 소리만 듣고도 누가 내려오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교대는 멀었어.”
종영세가 계단 위에서 하후문의 말을 받았다.
“정월 초하루에 혼자면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후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아니겠지?”
“…….”
“경 소저는 이미 다녀갔어.”
종영세는 어느덧 계단 끝에 도달했다.
“내가 왜 경 소저를 보러 왔다고 생각해?”
“정월 초하루니까.”
경은은 정월 초하루, 명운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종영세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 소저는 그냥 낙산원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고.”
하후문은 그의 말에 입술 끝을 올렸다.
“하지만 한껏 멋을 낸 모습은 쉬이 볼 수 없지.”
이는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경은은 명운을 만날 수 없음에도 최대한 단장을 한 채 이곳을 찾았다.
그녀는 그것이 스승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종영세가 살짝 눈썹을 위로 올렸다.
“그렇게 멋을 냈나?”
“공자님께 편지를 보내는 날이니까.”
종영세는 김이 빠졌다는 듯 석문에 등을 기댔다.
“더 일찍 올 걸 그랬어.”
“여자는 잊은 것 아니었나?”
“경 소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잖아.”
경은은 낙산원의 총관으로서 훌륭하게 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섯 호위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감탄할 때가 많았다.
하후문이 물었다.
“진짜로 관심 있는 건가?”
종영세가 어깨를 으쓱했다.
“관심만 있을 뿐이야. 경 소저는 공자님의 대제자니까.”
“첫 번째 제자이지 대제자는 아니야.”
“그게 그거야.”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하후문이었다.
“돌아가지 않는 건가?”
종영세가 대답했다.
“곧 교대니까.”
“반 시진은 남았어.”
“반 시진밖에 남지 않은 것이겠지.”
하후문이 창을 고쳐 들며 말했다.
“말동무가 있으면 나야 편하지.”
종영세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번에 온 친구들은 어때?”
정월이 되기 전.
강하원은 다섯 명의 무인을 낙산원을 보내왔다.
“평범하지.”
“강 총관이 뽑았다고 하던데?”
“그러니 평범할 수밖에.”
“강 총관을 믿지 못하는 건가?”
하후문이 대답했다.
“공자님의 눈과는 차이가 있잖아.”
종영세를 비롯한 다섯 호위는 명운의 눈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긴…… 공자님의 눈과 지식은 거의 서고급이니까.”
하후문이 말문을 닫자 이번에는 종영세가 물었다.
“공자님은 지금 뭐하실까?”
“경 소저의 편지를 읽고 계시겠지.”
종영세가 혀를 찼다.
“역시 일찍 왔어야 했어.”
하후문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석문 왼쪽 끝에 달린 종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이 종은 석실 안과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공자님이다!”
하후문은 창을 내려놓고 종 아래 뚫린 구멍으로 밧줄을 밀어 넣었다.
잠시 뒤, 다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는 밧줄을 당기라는 뜻이었다.
“공자님께서 뭔가 보내신 모양이야.”
밧줄을 끝까지 당기자 끝에 편지가 보였다.
“편지군.”
“누구에게 보내는 것일까?”
하후문이 편지를 풀어 종영세에게 내밀었다.
“어서 경 소저에게 전해.”
“조광이 아니라 경 소저인가?”
하후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공자님의 대제자니까.”
하후문은 편지를 받으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아까는 대제자가 아니라고 하더니.’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 * *
석실 밖으로 편지를 보낸 지 사흘째 되는 날.
경은은 답장과 함께 깨끗한 물이 담긴 대나무 물통을 내려보냈다.
명운은 물통을 한쪽에 놓고는 편지를 펼쳤다.
– 강 총관이 진 장로의 죽음을 조사하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인은 노환이었습니다만,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강 총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첫째는 진 장로가 사망 며칠 전까지 외출할 정도로 건강했다는 것.
둘째는 진가의 그 누구도 진 장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셋째는 그의 마지막 외출이 신교우사 공복진과 만남이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잠을 자다가 갑작스럽게 심장이 멈췄다면, 임종을 본 사람 없이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문제는 세 번째다.”
공복진은 신교우사로서 교주 명증의 최측근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공자 명각의 실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 우사가 진 장로에게 자결을 권유했다면 억측이려나?”
만에 하나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명각의 승리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경은이 보낸 편지에는 명각의 승리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 이공자 명각의 출전은 계속 늦어져 칠월에서야 가능했습니다. 그와 검혼대는 한 달을 넘게 이동해 팔월이 훌쩍 지난 구월, 대월에 도착했습니다.
늦어짐은 그곳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이공자 명각과 검혼대는 대월군과 두 달을 넘게 싸워 동짓달이 되어서야 승전보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편지에 따르면, 명각이 승리를 거둔 것은 최근이었다.
“승리로 인한 파장은 적혀 있지 않다.”
이는 교주 명증의 축하를 받을 정도의 대승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명각은 당분간 대명궁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명운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가 꽤 비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였다면, 명각은 대월이 아니라 감숙에 있어야 했다.’
물론 역사를 비튼 것은 바로 그였다.
그의 책략이 아니었다면 이공자 명각은 실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월로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웃는 것은 역시 큰형이려나?”
경은의 편지에 따르면 장공자 명천이 삼단 중 하나인 혜선단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혜선단주 다음은 신교양사 중 하나일 것이다.”
