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승천(昇天) (4)
운남을 떠난 진백청.
그는 수행원 없이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산이 높구나.”
흔히 차마고도라 불리는 고도.
이곳의 역사는 비단길보다 수백 년을 앞섰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나귀를 앞세운 행상들이 나타났다.
진백청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오?”
선두에 선 행상이 진백청의 물음에 답했다.
“완합에서 오는 길이외다.”
“완합은 어떻소?”
“비가 와서 길이 험합니다.”
“조심해야겠구려.”
진백청은 수행자들이 즐겨 입는 옷을 입고 있었기에 행상들은 그의 곁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수행길에 무사하시길.”
“상행에 복이 있기를.”
진백청은 온화한 미소로 행상들을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십만대산이 아닌 서장의 야니산(若尼山)이었다.
“길이 점점 험해지는구나.”
비가 쏟아지자 길은 곧 진창으로 변했다.
하지만 진백청의 걸음은 이전과 같았다.
“비로는 그대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진백청은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바위 위에 앉은 사내.
그는 초립을 쓰고 있었다.
“마중을 나왔나?”
“그렇습니다.”
진백청은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교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서 내가 왔다고 전해 주시게.”
“함께 가시지 않는 겁니까?”
“이쪽은 비를 좀 더 맞고 싶네.”
초립을 쓴 사내는 진백청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리는 비를 더 맞고 싶다고? 이곳에서 말인가?’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를 강제로 데려가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말을 마친 뒤, 경공을 전개해 사라졌다.
경공을 전개하면 한 시진이면 갈 거리.
그러나 진백청은 경공을 전개하지 않은 채 한나절을 걸었다.
그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았다.
“도착했군.”
그의 걸음이 멈춘 곳.
그곳은 험준한 산길 중간이었다.
오른쪽은 협곡, 왼쪽은 거대한 바위.
바위의 높이는 십 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후후후, 예전에는 이 바위를 뛰어넘지 못했지.”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 그는 바위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한 바위는 더 이상 그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두 발에 힘을 주자 몸이 위로 떠올랐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그는 바위 중간을 밟고 한 번 더 도약했다.
탁.
진백청이 바위 위에 내려서자 초립을 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문을 열어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진백청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보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교주님께 안내하게.”
바위 뒤에는 넓은 골짜기가 있었고, 그 골짜기에는 십여 채의 전각이 늘어서 있었다.
차마고도를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행상들도 이곳을 알지 못했다.
“교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백청은 가장 큰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전각 안에는 수백 개의 촛대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왔는가?”
전각 한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은 화려한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속하, 교주님을 뵙니다.”
진백청이 교주라 부른 이는 명증이 아니었다.
상대는 창백한 얼굴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일은 잘되었는가?”
진백청의 언행은 과할 정도로 공손했다.
“실수 없이 처리하였습니다.”
“명가(明家)를 멸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살피고, 또 살펴서 일을 처리하겠나이다.”
중년인이 오른손을 들자 작은 상자 하나가 진백청의 앞에 떨어졌다.
딸칵.
진백청은 급히 그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안에 든 환약을 삼켰다.
중년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낮게 웃었다.
“후후후, 진백청, 어찌 감사 인사도 없느냐?”
진백청은 급히 바닥에 머리를 가져갔다.
“속하, 교주님의 은혜에 감동하였습니다.”
천마신교 십장로 중 한 명이자, 대산팔가 중 하나인 대설진가의 가주 진백청.
그는 자신의 형을 죽이고, 자신을 가주로 만든 중년인에게 철저히 속박되어 있었다.
* * *
폐관수련 사백구십구 일째.
명운은 오른손으로 한음진기를 왼손으로는 양강진기를 뿌릴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완성했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음양쌍검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음양쌍검이 아닌 무극이다.”
음양쌍검을 이룬다면 이전보다 분명 강해질 터였다.
하나 그것을 이룬다고 해서 무극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니었다.
무극과 음양쌍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무극이었다.
“하지만 무극으로 가는 길은 찾을 수가 없구나.”
그는 강해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극의 경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명운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음양쌍검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명운은 음양쌍검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양손에 쌍검을 나뉘어 들었다. 그리고는 각기 다른 기운을 양검에 실었다.
“우검!”
파공성과 함께 한음진기가 오른쪽 검에서 뻗어 나갔다.
팍!
벽에 부딪힌 진기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음은 좌검!”
왼쪽에서 뻗어 나간 양강진기.
그 기운은 검기가 되어 벽에 굵은 선을 남겼다.
찌익!
‘우검은 검기가 되지 못했지만, 좌검은 검기가 되었다.’
이는 쌍검의 균형이 어긋나 있다는 뜻이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균형이 무너진 채로 쌍검을 쓰는 것은 일검을 쓰는 것만 못하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음양쌍검과 실제로 펼쳐진 음양쌍검은 큰 차이가 있었다.
“쉽지 않겠는걸.”
다시 나타난 벽.
