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65)
65화 개문(開門) (1)
명운은 눈을 뜨지 않고, 기로 편지를 훑어 글자를 읽고자 했다.
‘붓이 지나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처음 몇 글자는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그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지.”
명운은 편지를 내려놓고는 화섭자를 찾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불을 붙였다.
팟!
짧은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고, 다음 순간 그는 그것을 놓쳐 버렸다.
“큭…….”
몇 달 동안 눈을 쓰지 않았기에 불꽃을 보자마자 눈이 견딜 수 없이 시렸다.
“하,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야.”
명운은 낮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화섭자를 들었다.
탁.
이번에는 눈을 감은 채 불을 붙였기 때문에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서 빛을 보면 괜찮을 것이다.’
그는 막 피운 불꽃으로 촛불을 켠 뒤,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서서히 눈을 떴다.
‘예상대로야.’
멀리 보이는 불꽃이 눈을 아프게 했지만, 눈을 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조금씩 앞으로 가면 될 것 같군.”
그의 눈은 서서히 빛에 적응했다.
명운은 편지 앞에 이른 뒤, 그것을 들었다.
“음?”
편지는 경은이 보낸 것이 아니었다.
‘강 총관이 편지를?’
그는 급히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새로운 벽곡단을 보냈으니 남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흐흠…….”
강하원은 왜 새로운 벽곡단을 먹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적지 않았다.
“벽곡단을 새롭게 다시 만들었다면, 내용물이 바뀐 것인가?”
명운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의심이 서서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강 총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보냈다면…….’
독이 들어간 독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심은 길지 않았다.
명운은 입술 끝을 올렸다.
“후후후, 아직도 심마를 극복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를 암살하고자 한다면 굳이 벽곡단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마다 경은이 보내는 물에 무색무취의 독을 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신 차리자.”
명운은 편지를 내려놓은 뒤 대나무 통 안에 들어 있는 벽곡단을 확인했다.
“이것이 새로운 벽곡단?”
겉모습과 냄새 모두 이전에 먹던 것과 달랐다.
그는 벽곡단을 다시 만든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장기 보관의 어려움이다.”
벽곡단은 수분을 최대한 제거해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보관 장소가 축축한 지하라면, 습기가 스며들면서 썩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안에 들어간 내용물을 바꾸기 위해서다.”
독이 아닌 약.
다시 말해 내공 수련에 도움이 되는 약재를 넣기 위해 벽곡단을 새로 만든 것이었다.
“강 총관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그는 강하원을 신뢰했지만, 이번만은 그 믿음이 배신을 당했다.
벽곡단을 새롭게 만들고자 한 이는 강하원이 아닌 의녀 초예였다.
명운은 새로운 벽곡단을 입에 넣은 뒤 씹었다.
“그리 맛있지는 않군.”
지금까지 먹었던 벽곡단이 무맛에 가까웠다면, 지금 씹는 벽곡단은 쓰고 짰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명운은 벽곡단을 먹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새로운 약이 연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맥과 단전은 평소와 같았다.
‘약이 아니란 말인가?’
한 시진 정도 연공을 했음에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벽곡단이 연공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운은 가부좌를 풀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새로운 약재의 효과는 몸을 보호하는 정도인가? 아니면, 썩을 것을 우려해 잘 썩지 않는 내용물로 벽곡단을 만든 것뿐인가?”
그는 어느 쪽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 * *
강하원은 초예가 내민 상자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이 무엇이냐?”
“벽곡단입니다.”
강하원은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에 만든 것은 양이 충분하지 않았단 말이냐?”
“아닙니다. 양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왜 벽곡단을 또 만들었느냐?”
초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난번에는 서둘러 벽곡단을 만든 나머지 다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하원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잘못되었단 말이냐?”
“연공에 도움이 되는 약재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연공에 도움이 되는 약재라.”
강하원은 초예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했구나.’
그는 그녀가 의술에 소질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무릇 뛰어난 의원은 시야가 넓은 법이다.’
강하원이 물었다.
“이번에는 네가 그것을 전하겠느냐?”
“제가 말입니까?”
“내가 두 번이나 다녀오면 낙산원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초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강하원이 붓을 들며 말했다.
“호위무사 둘을 붙여 주겠다.”
순간 초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호위무사 말입니까?”
서숙에는 딱히 호위무사라 할 만한 자들이 없었다.
하나 낙산원 쪽은 달랐다.
그곳에는 조광을 비롯한 다섯 호위 말고도 여러 호위무사가 있었다.
“불안한 것이냐?”
초예가 대답을 머뭇거린 순간, 문 뒤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초예를 호위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녀의 동생 초하였다.
초하는 강하원의 밑에서 삼 년을 배웠다.
하지만 강하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넌 아직 부족하다.”
“사부님!”
초하의 재능은 상당했다.
그녀는 권법과 검법은 물론, 경신법과 비침(飛針)도 어렵지 않게 소화했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다.’
그녀는 겨우 열세 살에 불과했다.
‘손발이 짧고, 내외공이 부족하니, 상대가 완력으로 나올 때 대처가 힘들 것이다.’