신교양사 그다음은 부교주였다.
그러나 부교주가 되기 전 소교주의 위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큰형이겠지. 하지만 쉽진 않을 거야.”
그는 이공자 명각이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셋째 형도 남아 있다.”
명운은 편지를 태우고는 연공에 들어갔다.
* * *
태화제.
명가의 식구들이 가주이자 교주인 명증의 무병장수를 비는 행사.
이날 참석한 공자의 수는 몇 년 전보다 훌쩍 줄어 있었다.
신교좌사 양대충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단이 텅 빈 느낌마저 드는군.”
그는 어느 공자도 지지하고 있지 않았으나 후계자 경쟁이 이런 식으로 끝나 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자명단주 사마진이 그의 말을 받았다.
“이렇게 된 것은 공 우사의 뜻일까요?”
신교우사 공복진은 오늘 불참한 이공자 명각과 사공자 명준의 실각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사마진이 제단에 오르는 오공자 명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가 장공자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공복진이 장공자 명천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대세는 굳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소문은 소문일 뿐.”
“좌사님께서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신 것입니까?”
양대충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네는 나를 충동질하려는 것 같군.”
그의 서열은 천마신교에서 부교주 유청 다음이었다.
“공 우사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좌사님뿐이니까요.”
양대충이 씁쓸하게 웃었다.
“후후후, 전횡을 막을 수 있다라. 사마 단주.”
“말씀하시죠.”
“자네는 오늘 칠공자가 빠져서 섭섭한 모양이군.”
명운은 폐관 수련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태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마진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섭섭할 정도는 아닙니다.”
양대충은 한발 더 나아갔다.
“최근 서숙과 자명단의 교류가 크게 늘었다고 하더군.”
사마진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서숙에서 상단을 꾸리고자 해서 도와주고 있는 것뿐입니다.”
“정말 그것뿐인가?”
사마진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오늘 중년 부인으로 역용을 하고 있었다.
“자네가 고수를 보내 칠공자를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이 있네.”
“고수라면 석 장로가 보냈겠죠.”
귀주석가 또한 명운과 가깝다는 소문이 난 상태였다.
“석 장로는 속이 좁아서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을 걸세.”
“전 다르다는 말입니까?”
양대충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대장부와 같으니까.”
사마진은 그의 말에 혀를 찼다.
“그 말씀은 칭찬이 아니시군요.”
“자네는 말일세. 놀리는 재미가 있어.”
사마진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좌사님께서는 사람을 놀리는 데 큰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양대충은 짓궂은 중년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마진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가 자명단의 고수로 활동하던 시절, 양대충은 잔혹마도라는 별호로 강호를 횡횡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말을 붙이기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가 없었지.’
당시 그는 온몸에서 마기를 풀풀 풍기는 대마두였다.
“대월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양대충이 오른손을 내저었다.
“이쪽의 승리가 아닐세.”
“이공자의 승리라고 해도 결국은 군무를 아우르는 좌사님의 공 아닙니까?”
천마신교의 군무(軍務)는 신교좌사 양대충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번 정벌은 내가 아니라 교주님께서 허락한 것일세.”
“하면 교주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자네가 직접 묻는 게 낫지 않겠나?”
자명단, 적비단, 혜선단 등 삼단의 단주는 교주를 만날 수 있는 알현권이 있었다.
“농담이시죠?”
“농담 같나?”
“또 절 곤란하게 만드시는군요.”
양대충은 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사실 걱정이 하나 있네.”
사마진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걱정 말입니까?”
양대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교에 우리의 뒤를 잇는 고수가 나오지 않고 있어.”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무극의 경지를 넘어 무신(武神)에 가장 가까이 이르렀다고 일컬어지는 천마도 결국에는 죽었다.
“나도, 자네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사라질 걸세.”
그는 신교의 위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를 잇는 고수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문파든 고수를 배출하지 못하면, 쇠락할 수밖에.’
그의 말을 들은 사마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좌사님보다 훨씬 어린걸요.”
같은 세대로 묶지 말아 달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양대충의 목소리가 탁해졌다.
“아, 그랬던가?”
“그랬습니다.”
“하면 자네가 신교제일검의 별호를 잇겠나?”
현재 신교제일검이라 불리는 이는 부교주 유청이었다.
“주신다면 거부하진 않겠습니다.”
나름 야심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양대충은 그녀의 말에 냉소했다.
“자네 솜씨로는 부족해.”
사마진으로서는 목소리 끝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까요?”
“화가 난 모양이군.”
사마진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부터 노인 취급에 실력까지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니, 화가 날 수밖에요.”
양대충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난 말일세. 공자 중 한 명이 그 별호를 가져갔으면 했어.”
명가의 피를 이은 이들 중 고수가 나와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양대충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천은 어렵고, 각은 부족해.”
“더 아래도 있지 않습니까?”
양대충이 사마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자네…….”
그는 그녀가 지목한 사람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무리야. 암, 무리이고 말고.’
그러나 사마진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가능성은 나이가 어릴수록 큰 법입니다.”
양대충은 손을 들어 이마를 눌렀다.
“곤란해.”
“그럴까요?”
“만에 하나 자네 말대로 일이 돌아간다면, 신교는 피바람에 휩싸일 걸세.”
막내의 반란을 형들이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천, 각, 원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양대충은 명운이 명증의 뒤를 잇는 것은 잉어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