지난해였다면, 포기하거나 우회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독이라는 벽을 극복한 뒤, 그는 달라졌다.
“처음부터 잘되었다면, 누구나 다 음양쌍검을 완성했겠지.”
그는 다시 검을 들었다.
“우선 균형을 맞춘다.”
명운은 좌검에 실린 기운을 줄여 우검과 맞췄다.
폐관수련 오백오십팔 일째.
명운은 양손에 나누어 든 검을 내려놓았다.
“후우…… 여기까지군.”
그는 좌우 양검에서 서로 다른 검기를 동시에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음양쌍검은 강해지는 길이 아니었다.
‘좌우 균형을 맞춰 검을 휘두르는 것은 보기만 좋을 뿐이다.’
무공이란 결국 상대를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음양쌍검에 현혹될 정도의 상대라면, 그것을 쓰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을 더 끌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수련은 반인가?”
어느덧 삼 년의 절반이 지나가 버렸다.
“아니, 절반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해야겠지.”
명운이 폐관수련으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폐관수련 육백칠십 일째.
명운은 드디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다.
“무극이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강해지는 길은 찾은 것 같다.”
그는 우선 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전에 기를 내력이라는 이름으로 가둔 채, 무기를 사용할 때만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명운은 언제 어디서든 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의 흐름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강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연공실을 밝히던 촛불을 껐다.
팍.
짧은소리와 함께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눈이나 귀에 의존하지 않고, 기로 사물을 판단한다.”
기를 펼쳐 주변을 살피는 것은 절정고수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명운은 주변을 살피는 것을 넘어 기로 자신의 눈과 귀를 대신하고자 했다.
‘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날부터 그는 빛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며칠, 아닌 한 달이 넘어서도 그는 이전과 같이 움직일 수 없었다.
침상에 걸려 넘어지고, 물통의 물을 쏟고, 벽곡단을 바닥에 흘렸다.
“이 정도로는 포기하지 않아.”
그는 전정으로 기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을 주변으로 펼쳤다.
이 방법에 적응하게 되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두 달이면 오래 걸린 것이 아니다.”
석 달이 지나자 눈을 뜨지 않고도 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명운은 어둠 속에서 검기를 뿌리며 검을 연마했다.
“무극으로 가는 길은 환영검이면 충분하다.”
그는 가장 자신 있는 무공으로 무극에 도전하고자 했다.
딸칵.
외부와 연결된 통로에 대나무 물통과 다른 물건 하나가 떨어졌다.
명운은 검을 멈췄다. 그리고는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나는 물통, 다른 하나는…… 그렇군. 이것은 경은이 보낸 편지다.”
경은이 보낸 새해 편지.
어느덧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 * *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강하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은 의녀인 초예였다.
그녀의 미모는 날이 갈수록 빛이 났다.
“무엇이 심각한 문제란 말이냐?”
초예가 대답했다.
“공자님께 잘못된 물건이 전달되었습니다.”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명운에게 잘못된 물건이 전달되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하원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사실입니다.”
강하원은 바로 움직이는 대신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한데,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그는 생각했다.
‘초예와 낙산원은 접점이 없다. 하물며 공자님과는 더욱 그러하다.’
그는 명운에게 잘못된 물건이 전달되었다고 해도, 초예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예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자님께 보내진 벽곡단이 잘못되었습니다.”
강하원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냐? 벽곡단이 잘못되었다니!”
만에 하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운의 목숨이 위험했다.
‘공자님께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그 무엇으로도 죄를 갚을 수가 없다.’
초예는 그가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공자님께 보내진 벽곡단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강하원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범한 벽곡단이라. 하면 잘못 전달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공자님은 성인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소년입니다.”
강하원은 머리 회전이 빠른 자였다. 그는 초예의 말을 듣자마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벽곡단에는 공복을 면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만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뼈와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영양은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강하원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큰일이구나. 넌 어찌 이것을 알게 되었느냐?”
초예가 답했다.
“며칠 전 벽곡단 제조법을 배운 뒤, 그것을 만들다가 공자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녀가 명운을 떠올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공자님의 주식이 바로 벽곡단이니까.’
강하원이 재차 물었다.
“특별히 만든 벽곡단이 전해졌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냐?”
초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오늘 벽곡단을 만든 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평소와 같은 것을 만들어 납품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평소와 같은 것이라.”
강하원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명운은 이미 이 년이나 영양이 부족한 벽곡단을 복용했을 터였다.
‘공자님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면 그것은 모두 내 탓이다.’
그는 자신의 부주의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초예, 공자님을 위한 벽곡단을 만들 수 있느냐?”
초예가 고개를 들며 답했다.
“이미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벽곡단을 만들자마자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강하원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잘되었구나.”
그가 초예를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낙산원으로 가자꾸나.”
초예가 그의 말을 받았다.
“총관님, 공자님께 필요한 것은 제가 아닌 벽곡단입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녀가 명운을 위해 낙산원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