초예도 강하원과 생각이 같았다.
“하야. 넌 이곳에 남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초하는 언니마저 자신을 설득하자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떻게든 따라갈 겁니다.”
강하원은 다시 붓을 움직였다.
“초예를 따라가는 것은 마음대로 하거라. 하지만 너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그는 아직 어린 제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명운에게 새로운 벽곡단이 도착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새로운 벽곡단인가?”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벽곡단과 함께 온 편지를 쓴 것이 강하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편지를 쓴 것은 초예였다.
그녀는 벽곡단에 새로운 약재를 넣었으며, 연공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었다.
“벽곡단을 다시 만든 것은 그 아이였구나.”
초예는 훌륭한 미인이 되었지만, 그의 머릿속 그녀는 여전히 어린 소녀였다.
“의술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군.”
사실 명운은 그녀의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오직 그녀의 의술뿐이었다.
“귀신수까지는 아니라도 명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면 좋겠는데 말이야.”
새로운 벽곡단을 입에 넣자 상쾌함이 입안에 퍼졌다.
‘이것은!’
그는 그녀가 이 맛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벽곡단을 입에 넣었는지 알지 못했다.
“대단하군.”
명운은 진심으로 그녀의 실력에 감탄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이는 왜 이렇게 벽곡단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가 지난 이 년 동안 먹었던 벽곡단은 정말로 맛이 없었다.
* * *
태화전 광명정.
교주 명증은 좌사와 우사 그리고 삼단의 단주들을 모두 소집했다.
광명정으로 들어서기 전, 사마진은 신교좌사 양대충과 만났다.
“좌사님을 뵙니다.”
양대충이 손을 내저었다.
“진, 무슨 인사를 그렇게 하고 그러나.”
그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장로님들도 오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장로들까지?”
“못 들으셨습니까?”
양대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시초문일세.”
“하면 제가 잘못된 소문을 들은 것 같군요.”
양대충은 멀리 공복진이 오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는 명각의 실각 이후, 신교우사 공복진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저 친구는 너무 음험하단 말이야.’
공복진은 장공자 명천에게 줄을 대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를 크게 도와주고 말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공복진을 장공자 명천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끼익.
양쪽으로 문이 열리자 앞서 온 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 육도검 아닌가?”
적비단주 육도검이 몸을 일으켰다.
“좌사께서도 오셨습니까?”
“하하하, 오랜만일세.”
적비단주 육도검은 자명단주 사마진에 비해 광명정에 입정하는 횟수가 적었다.
“자명단주께서도 오셨군요.”
사마진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적비단주님, 오랜만입니다.”
그녀와 양대충은 서열에 따라 자리를 나눠 앉았다.
잠시 뒤, 공복진과 혜선단주가 도착했다.
“우리가 늦었구려.”
사마진이 일어나 공복진의 말을 받았다.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혜선단주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장공자가 다음 혜선단주가 될까?’
장공자 명천이 다음 혜선단주가 된다면, 이곳에 모인 이들도 후계자 선택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녀는 이렇게 빨리 후계자 경쟁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낭랑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녀장 석비연이었다.
좌우 양사와 삼단의 단주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하, 교주님을 뵙니다.”
명증은 안으로 들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오랜만일세.”
그가 자리에 앉자 어느새 나타났는지 부교주 유청이 입을 열었다.
“오늘 모두를 소집한 것은 본교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함이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본교의 미래라면 교주님께서 후계자를 결정하신다는 말씀인가?’
‘역시 천이 되는 건가?’
‘벌써 결정되면 곤란한데 말이야.’
명증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청, 그렇게 말을 하니, 다들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직함이 아닌 이름으로 부교주 유청을 부를 수 있는 것은 교주 명증이 유일했다.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의견은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견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일세.”
명증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모두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후사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어서일세.”
그가 후계자 문제를 회의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기탄없이 이야기해 주게.”
명증은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부교주 유청에게 돌렸다.
이는 그부터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유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교의 후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후계를 명확하게 하면 교내의 정쟁을 막을 수 있고, 무림맹 간자들에게 본교의 굳건함을 알릴 수 있습니다.”
부교주 유청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계자 후보를 밝힌 적이 없었다.
사마진은 오른손을 꾹 쥐었다.
‘그가 명천을 지지하는 순간 회의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유청이 드디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혔다.
“전 장자인 장공자와 빼어난 공을 세운 이공자, 둘 중 하나가 교의 미래를 잇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느 한 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을 후보로 내밀었다.
사마진은 쥐었던 손을 풀었다.
‘역시 유청이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어.’
유청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 서열은 신교좌서 양대충이었다.
양대충은 가볍게 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 부교주님의 말을 들으니, 제가 너무 나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증은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
“대충, 설마 생각을 더 해 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양대충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공복진은 생각했다.
‘양대충은 정쟁에 휩쓸리는 것을 싫어하니, 부교주와 생각이 같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면 교주 명증은 미간을 좁힐 것이 뻔했다.
이윽고 양대충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앞으로 삼 년 동안 가장 많은 공을 세운 공자에게 본교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후계자 경쟁을 공식화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